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펴내는 {철학논집} 29집에 실릴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월에 열린 그린비 심포지엄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에서 처음 발표한 글인데요, 나중에 이 심포지엄 자료집에는 아마 조금 더 수정된 판본이

 

실릴 것 같습니다.

 

여기 올린 글은 교정이 다 끝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인용하거나 토론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철학논집}에 수록된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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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푸코와 민주주의?

 

[이 글은 2012년 2월 24-25일 열린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2012년 3월 23일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제43회 월례발표회에서 약간 수정된 판본으로 다시 발표된 바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월 14일 사회와철학연구회 봄 학술대회에서 한 번 더 발표되었다. 뒤의 두 차례 발표회에서 각각 논평을 맡아준 심재원 선생님과 문성훈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유익한 질문을 통해 이 글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준 참석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이 글에 여전히 남아 있을 문제점은 필자 자신의 책임이다.]

 

푸코와 민주주의. 얼핏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제목은 상당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푸코를 좋아하고 푸코의 저작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나 푸코를 별로 읽지 않고 또 푸코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에게도 이 질문은 꽤나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자. 푸코는 좌파인가?(또는 푸코는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사상가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겠지만, “푸코는 좌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물론 푸코가 일종의 사이비 좌파라는 비판은 진작부터 제기된 바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고, 이에 따라 최근 많은 푸코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1970년대 말의 강의록에서도 자유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곤 한다.] 그렇다면 “푸코는 민주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답을 망설일 것 같다.

 

이러한 망설임 속에는 다양한 태도가 함축돼 있다. 우선 여기에는 질문 자체에 대한 못마땅함이 있을 수 있다. 푸코와 민주주의라니, 왜 푸코가 민주주의와 결부되어야지? 푸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권력자들을 뽑는 선거놀음에 불과한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것은 푸코를 길들여보려는 술수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푸코는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상가이기는 하지만 그는 정치와 관련하여 구성적이고 적극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은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주로 하버마스 계열의 비판가들이 제기하는 이런 비판에 따르면 푸코는 경험적 통찰은 보여주지만 규범적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더 나아가 후기의 윤리적 실천에 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Fraser 1982; Habermas 1985 등 참조.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 역시 숱하게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Keenan 1987; Campbell 1998; Golder 2010; Allen 2011 등을 참조.] 따라서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항은 기름과 물처럼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글의 제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의문의 태도가 남게 된다. 어쨌든 푸코는 민주주의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또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한 적도 없는 것 아닌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에서 보듯이 푸코는 자연권 개념이나 사회계약에 준거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표상적인 허구들로 간주하지 않았는가?

 

푸코와 바깥의 정치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의 발표를 시도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선 내가 “바깥의 정치”[“바깥의 정치”(politique du dehors)라는 이 표현은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카르젠티(Bruno Karsenti)가 푸코 사상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Karsenti 2005 참조.]라고 부르고자 하는 어떤 이론적ㆍ정치적 지향에 담긴 애매성(심지어 양가성)에 대하여 내가 평소에 느끼는 의문에서 기인한다. 내가 바깥의 정치라는 용어로 규정한 지시체는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철학적ㆍ이론적 사조들이다. 여기에는 알랭 바디우와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과 슬라보예 지젝, 안토니오 네그리 같이, 현대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 별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사상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명칭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한데, 나로서는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적어도 한 가지 이론적 공통점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들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방의 정치를 추구하며, 이러한 정치를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의 제도적인 정치는 특히, 넓은 의미에서(곧 우리나라에서 수구적인 이데올로기로 유통되는 것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이들은 현대 정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가 이상적 정치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의 체제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인민의 권력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현대 사상가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바깥의 정치는 이중적인 유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남긴 유산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현대적인 바깥의 정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에 대한 비판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 마르크스 저작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 추구를 은폐하는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둘째는 경제적 착취에 근거를 둔 계급투쟁을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법과 정치는 경제적 생산관계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이며,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정치의 영역은 진정한 정치의 장소와 무관한 허상에 불과하다.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현대 사상가들은 이러한 고전적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바깥의 정치에 관한 이 두 가지 논점은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푸코가 남긴 유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이론적ㆍ실천적 경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작업, 특히 197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비견될 만한 자신의 고유한 ‘역사유물론’(물론 푸코 자신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들의 자기 표상에 기초하여 근대 사회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자기 표상의 기저 내지 바깥에 있는 역사적 전개 과정을 탐색하려고 했다. 푸코가 보기에는 자유주의적인 자기 표상 바깥에 있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야말로 ‘실제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좀더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으며, 자유주의적인 자기 표상의 한계 내지 ‘허구성’을 드러내주고, 더 나아가 왜 그러한 자기 표상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까지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이러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 과정 또는 경제적 착취 관계의 형성 및 전개 과정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관계(처음에는 규율권력이라 부르고, 유고작으로 출간된 강의록에서는 생명관리권력 및 통치성이라고 부른)의 전개 과정으로 제시했다. 더욱이 푸코는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이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니체에서 영감을 얻은 계보학이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푸코는 자유주의적 자기 표상의 바깥에 놓인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추구하되 비마르크스주의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바깥의 정치를 모색하는 현대 사상가들의 한 전범을 제시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푸코는 이러한 권력관계의 전개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문제를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것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사상을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고전 마르크스주의에도 예속화와 관련된 문제제기는 이미 존재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서 제시된 물신숭배 분석이 그 단초가 되며, 지외르지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 특히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 의식」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숭배론과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종합한 사물화(Verdinglichung) 개념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계급에 고유한 인간학적 소외 상태를 분석한 바 있다(루카치 1986 참조).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의 학자들(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은 이러한 루카치의 분석을 현대 산업사회의 소외된 생활양식에 대한 분석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 예속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의 보편화가 산출하는 의식과 표상, 인성(人性)의 소외와 왜곡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분석되었다.

