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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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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도 전에 국제정치이론이라는 수업에서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과연 임진왜란 시기에 한반도의 사람들은 일본의 침략을 '국가의 위험'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문제였다. 즉, 삶의 위기일 수는 있어도 단순히 지배자가 바뀌는 차원이었다면 충분히 수용가능한 위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질문이 나왔다.


단순하게 말하면, 임진왜란 시기에 '애국자'라는 개념이 존재했느냐의 의미였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가라는 것, 국경이라는 것, 국민이라는 것이 일괄해서 해명되어야 했다. 어쨌든 당시 문헌을 보면 왜구의 침략에 대한 반발은 있었으나 그것은 이슬람의 공격에 직면한 기독교 공동체의 위기감과 같았다. 즉, '재조지은'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에서 중화에 대한 공격은 있을지언 정 조선이라는 한 국가의 존립에 대한 위기감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재조지은을 말하면서 예상되는 외침(병자호란)을 앉아서 당하는 멍청한 시대인식이 가능했을리 없다. 이를 테면, 송시열과 같은 이는 재조지은이라는 정치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백성들이 얼마나 유린되더라도 '참을 수 있을 굴욕'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근대적 국가체제가 사실상 엄밀하게 등장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 


송호근 교수의 [인민의 탄생]은 바로 이런 오래된 질문을 떠오르게 했다. 이 책은 근대부분을 다루는 2권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서술의 목적을 현재 취약한 시민공론장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현재적 요구'로 설명한다. 그리고, 오늘날 시민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교양시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87년 이후 형성된 시민공론장이 주체없는 공론장으로 전락했는지를, 근대 공론장의 탄생 및 그 특수성을 해명함으로서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이와 같은 접근법이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지는 2권이 나오지 않으면 확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민의 탄생이라는 1권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인 개념틀이 제시될 뿐 구조적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있다면, 조선왕조를 '지식국가'의 한 유형으로 보고 통치이념으로서의 유교가 이와 같은 지식국가의 바탕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 정도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대적 인민의 탄생 경과롤 생각보다 간단한다. 천주교, 민란과 농민 전쟁, 서민 문예라는 세 가지 통로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며(78쪽), 이는 각각 종교담론장의 변화로서 유교의 균열, 문예 공론장의 변화로서 언문의 사용, 정치 담론장의 변화로서 민란의 발생을 각각 한 장씩 할애하여 살피고 있다. 


그러고 나선, 우리의 주체적 근대화가 이루어 진 것의 원인으로 조선왕조의 강력한 통치 배경이었던 지식과 권력의 융합이라는 관계가 이완된 것에서 찾고 있다. 즉, 과거 통치기제들이 이완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기제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3, 


이 책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에서 펴내는 일련의 '개념사' 작업과 쌍을 이룬다. 개념사의 작업이 인민이라는 말의 용례에 집중하여 맥락을 밝히는 과정을 밟는 반면,  [인민의 탄생]에서는 공론장의 구조 변동이라는 가설을 확인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나열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가설, 즉 인민이라는 주체의 등장 경로로 3가지를 제시하는 것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발견이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희열을 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 정식의 자세한 주해서를 보는 듯한 지루함이 생긴다.


그리고, 차라리 과감하게 역사적 인용들을 줄이고 2권의 내용을 합쳐서 한번에 내는 것이 타당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1권에서 내놓고 있는 주요한 주장과 역사적 사실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과도한 교육열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지식국가로서의 특징 때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굳이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또한 문헌상의 한계이긴 하지만, 구한말의 시대상황에 대해 외국인이 쓴 기행문을 근거로 서술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봤을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본인은 외국 유학파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우리 땅에서 학문하기'라는 화두를 머리글에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하더라도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는 기행문을 바탕으로 논지를 이끌어 간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4.


결론적으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이다. 일단 1권은 별 2개 정도라고 두자. 2권의 내용에 따라서, 1권의 내용은 별 다섯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 즉 아래의 인용문과 같이 세대와 세대의 관점을 아비와 자식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한 절대로 새로운 학문적 지평이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현재를 살아가는 '교양없는 시민'들에게 씨알도 안 먹힐 것이라는 말을 학 싶다. 


1970년대 세대가 자부심을 갖고 행했던 과거와의 단절, 못한 아비 죽이기의 대가는 혹독했다. (19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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