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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평점 :
1.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생일을 맞아 용돈을 보내왔다. 덧붙여 따라붙은 말은 "평소에 살까 말까 했던 거, 아니 그러니까 사치품 사, 사치품!"이었다. 사치품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이걸로 뭘 어떻게? 했더니 아니, 거기에 니 돈 보태서ㅎㅎㅎ라는 농담이 돌아왔다. (특히, '책'은 사지 말라고 강조하면서!)(ㅎㅎㅎㅎ) 뭘 사지, 뭘 사면 좋을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아직 아무것도 못 샀다. 아마도 책을 사게 될 것 같다. 평소에는 덥석 집어 들지 않았던 화집을, 아마도)
2. 이 책 <설레는 오브제>를 읽으면서 그날 아침의 고민이 떠올랐던 것은, 이 책이 전하는 '설레는 오브제'가 랑그와 빠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개념인 랑그와 빠롤은 언어의 두 가지 특징을 설명한다. 랑그langue는 언어의 보편적이고 고정적인 구조이고, 빠롤parole은 언어의 개별적, 구체적 발화다. 언어는 랑그와 빠롤을 모두 품은 채 언어권과 문화권을 넘으며 모양과 뜻을 변주한다. 설령 모양과 뜻이 유지된다 해도 거기 따르는 심상은 어느 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응접실을 상징하던 팔러 체어가 우리에게 빈티지나 앤티크와 동의어인 것처럼. 그렇게 사물은 문화적 맥락과 만나 새로운 빠롤을 생성해낸다. 사물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일으키는 심상은 역시 맥락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들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도리도리, 불가능의 세계다)
3. 번역 노동의 많은 부분이 '검색'이라는 저자의 말은 흥미로웠다. 저자는 랑그와 빠롤의 세계 사이에서, 보다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숱한 검색을 했더랬다. 이 책 <설레는 오브제>는 그 과정에서 길어올린 일종의 부산물이다. 해서 책에 소개된 설레는 오브제들이란 해외 문학에 자주 등장할 법한 것들이 많다. 팔러 체어가 그랬고, 뱅커스 램프, 목수연필, 페이퍼백, 갈색 봉지, 꿀뜨개, 트래블러 태그, 텀블러, 깅엄체크, 나팔 축음기, 사주 침대, 차 통, 컴퍼스로 드 등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책들의 특징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는 점. 목차를 훑어보고 끌리는 것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짧은 글 안에 담긴 지식이 흥미롭고 저자의 시선도 재미있어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게 되었다.
4. 책을 덮고 나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오늘, 나의 오브제들 가운데 특별하다 할 문화적 맥락을 지닌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2022년 한국이라서, 혹은 서른일곱의 나라서 특별한 맥락을 떠안게 된 것들. 잘 찾아내서 그것들을 추앙하는 에세이를 써봐도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