 

반면 푸코는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경제적 착취관계나 상품관계에서 찾지 않고, 대신 규율권력이나 통치성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권력론의 기반 위에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체화 양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푸코가 보기에 고전적인 해방의 문제설정(마르크스주의 및 성해방 투쟁, 반(反)식민 해방 투쟁 등을 포함하는)은 계급 지배나 성적 지배 또는 식민 지배를 통해 억압된 보편적 인간 본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관계 형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여기에 관해서는 특히 Foucault 1984b 참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체화에 관한 독자적인 문제설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푸코의 문제제기는, 푸코를 명시적으로 원용하든 원용하지 않든 간에(또 푸코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간에) 현대 사상가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자크 랑시에르는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의 민주주의론의 주요 요소로 제시하고 있으며(랑시에르 1995; 1998 참조), 발리바르 역시 알튀세르와 스피노자, 푸코의 논의에 기반하여 정치적 주체화의 과제를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Balibar 2001; 2002; 2010을 각각 참조).[물론 발리바르는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아감벤은 푸코의 장치(dispositif)라는 개념을 원용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체화의 문제를 탐색하고 있다(아감벤 2010 참조).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알튀세르와 푸코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역시 (무의식적) 주체의 문제를 현대 사상의 근본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Zizek 1989; 1999 참조).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에 기반을 둔 정치학을 추구하고 있다(Hardt & Negri 2001; 2008). 따라서 푸코는 현대 사상가들, 특히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의 주요한 이론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바깥의 정치에 대해 어떤 애매성 내지 양가성을 느낀다면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바깥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제도 바깥에서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점이다. 그것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들이 보편적인 인권과 시민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정체로 자처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인권과 시민권의 축소, 인종 갈등과 민족 갈등, 이주자 문제 등과 같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이 단순히 상황적인 어려움에서 비롯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들의 구조 내지 토대에서 비롯한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면, 그 제도 바깥에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인 주장과 달리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가 단순히 경제적 착취에 기반을 둔 계급투쟁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물론 이러한 착취 및 계급투쟁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나 민족주의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갈등, 성적 불평등 같은 또 다른 모순, 또 다른 적대 관계에서도 비롯한다면,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이러한 복수의 모순이나 적대를 설명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근원적으로 무기력했다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다른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를 분석하고 그 바깥에서 대안적인 정치의 장소를 찾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는 두 가지 점에서 난점을 드러낸다. 우선 그들이 지배적인 정치체와 진정한 정치의 장소 사이의 근원적 양립 불가능성을 가정하는 까닭에, 예속화에서 주체화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지배의 정치체로 간주하고, 그것도 (본래적인 파시즘이 아니라면 적어도) 유사 파시즘적인 정치체로 간주하는 한에서(랑시에르의 ‘치안’이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같은 개념들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어려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만약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들이 보편적인 인권과 시민권에 기반을 둔 정치체가 아니라 오히려 예속화의 메커니즘,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더 저항하기 어려운 그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근거한 것이라면, 따라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체들’이 이미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포섭되어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정치체를 변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예속화 메커니즘과 다른 자유로운 주체화에 기반을 둔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치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또 반대로 만약 (지젝이나 네그리가 각자 상이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주장하듯) 진정한 주체는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 포섭되지 않는 중핵을 지니고 있다면, 왜 진정한 주체들에게 애초에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이러한 측면에서 지젝과 네그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진태원 2008; 2009a를 각각 참조).

 

