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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이후, 어쨌든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누군가 냉소적으로 말했듯이 언제든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겠냐만은, 2008년 이후의 자본주의는 확실히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분명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위기의 문제가 곧잘 '인간의 위기'로 치환되곤 하고 마는데, 그것은 철의 여인이 말했던 '대안이 없다'라는 인식탓이다. 2008년 위기 이후 탐욕이라는 인간의 오류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망가뜨렸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위기때마다 위기의 근원을 드러내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어떤 장치를 덧대기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문명의 멸망은 상상하기 쉬워도,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체제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한 종교적 세계를 살고 있다.


이 책,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쓴 [부채]는 바로 이런 '신앙'을 정조준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인간을 자본주의 이후에 두었던 일종의 편견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체계가 사실은 가상의 원시시대에 대한 가정에 기반을 둔 불안전한 체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하는 것이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인류학자다. 인류학이라는 것은 과거 인간의 삶을 직소퍼즐처럼 맞추는 자이기도 하지만, 현대인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원시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내는 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에는 수많은 인간사회의 사례들이 나온다. 일군의 경제학 책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 없이도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핵심으로 치고들어 간다.


[부채]를 관통하는 질문은 서론에 저자가 직접 겪은 일화에서 나온다. IMF의 탐욕은 이해가 되더라도, 그리고 그들이 강제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 빚을 떠 안긴 것이 분명하더라도, 그 빚을 갚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국가들은 돈을 빌렸잖아요!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당연하죠."(6)


이 말은 저자가 나름 진보적이라는 활동가에서 들은 호소다. 그렇다. 우리가 처해있는 경제적 상황은 빚으로 쌓아올린 도덕적 요구에 처해 있는 막다른 길이다. 저자는 이런 도덕적 요구가 사실, 교환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가설적인 전제에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런 교환=경제의 등식이야 말로 인간경제의 제 모습을 잃게 만든 주범이다.

"인간의 모든 삶을 교환으로 압축한다는 것은 곧 다른 형태의 경제적 경험(계급조직, 공산주의) 모두를 제외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들 중에서 성인 남자가 아닌 까닭에 일상적 활동을 물물교환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의 현장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229)


 

이를테면, 아담 스미스가 상상하는 물물교환의 그림을 상상해보자. 물고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곡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담 스미스는 그 둘 간의 교환 비율로 슬쩍 넘어가지만, 이런 교환상황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내가 물고기를 가지고 있을 때 상대방이 내가 필요한 곡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게 일상적으로 물물교환이 가능할 정도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말하는 아담 스미스나 현대 경제학 교과서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원시적 물물교환의 그림이 사실상 가상의 전제에 불과하다는 것은 단순한 사고 실험을 통해서 쉽게 반박된다. 


사실 생각해봐도, 어린 시절 동네 가게는 늘 외상장부가 있었다. 라면 두개, 파 한단을 그에 맞는 돈을 주고 가져다 먹진 않았다. 그저 "아주머니, 파한단 가져갈께요~"라는 말한마디로 외상이 성립되었고 한달에 한 두번 한꺼번에 그간 밀린 외상을 갚았다. 그것이 상당히 일상적인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누구나 공유하는 사실적 경험이 경제학 교과서의 비현실적인 상식에 의해 전도되었다. 이에 가장 비근한 사례는 바로 신용카드다. 실질적인 현금지급이 없어도 지불이 가능한 것은, 아담 스미스가 상상했던 물물교환이 얼마나 예외적인 것인지 보여준다. 문제는 그렇게 형성되는 신용경제를 위해서는 이후에 지불가능한 소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국가 혹은 사회의 조건에 대해서만은 침묵한다.


그렇다면, 이런 자본주의적 시장은 왜 등장하게 되었을 까. 그것은 바로 통치의 문제와 연관된다. 


"만약 자신의 영토 안에 금광과 은광들이 있다면, 국왕들은 보통 그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금을 채굴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자신의 얼굴을 찍어 국민들 사이에 유통시켜놓고는 국민들에게 그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89)

 

 


이것은 시장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여기서 시장은 단순히 교환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을 구성원으로서 구속시키는 기제를 의미한다. 이런 기본적인 부채를 바탕으로 개개인은 국왕이 발행한 국채하에 결속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런 인류학적 가설을 통해서 사실 물물교환의 현대적 형식으로서 화폐경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시장이 경제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지배라는 필요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진 부채는 사실상 사회적 부채에 가깝다. 그리고 부채가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언제나 위기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저자는 그것을 부채위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 점에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학적 사실로 제시하는 '희년' 제도는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페르시아의 '깨끗한 서판' 사례가 그것이다. 부채를 진지 7년이 지나면 왕의 명령으로 기존의 부채를 청산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희년이라는 것이 사회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방도였다는 점이다. 저자가 언급하듯이 부채의 기본적인 속성으로는 '평등'이 있는데, 그것이 상하관계와 같은 계급적 관계로 치환될 때 사회를 구속하고 있는 도덕적 규범이 파괴되고 만다. 이를 테면, 면대면 사회의 경우 부채가 사회관계에 우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대왕국은 부채위기를 부채 탕감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이런 부채위기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와 같은 부채를 일괄해서 탕감해주는 방식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은행이라는 제도는 과거의 면대면 사회를 타인과 타인의 관계로 만들었고, 사회의 도덕적 구속원리는 부채의 비도덕적 구속원리와 병렬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방법이 다를 것은 없다.


"이것이 20세기의 위험한 함정이다. 한쪽엔 시장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는 개인으로 출발한다고 상상하길 즐긴다. 다른 한쪽엔 국가의 논리가 있다. 그 논리 때문에 우리 모두는 상환이 절대로 불가능한 빚을 안은 채 시작한다. 우리는 시장과 국가는 정반대이며, 시장과 국가 사이 어딘가에 진정으로 인간적인 가능성들이 있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127)


 

 

대안은 화폐의 다른 기능, 즉 저자가 표현하는 인간경제를 위한 속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저자가 수많은 인류학적 사례를 통해서 밝히고자 한 것은 화폐가 단순히 교환가치를 담고 있는 '소비장치'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업경제와 내가 "인간경제"라고 부르는 것, 즉 돈이 물건을 구입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끊는 사회적 통화의 역할을 하는 경제의 차이를 밝히려 한 것이다."(283)


사실 저자는 이런 부채의 속성, 즉 인간과 인간이 맺고 있는 사회성의 한 형태로서 부채를 발굴해냄으로서 채무이행이라는 현재 경제체제 내의 도덕적 명령이 사실상 정치적 지배체제의 폭력적 수탈의 한 형태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부채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빚을 갚지 않으면 경제체제가 붕괴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은행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을 납세자의 돈으로 지원해주는 상황은 부채를 둘러싼 도덕의 전도된 풍경을 여실히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채무자가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거부할 때 가능하다는 암시를 읽는다. 그래도 인간의 삶은 지속될 것이며, 오히려 삶 자체가 자유와 독립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읽는다. 아마도,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는 빚에 있을 것이고, [부채]의 저자가 제안한 빚의 백지화가 그것을 새로운 대안적인 체제- 저자가 말한 바 '인간경제'-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오랜 만에 마음껏 생각을 뻗어볼 수 있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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