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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인 최정우님은 음악밴드 활동 중이다. 그밖에 비평, 작곡을 해왔으며  번역과 무용대본쓰기 등의 작업도 겸하고 있다 한다. 특히, 열 한 살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열 두 살 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력에서 보듯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음악에 관해서 도통 모르는 나는 그야말로 쉽사리 짐작할 수 조차도 없다. 열 살에 <군주론>으로 독서를 시작했다는 이력은 어쩌면 어떤 전설로 불리어 질수도 있겠다. 내 주위를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고 목타게 불러봐도 열 살 무렵에 <군주론>을 읽고, 거기서 어떤 '오독'을 했다는 아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 이쯤되면 이 사람은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른다. 그렇다고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조금 특별한 사람일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음악밴드 얘기를 더해 보자. 저자는 레나타 수이사이드(http://www.renatasuicide.net/)라는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데, 그 밴드는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 메탈과 모던 록, 댄스와 아방가르드 등을 혼합한 중독성 넘치는 이종의 록 음악을 선보이는 음악집단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주 친절하게도 그 사이트에서 경성연가 외 4편의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데 저자의 보컬은 뭐랄까, 흠 약간 가늘면서도 힘이 있는, 리듬감이 있는, 세련된? 뭐라 꼭 짚어 얘기 할수 없는? 것이다. 기타, 드럼, 베이스 3인의 조화가 뿜어내는 음악은 담백하면서도 참으로 강렬하게 다가 왔다. 경성연가의 경우는 어떤 환상/몽환적인 분위기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그것에 신비를 더하는 맛이 참으로 절묘한 절창으로 들린다. 근데 가사를 도통 못 알아 듣겠다. 그러니(공식음반을 기대해 본다.)

그의 여러 활동을 보면 음악인으로써의 그것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선 그런지 책의 제목도 악보이다. '사유의 악보'. 음악에 대한 애정이 확대되어 책으로까지 표현된 것인가? 책의 내용을 음악적으로 배열한 것인가? 아님, 두 개가 뒤섞인것인가? 표지의 악보는 어떤 역설을 표현하고 있음인가? 음악과 사유를 함께 아우르는 욕망이 표출된 것인가? 라는 의문내지는 섣부른 판단을 가지고 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출판사의 설명에 의하면 '하이브리드 총서'의 첫권을 이루는데,  설명을 덧붙이면 "국내 학자들의 집필서만으로 구성되는 이 총서는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통섭’의 학문하기가 한국의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라고 한다. 잡종/이종이다. 몇 가지가 합쳐져 새로운 것이 되는 것. 쉽게 말해 짬뽕이다! 언젠가 집근처 국도변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먹어 보았던 짬뽕은 별의 별게 다 들어있었다. 일반적인 짬뽕에 잘 넣지 않는 오뎅, 돼지고기, 콩나물이 있었다. 나는 맛나게 먹었지만 함께한 사람은 별로 라고 했다. 섞어도 너무 섞은거 아니야 라는 푸념을 늘어 놓았다. 여하튼 섞는것도 요리사 마음! 책 소개는 이 결합(짬뽕)을 "1+1=2식의 단순 병치나 접합이 아니며 하나로써 다른 하나를 대상 삼고 단순 분석하는 여타의 ‘통섭’ 시도들과도 다르다" 고 부연 설명한다. 그리고 "이 혼종의 사유, 하이브리드적 시도는 저자의 약력에서 예감되듯 체질적인 것인 동시에, 그 자체로 단순한 치환이 갖는 폭력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으로, 즉 의도라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유와 글쓰기를 위한, 나아가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기 위한 위험한 ‘감행’이다". 라고까지 친절하게 추가 설명해 주고 있긴 하다.
읽는건 독자의 몫이고 먹고 안먹고도 그럴 것이다. 또다시 강조하지만 기본적으로 섞는건 요리사 마음!

