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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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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보았던 히치콕 영화가 바로 이것이었다는 불운(?)은 이 감독이 매우 불길하고, 찝찝하며 괴상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10여년 가까이 유지하게 만들 정도였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제작된 후 40년이 지나서 전혀 정보 없이 본 영화는 조잡한 느낌의 특수효과와 음악 하나 없이 진행되는 다이얼로그, 그리고 눈을 의심케 하는 결말까지 모두 수면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심코 비디오를 빌렸던 나는 친구들로부터 상당한 수위의 성토를 감내하며, 영화로 인해 생긴 검은 새 포비아(phobia)를 감내하며 그렇게 10년을 히치콕 영화를 멀리하며 보냈다. 가끔씩 주위에서 명작이란 소리를 해도,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맥카시즘에 대한 조금 혐오스런 알레고리가 아닌가, 하고 여길 뿐이었다.

근데 특수효과에 대한 눈높이가 당시와 비교할 수 없게 높아지고, 폭력 장면에 대한 관점도 상당히 많이 무뎌진 10년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이것은 명작이다!"라는 외침이 바로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은 그러고 있는 본인으로서도 이해 불가. 허나 사실이 그렇다. 배경 음악을 전혀 쓰지 않음으로써 배경 마을의 고요함과 새들의 사운드는 끔찍할 정도로 대조를 이루어 공포스러워지며,  흑백으로만 표현되는 새들의 군집과 대조되는 올컬러의 인간 세계의 이질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티피 헤드렌이 사온 푸른 잉꼬가 영화 끝까지 다른 새들의 광기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덧붙여 미치와 그의 어머니, 멜라니가 벌이는 신경전과 갈등의 드라마는 히치콕의 타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인간적인 울림이 있었다. 사실 10년 전엔 인생경험이 부족하여 이러한 갈등을 거의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 히치콕의 영화에서 잘 나타나는 '적대적 군중'으로 인한 공포의 연장선상에 '새'가 있는 것 같은데, 매개체가 말 못하는 '새'이다 보니 그 의미가 상당히 모호해진다. 10년전 처음 봤을 때처럼 딱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진 건지, 집단적 광기로부터 자연재해 같은 천재(天災), 혹은 핵전쟁과 같은 원치 않으나 불가피한 재난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 들 뿐이다. 어쨌든 그 새들이 점진적으로 모여 형성하는 결말의 비주얼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섬뜩하다.

히치콕의 내용 있는 스릴러 중에서는 [현기증]을 최고로 꼽고 싶지만 (따라서 히치콕의 최고 명작으로도 등극하지만) 공포스러운 면에서는 이 영화를 최고로 꼽고 싶다.

사족 : 각본가가 이던 헌터인데, [87분서 시리즈]를 쓴 에드 맥베인의 또다른 필명이다. 드라마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진 것은 이런 뛰어난 각본가의 덕분이 아닐까. 나 또한, 다른 히치콕 영화 감상자들처럼 처음 주인공들의 눈맞음은 으례 나오는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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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rot 2004-05-1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레베카"의 다프네 두 모리에이기도 하죠..모리에 원작에 이반 헌터 각색이라..
 
한푼도 용서없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86
제프리 아처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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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난다. 책을 좀 빨리 읽긴 하지만 2-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들여 모두 읽었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사기를 치는 자의 시점에서 사기를 당한 자의 시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나 복수의 수순이 모두 시간의 역전 없이 주욱 기술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비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는 부분은 모종의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실제로 90년에 BBC-파라마운트 합작으로 3시간짜리 TV 미니시리즈로 각색해 방영된 적도 있다는데, 비영어권에선 재방영은 고사하고 구경도 하기 힘들 물건이니 그냥 부러워만 할 수밖에. (검색해본 결과 영어권에서도 DVD는 커녕, VHS로도 나와 있지 않았다.)

