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국민청원"의 제목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인터넷 웹하드 업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성범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고발입니다.


한편으로 국산 야동을 올려서 돈을 벌고, 이 야동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디지털 장의사"라는 삭제 업체를 따라 만들어서 또 돈을 벌고, 


시간이 지난 뒤 제목을 바꿔서 다시 야동을 등록해서 돈을 버는 


파렴치한 성범죄 카르텔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료일이 8월 28일이니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서 서둘러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청원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22420?navigation=best-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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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에 수록될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월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완료되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이 글에 관해 토론하거나 인용하려는 분들은 [민족문학사연구]에 게재된 판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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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데리다,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그리고 그 너머

[이 글은 2018221~22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주최로 열린 연속기획, 탈근대론 이후3: 근대의 시간과과 학술사회학술회의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그 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되었다. 유익한 토론과 조언을 해준 학술회의 참가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간명하고 건설적인 논평을 제시해준 세 분의 익명의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심사위원들의 여러 제안은 이 글에서 충분히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다른 기회에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 그밖에 몇 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각주에서 답변을 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I. 객관적 불확실성, 주관적 불확실성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매우 특이한 시기라는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주요 사상가들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로 특징지었다. 특히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쇠퇴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는 아직 그것을 대신할 만한 체제나 질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인터레그넘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9장 참조.] 에티엔 발리바르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매우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는 우리가 현상들을 측정하거나 평가하기 위해 의존하는 주요 지표 내지 틀이 급속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현상들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과 독립적인 불변적(적어도 상대적으로라도) 척도들이 필요한데, 우리 시대는 이러한 척도들 자체가 순식간에 변모되는 시기라는 것이다.[Etienne Balibar, “Démocratisations”, Vacarme, no. 76, 2016 참조.]


이 글의 제목에 두 차례에 걸쳐 사용된 이후라는 말 역시 확실성의 표시(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 현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지시하는)라기보다는 불확실성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두 개의 이후의 중첩은 더욱 커다란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된 불확실성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이후의 논의에서 더 명백해지겠지만, 한 가지 주목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전환의 시대이며 따라서 그 자체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가장 강조한 이들 중 한 사람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그는 여러 저작에서 우리 시대를 175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또는 세계사적 사건들로 표현하자면, 1789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대략 200여년의 현대 세계의 순환이 종료된 세계로 특징지은 바 있다.[월러스틴은 1983년 출간된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우리 시대의 세계사적 분기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사이의 갈림길이 아니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냐 비교적 계급이 없는 사회로의 이행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나종일백영경 옮김,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창작과비평, 1993, 113.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종언 및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은 1990년대 이후의 저작에서 더 본격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진 바 있다.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성백용 옮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1994; After Liberalism, New Press, 1995; 강문구 옮김, 󰡔자유주의 이후󰡕, 당대, 1996;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백승욱 옮김, 창비, 2001; 이강국, 위기이행대안: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 󰡔창작과비평󰡕 167, 2015년 봄호를 각각 참조.
 
