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초은하단과 행성 > 닮은꼴 역사왜곡을 넘어서

적대적 공범관계.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왜곡을 나타내기에 이 표현만큼 적합한 것도 드물 것이다. 제각각 타국의 역사왜곡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왜곡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모태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내셔널리즘을 강화시키며 자국주민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성 같은 사악한 미신을 주입시키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는 그들의 행태는, 서로를 비난하고 적대시하면서도 상대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공범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렇다.

이에 대해 적대적 공범관계를 구축한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여 침략과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한반도의 역사를, 제국주의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최후 논평자와 같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이런 논리 자체가 미시사에 대한 경시적 사고의 노정이자 남북한이 제각각의 독립국가로 존재하며 국사를 개인들의 국민화와 동원기제로 활용하는 현 시점에선 다소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사실 일국사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며 그러한 차원에서 예의 비판을 이해하고 싶다.

 

한반도 지역은 흔히 자신들을 세계유일의 단일민족 또는 수천년을 견뎌온 민족동일성이란 어구를 자주 들먹이지만 이것은 별다른 실증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선동적 구호에 불과한 것들이다. 노비를 인간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하던 시절에 같은 국토 안에 살고 있는 동일민족이란 개념이 들어설 공간은 애시 당초 부존했으며,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한반도 지역을 방문했던 유럽인들도 이 지역 사람들에겐 애국심이나 민족성 같은 것이 없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맹위를 떨치는 이러한 개념들은 실상 근대 서구의 발명품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서구에 대항하기 위해 후발제국주의 국가로서 일본이 차용 생성한 개념을 직접적인 모델로 해서 재가공해낸 것이다.

이러한 편협한 배타적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강화시키는 교육은 결국 개인을 집단에 종속시키려는 권력자들의 의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전 인류 역사에 끼친 어마어마한 해악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해악을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며 이 책과 출판의 근원이 된 모임은 바로 그러한 조그만 노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국사 해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다 일국사를 뛰어넘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하나의 시도인 동아시아 모델이란 것도 너무나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차적으론 동아시아가 국가의 보다 확장된 형태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점이 제기되겠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이 책의 필진과 다루고 있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수준의 전체주의 사회인 중국과 고도의 감옥사회인 북한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공론화조차 도무지 가능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러한 목소리는 학계에서조차 소수적 지위를 점유하는데 그치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이런 움직임이라도 낼 수 있는 것에 비한다면 상술한 국가군을 어떻게 이러한 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실로 엄청난 난제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연후에 보다 완전한 동아시아 모델의 정립 나아가 세계사로의 외연 확장이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학술적 논의를 현실적 처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 강구되고 완비되어야 유의미성 역시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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