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with katarina 님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재미있으니까. 쉬고 싶은 주말에 집에서, 여행지에서 쉽게 꺼내들고 몰입하기도 좋습니다. 추리 소설이라고 통칭하지만 그 안에는 여러 하위 장르가 있어서, 단순히 누가 죽어서 범인을 찾는다, 식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을 꼽는다면.
A.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어른용 추리소설로는 처음 읽은 책. 빽빽한 세로줄쓰기에 한자가 수두룩빽빽한 책이었는데, 열심히 코를 박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난 같던 설정에서 시작해 인간의 본성까지 염두에 둔 범죄수법이 더없이 흥미진진했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오마주를 바치는 작품들도 대부분 재밌는 걸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판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2)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지 지음
아주 오랜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야 했던 어느 여름날, <가짜 경감 듀> 덕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스터리와 코미디와 로맨스가 얽혀있는데 더없이 가볍고 즐겁게 읽힙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쓰여진 일종의 스핀오프 소설인 셈인데, 원래 사건의 드라마틱함이 피터 러브지의 글솜씨에 더해져 심심할 때마다 꺼내 읽는 단골 책이 되었답니다.
3)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지음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알리바이 트릭에 코를 박고 도전하면 즐겁기 그지없는 책. 딕슨 카는 신비로운 분위기(라고 쓰고 기괴한 분위기라고 읽는다)의 이야기도 잘 쓰는데, <황제의 코담뱃갑>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깔끔하고 기발한 데가 있는 책입니다.
4) <위철리 여자>, 로스 맥도널드 지음
하드보일드로 분류되는 소설들을 거의 좋아하지만, 그 중 <위철리 여자>를 가장 좋아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우아한 문장이나 대실 해미트의 냉철함과 달리, <위철리 여자>의 로스 맥도널드는 끈적거리며 머릿속에 들러붙어버립니다. 이 책에 이어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를 읽었던 때의 증폭효과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어요.
5)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교고쿠 나츠히코는 요괴 전문가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부메의 여름>을 위시한 교고쿠도 시리즈는 정통 추리소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책입니다. 산달을 넘겨 계속 배가 부른 상태로 출산하지 못하는 산모와 임신 즈음에 행방이 묘연해진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음양사와 소설가, 이상한 탐정... 기이한 설정들이 폭발하며 사건이 해결되는 마지막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 5권은?
A.
1)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 지음
<하얀거탑> 드라마의 한국판과 일본판을 모두 본 뒤, 더 볼 게 없나 허전해하던 마음을 달래준 책. 의료계의 내부사정과 업계 특유의 분위기가 미스터리와 결합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를 비전문가가 읽기에 무리없이 풀어낸 가이도 다케루의 글솜씨도 훌륭합니다.
2)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케타케 나나미 지음
연속살인사건, 밀실살인사건이 너무 기계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열 두 편의 소소한 단편들 뒤에 이어지는 극 중 단편작가의 편지까지 읽고 나면 일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싹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3) <이름없는 독>, 미야베 미유키 지음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모방범>도 멋진 책들이지만, <누군가>와 <이름없는 독>으로 이어지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매력 또한 지나치기 아쉽습니다. 스기무라 사부로가 너무 모범적이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인간형이라, 소설을 읽다 보면 탐정 역인 그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는 일도 발생하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 만큼은 변함없이 날카롭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4) <마술사가 너무 많다>, 랜달 개릿 지음
추리와 SF라는 이종교배의 결과물. 귀족탐정 다아시 경 시리즈 첫 번째 책이자 단편집인 <셰르부르의 저주>를 먼저 읽으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마술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사건 자체도 해결 방식도 신비로운데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 해결의 논리적인 부분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5) <잘린머리 사이클>, 니시오 이신 지음
추리소설 팬이 라이트노벨로 입문하기 좋은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 살인사건>에서 이어지는 외딴섬 연속살인 미스터리가 흥미롭습니다. 만화 <데스노트>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니시오 이신이 쓴 <데스노트> 외전 <로스앤젤레스BB연속살인사건>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Q.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분명하게 기억하는 첫 추리소설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 어린이용으로 편집되어 노란 표지에 내지 그림까지 요란하게 들어간 책이었습니다.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Q. 재출간을 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다카무라 카오루와 오사와 아리마사, 도로시 세이어스. (다행히 이들 작가들의 책은 조만간 한국에서 출간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자기 소개
영화, 출판담당 기자와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한때 추리소설이 너무 안 나온다고 생각해 슬퍼해 마지않았으나 이젠 나오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행복의 비명을 지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