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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
이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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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우리의 노동의 왜 우울한가>에서 인류 역사 상 그 어느때보다도 풍요롭지만 동시에 절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행을 논한바 있다. 넘치는 풍요로 인해 탐욕이 가능해졌지만, 이를 참고 이겨내기 위한 절제가 그 어느때보다 더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주 가끔마다 사업으로 성공하신 친척 어른이 가족 모임을 열면 호텔 뷔페에 초대받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 평소에 먹기 힘든 다양한 음식을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뷔페도 프랜차이즈화가 되고 세분화되면서 해산물 뷔페, 한식 뷔페, 양식 뷔페 등이 큰 지하철역 주변마다 경쟁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그 결과, 뷔페에 가는 것은 더 이상 설레는 일이 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가서 몇 접시건 음식을 쓸어담고 자리에서 뱃 속에 우겨넣는 행위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기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할 수 없이 뷔페에 가게 되면 정말 괜찮아 보이는 소량의 음식만 먹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은 더욱 넘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어진 그 음식을 쑤셔 넣는 것은 죄의식 가득한 행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 '단'은 음식과 뷔페에 비유하자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의 삶이건 기업의 전략이건 간에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 있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를 “버리고” 정말 맛있는 음식만을 느끼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 하에서 다른 수많은 음식은 손도 대지 않겠다며 다짐을 “지켜야” 비로소 포만감과 죄의식에 가득 찬 채 식당 문을 나서는 것이 아닌, 즐거운 한 끼 식사와 멋진 대화를 나누었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은 제목만큼이나 단순하다. 1장에서는 ‘단’의 의미와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우선 왜 단순해져야 하는지를 논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단’에 이르기 위한 3가지 단계를 각각 한 장씩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2장은 (1법칙) 버려라, 3장은 (2법칙) 세워라, 4장은 (3법칙) 지켜라이다. 그리고 끝이다. 단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지만, 각각의 장이 지닌 내용은 압축적이면서 풍부하게 쓰여져 있어 3가지 법칙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다시 첫번째 장이자 책의 지향점인 ‘단’에 절로 이르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이지훈씨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경제 전문 기자라는 배경 특성 상 이 책에는 다양한 생생한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재러드 다이아몬드, 에드워드 윌슨 등 직접 인터뷰했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논하는 ‘단’의 법칙이 흥미롭다. 또한 언론인 뿐만 아니라 경제학 박사라는 배경 때문일까? 풍부한 인터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적으로 가득한 레퍼런스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느낌이 든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약간 뷔페 식당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생생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보니 오히려 중구난방이거나 비선형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단’의 경지에 책 자체가 이르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핵심만을 추려서 "단 the simplest 버젼”을 따로 보여주면 어떨까?


미군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적. 그 이름은 파워포인트.

몇 년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뉴욕타임즈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미군의 브리핑 화면이 그것이다. 마치 스파게티 국수같이 생긴 복잡함 속에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저런 식으로 비쥬얼화된 전략을 기반으로 전쟁을 한다면 초등학교 축구부가 브라질 국가대표를 상대로 시합을 하는 것처럼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복잡성의 이슈가 제기된 이후로 미군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작성자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식의 복잡한 전략이라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이런 스파게티 국수와도 같은 상황을 담은 카피가 적혀 있다.
“복잡성은 소리 없이 삶과 조직을 죽인다” 
복잡성의 늪에 빠진 개인과 조직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개인적으로 복잡한 삶에 빠져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건, 기업의 경영진 혹은 실무진으로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면 잠시 모든 과업을 내려놓고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단, 단숨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은 어렵더라도 책을 읽는 동안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스마트폰을 꺼 놓을 것! IT 구루인 케빈 켈리의 말을 인용하자면 “테크놀로지의 이용을 최소하하는 방법으로 성과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말을 정리해보았다. 비록 내일이 되면 잊어버리겠지만...  "지켜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ㅁ 단순함이란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줄이는 것
ㅁ 세상의 수많은 복잡함의 이면에는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까’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ㅁ 리처드 루멜트 UCLA 앤더슨 교수 “고통스러운 선택이 없는 미사여구는 전략이 아니다"
ㅁ 인텔의 회의: 한번 회의를 끝낸 것은 다음 회의에서 윗사람에게 보고할 자격을 얻은 것에 불과
ㅁ 시스코 존 체임버스: 기업이 기술 위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제품인 기존보다 1000배 빠르다’라는 건 의미가 없다.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제공하느냐로 정의해야 함. ‘당신의 일하는 시간을 50% 줄여줍니다’ 라던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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