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구판절판


아침에 부엌 창문의 노란색 레이스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바람. 나는 울고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운동신경이 둔한 걸까?"
실은 오늘 평균대 실기시험이 있다.
엄마는 눈길을 아래로 피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 딸은 공부를 잘하니까 괜찮아. 체육 말고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일은 많아. 아야가 좋아하는 과학을 살리면 되잖아. 그리고 영어도 잘하니까 더 열심히 파고들어 공부해도 좋고. 영어는 국제어니까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체육이 1점이라 해도 상관없잖아……."
내 눈물은 그쳐 있었다. 나에게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구나.-.쪽

장래에 대해서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천적으로 눈이나 몸이 불편해서 처음부터 할 수 없었던 사람과 달리,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거든. 왜 안 되는 걸까, 깊은 고민에도 빠지고 감정이 앞서버려. 그래서 항상 정신과의 싸움부터 시작된단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기계적으로 라디오 체조를 하고 있는 듯한 훈련도 실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단련이야. 아야. 결과야 어떻든 간에 지금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미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아야는 자주 울잖니. 그런 우리 딸을 보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그렇지만 현실의 지금이 놓여진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금부터의 아야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나가지 않으면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삶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돼버려. 엄마나 동생들은 네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에는 아낌없이 손을 내밀어 줄 테니까. 그래도 넌 의견을 주장하거나 싸울 때는 척척 말을 잘하잖니? 그건 아야가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보통 아이이고, 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정신이 강해지는 사랑의 말도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도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야.
사랑을 알고, 안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 아이치(愛知)현에서 태어난 아야는 이 현의 이름에서만 봐도 사랑과 예지의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듣고 있는 동안 지금 내가 앓고 있는 병의 상태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길을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쪽

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욕구불만이니?"
놀라서 아연실색했다.
나의 질문과 글짓기, 그림 등을 보고 판단했다고 생각되지만 내 마음 속을 욕구불만으로 간단하게 처리해버리다니!
건강한 몸에서 불편한 몸으로 바뀌었고 그 때문에 인생이 크게 변해버렸다. 게다가 병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는 지금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싸움의 한복판에서 만족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하며, 그런 마음을 정리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해소할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조금이라도 내 기분을 이해해줬음 하고 마음을 기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스즈키 선생님께 생각하고 있는 것, 고민하고 있는 것을 써서 상담하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은 자기 스스로 내부에서 소화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너무나도 짊어진 짐이 무거워서 일어서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걸.
엄마께 "내가 욕구불만에 가득 찬 인간으로 보여?"라고 물었다.
"욕구불만은 누구라도 갖고 있어. 그 자리에서 마음먹고 시원하게 말해버리면 되는 거야. 다음부터는 네가 한 말이나 행동 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들어줄 테니 언제나 고민만 하지 말고 이야기 하렴."
나는 반응이 둔한가 보다.
내 스스로가 장애자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제일 밑바닥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언젠가, 언젠가는 즐거울 때가 돌아올 테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삶은 시련이라고 했다.
죽은 후의 세상을 바라보고 산다는 건가…….
성경을 읽어야겠다.-.쪽

마침내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너도 말을 잘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
진찰을 받으러 간 병원 화장실에서 넘어질 뻔한 나를 엄마가 잡아주었을 때였다. 필사적으로 엄마를 붙잡고 있는 내 옆에서 빨간 체크 옷을 입은 30대정도의 아주머니가 작은 남자아이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슬프고 비참했다.
"아이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면서 키우면 나중에 자기가 다 벌을 받아. 나이 먹고 늙어서 몸이 불편하게 됐을 때, 자신이 좋은 어머니가 아니어서 이렇게 병들고 몸이 불편해졌네, 라고 하는 것과 똑 같잖아. 잘못 가르친 것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돼 있어."
라고 엄마는 위로해 주셨다.-.쪽

갓난아기는 8개월이 되면 앉고 10개월이 되면 기어 다니고 만 한살이 지나면 걸어 다닌다.
걸을 수 있던 나는 오히려 기어 다니고 지금은 거의 앉아 있는 상태! 퇴화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워만 있게 되겠지…….

참기만 하면 되는 걸까?
일년 전에는 설 수도 있었다. 얘기도 할 수 있었고 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를 갈아도 눈썹을 찌푸리고 힘을 주어도 이젠 걸을 수가 없다.
눈물을 참고
'엄마, 이젠 걸을 수가 없어요. 뭘 잡아도 설 수가 없게 되었어요.'라고 종이에 써서 문을 비긋이 열고 건넸다.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고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웠기 때문에 서둘러 문을 닫았다.
화장실까지 3m를 기어서 간다. 복도가 차갑다. 발바닥은 부드러워 손바닥 같다. 손바닥과 무릎은 발바닥처럼 딱딱하다. 보기 흉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 하나의 이동수단이니까…….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기는 것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엄마도 기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꽉 끌어안아 주고, 울고 싶을 만큼 울게 내버려두었다.
엄마의 무릎이 내 눈물로 흠뻑 젖었고 엄마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
"아야. 슬프지만 힘내자. 엄마가 곁에 함께 있으니까. 자, 엉덩이가 차가워지니까 방에 들어가자. 엄마에게 아야를 업을 힘 정도는 충분히 있어. 지진이 나든 불이 나든 널 가장 먼저 업고 나가 살려줄 테니 아무 걱정 말아라. 쓸데없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
라고 말하고, 나를 안고 방으로 옮겨 주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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