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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이다.
때 늦은 봄비에도 멀쩡하던 벚꽃도 봄이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떨어졌고, 몇 차례의 비와 황사,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봄의 신고신은 호되기만 하다.
지난 달엔 유난히 정신이 없어서, 새책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가 어제부터 쭉 살펴보니 심난한 마음에도 불끈불끈 책에 대한 욕심이 솟아난다.
이번의 첫 책은 <행복할 권리>다. 행복할 권리라니? 행복은 파랑새처럼 자신에게 이미 찾아온 행복의 찌꺼기를 모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
모두다 행복을 말할 요량으로 다른 말을 한다. 집, 대학, 돈, 결혼. 왠지 이런 것들은 권리라기 보다는 쟁취해야 할 것에 가깝고, 그래서 행복은 결핍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만약 이 책이 그런 저런 자가발전적 교양서였다면 눈길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 폴리는 이 책에서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이 없었다면 말이다. 어쩌면 행복의 파랑새를 찾는 일따윈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파랑새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의 대화와 나의 고민들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아무래도 이 책을, 봐야겠다.
두번째 책은 문학평론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조정환의 신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운영되는 몇 안되는 자율적인 학문공동체인 '다중지성 정원'의 대표이기도 한 저자는, 가장 최신의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변형된 자본주의의 속살을 해부한다.
우리에게 노동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작업장을 나온지 오래고, 일과 여가의 구분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SNS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전통적인 공적-사적 경계의 무너짐은 무채색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촉수를 가지고 있는 히드라와 같다.
조정환은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려 하지 않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곧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혁명의 말이다.
돈은 그저 대리자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알량한 지폐 뒤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올라타 있고, 그것은 우리 부모와 나의 친구들이 흘린 땀으로 표상되는 노동의 결과라 믿었다.
하지만 돈이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그런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걸까.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반토막이 난 펀드 투자금은 어떻게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수 있을까.
<돈의 본성>은 그간 돈에 대해 쓰여졌던 감상을 일거에 흔든다. 돈은 사회관계의 표상이며, 더 나아가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돈은 상당히 엉성한 모래 위에 터잡고 있는 궁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돈의 본성을 알려준다면, 돈에 대한 오해를 접고 냉정한 시선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유시민이라는 '저자'는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가 국가를 들고 나섰다. 아무래도 현실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이 오버랩 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라는 스테디셀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대학 초학년 용 교양서라면 실망이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장절의 구성을 보면 어디로 수렴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관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동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별개로 칸트와 베버, 베른슈타인을 거쳐서 연합정치와 책임윤리로 귀결되는 그의 여정이 궁금하다. 과연 그는 '국가'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무엇이 보고싶었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몇년간 혹독하게 모든 국민의 과학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과학의 오염을 보았다. 가치중립적이고, 절대 진리를 추구한다는 그 과학이 얼마나 편파적일 수 있으며 어떨때에는 거짓말을 하는지도 말이다.
<법정에 선 과학>은 과학을 우리 삶 가운데 옮겨 놓자고 주장하는 듯 하다. 과학이란 무균질의 실험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소하게 내리는 판단에서 부터, 생사가 갈리는 법정에서까지 우리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과학은 과학자들에 의해서만 지켜지는 성배가 아니라, 그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참여를 통해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실제로 과학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상식'을 만들어 왔을까?
이렇게 정리를 해놓고 보니, 세상엔 참 읽을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많구나라는 실없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아침나절 내리쬐던 봄볕이 어느덧 구름 뒤로 사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