이 요리사 아니, 작곡가의 악보는 서곡과 종곡 그리고 13개의 악장과  8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서곡에서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가 비평, 작곡의 총체적 작업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착종된 전이와 이행의 과정 자체가 그것의 동력이자 결과이며 그것은 '문학,미학,음악적 철학'의 한 형태라 볼 수 있으며 거기에 접붙이고자 하는 것은 기형의 맹아, 산출하고자 하는 것은 잡종의 자식이라 한다. 자, 이제 1악장 부터 4악장 까지 읽었다. 4악장에 야구이야기가 나오고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애기도 나오니 좀 반갑다.('삼미~'가 그런 속내를 가지고 있는 작품인 줄은 진정 몰랐다.)4악장 까지 듣고(진짜 음악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첫 번째 변주에서 잠깐 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쉬라고 있는게 변주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앗, 만만치 않은 변주군! 그 다음부터는 좀 건너띈다. 다시 한번 목차를 찬찬히 살피고, 만만한 악장을 선택한다. 8악장의 눈에 띈다. 아, 박상륭. 그래도 아는 이름이다. <죽음의 한 연구>는 전에 읽었다. 박신양 주연의 영화도 본것 같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뙤약볕'은 모르는 작품이다. 알았어도 아마 읽지 않었을 것 같긴하다. 8악장에 책갈피를 꽂는다. 벌써 두 개 째의 책갈피다. 다음, 9악장이 마음에 든다.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언듯 살펴본 처지 이기에 그의 책(다른 작품이긴 하지만)에 대한 번역문제를 살피고 있는 9악장이 조금은 반갑다. 번역문제를 매우 깊게 살펴보고 있다. 아니, 서문을 번역해 놓고 있다. 그것도 영역본과 함께! 그 책의 번역자와 관련된 소송사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번역때문에 소송까지 갈수도/가야만 하는구나 싶다. 저자가 온전히 한국어로 번역한 부분을 읽는다. 훨씬 잘 읽히긴 하다. 두루두루 살피다, 이제 더 이상 꽂을 책갈피도 없다. 염치도 없다! 

종곡으로 간다. 기발한 착상이다. 주로만 이루어진 마무리라니! 저자는 어떤 사건, 현상에 대해서 다시 읽고, 또다시 읽기에 중독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미친듯이 거듭읽기를 권유하며 이때의 권유는 스스로 택한 여정의 여행, 그리고 몰락으로 시작하며 그 속에서 하나의 꽃으로 피어남을 의미한다고 역설한다.  이 권유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그 권유에 공감은 하겠다. 저자는 그 권유를 특유의 방식으로 때론 조잘대듯이, 외치듯이,  소근대듯이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내가 준비되지 않/못한것은 중독(中毒)인지? 중독(重讀)인지? 둘 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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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1-05-01 11:46   좋아요 0 | URL
대단히 발랄하고 경쾌한 서평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글이 건네는 리듬에 맞춰 몸을 통통 튕기면서 '들을' 수 있었다고 할까요.^^ "몰락으로 시작하며 그 속에서 하나의 꽃으로 피어남"이라는 표현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저야말로 이 '절창'에 깊이 감사드리게 됩니다. 어쨌든 저는 스스로 택한 여정이기도 한 저 두 가지 중독(들) 사이의 어떤 '변증법'을, 여전히 끊임없이 권유합니다.^^

쉽싸리 2011-05-02 09:59   좋아요 0 | URL
과분한 상찬이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해주셔서 애독에 대한 애정이 솔솔 피어나게되길 기대해봅니다. ^^

양철나무꾼 2011-05-03 11:59   좋아요 0 | URL
우와~
이 리뷰 너무 좋아요.
제가 혼란스러워 했던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것 같아요.

저도 '통섭'에서 한참을 머물렀었거든요.
통섭도 그렇지만, 님의 '짬뽕'에 대한 식견도 탁월하시구요~^^

쉽싸리 2011-05-03 12:19   좋아요 0 | URL
근데 그 짬뽕집, 이제 못가요.
저 혼자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그때 그 동행인이 거부하고 있어요. 저도 자주 가고 싶은 맘은 발동하질 않지만(짬뽕에 돼지고기는 좀. 것도 냄새가 좀 났다는.), 몹시 추웠던 날에 갔으니 이제 좀 갈만도 한데, 그 양반 한테는 그 짬뽕이 너무 충격적 이었나봐요. 먹거리에 대해 과장된 표현이 많은 양반입니다.

칭찬에 쥐구멍이라도.......

굿바이 2011-05-04 15:23   좋아요 0 | URL
우와~ 글이 너무 좋은데요^^

번역의 문제는 저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기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 뭐랄까 저자의 꼼꼼한 지적과 비교가 다른 분들보다 더 객관적이고 성의있게 느껴졌습니다.
종곡은 그 형식만으로도 참 기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표현들은 참 아찔하게 좋았습니다.

쉽싸리 2011-05-04 16:29   좋아요 0 | URL
그렇죠. 표현이, 문장이, 호흡이 참 좋은 부분이 많은것 같아요.

루쉰P 2011-05-13 13:38   좋아요 0 | URL
전 철학책 공포증이 있어서 리뷰만 읽어도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요. 역시 밑에 댓글도 써 놨지만 자연과 벗삼고 철학책을 즐기시는 것을 보니 소로우의 아우라가 풍겨요...

왠지 시민 불복종 하실 듯...

쉽싸리 2011-05-14 09:18   좋아요 0 | URL
ㅋㅋ
이 책은 다 읽은 것도 아니에요.
원래 제 생각은 리뷰?도 안쓸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