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화·의류 위주의 월마트에 비해 식품 등 다양성 갖춘 ‘하이퍼 마켓’… 재래시장 죽이기나 남품업체 압박, 저임금 구조 등 그림자는 닮은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다. 이름부터 비슷하다. 브랜드명의 뿌리가 창업자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은꼴이다. ‘월’마트는 창업자 샘 ‘월’턴에서 따왔고, ‘이’마트에는 (주)신세계 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의 이름이 녹아 있다. 이마트 사업 초기 신세계 쪽의 공식 설명은 ‘이코노믹’(economic)에서 따왔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신규사업팀을 이끌었던 정오묵 신세계 부사장(이마트부문 판매본부장)은 대주주의 이름을 반영했다고 밝힌다.
미국과 한국에서 절대강자 군림
월마트는 미국을 터전 삼아 세계 1위의 유통기업을 일궜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10여 개국에 5천 개 안팎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한 해 매출 규모는 300조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이다.
월마트의 힘에 눌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납품 가격을 내리거나 최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월마트의 저가 납품 요구에 맞추기 위한 비용 절감 노력은 미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경영대의 제임스 스미스 교수는 이를 두고 ‘월마티제이션’(미국 경제의 월마트화)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마트의 기세도 월마트 못지않다. 적어도 국내에선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이마트의 매출은 8조1천억원에 이른다. 할인점 업계 2위인 삼성테스코(홈플러스) 4조6천억원, 3위인 롯데마트 3조3천억원을 합해도 이마트에 못 미친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지난해 매출 8천억원) 인수를 앞두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이마트의 존재는 더 도드라진다. 월마트코리아와 이마트 부문, 광주신세계를 포함한 신세계의 총매출은 10조1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유통 강자 롯데의 유통 3사(롯데쇼핑·롯데미도파·롯데역사) 매출 9조9천억원을 웃돈다. 이마트의 활기에 힘입어 신세계가 숙적 롯데를 추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유통업의 중심축이 백화점에서 할인점으로 바뀌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가히 ‘이마티제이션’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월마트, 이마트 모두 핵심 구호는 ‘Every Day Low Price’다. ‘매일매일 항상 싸게 판다’는 뜻으로, 대량 구매를 통해 최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 고객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월마트의 EDLP 슬로건은 초창기 이마트 사업에서 그대로 차용됐다. ‘이’마트 브랜드명에도 이 구호는 일부 담겨 있다고 신세계 쪽은 설명한다.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으되 다르다. 전면에 내세운 구호나 한 나라 유통업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겉모양을 벗겨내고 나면 질적인 몇몇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인데 월마트에는 식품 코너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의미 없는 비중이다. 이마트 매장에선 채소를 비롯해 식품 비중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과 큰 차이를 띠는 대목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마트는 월마트 같은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아니라 ‘하이퍼마켓’에 가까운 한국형 할인점”이라고 말한다. 하이퍼마켓은 슈퍼마켓보다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저렴하게 파는 ‘더 높은 단계’(하이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형 할인점인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잡화·의류를 중심으로 한다면, 하이퍼마켓은 거꾸로 1차 식품류 위주에 잡화·의류로 상품 구색을 맞춘 업태다. 하이퍼마켓의 대표 격은 프랑스계 다국적 할인점인 까르푸다. 서 교수 진단에 따르면 이마트는 초창기 상품 구색에서부터 월마트와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
최저가 탈피한 백화점 이미지
월마트와 다른 이마트의 상품 구색은 우리의 생활 문화를 반영했다는 게 신세계 쪽의 설명이다. “외국계(월마트)는 소싱(제품 조달)을 외국에서 하다 보니 장기 보관할 수 있는 냉동식품을 주로 취급한다. 이마트는 야채나 과일, 수산물 같은 신선식품에 비중을 많이 두는 차별화를 꾀했다.”(김대식 신세계 홍보실 과장) 김 과장은 “한국의 주부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좋은 식료품을 갖춘 데를 먼저 찾고, 그날그날 장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주말에 한두 번 할인점에 들르는 외국의 구매 패턴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오묵 부사장은 “할인점에서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건 어렵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주요 구매층인) 주부들을 오게 하려면 야채나 채소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마트를 본보기로 삼되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 ‘한국형 전략’을 추구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인의 기호, 체형, 눈높이에 맞게 판매대를 짜고 구성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취급 물품의 가격대에서도 이마트는 월마트와 차이를 보인다. 월마트는 ‘everyday low price’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미국 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시어스 등 백화점은 물론 K마트 같은 다른 할인점들보다 낮은 가격대로 자리매김돼 있다. 이마트는 최저 가격대로 여겨지기보다는 중저가 백화점 수준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백화점과 큰 차이 없는 매장 인테리어는 외국계의 창고형 할인매장과 뚜렷이 대비된다. 월마트와 달리 이마트의 영업점들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나 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는 것도 최저가 이미지를 떨쳐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그래도 닮았다. ‘소비자 지상주의’라는 명제 아래 극도의 가격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산물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전통적인 유통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그 하나다. 또 고용을 창출한다는 자랑은 비정규직 양산이란 비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월마트는 미국 내에서만 1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자랑스레 밝혔지만, 대부분 유색인종·여성·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월마트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9달러 수준으로 조사돼 있다. 미국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전체 산업 평균 임금(시간당 22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월마티제이션’이라는 말에는 이런 어두운 면이 내재돼 있다. 이마트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도 비정규직이다.
‘화해 프로그램’으로 화해되나
월마트와 이마트는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두고 납품업체들에 가혹한 수준으로 납품가를 낮추도록 압박한다는 비난을 피해가지 못한다. 납품업체들에 대한 압박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사이판 소재 의류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미국 유명 업체 18개사의 하청업체들로부터 구타, 감금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다며 10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을 때 월마트 이름을 앞자리에 올린 건 이런 연쇄고리에서 비롯됐다. 이마트를 둘러싼 납품가 구설도 잦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 점포 16개를 인수함에 따라 납품업체에 대한 구매교섭력이 더욱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경제적 효율성이란 밝은 앞면이, 어두운 뒷면과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까. 이마트는 나름대로 지역 사회와 ‘화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점포별로 지역의 하천이나 산, 강을 한 군데씩 지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환경친화적 경영을 도입하고 있으며, 판매액의 0.5%를 지역단체에 환원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화해 프로그램이 밝은 면에 가려진 뒷면의 암도를 얼마나 묽게 할지는 미지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