더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바깥의 정치는 그 의도와 달리 역설적으로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가 지배의 체제로 기능하는 것을 이론적ㆍ실천적으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해 바깥의 정치에서 주장하듯이 제도적인 정치는 본성상 지배의 체제라면,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그 바깥에서 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제도적인 정치 자체를 내부에서 개조하는 일은 헛수고에 불과하거나 사소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경우 제도적인 정치 내부에서 어떠한 퇴락이나 퇴행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거나 제어하는 것 또는 그것을 개혁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제도적인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폐해의 결과는 그 체제 내부에서 살아가는 것밖에 달리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따라서 과연 동시대의 여러 이론가들처럼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와 바깥의 정치 사이의 근원적 양립 불가능성을 전제해야 하는 것인지, 이러한 전제는 오히려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역사성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성이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체가 초역사적이거나 영원한 정치체가 아니라 역사적 한계를 지닌, 따라서 언젠가는 극복되고 대체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체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성의 이런 측면은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이 폭넓게 공유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사성의 또 다른 의미는 지배적인 정치체가 이러한 역사적 한계 내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그것은 역사적으로 상이한 형태들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마르크스 및 그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중요한 한계 중 하나로 “자본주의 자체의 역사를 사고하고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력”(Balibar 1997, 304)을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8세기 말의 자본주의와 19세기 말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또 20세기 말의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계급투쟁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곧 계급투쟁이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계속 동일하게 그대로 존속한다”(Balibar 1997, 319-번역은 수정)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지적할 수 있다. 지배적인 정치체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든 치안이라고 부르든 부르주아민주주의라고 부르든 아니면 생명관리권력 체제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은 이러한 지배적인 정치체의 역사를 분석하는 데 무능력하다.[역사성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국민국가를 노예의 정치체로 간주하는 국내 및 일본의 지식인들에게서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태원 2009b 참조.] 가령 랑시에르는 󰡔불화󰡕와 같은 탁월한 저작들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음에도 그가 치안이라고 부르는, 제도적인 정치체의 역사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지젝 같은 경우는 이러한 정치체의 역사 같은 문제설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이런 의미에서 지젝은 이론가라기보다 비평가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무능력은 정치를 제로섬의 문제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든 체계 전체를 변혁하는 정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지젝의 말장난에 따르면 체계를 개혁하거나 개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기존 체계를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변혁적인 태도, 진정한 정치에 부합하는 태도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푸코는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론의 선구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이론가들과 구별되는 주목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관계론적 권력론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푸코의 특유한 권력론에서 비롯한다. 푸코는 권력을 억압과 부정, 금지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긍정과 생산의 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은 권력의 ‘실제’ 메커니즘을 좀더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이해하게 해줄뿐더러, 권력을 지배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권력과 자유, 권력과 저항, 권력과 해방을 외재적인 대립관계로 환원하는 동시대 바깥의 정치론의 난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준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 및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에서 권력의 예속화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한 이후 1980년대 초의 작업에서는 주체화의 양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권력의 분석론과 주체화 양식론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서로 외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푸코의 주체화 양식에 대한 분석은 그가 관계론적인 권력론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또 그렇게 파악할 때에만 주체화 양식론이 지닌 강점이 좀더 정확히 인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관계론적 권력론이야말로 예속화와 주체화를 내재적인 복합적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푸코의 또 다른 강점은 역사를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푸코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역사가들이 구성해놓은 역사를 소비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직접 역사적 사료를 분석하여 근대성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광기의 역사’, ‘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 같이 그의 저작에서 역사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푸코가 재구성한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구분이나 분류법의 한계를 드러내주면서 역사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준다. 가령 ‘광기’라는 것이 자연적인 질병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지식과 권력의 복합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감옥이라는 제도의 성립과 전개 과정을 통해 근대 권력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오직 푸코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재구성된 역사는 기원의 우연성과 불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가장 반(反)목적론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푸코는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도 목적론이나 종말론과 가장 거리가 멀고 권력이나 정치의 문제를 제로섬의 방식으로 환원하는 데 가장 면역력이 큰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푸코 사상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푸코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푸코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의 계보학,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역사를 직접 구성한 적은 없지만, 그러한 역사를 사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 바깥에 위치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종말론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 그것에 저항하고 변혁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예속화와 주체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푸코의 사상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이것이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암묵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여기서 제기된 문제들을 온전히 다룰 수는 없으며, 다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푸코 사상의 몇 가지 이론적 요소를 지적하는 데 그치기로 하겠다. 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관계론적 권력론

2) 예속화와 주체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3)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 대항품행, 권리들을 가질 권리, 파레지아

 

내가 보기에 이 요소들은 ‘바깥의 정치’로서의 푸코의 사상이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또는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를 개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관해 한 가지 실마리를 던져줄 것 같다.

 

관계론적 권력론

 

푸코는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 앎에의 의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등에서 몇 차례에 걸쳐 권력 분석에서 일종의 관계론적 전회를 제안하고 있다. 특히 다음 구절은 이를 매우 잘 보여준다.

 

권력을 관계의 원초적 항들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할 게 아니라, 관계야말로 자신이 향하고 있는 요소들을 규정하는 것인 한에서, 관계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해야 한다. 이상적 주체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예속될(assujettir) 수 있도록 그들 자신으로부터 혹은 그들의 권력으로부터 양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예속 관계들(relations d'assujettissement)이 주체들을 만들(fabriquer)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 형태들이 그 결과로서 또는 그 전개로서 파생되어 나올 유일한 형태나 중심점을 찾기보다는 우선 이 형태들이 지닌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것들을 서로 교차하고 서로에게 준거하고 서로 수렴하거나 반대로 서로 대립하고 서로를 소멸시키는 경향을 지닌 세력관계들로 연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에 대해 권력의 발현으로서 특권을 부여하기보다는 권력이 작동시키는 상이한 강제의 기술들을 표시해두는 것이 좋다. (Foucault 1997, 305-306쪽―번역은 수정)[푸코의 저작에서 인용할 때 국역본이 있을 경우에는 국역본 쪽수를 중심으로 했으며, 함께 병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원문 페이지수를 달아두었다.]

 

여기서 푸코는 네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론으로서 관계론을 정식화하고 있다.

 

1) 관계항들에 대한 관계의 우위

 

이러한 원칙으로 푸코가 강조하려고 하는 바는 권력이나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독립적인 개인이나 주체를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입장 및 또한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개인들을 복종시키고 억압하는 권력이 적용되는, 또 타격을 가하는, 일종의 기본적인 핵이나 최초의 원자, 다수의 불활성 물질 등으로 개인을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Foucault 1997, 48―번역 수정) 이는 푸코가 그것과 정반대되는 입장, 곧 방법론적 전체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 푸코는 권력의 중심을 가정하거나 권력을 동질적인 전체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관점을 정면으로 배격한다. “권력을 전면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말 것이다.”(Foucault 1997, 48) 따라서 푸코의 입장은 오히려 “권력은 망 속에서 기능”한다는 것, “이 망 속에서는 개인들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권력을 감수하면서 또한 그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권력은 개인들을 통과해갈 뿐 그들 중 누구에게도 고착되지 않는다”(같은 곳―번역은 수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예속 관계

 