그는 1989년 이후의 시기, 곧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의 시기를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간주하기보다는[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이상훈 옮김, 󰡔역사의 종말󰡕, 한마음, 1992 참조. 하지만 후쿠야마의 저작만이 이러한 관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정치적규범적 지평으로 간주하는 이들(여기에는 최장집 같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버마스 같은 이들도 포함된다)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유럽에서의 헌법 논쟁에 대한 성찰, 󰡔정치체에 대한 권리󰡕, 후마니타스, 2011 참조.오히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종말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기라고 간주하면서, 앞으로 대략 2025~2050년까지의 세계는 혼돈’(chaos) 내지 불확실성’(uncertainty), ‘혼란’(confused)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가령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p. 23 이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35면 이하; After Liberalism, p. vi 이하; 󰡔자유주의 이후󰡕 6면 이하;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서문: 불확실성과 창조성참조.] 월러스틴의 관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시대가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점은 오늘날 충분히 공유되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이러한 불확실성의 주관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향방은 주체적인 개입을 통해 규정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지배적인 계급들이나 집단들은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그것을 기존의 방식대로, 곧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는 한에서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월러스틴이 통찰한 바와 같이 근대성 또는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를 변화의 정상화”[Immanuel Wallerstein, After Liberalism, p. 102; 󰡔자유주의 이후󰡕, 111. 강조는 인용자.]로 꼽을 수 있다면, 절대적 의미의 혼돈이나 불확실성이라기보다는 경향적인 또는 통제된 불확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주체적인 개입은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개입, 요컨대 불확실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개입이어야 할 것이다. 학자들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또는 명백한 것으로 간주해왔던 우리의 지적 범주들이나 이론들에 대한 탈구축(deconstruction)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탈구축 작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2018년 현재의 우리에게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거니와 우리는 이 글에서 modernity라는 영어(또는 그에 상응하는 서양어들)의 번역어로 근대성대신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modernity가 한편으로 역사적 시대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지금 시대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역사적 시기들을 분류하고 시간성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서의 메타적 시간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modernity근대성으로도 현대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는 측면보다는 지금 시대메타적 시간성을 지칭하는 측면에 더 주목한다는 점에서 주로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아울러 필요할 경우에는 ()같은 표현을 병용하겠다.]라는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고 꼬인 물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20~30년 전에 이러한 이후의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의 포스트담론들(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등)의 형식으로 제기된 바 있다.[1980년대 말 ~ 90년대 초 이후 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난 문제점 및 그 한 가지 양상으로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에 대한 고찰로는 진태원, 포스트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민족문화연구󰡕 5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85, 2014년 겨울호를 각각 참조.그 당시에 이러한 포스트담론들은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포스트담론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유행이 끝난 것으로 나타난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담론은 사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고발이 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마땅히 이런 질문을 먼저 제기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포스트담론들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이라고 자처한 적이 있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새로운 시대(보통 탈현대(postmodernity)라 불리는)에 대한 담론이라고 내세운 적이 있는가? 거대 서사의 종말을 주장한 리오타르 자신만 해도 포스트모던을 새로운 시대 개념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가령 Jean-François Lyotard, La condition postmoderne, Éditions du Minuit, 1979; 이현복 옮김, 󰡔포스트모던적 조건󰡕, 서광사, 1992; “Réponse à la question: qu'est-ce que le postmoderne?”(1985), in Le Postmoderne expliqué aux enfants: Correspondance 1982~85, Éditions Galilée, 1988; 이현복 옮김,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의 무덤󰡕, 문예출판사, 1996을 각각 참조.] 더욱이 들뢰즈나 데리다, 푸코 또는 라캉 같이 흔히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사상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담론들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페의 경우도 1980년대 서유럽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을 위한 이론적 틀로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것이지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규정함으로써, 포스트 담론을 일종의 역사적 시대 범주로 규정한 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었다.[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1984), i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도서출판 터, 1990.] 사실 대개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및 현대성 담론의 옹호자들은 포스트 담론을 마르크스주의(및 현대성)대체하려는 담론이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새로 전개된 역사적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서 포스트담론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당화 담론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포스트담론들이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에서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담론 자체의 객관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기보다는 그 담론들을 그렇게 위치시킨 어떤 문제틀, 특히 1980년대 이후 영어권 (좌파) 학계의 문제틀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포스트 담론들이라는 것 자체가 영어권 학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1970년대 이후 미국 학계에서 프랑스 이론의 발명에 관한 지성사적 고찰로는 프랑수아 퀴세,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루이 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난장, 2012 참조.] 그리고 지난 20~30년 동안 국내의 포스트 담론에 관한 수용 및 논쟁은 미국 학계의 문제틀을 그대로 전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은 사실 (모방된) 상상의 산물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적 근대 이후의 우리에게 학문 내지 인식이란 주체적인 것이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외부 세력의 영향에 좌우되어 왔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한편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민족사관 또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민족문학)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부의 규범과 척도가 보편적인 틀로서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노력이 성숙하고 내재적인 비판과 교정의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외부로부터 밀어닥친 거대한 흐름(세계사적인 사회적 격변이면서 인식론적 변동의 흐름)에 속절없이 새로운 연구들로 대체되어 왔다. 이는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는 주체적 대응이라기보다는 외부의 변화에 대한 수동적인 적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여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서구인의 눈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권력과 지배에 봉사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타락한 서구적 이성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포스트 사조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반성으로 수용되기보다는 기존 논의를 대체할 체계로서, 80년대 말의 세계적 변화와 기존 이론들의 급격한 퇴조로 생겨난 공백을 차지할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유입으로 해서 80년대는 90년대와는 전혀 소통이 불가능한 또 다른 하나의 단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용규, 근대와 탈근대의 사이에서, 󰡔오늘의 문예비평󰡕 31, 1998, 128.] 따라서 우리가 객관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곧 사회적 구조나 규범 및 학문적인 제도와 인식론적 틀이 전반적인 변화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이 글에서 ()현대 및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하여 이후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 유사초월론

 

우선 내가 이 글에서 중심적으로 제기하려는 논점을 밝히면서 출발해보자. 나는 그것을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구로 집약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상대화하기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이제 지나간 어떤 것, 낡고 폐기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관점은 오히려 정반대다.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해야 하며, 또한 그 이론의 여러 측면들을 토론하고 비판하고 개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준거 및 이론화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와의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데리다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상속하기라고 부른 것과 가까운 과제를 요구한다. “마르크스 없이는 없다, 마르크스 없이는 어떤 장래도 없다. 마르크스의 기억, 마르크스의 유산 없이는, 어쨌든 어떤 마르크스, 그의 천재/정령(génie), 적어도 그의 정신들 중 하나에 대한 기억과 상속 없이는 어떠한 장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설 또는 오히려 우리가 택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plus d’un) 정신이 존재하며,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2014(수정 2), 41. 강조는 데리다.]