대부분이 지금으로서는 거의 할 수 없는 사기 수법인듯 하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데가 있다. 등장인물마다 죄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도록 유쾌한 것은 작가가 교묘하게 지금 설명하고 있는 인물의 관점으로 독자의 시선을 옮기기 때문인 것 같다. 사기극을 다룬 얘기 중에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얘기도 그다지 많진 않을 것이다.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 생돈을 떼먹힌 걸 분개하고 복수를 궁리하는 것까진 필연적인 수순이었는데, 네 사람 모두에게 한 가지씩 계획을 연구해 세워 오라고 주문하는 것이 특이했다. 그로 인해 뭔가 틀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까지 제공했으니까... 보통 '한번 속지 두번 속나' 라는 속언이 있을 정도로, 어떤 사람을 한번쯤 속이기는 쉬워도 4번을 속이기는 쉽지 않은 법인데. 나는 특히 4번째에 감탄했다. 수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작중 내내 얼빵하던 캐릭터가 갑자기 뒤통수를 칠만한 계략을 걸었다면 매우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오히려 그의 얼빵함이 마지막 뒤통수 치기에 일조하게 된 걸 보고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정치를 하다가 불운을 겪고 나서 일종의 도박을 거는 기분으로 쓴 처녀작이라는데 - 지금은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 작가 초년생이라고는 하나 아마도 미스터리의 열렬한 팬이었을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부분이 꽤 있다. 이를 테면, 열차 안에서 만난 여승객이 '매우 재미있는 ****의 소설을 읽고 있다'든가 해서 특정 소설을 격찬한다든가,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등장시킨다든가 하는 것. 이런 요소들은 단순한 미스터리 사랑의 표출로만 끝나지 않고, 구성의 복선과 맞아떨어지면서 마지막에 무릎을 치게 만들기도 했다. 여러 모로 유쾌하고 가벼운 복수극이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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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4-2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빨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의 기막힌 아이러니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코믹 미스터리라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여왕폐하 율리시즈호 동서 미스터리 북스 82
알리스테어 매클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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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H.M.S.(=Her Majesty's Ship) Ulysses. 1959년작. 이것을 "여왕폐하 율리시즈호"라고 번역해 출판한 것은 무슨 유머처럼 느껴진다. 처음에 책을 골랐을 때는 호화로운 여객선 "퀸 율리시즈"에서 벌어지는 나찌 상대의 첩보작전을 다룬 전형적인 Whodunit 얘기가 아닐까 하고 상상했을 정도였다. 물론 첫 챕터를 끝내고 브룩스 중령의 일장 연설을 마치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잘못 짚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선남 선녀들의 호화로운 선상 생활은 커녕, 다 큰 아저씨들이 1년에 겨우 며칠만 육지를 밟으며 해군 함대의 기함에서 인간의 한계를 육체적/정신적으로 시험받는 고생담의 일부였던 것이다! 하긴 속표지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전함 구역 세부 명칭만 보고 눈치를 깠어야 했는데, 나 자신이 멍청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권말의 해설을 읽고서야 영화 <나바론> 시리즈의 원작자이며 십여편의 원작을 영화화시킨 걸출한 유명 작가임을 알았다. 동서미스터리 북스 시리즈에는 물론 스파이 소설과 정치 드라마가 빠지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상당히 이단적(?)인 축에 속하는 것이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쟁 소설, 모험 소설, 비경(秘景) 소설, 이 세 범주 중 어느 하나에 넣어도 베스트에 올라갈 만한 수준을 갖춘 소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추리소설은 아니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살인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이 극초반에 일어나고, 결말에서 그 진상이 밝혀지긴 하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것은 읽어보게 되면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허나 미스터리가 없다는 점이 이 소설의 별을 깎게 되진 않다. 원래부터 별 9개나 10개는 받을 수 있는 소설이다. 문학적으로도, 재미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총공격을 받고 있는 소련 지원 작전의 일환으로 미국과 캐나다는 영국 함대의 엄호 하에 대규모 수송선단을 노르웨이 접경의 부동항으로 보내게 되는데, 그 영국 함대의 기함 율리시즈 호는 첨단을 달리는 성능과 최고의 간부진, 유능한 선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지만 본국에서는 무사안일한 관료주의와 과중한 책임에, 임무에 나서서는 금세기 최고의 폭풍우에, 그리고 끊임없는 적국의 잠수함-비행기-전함의 공세에 시달린다. 이런 큰 줄거리에 끼어드는 것은 함내 승무원들의 드라마. 헌신적이고 조용한 함장으로부터 다혈질에 시니컬한 선의, 귀족의 자제란 이유만으로 임관된 무능한 장교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배 위에서 함께 부대끼며 지옥같은 1주일을 견디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흔해빠진 휴먼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정작 초점은 임무도,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 특이하다. 전쟁이라는 대량 학살의 본질이 이 책의 진짜 관심사인 것이다. 이 책의 전체를 꿰뚫는 정서가 불가피한 파멸에 가깝다는 점에서 재난 소설이라고도 불릴 만하다.