관계론의 두 번째 원칙은 사회계약론을 예속 관계에 대한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왜 사회계약론이 문제가 될까? 그것은 독립된 개인들이 사회계약론의 기본적인 이론적 전제 조건 중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다수의 개인들의 자발적인 의지로부터 어떻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주권이 구성되는지 해명하려고 하지만, 이는 권력과 지배의 실질적인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호도할 뿐이다. 또한 사회계약론은 푸코가 “권력 이론 내의 ‘경제주의’”라고 부른 것, 곧 “권력이 마치 재산처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고, 따라서 법적 행위 또는 인도나 계약의 형식인 권리 개설의 행위에 의해―여기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전체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남에게 이양하거나 양도할 수도 있는 하나의 권리”(같은 책, 31)로 간주하는 이론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권력의 실질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리바이어던 모델”, 곧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자동적이며 동시에 통일적이고, 실제의 개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모든 시민을 몸체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러나 그 정신은 주권인, 그러한 인위적 모델을 제거”하고 그 대신 “지배의 기술과 전술”(같은 책, 53)로부터 권력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좀더 일반적으로는 주권 개념에 기초를 둔 법적인 권력 개념 대신 “지배 관계 내지 그 작동장치들”을 부각시키려는 푸코의 이론적 관점의 표현이다.

 

3) 중심이 아니라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

 

여기서 푸코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국가를 중심으로 삼는 권력이론, 곧 모든 권력의 통일체이자 중심으로서 국가를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권력 이론이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근대의 거의 모든 정치이론은 긍정적인 것으로 보든 부정적인 것으로 보든 항상 국가를 중심으로 권력을 분석해 왔지만, 푸코에 따르면 이는 권력의 실제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서나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서나 부적절한 관점이다. 권력이 어떤 단일한 중심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은 “오랫동안 정치적 사유를 현혹시킨 법-주권 체계”(Foucault 1976, 115―번역은 다소 수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권력의 다면적이고 구체적인 작동을 분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 관점은 “권력에 대한 커다란 거부의 ‘한’ 장소”(같은 곳)를 가정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억압 가설이나 소외론으로 귀착되고 만다.

 

반대로 푸코에게 권력 관계는 “작용영역에 내재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다수의 세력관계, 끊임없는 투쟁과 대결을 통해 다수의 세력관계를 변화시키고 강화하며 뒤집는 게임, 그러한 세력관계들이 연쇄나 체계를 형성하게끔 서로에게서 찾아내는 거점, 반대로 그러한 세력관계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괴리나 모순, 끝으로 세력관계들이 효력을 발생하고 국가 기구, 법의 표명, 헤게모니에서 일반적 구상이나 제도적 결정화가 구체화되는 전략”(같은 책, 112)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권력의 분석에서는 항상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권력 관계는 항상 가역성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권력이 있는 곳에 바로 저항이 존재하며, “권력 관계는 다수의 저항지점에 따라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같은 책, 115) 권력이 다양하고 구체적, 미시적으로 도처에 편재한 것처럼, 저항 역시 권력망의 도처에 현존하며, 따라서 때로는 서로 간에 모순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 다양한 저항의 형태들이 존재한다.

 

4)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기

 

마지막으로 푸코가 제시하는 관계론적 원칙은 법에 대해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고 그 대신 다양한 강제의 기술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왜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일이 될까? 그것은 푸코에게 법은 사실은 지금까지의 원칙들에서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되었던 특징들을 집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Foucault 1976, 102 이하 참조). 곧 법은 초월적인 심급(곧 주권)을 가정함으로써, 관계항들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비대칭성을 도입하며, 더 나아가 이러한 초월적인 심급을 중심으로 권력을 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때문에 법은 다양하고 상이한 권력의 기술들을 하나의 중심을 갖는 통일체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법은 보편성과 필연성의 상징으로서 그 기원의 우연성이나 그 역사적 변화의 가능성을 사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법은 권력을 금기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곧 권력을 금지하고 부정하고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푸코가 항상 강조하는 권력의 생산적 또는 긍정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법으로서의 권력은 “거의 “부정”(non)의 힘밖에 없”(Foucault 1976, 106)다. 법으로서의 권력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주체에게 자신이 금지하는 것은 하지 말고 허가하는 것만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무한한 힘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법은 바로 그 금지에 의해 산출된 욕망을 통해 자신의 주체들을 무한한 원환 속으로 이끌어 들이기 때문이다. 법으로서의 권력은 금기와 위반의 무한정한 되풀이와 다르지 않다.

 

갈등적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관계론적 권력론은 푸코가 권력에 대한 법적-주권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첫째, 권력이나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독립적인 개인이나 주체를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입장 및 또한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또한 이것은 권력 분석에서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예속 관계를 초점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따라서 푸코는 모든 권력의 통일체이자 중심으로서 국가를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권력 이론에서 벗어나 다수의 세력들 사이의 전략적 관계로서 권력을 사고할 것을 제안한다. 요컨대 중심이 아니라 다양성, 차이, 종별성, 가역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법에 부여된 특권을 박탈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법에 중심을 둔 권력론은 법의 초월성과 부정성(곧 권력의 본질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에 기반을 두고 권력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코는 1980년대 초에 가면 이러한 관계론적 권력론의 관점에서 권력과 지배를 구별한다. 권력은 도처에 편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서로 활동을 주고받기 위한 조건을 함축한다면, 지배는 관계의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역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따라서 권력은 자유나 해방의 대립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해방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되며(그 역도 성립한다), 해방은 어떤 권력의 지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권력 관계를 열어놓”(Foucault 1983, 103)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유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으로서의 권력 관계—이러한 전략적 게임은 어떤 사람들이 타인들의 품행을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들며, 여기에 대해 타인들은 자신들의 품행이 규정되지 않게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처음의] 타인들의 품행을 역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듭니다—와, 우리가 보통 권력이라고 부르는 지배 상태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서, 권력 게임과 지배 상태에서 우리는 통치 기술을 갖게 됩니다. 통치 기술이라는 이 용어는 아주 넓은 의미, 곧 제도를 통치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통치하는 방식도 포함하는 의미를 지닙니다.(Foucault, Ibid., p. 1547; 같은 글, 123-24쪽. 번역은 수정)

