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문제다. 위의 그림은 3월 27일자 경향신문의 1면 톱기사와 그 밑에 배치됐던 광고물을 스크랩한 것이다. 1면의 기사에서는 '목매는 협상'에 끌려다니는 한미FTA와 최근 협상타결에 실패한 한-말레이시아 FTA를 비교해 놓았다. 같은 면 한국무역협회 등에 의해 실린 광고물은 한미FTA에 의한 '개방'이 우리나라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을 담고 있다. 한미FTA가 세간의 집중을 받은 이후 경향신문은 꾸준히 그 위험성을 지적해 왔다. 가령 오늘자(4월 2일) 신문에서는 1면 톱을 비롯, 총 9면을 할애하여 FTA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보도했다. 내가 지금 문제 삼고자 하는 바는 FTA 찬반논쟁이 아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실려있음이 분명한 1면 톱과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중요 밥줄'일 수밖에 없는 하단 광고물 사이의 이물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다. 이 이물스런 편집은 시사저널 사태로 촉발된 자본-언론간 엇나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엄연히 '사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언론사가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기란 쉽지 않다. 군부독재 시절의 언론탄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언론사들처럼 말이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 전두환을 옹호하는 기사를 썼으며, 오랫동안 '김국'라는 애칭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맡았고, 지금은 당대의 문장가로 평가받는 '김훈'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젊은 기자 시절에 나와 내 선배들은 인간의 사회가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가치에 의하여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언론 전체는 패배하고 좌절했습니다."(p.223) 그는 시사저널 사태를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자신의 후배들을 보며 비참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오늘 시사저널의 사태는 저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 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저도 그 때 무너진 기자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p.223)



2006년 6월 19일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기사를 인쇄 직전 삭제하면서 발생한 '시사저널 사태'는 생각처럼 쉬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우리가 쌓아놓은 '민주주의적 가치', '언론윤리의 잣대' 에 따르면 이른바 '편집권'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편집국에 속해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사가 상품이 되는 엄연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편집권'이 언론사의 경영권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문제다. 역시 그 자신 기자로 오랫동안 생활해 왔고,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고종석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 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p.242) 고종석이 말한 '사기업의 형태를 띤' 언론사의 예외로 둘 수 있는 언론사는 KBS 등 공영방송과 국민주주 혹은 사원주주 등 독특한 형태를 띤 언론사인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주주의 입김으로부터 극히 자유로운 '경향신문'조차 자본의 유혹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이라크전쟁 반대' 등 '평화적 가치'를 내내 지지한다던 한겨레 역시 미국산 전투기를 광고물로 실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자본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는 것은 '언론의 제역할'을 포기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언론은 이른바 '공익'(과연 공익이 무언가, 공익의 범위를 어디까지 놓아야 할 것인가. 언론사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공익의 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의 물음은 또 다른 문제다.)을 알리는 데 존재의의가 있으며, 현재 공익에 맞부딪히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자본'인 사실 또한 엄연하다. 우리가 폭력의 공포 속에서 어렵사리 획득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선 필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야 하며, 이를 위해 '편집권의 독립'이 핵심 요건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공익', '자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물질의 유혹 앞에서 쉽사리 무릎꿇기 쉽지만, 그것을 잃고 난 후에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굴욕감은 물질이 주는 단물보다 훨씬 크다. 그런 점에서 시사저널 사태가 주는 묵직한 경고음을 그저 넘겨들어선 안된다. 고종석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 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p.242)



이 책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일상을 담은 글이다. 보다 뚜렷하게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진퉁' 시사저널 재직시 썼던 기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기도 했고, 시사저널과 함께 보냈던 지난날의 애환을 소소히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책 중간중간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결기가 묻어나기도 하고, 기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을 비장한 각오로 보여주기도 한다. 비단 '시사저널' 기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기자들이기필코 수호해야 할 행동 원칙이 아닐까 한다.

 '기자'가 되겠다고 작심한 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방황하지만, 수백번씩 좌절하지만...그래서 읽어본 책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 아직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는가, '어떤' 기자가 되겠는가 등의 당위론적 질문들에 마땅한 대답을 구하지 못한 터다. 글쎄, 이 책을 본 이후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자가 된다면 이들처럼 '꿋꿋'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당당'하길 바란다.

 '짝퉁' 시사저널이 발간된 이후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더욱 큰 것 같다. 외로움의 문장들이 가끔 눈에 띈다. 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꼭 이들을 만나봐야 겠다. 이들이 친 천막 풍경을 한번쯤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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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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