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jinbonuri.com/bbs/view.php?id=fight_board2&page=1&sn1=&divpage=1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7052

이름  
   새질서  (2006-09-01 14:21:21, Hit : 89, 추천 : 6)
제목  
   사모펀드와 자본주의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른바 ‘사모펀드’는 금융전문가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조차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가장 최근의 예로 외환은행에서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린 론스타나 KT&G에 대한 적대적 인수의 의혹을 지니고 있던 아이칸을 들 수 있다. 펀드의 조성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자금조성의 비밀주의, 투자의 공격성, 국제적 거물의 참여의혹 등 여러 면에서 이전의 투자자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펀드는 쉬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뭉칫돈’ 정도로 해석될 수 있으며 초기투자비보다 더 큰 수익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경영(?)철학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을 뿐 이익의 사회환원이니 국부의 창출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주공격 대상으로 삼는 M&A 시장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기업의 재무건전성 제고’의 기능을 한다는 정도의 변명을 할뿐이다.

‘기업의 재무건전성 제고’의 1차적 수단은 매출증대라는 중장기 수단보다는 비수익성 사업부문 포기, 대대적인 구조조정 등 비용절감 - 좋은 말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직설적으로는 가산탕진 - 이라는 단기적 수단을 선호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포함한 주주들에게는 배당의 극대화, 감자 등을 통해 단기이익을 철저히 실현한다. 그러하기에 요즘 주식시장에서 특정기업의 매출증대보다는 구조조정, 자사주 획득, 공격적 M&A 설 등이 더욱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가 주식을 매입한 태광 계열사의 연일 상한가 소식은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는 희극이 되었다.

M&A 시장은 이미 1970년대부터 미국 및 서구선진국들에서 크게 유행하였지만 그것은 주로 기업의 지배구조가 분산되어 있거나 부실한 회사에 국한되었던 반면 뭉칫돈이 천문학적 규모로 움직이는 사모펀드의 시대에는 어느 회사라도 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돈이 시중에 너무 많다는 사실과 그 돈이 실물경제에 투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돈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달러가 전 세계에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971년 닉슨이 금본위제를 기초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포기한 이후 명목화폐로 전락한 달러는 이제 단순히 미국 FRB의 차용증에 불과한 종이쪽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나 패권주의적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은 달러는 이후에도 국제통화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고 이는 곧 달러의 신용초과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달러의 약세는 더 이상 신기한 현상도 아니고 달러는 전 세계의 중앙은행에 차고 넘칠 만큼 쌓여있으며 그 주체 못하는 달러가 제조업과 같은 실물경제가 아닌 바로 사모펀드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왜 달러가 실물경제로 투입되지 않는 것일까? 간단하다. 투입할 실물경제가 미국 - 더불어 주요 유럽 및 동북아의 주요 제조업 국가 - 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화점, 편의점은 어느새 싸구려 중국제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세계 최대의 기업인 미국의 월마트는 싸구려 중국제품을 미국 소비자에게 팔아서 오늘날의 명성을 쌓고 있다. 월마트 뿐 아니라 주요기업의 제조공장은 이미 저임금의 천국 중국 및 제3세계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히 미국의 제조업 인력은 줄어들고 있고 저임금의 서비스 업종인구만 늘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FRB의 저금리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인플레이션을 부추겼고 더불어 사모펀드의 자금조달을 더욱 용이하게끔 만들었다. 달러가 넘쳐나서 사모펀드의 규모가 커졌고, 금리가 싸서 사모펀드의 수익률이 높아지는 사모펀드에게는 이 이상 더 좋은 환경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투자의 귀재라는 - 궁극적으로는 투기꾼일 뿐인 - 워런 버핏조차 "사모펀드는 기업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것보다는 짧은 기간 안에 이익을 얻으려는 사냥꾼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본주의의 매정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모펀드는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나마 기업의 도덕성, 사회적 공헌을 형식상으로나마 실현하려 노력하던 기업들은 앞으로 이런 이상적인 구호를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사훈을 “사모펀드의 수익률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고 바꿔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모펀드로 인해 기업의 영속성과 공익성은 크게 침해받을 것이며 서로 물고 물리는 하이에나식 이전투구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욱 흔들어 댈 것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달러의 과잉유동성과 저금리, 그리고 선진국의 제조업 공동화라는 사상누각에서 불안한 돈놀이를 하고 있는 사모펀드는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궁극적 해결책이 달러의 국제통화 지위의 포기 및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