 

따라서 이러한 관계론적 권력론은 민주주의를 법적인 정체(政體)로 규정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갈등적인 과정으로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대의 사상가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가장 역설한 인물은 에티엔 발리바르다.[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는 Balibar 2005; Balibar 2008; “Ouverture: L'antinomie de la citoyenneté”, in Balibar 2010 참조.] 그는 스피노자의 정치학에 대한 재독해를 통해 민주주의를 형식적인 법적 정체가 아니라 갈등적인 과정으로, 물질적인 헌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주의를 갈등적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동력으로 하여 작동한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제도로 구현된 모든 민주주의 헌정은 필연적으로 배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대 민주주의에서 노예가 시민권 헌정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발리바르에 따르면 보편적 인권과 시민권에 기초를 둔 근대 민주주의 역시 자신의 고유한 배제의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배제에는 근대 민주주의 초기의 무산 계급에 대한 배제나 여성에 대한 배제 등이 존재한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배제들 이외에 국민국가에 고유한 배제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그것을 발리바르는 특히 시민권=국적이라는 등식으로 표현한다.[‘시민권=국적’ 등식의 의미에 대해서는 Balibar 2001 4장 및 Balibar 2002, 131쪽 이하 참조.] 곧 정치적 자격으로서의 시민권을 국적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부여하는 것이 근대 민주주의 헌정, 곧 국민 국가의 본질이며, 이것은 󰡔인권선언󰡕에서 천명된 보편적 인권 및 시민권 원리와 모순을 빚는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과제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기존의 제도적인 틀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국한될 수는 없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배적인 세력 관계가 억압하고 배제하는 갈등, 곧 사회적 약자들이나 배제된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주의적 대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의견과 당파의 다원성을 보증하고 활성화하는 것(이것은 물론 본질적입니다만)만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것이며, 모종의 세력관계가 강제하는 “억압”으로부터 이러한 갈등을 빼어내서 공동선 내지 공동의 정의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끔 그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갈등이 부인되어서는 안 되며 논변과 매개(“의사소통 행위”) 바깥에 놓여서도 안 되는데, 비록 이러한 갈등이 처음에는 대부분 적법한 이해관계들을 인정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설정된 틀을 격렬하게 벗어나기 마련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Balibar 2002, 241) 갈등적인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제도에서 배제된 사회적 갈등의 정치적 대표라는 문제를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 또는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핵심 문제로 제기한다.[이때 정상적인 민주주의 제도에서 배제된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인 예는 소수 집단 내지 비정상인들과 주류 집단 내지 정상인들 사이의 갈등이 되겠지만, 이러한 갈등이 반드시 특정한 소수 집단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텐데, 특정한 소수 집단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배제의 문제에 함축된 보편적인 정치적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신자유주의적 예속화 양식

 

오늘날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심지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이 경제적 세계화,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동의하는 견해다.[이 점에 관해서는 가령 데이비드 하비처럼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저자 이외에도(하비 2007, 204쪽 이하; 하비 2010), 크라우치 2008, Brown 2003; 세넷 2002; 2009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저자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의 양상은 콜린 크라우치가 적절하게 요약했듯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줄어들었다. 정치가는 한 줌도 안되는 기업가들의 관심사에만 주로 반응하고, 기업가의 특수 이익이 공공 정책으로 둔갑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차 정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그들은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차지해야 했던 위치, 즉 정치 참여가 배제된 위치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크라우치 2008, 37-38)

 

민주주의는 그 어원이 말해주듯이 demos + kratia, 곧 “인민의 권력” 내지 “인민의 통치”를 의미한다면, 또는 적어도 다수 대중의 의지의 표현 및 참여가 제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사실 현재 민주주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랑시에르가 역설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과두제로의 전환 또는 “인민 없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특히 Rancière 2005 참조) 곧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는 최소 민주주의, 곧 슘페터가 말했듯이 “[그것은] 정치적 결정으로 귀착되는 제도적 체계로서, 개인들은 이 속에서 인민의 투표에 관해 경쟁하는 투쟁 끝에 정치적 결정에 관해 법제화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게” 되는 정치 형태이며, 따라서 실제로는 과두제에 불과하다. 인민의 권력 내지 통치로서의 민주주의가 이름에 걸맞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실질적인 보편 선거가 일반화된 20세기 후반부터라고 한다면, 불과 40~50여년 사이에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제로 후퇴한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는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Brown 2003 참조). 그렇다면 어떻게 신자유주의는 “인민 없는 민주주의”로서의 과두제를 산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민주주의에 관한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지만,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이나 그 반대쪽에 위치한 제도적 민주주의에 관한 사상가들, 자유주의 이론가들 및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가들에게서는 이러한 문제설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다만 최장집 교수 등은 모니카 프라사드 등의 논의를 원용하여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국가별 정책의 차이라는 문제로 환원하려고 시도한다. 곧 영국이나 미국, 한국 같은 나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채택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되는 반면, 독일 같은 나라는 신자유주의가 낳는 폐해가 적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나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푸코의 작업은 주목할 만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푸코가 지난 1978-1979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를 묶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이론적 뿌리를 이루는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us) 학파 및 미국의 시카고학파의 주요 이론과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푸코의 강의록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수의 푸코 제자들 및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지만, 신자유주의에 관한 선구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분석은 이미 유럽과 영미권의 여러 푸코 제자들 및 푸코 연구자들의 작업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원용되고 확장되어 왔다.[영미권의 이른바 “통치성 학파”(School of Governmentality)나 프랑스의 자크 동즐로(Jacques Donzelot), 로베르 카스텔(Robert Castel), 크리스티앙 라발(Christian Laval)과 피에르 다르도(Pierre Dardot), 독일의 토마스 렘케(Thomas Lemke) 등이 그 주요한 연구자들이다.] 푸코는 강의록에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한다.[물론 이러한 차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푸코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자유주의적 통치성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통제되어야 할 요소들의 자유 운동을 고무하는 장치들을 생산하고 발전시키는 통치 방식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Foucault 2004a, 1월 18일 강의 참조), 인구를 구성하는 생명체들의 집합 전체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통치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통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비판의 운동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Foucault 2004b, 1월 17일, 2월 7일 강의 참조).]

