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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평점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는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하는것을 모두들 알고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같은 입술 담배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사평역에서. 곽재구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의 저자 곽재구의 대표시 '사평역에서'다. 이 시가 아마 1981년작일게다.
작가가 1954년생에다 광주 출생이니 1980년 5.18때 스물일곱 꽃같은 청춘이었을 시기다. 입이
있어도 말할수 없고, 눈이 있어 보았어도 못본척 해야하는 암울한 시기,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의 삶을, 기차를 기다리는 시골역사의 풍경에 녹여 지어낸 시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가 바로 '사평역에서'다.
작가 곽재구 시인은 순천대학교에서 시 창작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중에 안식년을 맞아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1년 5개월동안 인도의 산티니케탄 이란 곳에서 인도시인
'타고르'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하다 돌아와 이 책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출간했다.
타고르를 너무나 좋아해서 타고르의 모국어였던 인도의 뱅골어를 배워 그의 시글 직접
번역해 보고싶다는 오랜꿈을 실현할 기회로 안식년의 휴가를 택한것이다. 인도의 시골마을
산티니케탄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순박한 천사들이다. 약 12억에 달하는 인구, 그중
대부분이 최악의 가난속에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신의 뜻이라 여기며 그속에서 행복을 찾고, 서로 위해주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저자 곽재구는 그들로부터 큰 영감과 기운을 받을수 있었다고 한다.
무작정 떠난 인도의 시골마을 산티니케탄에서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친해지는 과정, 또 새로운 인연들과, 뱅골어를 배우는 과정, 오롯이 혼자인채 그곳
사람들과 동화되어가며 행복의 기운을 얻는 모습들이 시인의 시처럼 묘사되고 있어 읽기에
참 따뜻한 산문집이다. 문장도 마치 독자들과 대화하듯 구어체로 되어있고, 또 군데군데
직접 번역한 타고르의 시를 삽입해 놓아 시집같은 산문집을 만들어 냈다.
당신의 눈 (타고르, 1882)
당신의 눈은 황혼의 신의 고즈넉한 마법
당신이 나를 바라보면 내마음 안 깊고 푸른하늘의 정원에 별들이 꽃을 피웁니다.
누군들 이 마음의 보석상자를 본일 있겠는지요. 오직 당신의 눈을통해 나는 내 가슴속
신비한 꽃밭을 봅니다.
당신의 침묵은 내게 거역할수 없는 하늘의 노래입니다.
당신은 종일 내 영혼의 머리칼에 하늘의 샘물을 붓습니다.
이것이 내가 홀로 하늘을 보며 노래부르는 이유입니다.
노래는 어둠을 넘어 영원의 국경으로 들어섭니다.
시인의 감성으로 쓴 글들, 그리고 아름다운 산티니케탄 사람들의 일상들이 매혹적인
산문집으로 태어났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손을 떼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