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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실전경제학 입문서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 / 카시오페아 / 2015년 2월
평점 :
최근 번역되어 나온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는 사실 2010년에 출간된 책이다. 원제는 <Economics for the Rest of
Us: Debunking the Science that makes life dismal>로, 굳이 번역을 해보자면 <99%를 위한
경제학: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 기존 경제학 까발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2010년 독립출판 북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2015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다.
저자 모셰 애들러
Moshe Adler는 수학 학사를 거쳐 경제학 석사/박사를 취득하였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아니 경제학 학사 전공만 하더라도 경제수학과 같은
과목을 들으면서, 수학에 대해 재능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애들러 박사도 수학적인 백그라운드를 두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때문인지 거창한
수학은 아니더라도 책 전반에 걸쳐 숫자와 그래프를 통해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책은, 미 대통령을
역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말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경제 법칙에 대해 떠들어대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경제 법칙이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이 이 책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원문 부제에서 드러났듯이, 경제 법칙과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며, 나아가 오히려 우리 삶을 더
힘들고 비참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책은 크게 2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파레토
법칙으로 대표되는 '경제 효율성'의 의미와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두번째는 보다 개개인의 삶에 직결되는 '임금 이론'의 설명과 함께 어떻게
사용자에게 악용되어 노동자에게 해를 끼쳐 왔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학문과 현실의 접점이라는 관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7가구가 6채의 집을 놓고 임대를 얻고자 할 때 최적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왜 항공사는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은 점점
줄이고 좁게 만들면서 퍼스트 클래스를 늘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가, 독점은 좋은가 나쁜가, 실업은 누구의 책임인가 등 현실 세계에서 접하고
있는,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더 많은 책이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소위 요즘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문제다"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경제학자는 신고전파 이론에 심취한 '일부 주류' 경제학자라고 한정 지어서 말해야 맞을 것이다. 애들러 박사 본인도 '경제학자'라는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를 폭로한다고 해서 마치 담배회사 직원이나 맥도널드 직원이 자사의 부조리함을 외부에 발설하는 내부 고발서 같은 책은 아니다. 앞서
루즈벨트가 말한 것처럼 경제학은 물리학 등 자연과학과 달리 결국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법칙이며 따라서 경제사의 큰 줄기 중 하나는 대립과
논쟁과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성격이 애매해진다. 원제대로 Rest of Us를 위한 대중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적인 관점에서의 논쟁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이라는 화두 제기를 통해
전세계에 소득 불평등과 분배에 대한 논쟁을 던졌지만 사실 대중들에게는 그 책이 '사놓고 가장 읽지 않는 책 1위에 꼽힌' 두툼한 이론서에
불과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대중서냐 학술서냐의 경계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비판의 정도를 넘어서서 우월 의식에 빠진 나머지 빈정대고 비아냥대는 말투가 많다는 점이다. 이 역시도 단순 번역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불편함을 여러 번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마치 항공사들이 이코노미를 줄이고 퍼스트 클래스를 늘려서 총 수익을 늘리는 것처럼, 유명 가수들이 공연 횟수를 줄이는 대신 입장료를 인상함으로써 음반 매출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합리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데이비드 보위의 조언에 대해서 비아냥 대고 있다. '공연만이 살길이다'라고 주장하는 보위는 "공연을 더 많이 하지 않아도 입장료를 더 올려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위는 아직 실감하지 못한 모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뮤지션으로서 수십 년 간 잔뼈가 굵은 데이비드 보위의 아티스트로서의 가치를 폄하하고, 수익성에만 몰두하는 사업가로 취급하는 발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지적, 도덕적 우월의식에 저자도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또 Windows로 전세계 OS를 지배해온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적 지위는 "윈도 운영체제의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소비지가 하나의 지배적인 표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는 매킨토시 운영 체제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도 OS X를 Windows보다 즐겨 쓰고 있지만, 그것은 내 개인의 취향이자 의견일 뿐이지 집단의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MS가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은 결국 시장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지 기술적 우월성에 따라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저런 사고는 무조건적으로 독점 기업의 폐해를 주장하면서 특히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를 편향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MS의 독점에 대해서 비판을 하려면 기업 분할에 대한 이야기, 익스플로러의 반경쟁적 행태에 대해서 비판을 해야 하는 게 맞지, 이처럼 Windows 자체의 지배적 지위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결국 비판을 위한 비판이며 우월의식에 빠진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별 가지 의미 있는 구절이 있었다.
사회 불평등이 모든
것의 파이 크기를 줄여가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파이의 크기를 가격으로만 따질 뿐 그 안에 구성물이 얼마나 알찬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자는 대다수가 경기가 후퇴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P.100)"
소득 불평등에 따른 사회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또 중진국과 후진국에서 최근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는 국가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경제)학자들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현실과 이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경제학은 이러한 당면 과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책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은 솔루션의 하나로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Only One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