마찬가지로 나의 관점은 현대성을 지나간 시대로 간주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바깥에 서서 그것이 과거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것, 우리가 현재의 관점에서 이미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시대(‘고대중세처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성의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뒤에서 좀 더 상론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내에서만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고, 그것의 역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성 또는 오히려 메타 시간성이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Reinhard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Suhrkamp, 1979; 한철 옮김,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1998;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Suhrkamp, 2000 참조.] 현대성이 범세계적 현대성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관()국민적 현대성(영어로 표현하자면 global transnational modernity)으로 물질적(또는 현실적’)상징적상상적으로 전화된 우리의 동시대적 현대성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더 그렇다.[이점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Arjun Appadurai, “How Histories Make Geographies: Circulation and Context in a Global Perspective”, in The Future as Cultural Fact: Essays on the Global Condition, Verso, 2013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Verso, 2018 1부를 각각 참조.]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변적인 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대성으로서의 역사를 지니는 것이다. ()현대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뒤에서 좀 더 논의하겠지만, 이 명제를 지난 20여 년 간 국내 진보 학계 일각에서 제기해왔던 이른바 근대 극복의 과제’(백낙청, 하정일 등)와 동일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명제의 철학적 깊이에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 또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여러 가지 중 하나로 만들고, 따라서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을 각자의 주관적 입장에 맡겨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나는 데리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상속자들이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존재가 상속”[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앞의 책, 122-23. 강조는 데리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임의로 선택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물음은 매우 복합적인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의미에서의 이후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근거한다는 의미, 어떤 것을 뒤따른다는 의미, 다시 말해 (‘칸트 이후’, ‘헤겔 이후와 같이) X상징적 기원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이후에 관한 물음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뜻에서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를 묻는 것은 어떻게 그것들에게 상징적 기원의 자리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대 철학자들, 특히 데리다와 푸코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널리 인정되는 바와 같이 칸트의 초월론적(transzendental) 철학[‘transzendental’(또는 영어로는 ‘transcendental’)이라는 용어의 경우 국내 학계에 합의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최근 이 용어의 번역을 둘러싼 국내 칸트학계의 논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논란 여부와 관계없이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초월개념과의 구별을 위해서, 그리고 칸트의 철학적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더 적절한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이것은 국내 여러 필자들이 채택하는 번역어이기도 하다) 계속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a priori’선험적이라고 번역하겠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근()대성의 철학적 지평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게 초월론은 인식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선험적(a priori) 가능성”[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순수이성비판󰡕, 아카넷, 2006, 132(A56/B80).]의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적 탐구 양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초월론적 탐구 절차에 의거하여 칸트는, 주체 이전에, 그리고 주체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와 그 근거를 탐구하는 전통적인 철학에 대하여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수행하게 된다. 곧 이제 사물들의 질서는 초월론적 주관성에 그 근거를 두게 된다. 현대철학자들 가운데 칸트의 초월론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재개한 사람이 바로 에드문트 후설이며, 후설 이후의 현대 유럽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칸트-후설 식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설정을 변형하고 또 넘어서기 위해 고투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초월론적 주관성에 기반을 둔 칸트 및 후설의 철학을 상호주관성의 철학으로 변형한 것이 그 한 가지 사례라면, 푸코나 들뢰즈 또는 데리다 같이 흔히 니체주의 철학자들로 간주되는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역시 그 나름대로 일종의 초월론 철학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현대 프랑스철학을 니체주의 철학으로 (그것도 칸트나 헤겔 철학과 대립하는 비합리주의 철학이라는 의미에서) 간주하는 것은 상당히 경솔한 생각이다. 물론 이는 현대 프랑스철학에 미친 니체의 영향을 부인하자는 의미는 아니며, 그것을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현대 프랑스철학은 한편으로 헤겔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이점에 관해서는 Judith Butler, Subjects of Desire: Hegelian Reflections in Twentieth-Century Fra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19871) 참조),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논하지 않고 현대 프랑스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Dominique Janicaud, Heidegger en France, tome 1: récit, Hachette Littératures, 2001; Heidegger en France, tome 2: entretiens, Hachette Littératures, 2001 참조). 최근에는 스피노자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진 바 있다. Knox Peden, Spinoza Contra Phenomenology: French Rationalism from Cavaillès to Deleuz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참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지적으로 한정하겠다.]