 

첫째 푸코에 따르면 양자는 경제 활동을 인식하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 자유주의는 “교환”(échange/exchange)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때의 교환은 스미스가 인간이 지닌 “교역, 교류, 교환”에의 본성적 경향에 대해 언급했듯이 본성적인 것으로서의 교환이다. 곧 고전 자유주의는 시장을 특수한 국가 제도나 사회 부문으로 간주하지 않고 자연적인 체계로 간주했다. 바로 이 때문에 시장은 국가 권력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한정하기 위한 토대로 작용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교환이 아니라 “경쟁”(concurrence/competition)에 초점을 맞춘다(Foucault 2004b, 9).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원리를 정치의 토대로 간주하지만, 교환 대신 경쟁을 경제적 인간학의 근본 원리로 간주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고전적인 자유주의에게는 자연적인 것으로서의 교환이 경제의 토대였던 반면,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자연적 경향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독점과 개입에 맞서 “인위적 관계”로서의 경쟁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이다(푸코에 따르면 이는 20세기 전반기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독일 질서 자유주의자들의 공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 곧 경쟁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을 보호하는 데 개입할 것을 요구한다. “경쟁은 존중해야 할 자연적인 소여가 아니라 통치술의 역사적 목표다.”(같은 책, 124)

 

둘째, 이렇게 경제의 근거가 교환에서 경쟁으로 바뀌고, 경제 활동이 자연적인 것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재정의되면서, 인간에 대한 상이한 이해 방식이 생겨난다. 우선 신자유주의적인 관점(특히 미국의 시카고학파)에 따를 경우 경제학의 범위가 무한정하게 확장된다.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의 정의를 원용하면서(“경제학은 인간 행동을, 목적들과, 양자택일적 용도를 갖는 희소한 수단들 사이의 관계로 연구하는 학문이다”(같은 책, 242)) 푸코가 말하듯이 이제 결혼과 범죄, 아이 양육 등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행동이라면 모두 경제적인 비용 계산의 대상이 되며, 따라서 경제적인 활동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제 경제는 더 이상 사회의 한 부문이 아니라 사회 전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서 인간 주체는 “기업가”(l'homme de l'entreprise/entrepreneur)가 되며, 인간의 활동은 “인적 자본”의 관점에서 재정의된다.

 

가령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얻게 된 임금은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는 초기 투자를 통해서 얻게 되는 수입이 되며, 더 나은 수입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활동 역시 투자로 간주된다. 또한 학교나 학원을 다니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 클럽에 다니는 것, 동호회나 등산, 친목 모임 같은 활동 내지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 이주를 하는 것도 역시 투자의 관점으로 이해된다. 인간들은 각자가 기업가이고 각자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투자를 한 만큼 또한 각자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경제적 인간은 기업가, 자기 자신의 기업가”인 셈이다(같은 책, 232).

 

셋째,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통치성”(gouvernementalité) 내지 “통치술”(art de gouvernement)로 이해한다. 여기서 통치성은 좁은 의미, 곧 국가를 다스리거나 경영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ㆍ절차ㆍ분석ㆍ고찰ㆍ계측ㆍ전술의 총체”(Foucault 2004a, 163)를 뜻한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와 개인의 통치를 결합하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통치성은 “품행에 대한 인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푸코가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통치성으로 규정하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아주 역설적인 형태의 통치성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통치 없는 통치”, 곧 자신의 주체들에게 여러 전략들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통치이기 때문이다. 개인 주체, 개인 기업가들은 다른 사람이나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투자하고 벌어들이고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이러한 자유를 부여받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활동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또한 국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가령 질병이나 실업, 빈곤 등의 문제에 관해 개인 기업가들은 그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돌릴 수 없다.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리고 어떤 직업을 갖거나 잃고 얼마나 부유하거나 가난하든 그것은 모두 개인들의 책임에 달린 일인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반(反)정치적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반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정치 제도나 정치의 영역 그 자체를 물질적으로 제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사회의 변화나 변혁을 사고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또는 그것을 위한 조건들 자체가 축소된다는 것을 뜻한다.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

 

