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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족주의의 신화 - 인종.신체.젠더로 본 중국의 근대
사카모토 히로코 지음, 양일모.조경란 옮김 / 지식의풍경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생존 경쟁의 학설이 생기고 나서 인종의 흥망성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진화론은 실로 민족주의의 원천이다.” 107p
생존경쟁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지도 까마득한 일이다. 생존경쟁은 지극히 ‘자연적’인 성격을 의미하였고, 그와 반대로 인간다움이란 자연적 원리에 역행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릇 인간이 금수에 비유되는 것을 ‘품위’를 잃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서도. 이제는 인간다움을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을 경우에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승자가 아니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구도 속에서 인류에게 선택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게 인종, 계급, 젠더, 민족, 국가간의 우승열패의 논리를 두루 적용하면서부터 나타나게 된 것은 인종 퇴화와 열패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감이다.
인류가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화, 바로 그것이 민족주의였다.
이 책은 중국의 민족주의 형성 과정 속에 스며든 사회 진화론적 인식을 해부하고, 그것의 사상적 연쇄성을 분석하여 당대의 지식인들 풍경과 민족주의 성격의 변천 모습과 영향을 살핀다. 특히 탄스퉁, 피시웨이, 옌푸, 량치차오, 헉슬리 등이 논한 사회 진화론의 형성과 발전 과정, 전파, 확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강점중의 하나다.
18세기 청나라 말, 제국주의의 씨앗이 전 세계로 퍼지던 시기에 다른 인종(특히 백인종)과의 힘겨루기에 직면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저항을 위한 통합을 이끌었다. 통합은 흑,홍,갈색 인종적 서열의 공유를 전제로 하였고, 황인종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인종을 구별하고, 인종의 서열을 나누는 작업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차별적 성향을 가지게 된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통합으로써의 민족성이 태생적으로 차별과 배타성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필요했으나, 그 내부를 보면 결코 동질의 대상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종적으로 소수민족이 그러했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해당 되었다. 게다가 황인종-백인종의 대결구도 속에서도 황인종끼리의 차별성은 여전히 유효했다. 일본에서 개최한 만국 박람회에서 일본인의 인종 차별적 시선을 중국인들이 그대로 받은 것이다. 박람회와 제국주의의 결합이 빚어낸 해프닝이다. ‘인간 전시’를 통해 인종적 우열을 발견해 가도록 한 인종주의의 이식과 반복, 확산 되었던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량치차오,
“역사란 인종의 발달과 그 경쟁을 서술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종을 뺀 역사란 없다” (<신사학> 역사와 이종의 관계 1902) 71p
서로 괄시를 주고받고, 난리 부르스를 떨면서도 민족의 개량과 진보를 이끌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었다. 사회 진화론자인 량치차오는 역사의 원동력으로 영웅을 주목하였고, 그러한 영웅을 만들기 위한 국민의 창출을 염원하였다. 5.4혁명그룹은 화이 의식, 황인종, 백인종의 대결구도, 다수에의 소수의 통합, 이러한 구도를 강화하는데 황제의 상징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황제의 자손으로의 통합을 이끌기 위한 존재론적 의미가 없는 정치적 도구로 발굴하였던 것이다.
류스페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중국을 지배한 것은 모두 황제의 자손이었고, 중국의 황제는 마치 일본의 신무 천황과 같은 존재이므로,” “일본을 모델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86p
일본의 천황을 베낀 것이다. 일본에서 사회 진화론도 들여왔으니 쫓아가는 방식도 같았다.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의 특징은 뿌리와 혈통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단군은?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침략의 논리도 저항의 논리도 지배 담론을 채택함으로써 비이성적 측면에 의한 착취와 핍박의 계급문제는 가려졌다. 바로 이 책의 중반부터 다루는 것은 젠더의 문제, 여성의 신체의 억압을 이야기한다. 세계를 인종의 경쟁으로 인식하고, 강한 인종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면서 보국과 보종을 위한 인종적 변이를 인위적으로 제어하기까지 이른다. 사회 진화론이 팽배하여 우승열패의 신화가 사상의 연쇄성을 불러오고, 여성은 생물학적 억압의 희생물이 되어 민족적 전통과 인습에 신체를 저당 잡힌다. 유교적 담론에서 국민 국가 담론의 변화가 성과 생식에 관한 통제로 이어졌다.
