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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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이루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을 나는 로맨스라 규정짓는다. 보통 로맨스의 경우 그 사람이 너무너무 싫어 죽겠는데도 사랑에 빠지고 말아서는 울고 괴로워하고 죽음도 불사하고 아주 오만 난리도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 역시 '로맨스'의 주인공들이다. 서로 의지하면서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가 되어 사랑하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악마가 씌였다고 하며 그 사랑을, 나아가 그들의 삶 자체를 막으려고 한다.

 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수히 많은 생명과 사랑이 악마들의 어리석은 판단에 스러져갔다. 단지 권력과 부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과거와 다른가? 우리가 지금 당연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권리와 자유는 자유가 맞긴 한지?

 지나가면서 읽은 어떤 리뷰에서 마르케스의 작품은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한 글귀를 보았다. 그 분이 떨어질 걸 모르고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지루해 하셨다면, 나는 '얼마나 무서울까' 두근두근 하면서 마르케스의 책을 연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나에게 있어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에버랜드에 새로 생긴 우든코스터(?)급이다. 타기 전부터 지레 겁먹고 덜덜덜 떨면서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타는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타고 나선 '다신 안타겠다!' 와 '또 타야지!'가 공존하는 그새로운 세계!!! (놀이기구를 좋아합니다. ㅋㅋ)

 환상의 세계에서 사랑에 푹 빠진 사람마냥 술에 흠뻑 취한 사람마냥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 이렇게 안주하고 있어도 될까? 모험을 해야하는데!' 란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지금 난 완전히 얽매여 있기 때문에 요런 강박관념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문제다.  

 나야 아예 중독이 되어있으니 마약쟁이가 헤로인을 찾듯이 그의 책을 빨아들이지만, 그의 작품에 거부 반응이 생겨서(모든 쾌락엔 부작용과 그 댓가가 있는 법) 싫다는 사람도 꽤 있으니 신중히 선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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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연꽃의 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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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가 사랑한 책 리스트를 보면서 문득, 왜 내가 좋아하는 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한 책이 무엇이 있었나.. 싶어서 가만가만 생각을 해보았다.
 최근에는 외국 고전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책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내가 사랑한 책이라기엔 10% 정도 부족했거나 리뷰를 쓰기에는 아직 남겨두고 싶은 책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책들을 주르르 기억해보았다.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은 터라 그렇게 매일같이 책을 읽었음에도 별로 기억에 남는 책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사랑 황석영님- (너무 연예인인 양 ㅋㅋ)

 황석영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청소년기에 읽었던 여러 단편들이었다. 읽어야만 했던 단편집에 속해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그냥 '이 땐 이랬군-' 혹은 '이 시대의 작품은 다 이렇군-' 하고 무뚝뚝하게 그의 작품들을 읽었던 기억이 아련히 난다. 물론 내용은 전혀-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읽은 것이 (마음에 처음으로 와 닿았던 것)이 [심청]이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우리 강산부터 저 드넓은 대륙의 풍경묘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도 그럴듯한 심청 이야기의 재해석은 나를 아예 송두리 째 그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한창, 우리 이야기의 현대적 재창조에 몰입하고 있었던 때였다. '처용가'를 유치한 삼각관계 사랑이야기로 만들어 놓고 처용을 나(삼각관계의 희생자였던)의 역할모델로 삼는 것밖에 하지 못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예 그의 신봉자가 되었다.

 어찌 나의 마음을 구구절절하게 쏙 빼어가서 책에다가 써놓았고, 어찌 그녀의 괴롭고 비참했던 인생을 그리 아름답게 승화시켜 놓았고, 어찌 옛 이야기를 이렇게 딱 들어맞게 현실에 갖다 놓으면서도 그 판타지 역시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어찌 여느 술보다 그 알콜 함량이 높으면서도 부드러워서 내내 취해있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혹자는 혹평을 할 수도 있겠고, 굳이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든다며 끄집어 내서 '요건 좋지가 않았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의 첫 자부터 끝 자까지 마음에 하나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나의 편애일 수도 있으려나.

