아버지의 깃발
제임스 브래들리.론 파워스 지음, 이동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에게 목도리를 건네는 '목도리녀.'

개인적으로 난 그녀의 행동에 '작위성'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엔 어느 누구나 인정하는 '미덕'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것에까지 '악의'가 스며들었을 때 그 사회가 주는 비정함을 내 스스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스틸 컷' 한 장이 만든 또 다른 스토리의 '허구성'이다.
  

 

1. 서울역의 목도리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건네고, 빵과 우유를 사주던 모습이 일반인의 카메라에 찍혀 유명세를 탄 대학생이 있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한 시민이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 인터넷에 소개하면서 이 사건은 유명해졌는데, 이후 국내의 여러 매체가 이를 기사화했다. 그녀는 ‘목도리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가 됐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십수년간 독거노인을 돌보는 등 선행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모녀는 ‘부전여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목도리녀가 취업을 준비 중인 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것과 모 금융회사에서 그녀를 고용할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그리고 이 기사는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허위’기사 혹은 조작 기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목도리녀는 모든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잠적을 했다. 목도리녀를 지켜보던 몇몇 네티즌들은 그녀가 취업을 위해 선행을 미리 ‘계획’하고 찍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행위는 실제인가, 거짓인가. 
 

영화 <아버지의 깃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키워드로 쓰이는 사진. 이 사진 한장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동은 컸다. 전쟁은 곧 끝날 것이며  따라서 내 아들이, 남편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훨씬 더 '의도적'으로는 '미국의 승리'를 확신케 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2. 아버지의 깃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미군해병부대가 일본군의 요새지역인 이오지마섬에 투입된다. 한 달이 넘도록 전투를 계속한 끝에 미군은 이오지마섬의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는 데 성공한다. 마침 그 모습이 한 사진작가에 의해 찍히고, 이 사진은 신문매체를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된다. 이 사진은 언제 끝날지 몰라 지루해 하던 미국인들에게 ‘전쟁의 종식’ 혹은 ‘연합군의 승리’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미국인들은 사진 한 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사진 속 장면은 신문의 설명처럼 그들이 ‘처음’ 성조기를 꽂을 때가 아니었다. 사진 속 6명의 대원 중 끝까지 살아남은 3명의 대원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한다. 전쟁 때문에 엄청나게 늘어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의 성금이 필요했던 미국 정부는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진실을 조작할 것을 지시한다. 이들 만들어진 ‘영웅’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전국을 돌며 모금운동을 벌이고, 사진에 열광했던 미국인들은 주저 없이 돈을 내놓는다. 이들은 전쟁 중에 스러져간 동료들과 별 것 아닌 행동 하나로 ‘영웅’이 된 스스로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전쟁의 기억이 국민들로부터 가물가물해져가는 것과 동시에 이들 ‘영웅’ 역시 가물가물 잊혀진다. 이들의 행동은 실제인가, 거짓인가.     
 
 

3. 장 보르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는 제1차 이라크 전쟁이 한창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를 때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CNN 등의 미디어가 소개하는 이라크전은 첨단무기에 힘입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만 있을 뿐 전쟁의 진짜 모습, 즉 살육전의 아비규환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TV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이라크전은 첨단 무기가 시연하는 화려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 이미지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승리’라는 메시지를 ‘마사지’해주었다. 제2차 이라크전쟁의 비극이 제1차로부터 기인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마사지는 거짓인 셈이다. 여전히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에 의해 실제와 거짓이 모호해진 현대 사회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라 불렀다.
 
  보드리야르가 주목한 매체는 사실 ‘TV'나 ’영화‘ 등의 영상매체였다. 이들의 연속성은 사진에 비해 훨씬 ’사실감‘이 높다. 반면 교묘한 조작에 의한 왜곡 역시 용이하다. 섬세하게 조작된 영상 메시지는 보는 이의 오감을 ’마사지‘ 해 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봤듯, 실체와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시뮬라시옹‘의 사회는 무릇 영상매체에 의해 주도되는 것만은 아니다. 목도리녀는 인터넷과 휴대폰카메라의 결합이 창조한 ’시뮬라시옹‘이며, 아버지의 깃발은 사진 한장과 국가주의, 영웅주의가 결합했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2005년 대림 미술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사진전'을 선뵌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전의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자신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듯 이 전시회
한켠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침묵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현실과 그 이미지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관람객이 이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는데,
사진이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고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을 때 그 이미지는 순수하다. "
 
 
  우리는 무수히 많은 거짓 이미지에 노출돼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여러 장면이 사실은 여러 이유로 조작되고, 왜곡된다. 속된 말로 감동의 눈물바다였던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은 연극과 학생들의 연기였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 여중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올린 영상 역시 철저히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우석 사건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이병천 교수의 늑대 복제 논문 역시 조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심각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러한 조작이 더욱 용이해졌다는 점이다.  실제 인터넷을 떠도는 ‘몰카’영상을 보라. 포토샵에 의해 섬세히 ‘뽀샵’처리된 사진들을 보라. ‘명품’보다 더욱 성능이 우수한 ‘짝퉁’을 보라. 이들은 대부분 실제를 가장한 ‘가짜’다. 과연 현대는 실제와 거짓의 구분이 불가능한 ‘시뮬라시옹’으로 가득한 사회가 아닌가.
 

서울대 이병천 교수팀에 의해 복제된 늑대 '스널피'와 '스누피.'
이 기사가 나간 후 국내의 보수언론들은 '생명복제 시대 다시 열어야 한다' 식의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나 이 실험 역시 '황우석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수치가 조작되고, 연구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사실 황우석 사건은 '비극'적 측면이 많았다. 과학계의 입장에서도 그렇거니와, 아무것도 모르고 공짜 홍보에 열을 올렸던 '언론계'의 입장에서도. 국가도, 국민도 모두 일인의 사기 행각에 허무하게 당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똑같은 내용의 논란이 반복됐다. 이건 '코미디'에 가깝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은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긴 하나, 전쟁영화라 보긴 힘들다. 전쟁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스펙타클’한 영상은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는 다른 작품을 통해 ‘휴머니즘’에 대해 얘기한 적이 많은데 전쟁영화에서 나오는 전우들간의 우정이야 모든 전쟁영화의 공통 화두라 특별할 만한 게 없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개인들의 방황 역시 다른 영화에서 여러 번 다루었던 스토리다. 이 영화가 내게 새로이 다가왔던 부분은 ‘미디어에 의한 현실 왜곡’이었다. 굳이 미디어로 한정할 수 없는 현재의 영상공간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사회에 꽤나 신선한 문제 거리를 던져준 셈이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서의 왜곡이 ‘국가’에 의해 주도됐다면 현재의 이미지 왜곡은 콘텐츠의 생산자에 의해 직접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다를 뿐. 더욱이 현재의 콘텐츠는 생산자과 소비자의 구분 없이 ‘유비쿼터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지에 의한 현실 왜곡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UCC가 상징하는 민주성을 마냥 긍정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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