“단순히 인구를 제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종론과 병행하여 불량한 자에게는 강제로 제한을 가하고 우수한 자에게는 인구증식 장려법을 적용해야 한다. 우종론은 유능하고 선량한 자만을 증가 시키고 빈곤한 자, 병자, 타락한 자는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맬서스주의는 부유한 지식인 계급에서 밖에 유행되지 않았다. 천듀슈는 종을 선택하여 우량한 종을 남기는 방법을 장려하고 실행할 것을 호소하고 조혼만이 아니라 열등한 자의 결혼까지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135p
민족의 개량을 위해서는 건강한 여성,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국민을 필요로 했다.
“우량한 자는 증가시키고 열등한 자를 억제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140p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로 인간의 급을 논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산 다복의 유교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유연애를 통한 생식(연애는 진화론적인 우생의 원리), 교육 받을 권리, 경제적 독립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사상적 토양이 주목 받기 시작한다. 우생학이 페미니즘의 역사적인 사상의 자원이 되기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5.4 윤리 혁명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었고, 가부장제를 대신한 국민 ‘어머니’를 구축하였다. 144p
앨리스 “연애만이 인종 개량을 위한 최선의 실험이 될 수 있다” 148p
사회주의와 우생학의 결합 또한 당대의 풍경이었다.
노동 의무와 기회 보장의 부여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에 동조하지만 인구 제한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다르다. 사회는 반사회적인 사람의 무익한 생식에 대해 간섭할 필요가 있다. 155p
중국의 전통적 가치가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여성의 정조와 패티시즘 문화의 꽃이었으며, 젠더, 계층성, 도시적 세련성, 섹슈얼리티의 상징 등의 엘리트적 미의 기준이었던 전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족이 여성미의 상징에서 기형 폐질의 전형으로, 국수(전통적 가치)에서 국치(미개 문명)로 급격하게 변한다. 전족이 신체를 수고롭게 하지 않는 유교적 이상과 부의 상징이었다면, 우생학의 대두로 강한 인종, 건강한 신체에 반하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전족의 원인을 남성의 지배력에 기인했다고 봄으로써 여성의 독립의 기점으로 전족 해방의 외침이기도 했다. 전족이 종족을 약화 시키는 불구의 상징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서양 선교사들에게 비친 중국의 야만성, 후진성, 오리엔탈리즘과 과학화, 위생, 생식, 우생, 여성해방, 패션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다. 결국 신여성이 등장하였으나, 코르셋을 집어 던지고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모더니티는 어떠한 방식이 되어도 식민성을 내포한다. 식민을 받던 하던 상호적인 것이다.
“북유럽 등에서도 1970년대까지 장애자 등에 대해 동일한 처치가 이루어져 왔다는 문제가 최근에 보도되고 있다. 사회민주노동당 정권 하의 스웨덴에서 1935년부터 1976년까지 처음에는 정신 장애자를 대상으로, 뒤에는 혼혈, 방랑벽, 시력 장애자, 성적 사회적 일탈자, 등까지도 일소할 목적으로 단종법이 실시되었고, 주로 복지 경비의 절감을 위해 6만명이나 되는 남녀에게 강제 불임 수술이 실행되었다고 한다. 북유럽과 같은 고도의 복지 국가일수록 우생 사상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도 실시되었다고 한다. 경제 효율과 복지행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생을 찬미하는 뿌리는 깊다.” 259p
유전자공학의 발달로 더욱더 우생학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은폐된 인종차별, 경제력에 의한 ‘적자의 권리’를 강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부적응자에 대한 폄훼와 제거는 세게화와 함께 더욱 성장할 것인가?
진보한 다수가 낙후된 암흑의 소수를 해방 한다는 논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개화의 대상으로 타자를 미개화 시키고 제국의 침략을 정당화 시키는 근대적 현상은 현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논리도 그러했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과 문화적 교류의 형태도 그러했다.
이 책은 말한다. 거시담론의 횡포는 근대의 공통된 흐름이었지 특정 국가의 특수성에 머물지 않는다. 근대 따라잡기의 내재화가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자각해야 한다. 너의 역사도 그러했고, 나의 역사도 그러했다. 마치 프렉탈처럼 이어지는 '사상의 연쇄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공시성이 현재에도 '유효한 논리'가 되어 우리에게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각 없는 제국주의자’는 세상을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배타성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고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