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트 마지막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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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초반엔 아주 지루하다. 살해되는 인물에 대한 흥미롭지만 약간 늘어지는 듯한 소개, 화가 탐정이 나오는데 날카로운 관찰력과 미적 감각을 장기로 하지만 왠지 산만해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기 힘든 인물이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초의 소설답게, 경찰이 멍청하다! 다만 당시의 사회상 묘사나, 극중 일어나는 연애감정에 대한 기술만은 확실하고 격조가 높기 때문에 불평하면서도 그럭저럭 청문회가 열리는 데까지 따라갈 수 있다. (지은이가 GK 체스터튼과 평생의 교분을 쌓았다고 하는데 글솜씨만은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탐정의 결론이 너무나 미흡하면서도 신속하게 나는 것에 실망하는 순간, 손에 쥔 부분을 재어보고 앞으로 읽은 만큼이 더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본격적인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정말 기대 이상이다. 묵은 오해가 풀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장까지 수수께끼의 마지막 매듭을 이어가는 전개는 그야말로 수면시간을 단축하기에 충분했다.

미스터리 소설계에서의 역사적인 의의나 그런 건 다른 리뷰에 나와 있기도 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사회 소설로서의 측면과 여러 사람의 대화를 통해 수수께끼가 조합되어 가는 과정 등은 황금기의 여러 작가들, 즉 AB콕스, 세이어즈, 크리스티, 크로프츠 등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의 초인 탐정 소설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는 이 소설은 아마도 이후 작가들에게 고루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리얼리즘 작가들에게.

한가지 책 자체의 문제점을 덧붙인다면, 다른 분도 지적하셨는데, 일어 중역의 악취(?)가 너무 심하다. 현대 한국어에서 어떤 아내가 남편을 두고 '주인'이라 부르겠는가. 이런 것은 재판을 내면서 누군가가 읽어보기만 했어도 충분히 교정을 볼 수 있는 것이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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