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풍덩! - 남자 비룡소 아기 그림책 1
알로나 프랑켈 글 그림,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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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가 선물 받은 변기에 똥누는 이야기, 라고 하면 별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가. 변기에 한 인간의 똥이 최초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숱한 좌절과 심기일전으로 점철된 구절양장의 드라마라는 걸 나도 미처 몰랐다. 아이가 이 책을 아주 좋아하고 '용이처럼 용이처럼' 하면서도 끝내 변기에 앉는 게 부담스러워 똥을 참는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광막한지 궁금하다면 세 살 아이의 배변 훈련 실태를 관찰해볼 일이다. 똥오줌을 가린다는 것이 인간에게 이토록 절절한 숙원사업이며 위대한 도약이었다니. <시원한 응가>(시공주니어), <응가하자, 끙끙>(보리)도 보여줬는데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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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한길그레이트북스 57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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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적 지향을 가진 어느 근대 유럽 남성의 아동 교육 청사진. 18세기에 나온 책인데도 루소가 보여주는 교육에 관한 세태 인식이나 교육자로서의 고민과 문제의식 등이 그리 낯설지 않고 오늘의 우리 현실에도 여전히 울림을 줄 만한 대목이 많다. 다만 루소의 여성관은 시대상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문제적이다. 한마디로 최악이다. 이 책은 루소가 상정한 이상적인 가상의 인물 에밀이 태어나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양육 과정을 5부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1부는 루소의 전반적인 교육관 및 영유아기 양육법에 대한 내용이다. 루소는 에밀에게 신분, 지위, 직업에 맞는 사회화 교육이나 태도 교육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교육을 하고자 한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므로 그들의 공통적인 천직은 인간이라는 바로 그 신분이다. 그러므로 그 신분에 맞게 잘 교육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신분에 관련되는 직업을 잘 해낼 수 있다.” 이러한 루소의 교육은 교훈을 가르치는 데 있다기보다는 단련에 있다. 위험이 닥치더라도 주저하지 않으며, 고통과 시련을 견뎌내고, 신체를 강화하며, 역경을 극복하고, 인생의 선과 악을 감내할 줄 아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단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기 절제와 자기 조절을 할 줄 알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생자활 하는 능력을 길러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져야 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잘 느낀 사람”으로 살게 된다. 삶의 목적은 향유에 있으며, 이 목적을 충실히 달성할 수 있는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다.

 

2부는 5~12세까지의 시절을 다룬다. 이 시기의 에밀은 처음으로 용기에 대해 배우게 된다. “가벼운 고통을 겁내지 않고 참음으로써 단계적으로 더 큰 고통을 참아내는 법”을 배우는 시기이다. “큰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자잘한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육체가 지나치게 편하면 정신이 부패한다.” 그렇다고 체벌과 위협과 속박으로 아이를 노예로 만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용기를 기르고 고통을 단련하는데 있어서 놀이는 중요한 수단이며 놀이에서 언제나 즐거움을 느끼고 사랑스러운 천성을 유지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의 신체와 감각이 발달하고 이성의 기초가 싹트게 된다.

 

한편 이 시기의 에밀은 차츰 의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걸 얻음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주려면 교사는 최소한의 관여만 해야 한다. “나쁜 짓 하는 것을 금지시키지 말고, 막는 것에 머물라. (...) 그가 요구한다 해서 무엇이든 주지 말고 필요하기 때문에만 주어라. (...) 자유롭도록 하기 위해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힘만 정확히 그에게 보충해주어라. 그가 당신의 도움을 일종의 모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의 도움 없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순간과, 스스로 제 일을 처리하는 자랑스러운 순간을 염원하도록 하라.” 교사는 아이가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타인의 도움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습관화될 경우 자립은 커녕 타인에 대한 지배욕과 자만심으로 가득한 비뚤어진 천성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이 시기 아이의 훈육에 있어서 중요한 방침은 거절을 남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만약 한 번 거절하면 절대로 번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당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조차도 잘 참고 변덕이 없으며 체념할 줄 아는 침착한 아이를 만들 것이다.” 아울러 아이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 경쟁심, 질투심, 선망, 허영심, 탐욕, 비굴한 공포 등과 같은 정념을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큰 법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자율에 맡길 필요가 있으며, 만약 잘못을 저질렀다면 체벌하는 대신에 잘못의 결과가 빚어내는 불편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교훈을 획득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초기 교육은 전적으로 소극적이어야 한다. 가르치지 말고 모방하게 만들 일이다. 기억력을 연마시키고자 한다면, 알아도 되는 것은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알지 말아야 하는 것은 숨겨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배려 정도면 충분하다. 교육적으로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사실 초기 교육은 미덕이나 진리를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다만 마음을 악습으로부터 정신을 오류로부터 지켜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초기 교육의 목표는 타인의 관념, 기성의 스타일, 인습, 틀에 박힌 공식, 남이 가르쳐준 말, 가장된 태도에 어설프게 오염되지 않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너절한 잡동사니들이 분별없이 주입되어 있지 않은 인간, 훼손되지 않은 인간, 건강하고 순수한 백지 상태의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초기 교육의 목표다.