인터넷의 한 외국인이 이 책을 가리켜 "excellent but extremely dark"라고 평했던 것이 생각난다. 배의 구석구석과 북극해의 낯설고 두려운 자연, 수많은 인물을 사실적이면서도 센세이션을 놓치지 않는 신속하고 절묘한 묘사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 그려내는 것은 정말 훌륭하지만, 그 묘사로 떠오르는 광경의 처절함과 내용의 잔인함은 읽으면서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중반 이후 동종 학살을 극대화하기 위한 문명의 충돌(=전투)이 구체화되면서, 그에 노출된 몇몇 인물들의 운명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전쟁이란 상황에 의해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비극적 상황에 내몰리게 된 이들은 육체적인 부상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서서히 파멸해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거의 여과 없이 극단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그 와중에서도 기본적인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산화해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연민을 자아낸다...

과연 율리시즈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수송 호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전쟁 드라마를 극도로 혐오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바다의 거친 선원들과 함께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인다면, 군대를 다룬 소설은 계급과 상명하대의 어조를 잘 살려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번역과 편집은 낙젯점 감이다. 처음 몇 챕터에서 몇 번의 일관성 없는 경어체 실수로, 한동안 틴들과 버렐리 함장의 상하관계를 착각하는 문제가 있었다. (읽으실 분을 위해 말씀드리면, 틴들은 함대 사령이므로 기함 함장의 상관입니다. 계급도 소장이니 더 높죠) 그 밖에 같은 인물의 계급이 일관성 없이 번역되었다든가 하는 사소한 실수들이 참 안타까왔다. 개정판 같은 것은 나오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으니, 새로 나오는 동서미스터리라도 제발 한번쯤 제대로 된 교정을 거쳐서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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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 마지막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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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초반엔 아주 지루하다. 살해되는 인물에 대한 흥미롭지만 약간 늘어지는 듯한 소개, 화가 탐정이 나오는데 날카로운 관찰력과 미적 감각을 장기로 하지만 왠지 산만해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 힘든 인물이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초의 소설답게, 경찰이 멍청하다! 다만 당시의 사회상 묘사나, 극중 일어나는 연애감정에 대한 기술만은 확실하고 격조가 높기 때문에 불평하면서도 그럭저럭 청문회가 열리는 데까지 따라갈 수 있다. (지은이가 GK 체스터튼과 평생의 교분을 쌓았다고 하는데 글솜씨만은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탐정의 결론이 너무나 미흡하면서도 신속하게 나는 것에 실망하는 순간, 손에 쥔 부분을 재어보고 앞으로 읽은 만큼이 더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본격적인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정말 기대 이상이다. 묵은 오해가 풀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장까지 수수께끼의 마지막 매듭을 이어가는 전개는 그야말로 수면시간을 단축하기에 충분했다.

미스터리 소설계에서의 역사적인 의의나 그런 건 다른 리뷰에 나와 있기도 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사회 소설로서의 측면과 여러 사람의 대화를 통해 수수께끼가 조합되어 가는 과정 등은 황금기의 여러 작가들, 즉 AB콕스, 세이어즈, 크리스티, 크로프츠 등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의 초인 탐정 소설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는 이 소설은 아마도 이후 작가들에게 고루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리얼리즘 작가들에게.

