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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서재 활동도 잘 못해온 나를 덜컥 신간평가단에 넣어준 걸 보니, 알라딘 담당자의 마음이 너그럽기도 하다^^;;몇 가지 눈에 띄는 신간을 주섬 주섬 담아본다. 이름하여, [4월의 낚시]~~!!  

참 나름대로 정한 나의 책 선정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의 맥락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책이라는 것은 사적인 대화보다는 공적인 대화를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강하고, 그런면에서 나에게 책은 그것을 선택한 출판사와 역자, 혹은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의 제의에 내가 기꺼이 응할 만한 책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을 보기도 전에 고르는 신간추천은 올 곧이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라는 이끌림의 정도를 드러내는데 적절한 공간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다섯권의 책은 이렇다. 

  

1. 고진을 탐독하다  

 

가라티니 고진의 '문자와 국가'는 아마도 3월에 발간된 책들 중 단연코 눈에 띄는 책이다. '트랜스크리틱'의 후속작 격인 '세계사의 구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컷지만, 이 책이라도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진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 중 한명이라는 점과, 이번에 번역된 문자와 국가 역시 그런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응대하고 싶은 대화의 주제는, 근대와 국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국민이 되었나,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주어진 것'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나라는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다. 더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말하다 

 도시 개발을 둘러싼 욕망의 지도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 모두 길을 잃기도 하는 그 욕망의 길 모퉁이에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 앙리 르페브르의 수십년전 속삭임을, 현재의 도시 풍경에서 불러내는 이는 바로 돈 미첼이다. 

 이 책은 2003년 '도시에 대한 권리' 바로 이전에 저자가 심화시켜온 문화지리학의 단층을 보여준다. 지리학자인 그에게 도시는, 그리고 공간은 문화로 표상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경연장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사회과부도로 표상되는 교과서적인 지리학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삶의 배경으로서 공간을 마주하게 하는 중요한 시도로 여겨진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젠더화 된 공간의 맥락을 풀어내고 있는 책의 내용은, 과연 일상의 우리 공간을 어떻게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3. 러셀, 혹은 '로지코믹스'의 외전?  

 러셀의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이미 많이 소개된 러셀의 책에 한 권을 추가하는 의미 이상이 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재앙과도 같은 공포는, 마찬가지로 핵에 의해 멸망할지도 모르는 문명의 위험에 맞선 러셀의 회의적 합리주의가 일종의 처방제일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로지코믹스'가 러셀의 논리학자적인 측면에 비중을 두었다면(책의 주요한 플롯은 2차세계대전 시기이지만), 이 책은 분야별로 러셀이 썼던 글들을 선변해서 뽑아놓은 선집에 해당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러셀이라는 공적인 인간의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중요한 것이다. 

과연 러셀의 글은, 절망과 어찌할 수 없는 무능력에 빠진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가. 이 책의 출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4. 책은 사회에 어떻게 책임지는가?  

책을 공적인 대화의 제안으로 볼 때, 이미 출간 책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은 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앞선 책의 공과를 다시금 살펴보는 후속작의 출간일 것이다.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는 책의 책임성을 웅변하는 책이다. 알다시피 저자가 21세기 초반에 내놓은 꾸리찌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서울에서 하고 있는 버스 준공영제와 중앙차로제가 바로 꾸리찌바에서 영감을 얻는 도시교통정책의 산물임을 고려한다면, 저자의 꾸리찌바 소개는 영향력있는 사회적 제안이었다. 

그리고 다시 꾸리찌바다. 물론 꾸리찌바로 한정되어 있진 않지만, 그럼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꾸리찌바 그후 10년의 이야기다. 과연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게 그 변화를 지속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서 차분히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5. 밖에서 보는 중국을 넘어서 

우리에게 중국은 경제의 위협대상이자, 남북관계의 불편한 중재자 일 뿐이다. 그래서 그럴까. 주변에서 중국과 관련된 언론보도나 이야기들이 부쩍 많아졌으나, 왠지 있는 그대로의 중국이 아니라 보고싶은 중국만을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장리자의 '중국만세!!'는 분명, 미국적 삶에 익숙해진 중국인의 눈으로 그려진 중국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쿠바에 망명한 구체제 집단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맹목적인 비하나 자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볼 수 있겠다고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바로 '제목'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를 역설이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를 조롱하거나 혹은 일방적인 호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자였던 시기에 개인의 삶과 국가의 삶의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과정들을 늘어놓는 방식은 나름 기대를 갖게 하는 매력이다. 

과연, 중국은 어떤 속살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이라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자, 난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 어떤 책이 정말 내게 말을 걸어 줄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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