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피노자와 정치]에 수록될 용어해설을 한 가지 더 올립니다.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술들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면 얼마간 유용한 구분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가imperium/Respublica/Civitas


스피노자 정치학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국가”(영어로는 state, 불어로는 état)라고 부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키비타스civitas와 레스푸블리카respublica, 임페리움imperium이라는 세 가지 상이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스피노자는 󰡔정치론󰡕 3장 1절에서 이 용어들에 대해 간단한 정의를 내리면서 이 세 가지 용어를 구분하고 있다.


어떤 유형의 것이든 간에 임페리움imperii이 있는 상태는 사회 상태[또는 본문에서 발리바르가 번역한 대로 하면 시민 사회]status civilis를 가리킨다. 임페리움의 몸체 전체는 키비타스라 불린다. 임페리움을 보유하고 있는 이의 지도에 의존하는 임페리움의 공통의 업무는 레스푸블리카라 불린다.


이 정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국가의 내포를 규정하는 것은 임페리움이고, 이러한 내포에 상응하는 국가의 외연은 키비타스라는 점이다. 곧 이 정의에 따를 경우 정치적 질서(“사회 상태”)로서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임페리움이며, 이러한 임페리움이 적용되는 “몸체 전체integrum corpus”는 바로 키비타스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임페리움은 내용상 “주권summa potestas”이나 “통치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실 스피노자는 󰡔정치론󰡕에서 주권이라는 사태를 가리키기 위해 임페리움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위의 정의에 따를 경우 레스푸블리카는 임페리움, 곧 주권의 보유자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국가의 활동을 총칭해서 부르는 개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구분을 잘 염두에 둔다면 본문에 나오는 발리바르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 개념은 지배장치imperium와 함께 공화적 성격respublica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신민의 조건은 시민성, 곧 민주주의 국가가 충분하게 발전시키는 능동성(과, 평등성이 능동성과 비례적인 한에서, 평등성)을 전제한다.”(이 책, 58쪽)


  더 나아가 이런 구분법은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에서 볼 수 있는 스피노자의 다소 상반된 주장의 진의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20장에서 “그러므로 사실 레스푸블리카의 목적은 자유다”(모로판, 636쪽)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정치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사회 상태의 목적은 평화 및 생활의 안전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qui[fine status civilis] nullus alius est quam pax vitaeque securitas”(󰡔정치론󰡕 5장 2절). 만약 우리가 “respublica”와 “status civilis”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국가”로 이해한다면, 전자는 “국가의 목적은 자유”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후자는 “국가의 목적은 평화 및 생활의 안전”이라고 주장하는 게 된다. 그리고 몇몇 주석가들은 이러한 차이를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이 보여주는 입장의 변화의 한 증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피노자가 정의한 대로 두 용어를 구분해서 이해한다면, 이는 그리 명확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스피노자가 이미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 5장 2절의 주장과 거의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전체 사회 및 전체 국가의 목적은 [...]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nam finis universae societas & imperii est [...] secure & commode vivere.”(󰡔신학정치론󰡕 3장 6절, 모로판, 158쪽)  

  발리바르는 이 책에서 “imperium”이라는 용어를 “통치권”이나 “국가권력” 또는 “국가” 등과 같이 비교적 다양한 용어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고, “civitas”와 “respublica”는 대부분 “국가”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 “respublica”는 “공화국”으로 이해할 때 좀 더 의미가 정확해진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imperium과 관련하여 하나 더 주목해둘 만한 표현법이 있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3부 「서문」 및 󰡔신학정치론󰡕 몇 군데에서 “국가 속의 국가”로 번역될 수 있는 “imperium in imperio”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자연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그 자신만의 독립적인 본성과 세계를 지니고 있는 듯이 생각하는 가상을 가리킨다. 곧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자연이라는 국가 안에 그와 별개의 또 다른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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