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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팔기 대장, 지우 ㅣ 돌개바람 12
백승연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평점 :
요즘 언니의 고민은 막내아들의 심각한 한 눈 팔기에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은 언니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큰아들도, 둘째 딸도 언니가 원하는 대로 자라 주지 않으니, 셋째인 막내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데 이젠 그 희망마저 놓아야 한다고 하면서, 뭔 낙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만일 이 책을 읽고 나서 언니 이야기를 들었다면 난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다 큰다고 얘기해 주었을까? 아마 또 다른 지우가 내 조카일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카도 이 책에 나오는 지우처럼, 아침마다 신신당부를 하며 학교에 곧바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늘 지각하기 일쑤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 가야하기 때문에 곧장 오라고 하지만 직접 학교에 가서 데려 오지 않으면 제 시간에 맞추어서 온 적이 거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수영 개인레슨은 차가 집 앞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다 그냥 가야 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그렇게 꾸중을 하고, 잔소리를 해도 여전히 지각하고 늦게 오니 어쩌면 좋겠냐고 언니는 한탄한다.
그러고 보니 잘 아는 선배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 선배의 아들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단 하루도 지각하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지각 대장이었다. 너무 지각을 하여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전에 보냈지만 지각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했다. 1시간 전에 보냈어도 지각을 하여서 어느 날은 몰래 미행을 했더니, 슈퍼에 들려서 장사하는 것도 구경하고, 문방구에 가서 게임도 하고, 길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나 벌레도 구경하고... 결국에는 매일 아침 함께 손 붙잡고 학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젠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지우나 조카나 선배의 아들이나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 눈 팔지 않고, 말썽피우는 일도 없이 어른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어른이 보기에는 얌전한 모범생일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는 상상력이나, 호기심이 결여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어쩜, 그런 아이는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세상에 즐거움이나 변혁을 주는 일에는 소극적이지 않을까? (지금 난 내 조카와 지우를 한없이 변호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이 동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기존의 형식과는 다르게 희곡으로 된 동화이다. 그러나 지문은 생략되어 있어, 아이들과 역할극을 하면서 스스로 지문을 만들어 갈 수 있게끔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다. 무대에 올려질 희곡이지만 일반 무대보다는 마당극 쪽에 훨씬 가깝다. 직접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빗자루 도깨비, 관객석에 내려가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빗자루 도깨비: 얘, 너도 도깨비 맞지? 괜찮아. 나만 알고 있을게. 도깨비 맞지? 아니라고? 이상한데...
빗자루 도깨비가 자리를 옮겨가며 다른 관객들에게도 계속 묻는다. (p37)
큰 도깨비는 중얼거리며 관객석에가 다가간다. 한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큰 도깨비: 넌 누구니? 혹시 다듬잇돌 방망이? 대걸레 자루? 몽당연필? 부러진 지우개? 휴지통? 다 아니면 그냥 도깨비?
큰 도깨비는 또 다른 아이에게 다가가서 묻는다.
큰 도깨비: 너는 무슨 도깨비니? 혹시 학교 가기 싫은 도깨비? 놀기만 하는 도깨비? 춤만 추는 도깨비? 그냥 고개만 설레설레 젓는 이런 도깨비?....(p127)
어린 독자들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당극을 하는 한 복판에서 주인공 지우나 빗자루 도깨비, 큰 도깨비와 함께 흥에 겨워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흥겨운 마당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사에는 리듬감이 있어서 저절로 어깨를 으쓱하며 주인공들과 함께 노래를 하며 신나는 판타지 세계로 빠져 들 수 있다.
판타지의 모티브는 학교 옆에 있는 낡은 빈집이다. 판타지의 모티브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의 괘종시계나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옷장, 또는 거울, 액자 등 여러 소재들이 있다. 어떠한 소재이든 그것들은 모두 어린이를 또 다른 세계로 이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지우는 한 눈 팔지 말고 바로 학교에 가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낡은 빈집을 보자 엄마의 당부는 어느새 까맣게 잊고 홀린 듯 빈집으로 향한다. 백 년도 더 되었을 것 같은 집. 지붕은 부서지고 거미줄까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지만 지우의 호기심은 그 곳으로 향한다.
빈집에서 지우는 도깨비와 할아버지의 실랑이를 보다가 그만 빗자루 도깨비와 몸이 바뀌게 된다. 빗자루 도깨비가 된 지우는 이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우리네 도깨비를 만나고, 달나라로 가서 토끼와 함께 계수나무 아래서 절구를 찧기도 한다. 얌전하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지우가 된 빗자루 도깨비는 장난꾸러기고,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다시 달나라에서 낡은 빈집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92세 된 할아버지를 통해서 빗자루 도깨비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우리 안에 있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는 늘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똑똑하고, 얌전하고, 착한 아이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우의 모습은 어린이다운 천성 그대로 놀고 싶어하고, 장난치고, 수다 떨고 ‘몰라 몰라’ 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92세의 할아버지는 지우에게 말한다.
“그렇단다. 내가 말이다. 한 백년쯤 살아보니 그런 일이 있더라.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남인 줄 알고 사는 일, 남이 남인 줄 모르고 난 줄 알고 사는 일,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p123)
이 책의 주제 문장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신나고 즐겁게 지우와 함께 판타지 여행을 하다가 뒷부분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나도 지우 같아. 얌전하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이고 싶지만 장난꾸러기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거든. 그런데 남처럼 살지 않고 나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지?”라고...
당장 막내 조카에게 이 책을 선물해 줘야겠다. 아마 조카도 지우와 같은, 동일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도깨비를 만나 달나라 토끼까지 만나고 왔지만, 얌전하고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엄마 때문에 마음 속에만 꾹꾹 담아 놓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