하지만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는 데리다가 추구한 초월론 철학은 매우 특이한 형태의 것이며, 데리다 자신은 이를 유사초월론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칸트 이후의 초월론 철학이 가능성의 (선험적) 조건을 탐구하는 것에 비해, 유사초월론은 가능성의 조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데리다의 유사초월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국내의 논의는, 진태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철학논집󰡕 53,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8 참조.]

 

초월론적인 것의 문제는 '유사'(quasi-)라는 말에 의해 변형되어 왔으며, 따라서 만약 초월론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이는 단순히 그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비록 고전적 의미의 초월론성이 나에게 여전히 아주 흥미롭지만 말이다). ...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규칙적으로, 그리고 아주 상이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인 것으로 정의해야 할 필연성으로 인도되었다. 이는 내가 무효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분명 가능성의 기능을 불가능성의 기능으로 정의하는 것, 곧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초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정통적인 입장과 매우 어긋나는 태도이며, 내가 아포리아의 숙명성이라는 문제로 되돌아갈 때마다 항상 다시 출현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의다.[Jacques Derrida, “Remarks on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in Chantal Mouffe ed.,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LondonNew York, Routledge, 1996, pp. 83~84.]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사라는 접두어가 붙은 유사초월론의 핵심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칸트에서 후설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위계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탈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칸트 이후의 고전적인 초월론 철학에서는 늘 원리에 해당하는 초월론적인 것은 불변적이고 초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경험적인 것은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에 입각하여 비로소 성립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측정되고 평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을 주관성 내지 주체성의 위치에 놓은 것이 고유한 의미에서 근()대성의 철학이다. 반면 데리다가 유사초월론을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이라고 규정한 것은,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경험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내지는 원리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는 경험적인 것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데리다는 초기 저작인 󰡔기하학의 기원서론󰡕에서 후설이 기하학의 성립 조건으로 간주한 이념적인 언어는 언어적 신체”(Sprachleib) 바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1967)에서는 로고스중심주의가 특권화하는 음성 언어는 기록(écriture)의 기입을 전제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초월론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정의상 진리 및 의미의 가능 조건인 초월론적인 근거가 경험적인 것의 우연성, 그것의 역사성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은 경험적인 것을 성립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원리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경험적인 것의 역사성에 맡겨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역사초월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내재적으로 역사성을 지니는 것, 역사성에 종속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쉽게 그 바깥으로, 그 이후로 나갈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존재와 행위, 사고 양식의 구성적 조건인 것으로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특히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실천하고 수용해온 바와 같은)과 거리를 두고 그것들의 비판적 전화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요컨대 마르크스주의 이후, ()현대 이후의 시간을 사고하려고 한다면, 유사초월론의 문제설정에 의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데리다 철학에 의거하는 것은 다양한 방면에서 비판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진보적인 민중운동 계열의 지식인들, 또는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자들, 아니면 유럽과 비유럽의 지정학적/식민적 차이가 사상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급진적인 중남미의 탈식민 이론가들(및 그 지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판가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데리다 사상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또한 훨씬 심오하고 풍부하다. 이 글은 그의 사상의 풍부함의 단편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심사위원 C는 내가 데리다와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등과 같이 지적 배경이 상이한 이론가들을 한데 논의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바 있는데, 이 요청에 대해서는 특별히 답변할 만한 것이 없고, 다만 내가 꽤 오래전부터 데리다의 철학, 특히 그의 유사초월론이 역사학의 철학적 토대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 한 가지 답변이 될 것이다. 실은 탈구축의 철학과 역사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중요한 연구들이 나와 있다. 특히 Robert Young, White Mythology: Writing History and the West, Routledge, 2004(2nd Edition); 김용규 옮김, 󰡔백색신화󰡕,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참조.

 


III. 현대성의 역사()

 

이처럼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상대화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것은, 그것들에게 내재적인 역사성을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상당히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보였을 것이므로, 몇 가지 이론적 사례들을 통해 내 논점을 조금 더 구체화해보겠다.

 

1. 코젤렉과 현대의 시간성

 

우선 현대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현대라는 개념을 무언가 불변적인 어떤 내용을 지닌 것으로 또는 적어도 역사적 변화과정 바깥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현대라는 개념은 역사 초월적인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따라서 18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치 동일한 현대성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현대라는 동일한 실체(주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라는 것의 내용은 변할지 몰라도 실체로서의 현대 그 자체(또는 현대라는 그 개념 자체)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동일한 불변적인 기체로서 존립하는 셈이다. 이는 마치 한국이라는(또는 한민족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실체가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고 존속한다고 보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이다.[역으로 민족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이들은 (‘국민도 아니고) ‘민족19세기에 발명되었다는 식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맞세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생각은 동전의 양 면에 불과하다.하지만 현대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몇 가지 계기를 통해 성립되었을 뿐더러, 그 표준적인 용법이 확립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그 개념은 늘 역사적 과정 자체와 연동하여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현대라는 개념의 역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코젤렉은 그의 대표작 󰡔지나간 미래󰡕에서 현대라는 개념의 형성사를 세심하게 추적한 바 있다.[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op. cit.; 󰡔지나간 미래󰡕, 앞의 책.] 이 유명한 저작, 그리고 역시 유명한 그의 현대 개념에 대한 분석에 관해 길게 다루기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세 가지 논점만 추려보겠다.