 

그리하려면 가장 단순한 자극을 섬세하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유년기의 중점 교육이란 다름 아닌 오감 계발인 것. 지금 현재, 오늘 하루, 자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기와 직접 관련된 것들을 향해 모든 감각 기관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사물이 우리와 맺는 감각적 관계를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감관 훈련과 동시에 힘써야 할 것이 신체 단련이다. 단순하고 거친 운동, 날랜 짐승의 몸상태로 만들어주는 운동, 단전을 강화하고 바른 자세를 갖추게 해주는 운동을 해야 한다.  

 

위와 같은 방침에 따라 키워진 유년기 아동의 모습에 대해 루소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관념은 한정되어 있지만 명확하다. 그는 외워서 아는 것은 전혀 없지만 경험을 통해 배워 아는 것은 많다. 그는 다른 아이보다 책을 더 잘 읽지는 못하지만, 자연이라는 책은 더 잘 읽는다. 그의 재기는 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다. 그는 기억력보다 판단력이 더 좋다. 그는 한 가지 언어 밖에 모르지만, 자기가 하는 말은 이해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만큼 말은 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말에서는 그들보다 더 잘 말한다.”

 

3부는 소년 시절(12~15세)이다. 적절한 시기에 호기심을 느낄 만한 대상을 인공적인 상징물이 아니라 자연물로서 직접 보여주고 질문하게 한다. 이때 아이의 호기심을 잘 다뤄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즉각적으로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지 말아야 한다. 제 능력이 허락하는 대로 스스로 문제를 풀게 하고 스스로 이해함으로써 배우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배우게 하지 말고 자발적인 탐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즉각 교정해주는 것을 피한다. 이 시기에는 학습을 통한 결과물의 수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자기주도적인 이해가 중요하다. 또한 단순히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판단력을 함양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판단력이 있어야 앞으로 습득하고자 하는 지식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다. 학식을 갖추는 게 아니라, 학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을 갖춰야 한다.

 

이 시기에는 인문사회과학보다 자연과학 위주의 학습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학습에 쓰이는 모든 기구나 도구를 직접 만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능동적인 활동을 통해 보다 명료하고 확실한 관념을 갖게 된다. “모든 것을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만 있으면 우리의 정신은 무기력 속으로 침몰”한다. 학문이 아니라, “노력하여 학문하는 방법”을, “지식이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루소는 이 시기의 에밀이 읽어야 할 유일한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꼽고 있는데 이러한 교육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 법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이론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아이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이 훗날 연역을 통해 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원리로서 서로 연결되게 하고 그것이 이론 지식을 축적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인 실마리가 되게 해야 한다.

 

이 시기의 학습에 있어서 ‘유용성’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 배우는 것들이 실제로 어떤 쓰임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배움에 열정이 생긴다. 아이에게는 현재 그가 그 유용성을 알아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가르쳐야 한다. 한편 이 시기의 에밀은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목공과 같은 실용기술을 익혀 장인이 되어야 비로소 운명과 타인의 지배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전문 기술을 갖추고 있으면 비굴해질 필요도, 아첨하거나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인간성에 대치되는 추악한 자질의 정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건강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올바로 살아갈 수 있다. 사실, 노동은 사회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제 몫의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의무이기도 하다. 일을 배운다는 것은 사회 관계 속에서 타인과 공생하는 법을 깨우치고 시민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소양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4부(15~20세)는 교육에 관한 내용 외에도 윤리관이라든가 에피쿠로스적 삶에 대한 지향 등 루소의 다양한 견해가 드러나 있는 장이다. 청년기가 되면 비로소 정념이 에밀을 에워싸기 시작한다. 정념이 꼭 위해한 것만은 아니다. 정념을 악덕으로 만드는 것은 상상력의 오류들이다. 정념의 원천은 자기애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적이다. 정념이 발달함에 따라 에밀은 타인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고 인류 공통의 불행과 비애와 고통에 대해 성찰하며 비로소 인간애에 눈뜨게 된다. 자기애가 타인에 대한 공감, 나아가 인류애로 확대되는 것이다. 인류애를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운명에 감탄하도록 하는 대신에 운명의 불행한 측면을 보여주어 그에게 두려움을 갖도록 해야 한다.” “불행한 사람들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들의 모든 고통이 자신의 발아래에도 있으며, 수많은 예상치 못한 불가피한 사건들 속으로 자신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등을 그에게 이해시키도록 하라. 그에게 신분도 건강도 부도 믿지 말도록 가르쳐라. 그에게 운명의 모든 유위전변을 보여주어라.” “자기 주위의 그런 온갖 심연을 보게 하라.”