 이 책을 읽으면 황석영씨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책이 또 나오길 기다리고, 그는 계속해서 책을 쓰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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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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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한번쯤은 크눌프의 인생을 동경했을 것이다.

 수려한 말솜씨와 단정한 외모,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타고난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 매력을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나름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산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질투가 날 지경이니,,

 그의 초라하고 병약한 노년생활을 위안삼아 아픈 배를 살살 쓰다듬어 보지만 크눌프처럼 살고싶다는 욕망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의 깊은 삶의 철학이며, '바로 이거야!'라고 내 얘기인양 공감하고 빠져들었던 짧은 글귀들도 참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방랑하는 삶- 그런 삶을 살면서 사랑하고 그 삶 속에 깊숙이 몸담는 그의 태도가 참으로 부러웠다.

  헤세는 몸으로 부딪쳐 살아내는 인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유약해서 억척스러운 세상에서는 숨을 쉴 수 없기에 방랑하고 그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만 보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한 특권의식과 낙관적인 편협함이 나는 참 좋다.

 이상주의자는 게으름벵이가 되기 쉽다더니..그 꼴이 나여서 참 괴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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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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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의 리뷰를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군.

 이 책을 읽고나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도 마음이 텅 비어버려서 울 수 없었다. 그 때 내 마음 속에 있던 순진한 기쁨이며 낙관은 다 빠져나가버렸던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의 기분이랄까, 대신 남은 건 희망대신 우울과 허무였다.  

 그렇지만 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이 책(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요 책은 아니지만?! - 여러개를 갖고있어요 ㅋㅋ)을 들고 다닌다. 낯선 곳에서 정 붙일데라곤 낡고 낡은 백년동안의 고독이다. 어느때고 아무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익숙한 동시에 새롭다. 여행을 하면서 늘 낯선 익숙함을 찾는 내게 딱 맞는 책이다. 

 슬픈 눈물이 가슴을 가득 채웠어도 난 거기에서 편안함과 기쁨을 또 찾을 수 있었다. 책 내용 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지.

 아무리 괴롭고 두려운 세상이라도 그 세상을 여실히, 또는 극단적으로 잔인한 시선으로 표현해 낸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지 잔인하게 마음을 도려낼려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나서 내 머리 속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거칠고 괴로운 인간사를 두려울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해내면서 나로하여금 그를 숭고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고딕양식의 고성당이 나를 압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난 이 책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우러러보고 찬양한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이렇게 어렵게 써놓긴 했다만 이는 내가 그에게 배운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가독성도 뛰어나고 수백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깊이가 뛰어나다. 그 깊이를 간직하면서도 쉽게 써야 진정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으나, 아직 갈 길은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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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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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을 읽고 참 이런 판타지를 딱딱하게 쓸 수 있나 싶어서

1984도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까먹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읽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책 치고는, 읽는 내내 힘이 없어서

끝내 다 읽고 나서 무기력해져서 회사 끝나고 집에 가서 저녁 내내 누워있었다.

기운빠진다.........

정말 1984년이 이랬다면 난 1984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증오했을 것이다.

뭐 물론 상위 계층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은 평화, 무지는 힘, 자유는 예속을 세뇌시키는 건 다를 바 없지만

(이 세가지 슬로건은 책 읽기 전엔 뭔말인가 했는데 지금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슬플 지경)

적어도 난 정신적, 육체적 쾌락을 즐길 수는 있으니 다행이랄까- 아닌가..

흥미롭다.

지금의 우리를 아주 객관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판타지임에도 매우 현실적이다. 약간의 지루함 속에 숨은 작은 반전의 재미도 있다.

1948년에 1984년을 상상한 이 책은 2008년의 우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야 지금의 우리가 이해가 간다.

이래서 고전이 좋다.

언제 쓰여진 것이든간에 현재 나를 설명해주기에 부족한 면이 없어야 한다는 필수 조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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