그렇다면 이러한 반정치적 정치에 맞서 '진정한' 자유주의 정치의 복원, 또는 복지국가의 실현을 저항의 전략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푸코에 따르면(또는 푸코 자신이 직접 이러한 논의를 제시한 적은 없으므로, 적어도 그의 통치성의 문제설정에 따르면) 이것은 부분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어도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맞서기 위한 정치로는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반(反)정치적인 경제 이데올로기나 시장의 지배라기보다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이고 정치의 변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종언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를 재구조화하는 정치의 변혁이다. 우리가 오늘날 목도하고 있는 것은 국가 주권 및 계획 능력의 감소나 환원이 아니라 공식적인 통치 기술로부터 비공식적 통치 기술로의 전위이자 통치의 무대에서 새로운 행위자들의 등장이다. 이것은 국가성 및 국가와 시민사회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시해준다. ... 다시 말하면 국가와 사회, 정치와 경제 사이의 차이는 더 이상 토대나 경계선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종별적인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의 요소이자 효과로 기능한다.”(Lemke 2002, 58-59)

 

더 나아가 앞서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가 기업가 개인들을 양산하고 경쟁을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제도화함으로써 개개인들의 삶에서 광범위한 예속화 효과들을 산출하고 있다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국내에서는 특히 최장집의 일련의 저술에서 이런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적인 제도 정치를 복원하거나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인 통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문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깥의 정치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얻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 길게 논의하는 대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푸코의 가능한 저항 전략을 세 가지 측면에서 간단히 살펴보겠다. 내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대항품행(contre-conduite)이라는 푸코의 개념이다. 푸코가 말하는 대항품행이라는 것은 어떤 통치성의 인도에 따라 행위하는 대신, 그러한 통치성이 원하는 것과 다른 식으로 행위하는 것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푸코의 한 텍스트를 통해 이것의 의미를 살펴보자.

 

푸코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말년의 글에서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텍스트를 검토한 뒤 후반부에서 “능력과 권력 사이의 관계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문제를 검토한다. 푸코가 보기에 18세기 이래 서양 사회는 개인들 상호 간의 동시적이고 비례적인 발전이라는 희망을 품어왔다. 그리고 능력의 획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야말로 서양사의 영속적인 요소를 이루어왔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 푸코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능력의 신장과 자율성의 신장 사이의 관계가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능력의 신장이 권력 관계의 강화와 분리될 수 있는가?”(Foucault DE II, 1595)

 

푸코가 ‘능력과 권력의 관계의 역설’이라고 부른 것과 이 후자의 질문 사이에서 푸코 자신은 아무런 구체적인 연관성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푸코의 통치성 분석, 특히 자유주의적-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분석의 맥락에서 본다면, 양자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능력과 권력 사이의 관계의 역설이 뜻하는 것은, 통치 기술이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 능력을 최대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반면, 이러한 능력의 최대화는 오직 이러한 통치 권력의 인도를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 능력이 최대화된다고 해서 우리가 자율성의 말의 본래 의미에서 자율적이거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최대화는 통치 권력의 인도를 통해서만 수행되며,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권력에 의해, 그러한 권력이 원하는 방향대로 통치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푸코가 제기하는 질문의 의미가 좀더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 능력의 신장을 어떻게 이러한 통치 권력의 강화와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통치 권력의 인도 아래, 그러한 통치 권력이 원하는 대로 통치되는 대신, 그것과 다른 식으로 통치되는 길은 없는가? 또 그러한 다른 식의 통치를 통해 우리 자신의 행위 능력을 신장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이것이 바로 대항품행이라는 개념의 의미다.

 

그렇다면 대항품행이라는 개념이 과연 정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민주주의를 새롭게 사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한편 미국의 푸코 연구자인 아널드 데이빗슨(Arnold I. Davidson)은 게이 및 레즈비언 운동과 관련하여 푸코의 대항품행 개념이 갖는 윤리적ㆍ정치적 함의를 흥미롭게 분석한 바 있다. Davidson 2011 참조.] 여기에서도 상세한 논변 대신 푸코의 짧은 한 텍스트를 가지고 간단하게 나의 논점만 전달해보겠다. 푸코가 1981년 해적 행위에 반대하는 국제위원회 창설 기자회견 석상에서 읽은, 짧지만 매우 인상적인 이 텍스트는 푸코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자로 불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견뎌내는 데서 공통적으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말할, 함께 말할 자격도 갖고 있지 않은 사적인 사람들로서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왜 어떤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기 나라에서 사는 대신 그곳을 떠나려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 바깥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이런 일을 하도록] 임명한 것일까요? 누구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의 권리를 형성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제가 믿기로는 이러한 발의를 인도한 세 가지 원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1)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닌 국제 시민성이 존재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피통치자들(gouvernés)이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연대하고 있습니다.

 

2)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 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국제 시민성의 임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은 결코 정치의 침묵하는 잔여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불행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맞서 일어서고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정초합니다.

 

3) 흔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과업의 분산, 곧 분노하고 말하는 일은 개인들이 맡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일은 정부가 맡는다는 분산을 거부해야 합니다. ... 국제 사면위원회, 테르데좀므(Terre des hommes)[국제아동구호단체], 세계의사회는 새로운 권리, 곧 사적 개인들이 국제 정치 및 전략의 질서 속에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창조해낸 주도적 단체들입니다. 개인들의 의지는 정부가 독점하려고 해온 현실 속에 기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부의 독점을 날마다 조금씩 탈취해야 합니다.(Foucault, “Face aux gouvernement, les droits de l'homme”, DE II, 1526-27-강조는 필자)[이 글은 푸코 생전에는 출간되지 않았다가 푸코 사후인 1984년 6월 30일~7월 1일자 󰡔리베라시옹󰡕에 발표되었다. 이 글의 맥락에 대한 소개 및 분석으로는 Campbell 1998 참조.]

