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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퓨처 -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는 사물인터넷의 기회와 위협!
패트릭 터커 지음, 이은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미래는 이미 현재이다.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과 이러한 기술의 ‘식사’가 될 수 있는 데이터는 이미 오늘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요소가 만나 펼쳐지는 놀라운 미래를 저자는 ‘벌거벗은 미래(Naked future)’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미래는 공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사적인 개념으로, 즉 ‘나’만이 아는 미래여야 한다. 즉, 벌거벗은 미래는 사생활 혹은 프라이버시가 모여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별다른 요란한 선전도 없이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를 떠나 텔레미트리 telemetry 시대에 진입했다”고 한다(서문 p.9) 

그러나, 사실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에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빅데이터 시대가 정확히 어느 수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아직 널려진 수많은 데이터의 수집, 가공, 처리, 보호 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저자가 내가 생각하는 ‘현재’보다 더 미래의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살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실현된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많은 사례를 동원하여 미래의 가치와 의미를 논하고 있다. Fitbit과 같은 자기 건강 데이터 추적, 전염병 예측 알고리즘, 날씨 예측, 엔터테인먼트의 흥행, 개인 맞춤형 마케팅, 교육, 연애, 범죄 등등. 이 모든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당신의 데이터가 필요하다가 저자는 주장한다. 프라이버시가 우려되겠지만, 저자는 '데이터는 당신을 지켜줄 가장 큰 권력이다. 당신의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사용할 것이다.’라며 잠재적 비용보다 편익을 지지한다.


광활히 펼쳐진 미래를 멋들어지게 다양한 측면에서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루하다.

거창한 장미빛 미래로 서문을 열고 있지만, 50페이지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지쳐버렸다. 반복적인 사례와 사례 속 중간에는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기술 낙관론이 시멘트처럼 발라져있다. 벽돌 틈새를 파고 들어가거나 아예 성벽을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 건너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눈부신 모래 사장과 야자수가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벙커로 느껴지기에 상상력이 자극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기술 낙관주의에 빠져 있기에 개인 정보의 가치에 대해서 모순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의 개인정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게 된다는 역설의 장점이 있긴 하다.

“벌거벗은 미래와 달리 빅데이터의 현재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 중 하나는 정보 공유의 가치나 이득은 집합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반면, 그 위험은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라는 것이다 (p.89)

그러나, 이는 미래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플루엔자의 잠재적 발병을 예측하고 격리하고 차단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공동체의 혜택에 불과할 것이다. 그 와중에서 벌이질 수 있는 주홍글씨의 논쟁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관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제공과 손실의 충돌이 아닐까 싶다. 무한 발전하는 기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새로 제공할 것이냐’ 아니면 그로 인한 ‘혜택를 잃게 될 것이냐’의 관점인 것이다. 기술 낙관론자는 후자에 대해 반문할 것이다. (별 가치 없는) 데이터를 제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 많은 기회와 장점을 왜 포기하느냐고?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문제인 것이고 특히 기업과 정부의 측면일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데이터를 ‘제공해줘야’한다는 판단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결코 강요하거나 조롱해서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장미빛 미래는 소름끼치기 짝이 없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상대방이, 내가 알기도 전에, 미리 알게 되는 미래가 과연 즐거울 것일까? “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더 많이 말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과연 행복한 미래일까? 의사소통의 실수로 빚어지는 오해, 다툼, 그리고… 화해 혹은 후회. 이런 과정은 사람이 사람이기에 발생하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모든 데이타와 그(녀)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두 사람의 매칭 확률을 101%로 맞춰주는 알고리즘이 있다고 하면… 나와 그(녀) 사이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이런 미래는 보고 싶지 않다, “사랑의 정의”가 바뀌지 않는 이상에는.

차라리 99%의 매칭 상대와 함께 ‘벌거 벗기는' 미래에 대해서 욕설을 하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바보로 남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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