한가지 책 자체의 문제점을 덧붙인다면, 다른 분도 지적하셨는데, 일어 중역의 악취(?)가 너무 심하다. 현대 한국어에서 어떤 아내가 남편을 두고 '주인'이라 부르겠는가. 이런 것은 재판을 내면서 누군가가 읽어보기만 했어도 충분히 교정을 볼 수 있는 것이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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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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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전쟁이 70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대체 역사의 세계, 문학을 숭배하고 주인공 이름을 따 작명하는 풍토, 드라큐라, 늑대 인간 등의 초자연 현상의 산물들, 책의 내용을 현실화시키는 외곬수 매드 사이언티스트, 사람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시간 여행... 외계인만 빼고 웬만큼 컬트한 소재는 다 나오는, 딱 나같은 사람이 열광할 것 같은 얘긴데 이상하게 '우와, 재미있다!'라고 외칠 만한 끓어오름이 가슴에 느껴지진 않는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이것저것을 마구 집어넣은 듯, 결과적으로 펼쳐지는 세계는 무언가 언밸런스하고 혼란스럽다. 마치 여러 개의 전혀 다른 분위기의 TV시리즈를 섞어서 감상한 다음 변덕스럽게 바뀌던 감정선을 주체 못해서 멍~해진 기분. 대체 역사의 아이디어가 세계관과 따로 노는 것도 약점으로 작용한다. 코니 윌리스의 하드한 시간물은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대체 역사가 배경에 영향을 미친 이유가 랜달 개릿의 Lord Darcy 시리즈만큼만이라도 설명이 되었다면 모르겠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론 전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소재를 써먹은 것 같아서 아이디어의 낭비 같은 느낌이.

덧붙여, 고전에 보내는 나름대로의 찬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이 열거되어 있다든가, 이 세계에서 책에 딸려 발달한 각종 부가산업이 현대 TV의 프랜차이즈랑 너무 닮아 있다는 사실은 아쉬웠다. 마치 고전을 읽지 않는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고전을 읽는 길고 긴 고통 끝의 감동에 대해서는 슬쩍 숨기고, 그 안의 단편적인 흥미로운 사항만 슬쩍 보여주며 광고를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뭐, 그런 것에 혹해서라도 책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좋은 현상일라나...

어쩌다 아쉬운 얘기만 했는데, 평작은 넘는다는 것이 확실하다. 무엇보다 문학이 TV자리를 대신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주인공 넥스트 양은 이 모든 난리통에 던져지기엔 평범한 인물이지만, 그의 삼촌 마이크로프트(!)나 숙적 아케론 하데스는 너무나 훌륭한 캐릭터들이었다. 특히 펠릭스의 아이디어는 상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발상. 적어도 잔혹한 면에서는 별 5개를 받을 만한 소재에, 구성에, 스타일을 갖추었다.

노파심: 아직 [제인 에어]를 읽지 않았다면 부디, 소재가 된 작품을 봐야 이해할 수 있다는 편견에 시달리지 말고, 그것을 읽지 않고 볼 것을 권한다. 중간의 복선을 감지하고, 예상되는 결말로 갈 것을 예감하게 되면 이후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나중에 들쳐보면서 "아, 이게 거기 나온 그 사람들이군" 하는 재미라면 몰라도... 이번에 물 건너에서 이 시리즈의 하나인 [Lost in a Good Book]이 Dilys Award를 받았다는 소식도 있던데, 같은 세계관의 시리즈가 계속 번역돼 우리 나라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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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rot 2004-03-06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제인에어"를 읽지않았기 때문에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안읽고있답니다..(책은 나오자마자 샀다죠..아마-_-a)
말씀을 듣고나니 심하게 갈등이 되는군요..ㅠㅠ

Fithele 2004-03-0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등하시지 말고 그냥 보세요 ^^ 아마 읽고 보는 것보다 1.5배 정도는 재미있으실 겁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