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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 강아지 봅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림책, 아동도서, 양육도서... 읽지 않을 수 없죠. 특히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제가 감동받았던 적도 많았습니다. 아이의 탄생은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책읽는 부모'로 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와 같이 정서적으로 성장을 하게 되죠. 그림책이 아이를 키우고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양육을 하는데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자기 표현이 아직 서투런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는 아동도서를 지속적으로 읽는 것이 무척 도움이 되죠.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자석 강아지 봅> 은 강아지 가족을 등장시켜 동생이 생긴 아이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애트나의 심리를 잘 읽으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용을 잠깐 보죠.
어느날 아기 봅이 태어나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고모부, 사촌누나까지 모두가 기뻐합니다.
누나인 에트나도 기뻐했죠. 처음에만 말이죠. 며칠 후엔 아기 봅의 지저분하고 행동에 진저리가 나죠.
그런데도 다들 봅만 좋아해요. 에트나는 자기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걸 깨닫고는 우울해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해요.
에트나는 봅이 자신의 물건들을 엉망으로 만든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봅에게 입마개를 씌워버리죠.
엄마와 아빠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애트나를 나무랐죠. (봅을 저 멀리 밀어 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트나는 봅의 몸에 쇠로 된 물건이 척척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트나는 행동이 180도 달라졌어요. 봅을 데리고 다니며 보물찾기를 할 생각을 하죠.
봅을 데리고 놀이터로 가서 열쇠, 보온병, 쇠로 만든 토끼, 예븐 개 목걸이, 동전까지 갖가지 물건들을 찾아냅니다.
얼마나 재밌을까요. 심지어 친구들에게 봅을 빌려주기도 해요.
뿐만 아니죠. 봅은 우여곡절 끝에 은행강도까지 잡고 상도 받고 신문에 사진과 기사 실려 유명세를 타죠.
에트나는 그간 봅과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다 실토(?)합니다.
엄마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봅에게 소금에 절인 배추를 먹이고 변기통에 앉히죠. (에트나의 엄마가 대단하죠?)
26개나 되는 알파벳 자석이 변기통에 쏟아졌고 모든 건 예전처럼 돌아왔습니다.
에트나와 봅이 꼭 끌어안은 채 책은 끝나죠.
사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는 보물이겠지만 손 위 아이들은 동생을 보물로 생각하지 않죠. 모든 것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자 세계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라 동생으로 바뀌니까요.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어요.
이때 큰아이에게 하는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의 인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엄마 아빠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메시지와 스킨십이 필요하고요. 동생에 대한 질투와 괴롭힘을 보고 무작정 야단쳐서는 곤란합니다. 에트나의 엄마처럼 화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에게게 차근 차근 설명해주는 것이 무척 필요합니다.
에트나가 봅을 이용해서 보물을 찾아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요 녀석도 쓸모가 있군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봅의 몸에 쇠가 붙는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일뿐이니까요. 하지만 부모라면 애트나의 행동이 많이 안타깝겠죠. 몸이 자석이 되었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하는 거니까 말이죠. 결과적으로 애트나는 봅이 보물이라는 걸 깨닫죠. 봅의 몸이 더 이상 자석이 아니라서 원하는 보물을 찾아낼 순 없어도 봅이라는 보물을 찾은 애트나는 무척 행복해 해요.
어떤 존재가 수단이 되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벌어지죠.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가 목적인겁니다. 아이들과 이 책 <자석 강아지 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런 철학적 의미들까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도 자녀를 사랑이라는 자력으로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