 

이론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정세에서 공적 지식인으로서 개입하면서 발언한,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우발적인 이 텍스트는 푸코의 다른 텍스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해준다.

 

푸코에게서 정치적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나 노동자 계급이 아닐뿐더러 고전적인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이나 시민도 아닐 것이다. 또한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다중도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가 푸코에게서 정치적 주체를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피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여기에서 연대의 주체로 제시한 피통치자는 정상적인 의미의 피통치자, 곧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나름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 피통치자가 아니다.[이는 물론 이처럼 잘 확립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피통치자 범주에서 배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한 효과 중 하나는 남과 북, 또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경계선이 더 이상 국가들 및 대륙들 사이의 외적 경계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부유한 북쪽 나라들의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게토들이 확장되고 있으며, 남쪽의 대도시들에서도 첨단 세계화의 흐름과 빈곤의 확산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화가 산출하는 경계 문제의 복합적 측면에 대해서는 Balibar 2001 6장 및 7장 참조.] 일차적으로 그러한 피통치자들은 국적을 상실한, 따라서 아렌트가 주장했듯이 일체의 정치적 권리도 상실한 채 공해상을 떠도는 베트남 난민, 이른바 보트피플이다. 이들이 아무런 국적도 갖지 않고, 그러한 국적을 통해 보장되는 아무런 시민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당시 공산화된 베트남의 새 정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실정법적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푸코는 어떤 실정법적 권리에 따라 이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대신, 피통치자들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견뎌내는 데서 공통적으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을 유일한 자격으로 지닌 피통치자들의 국제적 시민성의 이름으로 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불행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맞서 일어서고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정초”한다. 이것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또는 랑시에르가 말한 “몫 없는 이들의 몫”에 대한 주장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리고 발리바르가 말하는 봉기적 시민성, 평등자유 원리에 기초를 둔 국적을 넘어서는 관(貫)국민적(transnational) 권리의 또 다른 명칭이 아닌가?[탈식민주의 이론가 파르타 차테르지(Partha Chaterjee)는 푸코의 “피통치자”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제도적인 정치의 틀 바깥에 위치한 탈식민지 사회 피통치자들의 저항의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한 바 있다. Chaterjee 2004 참조.]

 

푸코가 아렌트나 랑시에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이러한 피통치자들의 권리라는 문제를 파레지아(parrhesia), 곧 진실을 말하기라는 윤리적 행위의 문제와 결부시키기 때문이다.[푸코의 파레지아 개념에 관해서는 그로 외 2006 및 심세광 2012 참조.] 푸코가 말하는 파레지아는 이중적인 조건을 지닌 것이다. 첫째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함을 함축하는 것이며, 둘째는, 나이나 사회적 위계, 서열 등의 차이를 무릅쓰고 상대방에 대해 솔직하게 발언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정치적 맥락에서 본다면 파레지아는 의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민회에서는 법 앞의 평등(isonomia)과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권리(isegoria)가 보장되어 있지만, 이러한 조건들만으로 파레지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발언자의 윤리적 결단을 함축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하여 일정한 입장을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파레지아는 정치적 행위에는 항상 이미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윤리적 행위가 함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파레지아는 아마도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다움(civilité)(이 개념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태원 2010 참조)의 푸코식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약화 및 위기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비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급진 사회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이론가들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대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일부 비판 사회과학자들을 제외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과 대안의 모색을 수행하는 이론가들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하버마스 계열의 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이론가들에게서 신자유주의 분석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푸코의 강점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금융 자본의 이데올로기나 경제 정책으로 환원하지 않고 새로운 통치 합리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예속적 주체 생산 메커니즘을 산출하는 복합적인 통치 양식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훨씬 더 견고하고 뿌리 깊은 새로운 통치 유형이기 때문에 단순히 복지국가를 실현한다거나 금융 자본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극복될 수 없으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의 발명이 필수적인 과제로 요청된다.

 

만약 푸코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신자유주의적 예속화 양식을 변혁할 수 있는 이러한 주체화 양식에 대해 좀더 온전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푸코는 1979년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에 대해 분석한 뒤, 1984년까지 그가 사망할 때까지 다시 이 주제로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많은 푸코 연구자들이 남긴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풍부한 분석을 통해 푸코의 작업이 지닌 강점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적 지배 양식 및 예속화 양식에 대한 분석을 넘어 이제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사고하는 데에도 푸코의 작업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관계론적 권력론, 대항품행, 파레지아 같은 개념들은 아마도 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이론적 요소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이 글에서 보여주고자 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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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2-05-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balmas 2012-05-23 18:57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 관심 있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세영 2012-06-2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태원이형, 좋은 논문 출력해갑니다.

balmas 2012-06-28 20:1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요.

이석 2013-01-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유학중인 일본 근대 문학 전공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와 푸코를 동시에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을 보고 아무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몇 글자를 올립니다.
비전공자여서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너무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종말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바깥의 정치"철학자들이 지닌 한계를 푸코가 ("지배"와 대비되는) 새로운 "권력"개념으로 어떻게 넘어섰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지에 관한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솔직히 저도 "지배"와 "권력"개념을 혼동하고 있었는데, 제가 접하지 못 했던 푸코의 저작들도 인용하시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자면, 현대 철학자들의 추상적인 이론과 말장난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전술적인 저항을 외치던 푸코에 대해 막연한 희망을 보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언어화해주셔서 매우 통쾌했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balmas 2013-01-11 00: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반갑습니다.^^
앞으로 좀더 구체화되어야 할 쟁점들이 많은데,
도움이 되셨다니 격려가 되네요.^^
앞으로 종종 들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