첫째, 코젤렉은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라는 개념(그에 따르면 새로운 시대’(neue Zeit)와 구별되는 신조어로서 현대’(Neuzeit)라는 개념은 1870년 이후에 등장했다[Ibid., p. 302; 같은 책, 336.])이 형성되는 데는 대략 1500년에서 1800년까지 300년의 기간 동안 세 가지 계기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대는 문턱을 의미했으며, 그 다음 신기원의 뜻으로 쓰였고, 마지막으로 기간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 문턱이라는 것은 지난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시대가 새롭다는 것을 뜻하며, 라틴어 모데르누스(modernus)의 원래 의미가 여기에 가깝다.[모데르누스의 기원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장영태 옮김, 근대성, 그 문학적 전통과 오늘날의 의식, 󰡔도전으로서의 문학사󰡕, 문학과 지성사, 1983 참조.] 신기원으로서의 ()현대는 ()현대가 이전 시대와 다른 새로운 질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이러한 관점은 중세와 비교하여 ()현대의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때의 새로움은 상대적인 의미의 새로움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더 새로운 시대, 그리고 최신의 시대’(Neueste Zeit)[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0; 󰡔지나간 미래󰡕, 356.]라는 용어에 이르면서 비로소 기간으로서의 현대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프랑스혁명을 경과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이 용어를 통해 현대라는 것은 회고적 기록에 그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간을 열어주는 동시대적 신기원 개념이 되었다.”[Ibid.; 357.]