 

이 시기의 에밀은 양심, 정의, 선악, 도덕과 같은 것들에 대한 개념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자연 속의 에밀이 아닌 것이다. 지적 이성이 발달하여 추론, 판단, 추상화, 일반화 능력이 생기고 시야가 인간과 사회로 확장됨에 따라 이제는 그 자신의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학습하도록 할 필요가 생긴다. 다시 말해 이제는 역사를 배워야 할 때이다. “판단이 가장 옳은 역사가가 아닌, 가장 꾸밈없이 오직 보여줄 뿐인 역사가”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이를테면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려면 개인적인 삶에 관한 책도 읽어봐야 한다.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책이 도움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우화 문학을 통한 도덕 교육 역시 필요하다. 우화가 주는 교훈을 통해 에밀은 “특별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운명을 부러워하지 않고 운명의 유희를 관조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타인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 만족할 것”이다. 한편, 수사학에 대한 교육은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학에 관한 모든 교육은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순전한 객설에 불과할 따름이다.”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데 말하도록 연습시키는” 꼴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청년기의 에밀이 “꾸밈없는 언어”를 사용하여 “본래의 의미로 말을 하며 오로지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기교적인 능변보다 더 중요하게 갖춰야 할 것은 인간을 향한 애정이다. 마지막으로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에밀이 일찍이 어떤 종파에도 소속되지 않도록 하고 훗날 그 자신의 이성에 따라 스스로 종파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에밀은 양심과 정의와 선(善)과 창조주의 사랑을 알게 된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성급히 사교계에 입성한 청년의 마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호보다 타인의 기호에 대한 관심, 모방심, 위선, 허위의식, 허영, 질투, 분노, 권태, 회한, 자기소외 밖에 자리잡지 않는다. 인간을 알기 전에 세상을 보여주는 일은 그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타락시키는 것이다. 에밀에게 떠들썩한 사교계의 덧없는 행복이 아니라, 변함없는 생활의 단조로움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절제된 기쁨을, 조용한 만족과 평화를 알게 해야 한다. 루소의 교육 방침에 따라 내실을 다지며 자라난 에밀은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때 기죽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타인의 평가에 동요하지 않으며 초연하고 침착하다. 거만하거나 가장된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친절하고 인정 많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세간의 견해에 의거하여 평가하지 않는 그는, 비록 타인의 마음에 들고 싶기는 하겠지만 존경받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정중하기보다는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 될 것이며, 잘난 체하는 태도도 허식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천 번의 칭찬보다 단 한 번의 포옹에 더 감동받을 것이다.”

 

이 시기의 에밀이 힘써야 할 분야 가운데 하나는 취향(삶을 즐기는 자기만의 기준, 문화적 경험과 식견, 교양) 계발이다. 취향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교를 해보기 위해 여러 사회를 경험해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즐겁고 여유로운 환경이 갖춰져야 하며, 불평등이 크지 않고 세간의 견해와 횡포가 강하지 않으며 허영심보다는 즐거움이 지배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자신의 견해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요구된다. 사치는 좋은 취향과는 무관하다. “취향이 비용이 많이 드는 곳은 어디서나, 그것은 잘못된 취향이다.” 사실 취향이란 비싸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에 정통하는 기술”이다. 삶의 즐거움은 바로 그런 수많은 사소한 것들에 따라 좌우되며 취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수단을 부에서 찾지 않는다. “진정으로 관능적인 즐거움을 즐기는 고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것,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건강을 즐기며 필요물이 모자라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서 세론이라는 재산을 제거하기만 하면 아주 부자인 것이다.”

 

5부는 스무 살을 넘긴 에밀이 반려자를 찾아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머리에서 루소는 에밀에게 배필을 맺어주고자 이상적인 여성상 및 여성 교육 방법론에 관해 설파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어서 읽기가 힘들다. 참고 읽어 나갈수록 불편함과 역겨움을 넘어 소름 돋는 충격의 대반전이다. 이제껏 참고 들어줬던 루소의 그 모든 장광설이 실상은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남성 인간'을 위한 교육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후로는 그나마 읽을 만하다. 후반부에서 루소는 인생관과 여행관을 피력하기도 하고 사회계약에 토대를 둔 시민 사회에 대해 고찰하기도 한다.

