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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책장에 1년을 넘게 꽂아만 두고 손이 갈듯 말듯한 책들... 꽤 많은 편입니다. 유행처럼 인기인 책들, 또는 개인적인 관심사로 수집해서 모아놓은 책들...책장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라 이중으로 쌓고도 서점근처를 지날때면 두근거리며 또 기웃거리는 저를 보곤 피식 웃고는 합니다. 올해는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중 한 권이었던 <그리스인 조르바>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 보고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것 같아요. 읽어보니 의외로 술술 잘 읽어지는 책이었습니다. 짬짬이 읽으면서도 책장을 쉬이 덮을수 없었던 책이었어요.
「날 데려가시겠소?」
나는 주의 깊게 그를 뜯어보았다.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했다.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왜요!. 왜요!.」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 요리사라고나 할까요. 당신이 들어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 /p17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던 작가인 '나'는 그런 삶에서 떠나 행동하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 크레타섬에 갈탄광 사업을 하기 위해 떠납니다. 자신을 데려가겠냐고 당당하게 물어오는 한 사람. 65세의 알렉시스 조르바와의 첫 만남은 이러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모르는데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조르바의 답변. 이사람 보통은 아니겠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조르바의 행동이나 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혈기 왕성한 청년을 떠올리게 됩니다. 65세라는 나이는 설정에 불과한 것 처럼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작가인 '나'가 바라보는 조르바의 삶은 한번쯤 그리 살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삶이지만 그리 살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들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화자인 나(이하 '두목')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가게 된 조르바는 갈탄광의 책임자로 그와 함께 지내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며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두목에게 조르바의 인생은 더 들여다보고 싶게합니다. 당장의 삶에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조르바. 산투르, 맛있는 음식과 술, 여자만 있으면 되는 사람. 가끔 여자에 대한 표현들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비호감 스럽다가도 경쾌한 그의 춤사위와 거침없는 입담에 다시금 조르바의 매력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조르바는 가끔 놀리듯 두목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책 속에 무엇이 있소?' 라면서요. 많은 책을 읽어도 그것을 아는것으로 그친다면 인생이 아닌것. 생각하고 행동하는것이 인생인 것이지요. 오고가는 정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펼쳐놓고 이야기 하자면 내가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오. 이런 계산이 깔린 것인게 일반적인 관계. 조르바가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처럼 본능에 충실하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기란 어렵겠지만 한번쯤은 판으로 찍어내는듯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코 끝이 찡한 그 무엇이 짜르르 훑고 지나갔습니다만 조금 긴 기간에 걸쳐 읽었던 지라 책의 여운이 조금 짧았던것도 같습니다.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리스 크레타섬을 떠올릴때면 조르바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그리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 여행하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조르바! 그리울것 같아요~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 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 (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p99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p177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되기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에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이란 영원히 흩날리고 찢기는 존재.... 구름은 하늘의 바람과 무지개에 쫒겨 다니는 존재가 아닌가. /p178-179
나는 인간의 고통에 따뜻하게, 그리고 가까이 밀착해 있는 이들을 존경했다. 오르탕스 부인이 그랬고, 과부가 그랬고, 슬픔을 씻으려고 바다에 용감하게 몸을 던진 창백한 파블리가 그랬고, 양의 목을 따듯이 과부의 생멱을 따라고 고함을 지르던 델리(카테리나)가 그랬고, 남들 앞에서는 울지도 말도 하지 않던 마브란도니가 그랬다.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 /p239-240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