둘째, 코젤렉은 현대 개념의 형성에서 역사의 시간화[Ibid., p. 336; 같은 책, 374.](Verzeitlichung der Geschichte)라고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의 시간화라는 것은 코젤렉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시간의 흐름 덕분에 오늘의 역사가 변하며, 또한 벌어지는 간격과 함께 과거라는 것(Vergangenheit)도 변한다는 뜻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는 그때그때의 진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현대는 과거 전체에 세계사적 질을 준다. 그와 함께 그때그때의 역사의 새로움은 새로운 것으로 성찰되면서 진보적으로 전체 역사를 요구했다. 역사를 세계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 되었다.[Ibid., p. 327; 같은 책, 364.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코젤렉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과거의 역사(물론 서양에서의 역사다)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범례”[Ibid., p. 40; 같은 책, 45.](Exempla für das Leben)로서의 역사였다. 곧 역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을 본받을 수 있고 예전의 오류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대한 경험들의 저수조와 같은 것이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도 시간의 질 자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한 생각이다. 중세의 역사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기대에 따라 규정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한편으로 도래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계속 지연되는 미래의 종말과 그에 뒤따르는 구원의 지평에 입각하여 현재가 인식된다. 이러한 역사들 속에서 역사적 시간은 자체의 고유한 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 반면 현대라는 개념의 성립과 함께 역사는 독자적인 시간성을 획득하며, 이에 따라 역사를 상이한 시대들로 분류할 수 있는 시간적 지평이 형성된다. 또한 열린 미래로의 변화라는 기본 경험”[Ibid., p. 337; 같은 책, 376. 강조는 인용자.] 위에서 역사적 시간은 가속적인 것으로서 경험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는 역사적 시기들 중 하나(고대, 중세, 근대 ...)이기 이전에 역사적 시기구분 자체가 성립 가능하게 되는 초월론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준적인 현대성을 유럽적인 현대성으로 상대화하는 작업은 단순치 않다. 현대성 자체가 시기구분 자체, 따라서 역사적 시간성의 초월론적 근거라면, 현대를 유럽적인 것으로 상대화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를 전제한 가운데 그 내부에서 그것을 상대화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 자체를 유럽적인 것으로 거부하고, 그 대신 새로운 초월론, 새로운 보편을 구성하는 것이거나 할 것이다. 그것은 유럽적인 조건 속에서 형성된 현대성보다 더 포괄적이거나 더 상위의 역사성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자 시간성의 새로운 척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 후자의 작업이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질문을 해보자. 만약 지금까지의 초월론적인 현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현대성, 가령 동양 또는 동아시아적인 ()현대성을 새로운 초월론적 기준으로 설정한다면, 그것은 서구 및 다른 세계들도 포괄할 수 있는 초월론적 보편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에만 타당한,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 다른 문화들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보편인가?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당연히 유럽적이거나 서구적 보편성보다 더 탁월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것은 탁월성은 어떤 기준에 따라 측정되는가? 또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문명의 충돌론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복수의 현대성이나 대안적 현대성을 주장하는 이들, 또는 동아시아는 몇시인가?”라고 묻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가?[미야지마 히로시배항섭 엮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너머북스, 2015 참조.]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사례로 김상준의 저작을 살펴보기로 하자.[이 글이 처음 발표된 학술대회에서 윤해동 교수는 나의 발표문에 대해 김상준이나 수잔 벅모스 같은 최신 연구 성과를 참조하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논평한 바 있다. 윤 교수의 논평 덕분에 필자는 김상준의 저작을 처음 읽게 되었음을 감사의 뜻과 함께 밝혀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독서를 통해 내 논지의 한계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그 타당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음도 밝혀둔다. 따라서 이하의 세 문단의 논의는 윤 교수의 논평에 대한 답변으로 생각해도 좋다.] 김상준의 저작은 풍부한 논의와 독창적인 문제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저작이다. 필자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중층근대성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중층근대성은 막스 베버 이래 표준화된 유럽중심적 근대성 개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다중근대성’(아이젠슈타트와 같은 비교역사사회학자들이 제시한)이나 대안근대성’(폴 길로이 같은 포스트식민주의 문화이론가들이 제안한)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설적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중층근대성은 그리스, 로마, 중근동, 유럽, 인도, 중국과 같은 인류의 고등 문명들을 가리키는 원형근대성17~18세기 이후 시작된 식민-피식민 근대성’,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지구근대성3가지 층위로 이루어진 근대성의 역사적 중층 구성을 가리킨다. 김상준에 따르면 이렇게 볼 경우에만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개념들만이 아니라 월러스틴 식의 세계체계론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월러스틴은 16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등장했다고 간주하는데, 이는 근()대성의 시간적 범위만이 아니라 공간적 범위 자체도 유럽 중심적으로 축소할 뿐더러 인류 역사가 크게 변화했던 굴곡점의 시발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속의 통섭 전도라는 계기였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아카넷, 2016, 74.]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고 근()대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역사로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 입각하여 그는 동아시아 유교문명과 조선 후기 유교의 전개과정을 풍부한 논의들을 통해 고찰하고 있는데, 이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일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거니와 이 글의 논점에서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김상준의 입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역사학보󰡕 214, 2012 및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오늘의 동양사상󰡕 23, 2012를 참조.여기에서는 그의 근대성 개념에 관해 두어 가지만 언급해두겠다. 우선 김상준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의도와 달리 매우 목적론적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근()대성 개념의 시간적 범위를 인류의 초기 고등문명의 전개 시기로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근대문명은 이렇듯 근대성의 세 단계의 중층의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형태론적 동형(同型)이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43면 및 그 외 여러 곳.]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고등문명은 예외 없이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는 이러한 입론만이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것은 근()대라는 것을 세계사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대성에 대하여 더욱 목적론적인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근()대를 좋은 것, 바람직한 것으로 규범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월러스틴이 만물의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을 본성으로 하는 자본주의적인 근()대 체계가 필연적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성립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면서 중국, 인도, 아랍 세계와 다른 지역들이 자본주의를 향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 [자본주의적 근대의-인용자] 독소에 훨씬 면역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 그 점이 그들의 역사적 공적이라고 생각한다”[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앞의 책, 253.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분석에 관한 좋은 연구로는 유재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분석과 자본주의, 󰡔코기토󰡕 81,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 참조.]고 지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근대 또는 현대를 이해하는 더 유연하면서 설득력 있는 시각이다.


더 나아가 내포성의 측면에서도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그의 근대성 개념이 새로운 것이라고 자처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근()대성 개념을 단순히 외연적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내포적으로도 새로운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곧 그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질적으로 또는 가치상으로 새로운 요소를 제시할 경우에만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새로운 내포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가 말하는 유교적 안티노미가 과연 근()대성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한 요소인지, 또는 온 나라 양반되기나 동학 사상이 유럽적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질적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따라서 왜 온 나라가 평등한 이 되려고 하지 않고 양반이 되려고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주자학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민병희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앞의 글, 400.오히려 그가 하는 작업은 유교 속에서 권력 견제의 자유주의적 전통, 그리고 주권의 실체를 민() 속에서 찾는 인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싹을 찾”[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580. 강조는 원문.]는 작업, 따라서 서구 근()대성의 요소들, 적어도 그 들이 유교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김상준의 작업이 여러 측면에서 오히려 서양중심주의(또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내화하고 있다는 이용주의 비평도 새겨볼 만하다.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앞의 글 참조.]