 

에밀이 반려자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위기는 상대에 대한 애착과 욕망에서 비롯한다. 애착과 욕망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고뇌, 이것이 에밀의 행복을 위협하는 적이다. 정념의 자기제어야말로 에밀이 완수해야 할 이 시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덕이 있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정념을 다스리는 것은 이전의 모든 훈련보다 훨씬 힘들다. 자연의 속성과 반대되는,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가 우리 정념의 희생물이 되게 내버려두며, 우리의 지어낸 불행에 무릎 꿇게 내버려두며, 수치심을 가져야 할 눈물에 대해 오히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둔다.” “우리가 정념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감정은 모두 정당하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은 모두 죄가 된다.” 정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루소는 지나친 욕망을 절제하여 능력과 욕구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다시 말해 능력을 벗어난 미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늘 현재에 충실한 자족적 삶을 살기를 권하고 있다. 또한 주어진 조건과 자연의 섭리와 운명에 순응하고, 삶의 모든 일을 관조함으로써 초탈하는 법을 배울 것을 주문한다.

 

여행은 에밀이 거쳐야 할 교육의 최종 관문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배움에의 의욕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여행은 대단히 교육적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에밀은 정부의 다양한 통치 형태와 운영 방식 및 사회의 다채로운 풍속과 제도를 접하게 되고, 사회적인 관계에 눈뜨면서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여행은 체험을 통한 일종의 시민 교육인 것이다. 에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결혼식을 거행함으로써 이 교육의 대장정은 비로소 마무리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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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발트슈타인, 열정) - DG Originals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켐프 (Wilhelm Kempff) / DG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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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난데없이 비창 2악장에 꽂혀 백건우 연주로 한참을 듣다가 더 좋은 연주가 있을 것 같아 폴리니, 바렌보임, 조성진, 윤디 리, 글렌 굴드, 빌헬름 켐프, 프리드리히 굴다 등등 다양하게 들어보게 되었는데 내 귀로는 그중에서 빌헬름 켐프 연주가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이 사람의 다른 베토벤 연주도 찾아 들어보고 싶을 만큼 독보적이다.

 

옛날에 이 곡을 들으면서 좋다고는 생각했어도 울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자꾸만 눈가를 문질러가며 듣고 있네. 우리 안의 깊고 어두운 한 켠엔 끝내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쓸쓸한 실패의 목록 같은 것들이 저마다의 두터운 슬픔으로 가라앉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다정하게 긍정할 만한 어떤 것이라고, 부드럽게 속삭여주는 것 같다 이 음악이.

 

(덧붙임: 비창 2악장 때문에 듣게 된 이 음반. 충격이다. 내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베토벤 소나타는 다 뭐였단 말인가. 빌헬름 켐프가 누군 줄도 모르고 그저 골드베르크 변주곡 귀엽게 치던 연주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지독한 사람이었다니. 이 음반이 손꼽히는 명반인 것도 나중에서야 찾아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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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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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을 넘나들며 도덕성의 작동 원리(1부), 그 사회적 기원과 형성 과정(2부), 나아가 도덕이 종교 및 정치와 어떻게 관련 맺고 있는지(3부) 살펴본다.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의 선천적 도덕성 기반이 여섯 가지라는 것(①배려/피해, ②자유/압제, ③공평성/부정, ④충성심/배신, ⑤권위/전복, ⑥고귀함/추함). 그리고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서양적이고 고학력이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주의적인) 특성이 강하거나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의 사람들, 또는 자유주의자들의 도덕 판단이 주로 세 가지 기반(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위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보수주의자들은 다섯 가지 기반 모두를 폭넓게 사용한다는 것.

 

이 책은 보수 우파와는 사고의 결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 즉, 세 가지 이하의 도덕 감각 수용체만 편향적으로 사용하는, 도덕성의 범위가 협소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데 여러 모로 유용하겠다. 나와 이질적인 상대와 한 사회 안에서 어찌되었든 함께 살아나가려면 우선적으로 상대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도덕적 가치부터 파악해야 한다. 나는 비록 그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이 왜 그 가치를 따르는지 헤아려보는 일, 여기서부터 인간적 이해의 가능성이 싹튼다(558쪽)는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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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꼬마 기관차 웅진 세계그림책 10
와티 파이퍼 지음, 로렌 롱 그림, 이상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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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 차례나 반복되는 부탁과 거절, 그리고 끝없는 절망. 용기 낸 마지막 부탁이 드디어 관철되고 마침내 성공하기까지- 아기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승전결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갖가지 이유로 부탁을 퇴짜 놓는 여러 캐릭터들 덕분에 아무리 영혼 없이 대충 읽어도 불가피하게 구연의 맛이 상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이가 좋아한다. 대신에 난 이거 한 번씩 읽어줄 때마다 제대로 기 빨리는 기분. 밝고 명랑하고 낙관적인 한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미국풍 스토리와 어딘가 모르게 디즈니스러운 삽화가 참 재미도 없구만 자꾸 읽어달라니까... 영혼 없이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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