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우주
박창범 / 가람기획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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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정말 아름답다라는 찬탄을 이끌어 내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은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개설한 왠만한 교양수업에서 주 교재로 쓰이는 책이다. 그만큼 전문 천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있고 설명도 풍부하다. 물론 삽화도 선명하다.

천문학이나 우주에 관심이 있다면 한권쯤 소장해야 될 거 같은 책이다.
천문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는데도 유용하고 그 그림이나 자료들도 꽤 쓸모 있는 것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은 교양서적으로 나온 것이므로
이공계열이 아니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저 별자리의 전설에만 몰두하고 천문학은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이책을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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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가 아닌 느낌표의 예술 - 박성봉 교수의 대중문화 읽기
박성봉 지음 / 일빛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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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봉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희끗한 머리의 캐주얼한 의상. 중년 남성. 수업내내 반쯤 춤추는 동작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분. 만화나 영화 음악들을 열심히 보고 듣는 사람이 점수 잘받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는 강의 소개. 그래 내 기억으로 그사람은 절대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도수 높은 안경과 정장차림의 교수님들만 보았던 나에게는 그 교수님의 등장 자체가 신선함이었다.

이 책은 마치 선생님 같다. 직접 수업을 다시 듣는 듯한 느낌으로  책은 넘어간다. 정리해서 체계적이고 이것저것 증명하면서 차분하게 나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마구 샘솟아 오른다. 이 이야기들을 꼭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아마도 마지막 수업에서 처럼 또 여운을 남기시겠지.새로운 명제를 찾아내시고 "다음 학기 수업은 이 문제를 가지고 수업을 해봐야겠어요.." 이책은 완결서가 아니다. 그저 경유지일 뿐이다.

예술이라 함은 우리에게는 무언가 멀리 추구해야만하는 이상향처럼 그려진다. 예술적 감수성, 예술적 역량, 예술적 외모...등등등.. "예술적"이라는 것의 이미지는 고귀하고 정돈되어 있고 밝다. 그러나 거기에 "대중"이 붙으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갖는가? 평론가들은 "대중성"을 천박하게 치부한다.('상업성'이 아니라 '대중성'이다. 상업성에 대한 논의는 다른 이야기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낮고 하위적인 것이다. 평론가들은 그렇게 말한다. 이책은 그에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대중예술에 대한 고찰로 독자들을 끌고 가려한다.

왜 우리는 대중예술에서 더 감동과 재미를 쉽게 느끼는지.. 왜 그것들이 쉬운지...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중예술에 대한 변호이자 고백이다. 물론 글은... 수업만큼 조금 정신이 없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너무많은 말문늦은 아이마냥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아직 본인도 완벽하게 개념을 세우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해서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매개체로의 예술이 인간내면의 상처를 아프지 않을 만큼 건드리고 그것이 겉보기로라도 풀어지면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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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두레아이들 그림책 1
프레데릭 백 그림, 장 지오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두레아이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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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대중예술 수업중에 애니메이션부분에서 였다.
부분만 바꾸는 셀 에니메이션이나, 아예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디지털 에니메이션과 달리
프레데릭 벡은 일일히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찍어서 에니메이션화 시켰다.
에니메이션에서 마치 카메라의 핸드헬드의 느낌이 나는 것은 수작업에 의한 미묘한 차이때문.
그 효과가 이 작품의 생명력을 더했다. 그때무넹 프레데릭 벡 본인은 거의 실명상태가 되었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원작 못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그림이 그대로 원작과 만난 이 책은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다.
유럽의 자연환경 속에서 늘 자연과의 친화를 도모했던 장지오노 자신이 보았더라도
에니메이션에 극찬을 보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무 심는 사람의 이야기다. 홀로 황무지를 살아가면서
그저 자신이 머무는 곳에 자식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나무를 심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특별히 애초부터 고결했거나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산이 가르쳐준 인고와 나무가 가르쳐준 정성이 그가 기적을 일군 바탕이었을 뿐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것은 묵묵히 지켜내었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을뿐이다.
소리로 크게 외치는 것만이 말이 아니다.
묵묵히 행동하는 것이 이세상 어느 목소리보다 큰 웅변이 될때가 있다.

단상위에 올라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땅을 파고 거름을 주는 민초의 삶이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정말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의지로 묵묵히 몇시간이고 몇년이고 해가는 것이 정말 힘이라는 것을
장지오노는 이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프레데릭 벡도 이런 걸작을 만들어 낼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한편의 시가 떠오르는 이야기다. 반드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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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은 들어 왔었는데, 리뷰를 읽으니....그림과 함께 그 속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을희망 2004-03-1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감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분도소책 68
칼 바르트 지음, 이종한 옮김 / 분도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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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얇은 책이다. 딱 집었을 때 하루만에 읽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
그러나 펴서 읽고 나면 그다지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칼 바르트는 철두철미한 교의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카톨릭 신자이자 평생을 어린아이처럼 살았던 비운의 천재를 찬양한다는 것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칼 바르트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모차르트에 대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한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어쩌면 그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었던 것도 모차르트의 힘일지 모른다.

책에 실린 글은 각각 다른 시기에 쓰여진 글이지만,  칼 바르트가 모차르트에 대해 얼마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깊게 느낄 수 있다. 칼 바르트의 모차르트 간증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기제는 세상에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에누리 없는 찬양을 바칠 수 있을까.
그런면에서 칼 바르트는 축복받은 것일지 모른다.

다만 좀 아쉬운것은 너무 얇은데다가 활자도 크고 번역체가 확연하여 약간 어설픈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은 알차니 손에 집었다면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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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뜻인가?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 지음, 조성현 옮김 / 한국신학연구소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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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뜻인가?"라는 질문에 생략되어 있는 것은 바로 "성서"이다.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의 저서로, 성서 개론서를 좀더 쉬운 필치로 써내려가고 있다.
기존 다른 저서(뜻밖의 소식..)에서 보단 해방신학자인 저자의 성향이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
상당히 무난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실제로 성서공부를 하거나, 가르치거나 하는 동안에 접하게되는 흔한 질문들과
사회생활에서 접하게되는 것들-전쟁, 범죄, ...-등에 대한 존재이유에까지도 손을 대고 있는
상당한 수준의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개신교에서 부담스러울만큼의 관점을 내놓치는 않고 있다. 만약 성경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 읽어봄이 좋을 것이다.

성서에서 다루는 문제와 성서를 보는 관점 모두에 대한 질문을 저자는 던지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성서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마치 성서 문자 그대로를 모둔 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잊지말자!
성서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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