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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병든 시대, 병든 사람들 속에서 문학이 발견한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잔상들




'다채로운 사이코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아야겠어.' 불시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p7
일요일 아침 7시에 그는 침대 옆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깨어났다. 적자색 전화기에서 울려 나오는, 무자비한 적자색 음파. 그는 그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파장이 크고 끈끈한 적자색 파동이 자신의 잠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것을 느끼며 꼭 다른 것을 사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여자친구가 그가 전화기를 바꾸는 게 낫겠다는 말을 비치자 펄쩍 뛰었다.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선물로 받은 전화기를 선물해준 사람의 허락도 얻지 않고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은 알 정도로 충분히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p15(「정열」 중에서)
언니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다. 비쩍 마른 그녀의 얼굴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은 어딘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짐승을 연상시킨다. 얌전한 고양이처럼 말도 별로 없이 공부만 잘했는데, 슬슬 담배를 피워 물기 시작했을 때도 흡사 그런 표정을 지었다. -p45 「식성」 중에서
『퍼니 사이코 픽션』은 제목만큼이나 낯설고도 강렬하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묘한 인간 군상의 내부로 곧장 진입하게 된다. 『퍼니 사이코 픽션』은 우리가 ‘이상하다’고 부르던 현실의 감각, 이해할 수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광기와 피로를 문학적으로 짚어낸다. 송경아, 이응준, 김이태 등 당대 문학의 이름들이 풀어놓은 일곱 편의 세기말 단편은 단순히 기괴하거나 자극적인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 ‘변화를 꿈꿨던 사람’ 같은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심장을 파먹는 언니’(「식성」), ‘위 속에 나비를 품은 시체’(「나비」) 같은 이미지들은 환각처럼 아름답고도 불쾌하며, 독자의 정신을 은밀히 파고든다. 이 책을 기획하고 해설을 덧붙인 박혜진 평론가의 통찰은 단편의 잔상을 다시 현재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소설에 매혹당하는가? 어쩌면 『퍼니 사이코 픽션』은 그 질문에 대한 문학적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감정의 균열, 존재의 불안, 그리고 시대의 피로가 응축된 이 단편집은 그저 ‘읽는 책’이 아니라 ‘견디는 책’이다.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퍼니 사이코 픽션』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