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에서의 '미각'과 음식물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의 영토를 대표하는 성벽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은 동물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생리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경제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나타낸다. 음식물이 정보를 교환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보와 음식이 연결될수 있는 코드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주목할지 모르겠어요.-.쪽
먹는 것이 문명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과 문명론이 바로 그러한 보기의 하나이다.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사과(선악과)에서 기독교 윤리의 헤브라이즘이 나왔다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파리스 왕자의 사과에서는 심미적인 헬레니즘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빌헬름 텔의 사과에서는 독재 권력을 싸워 이긴 민주주의가 탄생했고 뉴턴의 사과를 통해서는 근대 인간의 이성과 질서를 상징하는 과학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문명의 시작만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에 이르면 종말의 이미지까지도 담고 있다. 대중적인 사과 문명론은 이미 앞에서 본 대로 애플컴퓨터에까지 이어져 정보시대의 상징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과가 주는 상징이 꽤 크네요. 세계를 바꾼 사과니깐요.-.쪽
스팸은 햄 통조림 이름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정크 메일과 같은 쓰레기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장에서 다량으로 생산된 스팸 통조림 맛은 백이든 천이든 그 맛이 똑같다. (중략) 스팸 통조림 - 무차별적으로 발송되는 스팸 메일의 유래가 바로 통조림 브랜드, 스팸이다. (중략) 스팸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정보포식'상태와 그러한 정황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디지털의 '정보현실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스팸메일을 보면서 항상 왜 스팸메일일까?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가네요^^;;-.쪽
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근대의 개인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서양 사람들도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하는 것보다 우월한 것인가 열등한 것인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월성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정보시대의 특성에 맞느냐 하는 '적합성' 면에서는 그 비교와 분석이 가능하다.
=>항상 문화의 우월성만 따졌지,특성에 맞는 적합성은 무시했던것 같습니다.-.쪽
한국 정치가 그냥 직선 궤도를 달리는 보통 열차였다면 단 한 번의 추락으로 산산조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정말 롤러코스트의 기적 같은 원심력, 구심력과 좌우 균형감각을 가지고 역사의 궤도를 순발력 있게 활강한다. 천 번 만 번 추락해도 새로운 청룡 하나가 내일 다시 떨어진 그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를 것이다. 좌로 쏠리고 우로 부딪치는 이념 싸움과 전쟁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절규가 터져 나와도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땅에 내려온다. 그리고 또 그 무시무시한 청룡열차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선다. 한국인들의 행동양식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 것같이 보인다.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여당과 야당의 싸움을 보고 있는 외국인들은 양쪽에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열차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딪치기 직전 그 열차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빠져나간다. 그 선로는 단선이 아니라 복선이었던 것이다. 개발 독재 열차, 문민 독선 열차, 386 막가는 열차……. 그것이 무엇이든 정상에 오르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추락의 충격 속에서도 한국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나 영민한 경제학자, 뛰어난 과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 번도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지만 놀라운 균형감각과 순환의식을 지닌 평범한 한국인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도킨스가 이름 지은 바로 그 문화 유전자 밈(meme)의 힘인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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