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하면 왠지 프랑스 사람 같았는데,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대학교를 나왔단다. 결국 보통 프랑스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데 프랑스에서는 보통이 넘는 인정을 받았나 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알랭 드 보통은 보통이 넘는 인기를 구가하는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보통이 넘게 시중에 나와 있고, 나도 이 보통의 이름을 보통이 넘게 들어봤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보통 이런 인기 작가의 책을 찾아 있지만, 베르베르 같은 이들의 책을 꺼리는 경향이 나에게는 있어 이 보통의 책도 그닥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통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의 이름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제목 같았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 건축, 종교, 사랑, 미술 등등의 소재들을 다뤘다는데, 검색해보면 소설가로 되어 있는데, 뉴스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미심쩍었다. 그런데 웬걸? 보통이 아니었다. 역시나 알랭 드 보통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었나 보다. 이 책 <뉴스의 시대>에서 내가 얻고 깨달은 바가 크다.

 

정치 뉴스가 따분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할 때, 사회는 자신의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위험할 정도로 무능해지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대중적 의지도 결집될 수 없기 때문이다. (37쪽)

우리 사회에서 뉴스는 오늘날 따분하고 지겹고 재미없을 뿐이다. 어떤 음모가 숨어있다고 선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로인해 현대 사회의 수많은 대중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끊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우리는 정치가들의 잘못으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겠된다고 말하는 데,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통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뉴스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보통의 지적은 결코 틀리지 않다. 보통의 제시하는 오늘날 뉴스의 문제들, 우리가 뉴스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조언들, 나아가 앞으로의 뉴스가 어떤 모습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보통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없다.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33쪽)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34쪽)

오늘날 뉴스는 '사실보도'를 무지하게 강조한다. 객관성, 공정성 등의 대한 강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들만을 나열할 때 뉴스는 단순한 찌라시가 될 뿐이다. 또한 우리는 그 사실 속에 감춰진 진술을 읽어낼 만한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다고 자신을 탓할 일은 또한 전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간혹, 뉴스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들의 편향성을 지적한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편향적이라고 욕을 먹는 뉴스들은 편향의 문제라기보다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는 질의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그렇지 않은 뉴스에 대한 공격으로도 사용된다. 조금만 뉴스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편향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편향이 문제일까? 뉴스는 편향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보통에 따르면 뉴스는 기본적으로 편향적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일관된 시각에서 사실을 해석하고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대중은 그 편향의 시각이 타당한가를 알아내는 것. 이것은 뉴스의 보도하고 이해하는 자들의 기본 행위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얼마나 합당한 이이기인가?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36쪽)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늘날의 뉴스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망쳐버리는 데 강력히 기여하고 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뉴스는 나름의 편향적 시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사회가 조금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뉴스가 성숙해져야만 한다고 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뉴스의 시대>는 아마도 이런 뉴스의 성숙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의 정치 뉴스 뿐만 아니라 해외 뉴스, 연예 뉴스, 재난 뉴스 등의 문제들도 분석하면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통의 넘는 솜씨의 필치로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게 진행한다. 하지만 약간의 가벼움과 통찰의 깊지 않음이 걸리적 거리긴 하다. 마지막에는 깊이 새길만한 뉴스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명언스러운 말을 남기면서 리뷰를 줄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희망을 단호하게 묻어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155쪽)


 

뉴스라는 렌즈를 통해 보게 되는 경제 '논쟁'은, 대중의 기대와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중의 감각 모두를 엄격한 통제선 안에 가두고 그 밖으로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그런 의제에서 벗어나려 하면(예를 들어 주주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거나 성장과 복지의 상관관계에 의문을 품는다거나 하면) 갑작스레 '급진적'이라 간주되고 따라서 우습게 여겨지고 만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히 여기는 것들 대부분(최저임금, 아동 보호, 환경 정책)이 처음에는 미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돼 '합리적인' 의견으로 정착된 것인데도 말이다. (159~60쪽)


 

기자들은 숫자 뒤에 감춰진 세상을 보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으로 인식해야 하며, 오싹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사무실과 제조 시설의 살균된 아름다움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169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