나는 이들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제를 제기했으며, 현대성 자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이 문제를 더 다루기 이전에 우선 다시 코젤렉의 논의로 돌아가 보면, 셋째, 코젤렉에 따르면 역사의 시간화가 이루어진 결과 동시적인 역사들의 비동시성”[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3; 󰡔지나간 미래󰡕, 360.또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Ibid., p. 324; 같은 책, 362, 374.]이라는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리상의 발견과 더불어 공간적으로 아주 상이하면서도 인접해 있는 문화 단계를 관찰할 수 있었고, 이 단계들은 공시적 비교를 통해 통시적으로 정렬되었다. ... 이제 경험되기 시작한 세계사는 비교를 통해 정리되었고, 이것은 점점 더 멀어지는 목표를 향한 진보의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몇몇 민족들이나 국가들, 대륙들, 학문들, 신분들이나 계급들이 다른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진보적 비교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18세기 이후에는 가속화나 따라잡기, 능가하기가 요구되었다.[Ibid., p. 323; 같은 책, 360-61.]

 

바로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의거하여 마르크스 자신도 초기 저작에서 선진적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의 기준에 따라 독일의 후진성을 평가한 바 있으며, ‘혁명’, ‘발전’, ‘진보같은 개념들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젤렉은 암묵적으로 언급하지만, 제국주의와 세계의 식민지 분할과 더불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은 (포스트) 식민적 현대성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진적 모델로서의 유럽 또는 서양과 이를 표준으로 삼아 현대화를 국가 및 문명의 목표로 설정하는 (포스트) 식민적 비서양 사이의 문명적 위계 구조는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2.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와 현대성의 탈식민화

 

코젤렉의 연구는 오늘날 우리에게 표준화된 현대 및 그것의 고유한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훌륭하게 밝혀준다. 하지만 그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역사적 시간성 자체는 불변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곧 이것은 일종의 초월론적인 것으로서 구체적인 경험적 역사 서술을 지도하고 개별적인 역사적 시간들을 측정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원리로 작용하는 것인가?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유사초월론에 따른다면, 이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시간성이라는 것 자체도 역사성을 지닌다고 말해야 하며, 또 내 생각에는 이후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입증해준다.[이는 코젤렉의 연구가 고전적인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평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미래󰡕에도 그렇거니와 그의 후기 저작에는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대립(또는 위계적 종속)을 넘어 다수의 시간성을 사유할 수 있는 계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Reinhart Koselleck, “Zeitschichten”, in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op. cit. 이 문제에 관한 도움이 될 만한 논의로는 특히 Helge Jordheim, “Against Periodization: Koselleck's Theory of Multiple Temporalities”, History and Theory, no. 51, 2012 참조. 반면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op. cit. 1부 참조.] 이점을 더 분명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도 출신의 서발턴 역사학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20001); 󰡔유럽을 지방화하기󰡕, 김택현안준범 옮김, 그린비, 2015.] 이 책은 오늘날 다른 어떤 포스트식민주의나 서발턴 역사학의 업적보다 이 문제에 관한 정교하고 풍부한 성찰을 담고 있다.[수잔 벅모스의 헤겔과 아이티혁명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기는 해도 이 책의 인식론적 문제제기의 깊이에 견주기 어렵다. 수잔 벅모스, 김성호 옮김, 󰡔헤겔, 아이티, 보편사󰡕, 문학동네, 2012 참조.] 차크라바르티는 이 책의 2007년판 서문에서 자신의 논점을 두 가지 테제로 집약한다. 첫 번째 테제는 유럽은 보편적 모델이 아니며, 유럽은 비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따라 잡아야 할 모델이 아니다.”[디페시 차크라바르티, 김택현안준범 옮김, 앞의 책, 16.] 그리고 두 번째 테제는 보편주의적 사상은 항상 이미 특수한 역사들에 의해 수정되고 번역된다.


첫 번째 테제 자체에는 몇 가지 상이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이것은 저자가 역사주의라고 부르는 것, 곧 역사를 발터 벤야민이 명명한 바 텅 빈 동질적 시간이라는 보편적 시간성의 틀 안에서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반대하여 역사는 따라잡기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또는 서구는 다른 모든 나라들이 목표로 삼아 모방하고 따라 잡아야 할 보편적 모델,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초월론적 기의(signifié transcendantal)가 아니다. 둘째, 저자는 그 이유로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적 현대성이라는 것 자체가 동시에 그 어떤 보편타당성도 주장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수한 지적역사적 전통들에서 나왔다는 것”[같은 책, 17.]을 주장한다. 보편성 자체에 이미 특수성들의 흔적이 기입되어 있으며, 특수한 기원들에서 유래한 유럽적 현대성이 보편성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과정은 그러한 흔적을 삭제하거나 은폐하는 과정이었다는 논점이다. 따라서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럽적 보편성의 성립과정에 대한 비판적 계보학의 요청이다.


