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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현실정치인인 유시민의 글로 채워졌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유시민'이 아니라 '현실정치인'이라는 부분인데, 이는 두가지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이 책이 학문적 엄밀성을 전제로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의미하고, 다른 것은 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관철되는 논의의 전개라는 점에서 그렇다. 대개 이런 책에 대해 리뷰를 할 때는 '뭐 새로운 이야기도 없네'하고 냉소하게 되거나, '오오오, 이것이야 말로 진리'라는 두가지 편향을 보이는데 양자가 사는데 도움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솔직한 경험이다. 

1. 

이 책은, 공교롭게도 리뷰를 쓰는 이가 정치학 석사 나부랭이, 게다가 세부 전공이 정치이론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함량 미달이다. 개론서로 쓸만한 책은 못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을 '주장'으로서가 아니라 '사실'로서 인용할 경우 곤란을 겪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예를 들면, 36쪽의 " 홉스의 국가론과 마키아벨리의 통치술은 잘 어울리는 이론서와 매뉴얼이다. 홉스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마키아벨리의 통치기술을 당연히 받아들인다."라는 표현을 보자. 우선 홉스의 국가론에서 신학적 국가론, 즉 국가를 유기체로 바라보는 시각과 기본적으로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현실적 권력기술을 논했던 차이를 제거한다면, 즉 보이는 '이미지'에 집중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위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는 현실주의적 권력관은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히려 실천지를 강조한다는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과 닿아 있다. 

그런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근거해서 그의 국가론을 '목적론적 국가론'이라는 단정하는 것은 약간 헐겁다. 물론 국가가 선이라는 목적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개개인의 덕성을 실현하는 방식으로서 그렇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을 가장 훌륭한 국가형태로 보았다. 왜냐하면 국가의 '선'이라는 것은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탁월함'에 의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정치는 타락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귀족정과 민주정이 결합된 폴리테이아(혼합정)을 가장 현실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상정했다. 

마지막으로는 소소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288쪽의 각주 6에는 '조선왕조실록에 인민이라는 단어가 백성이나 국민보다 많이 쓰였고, 국가라 해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지칭하는데 인민(유진오)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나서 "인민이 민주주의, 민권과 관련하여 뿌리 깊고 소중한 우리말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림대에서 나온 <국민 인민 시민>(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103667)이라는 개념사 연구서를 보면, 조선시대에 사용된 인민 개념은 백성보다도 하위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인민이라는 개념은 일본을 경유해서 들어온 근대적 개념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이 책은 정치적 개론서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2. 

그렇다면 정치 판플렛으로서 이 책은 어떤가.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의 견지에서 '선'을 추구하는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관철된다. 글쓴이의 국가관은 "이제 자유주의 국가론의 토대 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세울 때가 되었다"(207쪽)고 말한 부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자유로운 개개인의 연합체인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하며 개개인의 더욱 큰 목적을 실현하는 -여기서는 정의가 되겠다-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유시민의 정의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샌델의 것'이다. 실제로 몇 쪽 안되는 미주를 보면 유독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한 인용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직하게 보자면, 유시민의 국가론은 샌델의 정의론에 입각한 국가론이라고 부름직하다. 

여기선 당연히 샌델의 정의론이 쟁점은 아니다. 문제는 현실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의 선택 문제인데, 만약 작년에 히트를 친 <정의는 무엇인가>를 전제로 한 국가론의 소개가 곧 전략적인 판단, 즉 최소한 샌델을 읽은 사람은 자신의 진보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국가론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쓰여졌다면 참으로 영리한 생각이다.  

게다가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니,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21세기에 베버가 한국사회에 회자되는 맥락이란, 정치적 현실주의를 책임윤리라는 이름으로 강요해야 하는 현재의 정치수준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책을 대중교양서가 아니라 정치판플렛으로 읽어야 됨에도, 그렇게 읽을 만한 내용이 사실상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주장은 권위있는 인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정확하게 어디까지가 해당 이론가의 주장인지, 혹은 저자 자신의 주장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마 서론과 맺음말이 유일하게 정치 판플렛으로서의 솔직함이 보이는 공간이다.  

3. 

과거의 <거꾸로 보는 세계사>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골랐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시민이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왜 '국가'를 말하는가에 주목해서 본다면 나름 가치가 있다. 국가와 정부를 명확하게 구분하자고 주장하면서도 결국 정부를 세워 국가의 '선'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애국론인 이 책은, 어쩌면 현실추수주의의 넓은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라는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국가의 왼손으로서 참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가의 '선'이 수평적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올록볼록한 현실지형내에서 3차원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며, 그래서 결국 그 '선의 목록'에서 우선순위를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 관건이 된다. 아무래도 그 점을 보여면, 유시민의 과거나 혹은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려야 될지도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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