차크라바르티의 진정한 독창성은 두 번째 테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테제라는 뜻은 아니다). 두 번째 테제는 현대성의 문제를 번역의 문제로 제시한다. 이는 한편으로 순수한 보편성, 순수한 현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보편성으로서의 현대성은 차이들로 번역됨으로써 실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의 현대성 또는 이성을 복수화할 것[같은 책, 18.]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이는 복수의 근대성 내지 현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뒤에서 국내외의 논의를 살펴보겠지만, 대개 다수의 근대성을 독단적으로 병치하거나 경험적으로 비교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유럽의 사유를 거부하거나 폐기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지적 실존을 크게 빚지고 있는 사유체[유럽적 현대성-인용자]와 관련을 맺는 것은 릴라 간디가 적절하게 ”“포스트식민적인 복수라고 불렀던 것을 그것에 가하는 문제일 수 없다. 우리가 비서구 민족의 정치적 현대성 경험들을 끝까지 사유하도록 돕는 데 있어서 유럽의 사유는 필요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데, 그래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어떻게 이 사유가이제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것이주변들로부터 그리고 주변들을 위해 쇄신될 수 있겠는지를 조사하는 과제가 된다.[같은 책, 70.]

 

여기서 차크라바르티는 유럽적인 현대성을 필수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20세기 후반의) 비서구인들에게 외재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 사회조직, 법질서, 생활양식, 학문적인 규범과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유럽적인 현대성은 비서구인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것은 동시에 부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유럽적 현대성의 부적합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그것은 비서구사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기입되어 왔지만, 항상 동시에 변용과 괴리, 편차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유럽 내지 서구의 자본주의는 인도나 동아시아의 자본주의와 동일하지 않으며, 전자의 민주주의와 후자의 민주주의, 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과 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 역시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편차와 변형, 괴리를 낳는다. 이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현대성의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역사적 이행의 사회학적 문제로만(유럽사에서 유명한 이행 논쟁처럼) 간주될 수 없으며, 번역의 문제로도 간주될 수 있다[같은 책, 72.]고 덧붙인다. 이것이 차크라바르티가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의 첫 번째 의미다.


다른 한편 이러한 번역의 관계는 원본과 모사본의 관계만은 아니다. 또는 번역에는 두 가지 상이한 모델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 보편적인 매개를 통한 번역이다. 그것은 가령 힌디어의 pani와 영어의 water는 모두 H2O에 의해 매개될 수 있다[같은 책, 172.]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번역에 이러한 모델만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떤 역사, 가령 이런저런 국민적인 역사, 지역적인 역사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사의 매개가 항상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서 그 작은 역사들은 초월론적인 보편사에 인식론적으로 종속될 것이며, 역으로 이러한 보편사는 번역 가능성을 위해 항상 불변적인 것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차크라바르티는 두 번째의 번역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매개항이 없는”, “문화 횡단적이고 범주 횡단적인 번역 모델[같은 책, 186.]이다. 그는 18세기 벵골의 이슬람 교도들이 힌두교의 신들을 이슬람 신성의 표현으로 번역한 것의 예를 든다(우리의 경우라면 가령 서양의 god천주(天主)’하느님으로 옮긴 것이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번역의 문제를 농민 봉기의 문제와 관련시킨다.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 연구에 나오는 농민봉기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봉기에 나섰던 한 농민은 자기 자신의 행위 능력을 스스로 부정했다. 곧 그는 내가 반란에 나선 것은 [힌두교 신인-인용자]타쿠르가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라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한다. 또한 식민지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농민들은 카누 마지와 시도 마지[농민봉기 당시의 지도자들-인용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타쿠르가 몸소 싸울 것이다[같은 책, 219.]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현대적인 종교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따라서 에릭 홉스봄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농민봉기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적인 정치적 반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성은 모든 면에서 훌(hool, 반란)의 중심이었다고 말하는 구하를 인용하면서 차크라바르티는 이것이야말로 식민지 인도의 현대성의 고유한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것은 보편적이라고 하는 유럽적인 현대성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하지만 인도 식민지의 현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번역되어야 하는 서발턴 역사의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반면 김상준은 유럽 근()대성과 비유럽 근()대성의 관계를 전자가 일종의 화폐 기능을 선점하면서, 지구상의 여타 비유럽문명들에 대한 일종의 지구적 교환 가능성의 매체 역할”(앞의 책, 41)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이러한 화폐의 비유는 번역의 관계와 달리 항상 내부의 표준화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번역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보편성이라는 것은 실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자리점유자”(placeholder)로 나타난다.

 

나는 보편들이라는 관념 그 자체에 반대한 게 아니라, 보편이란 것이 대단히 불안정한 형상이며 현대성의 질문들을 통해 사유하려는 우리의 시도에서 필수적인 자리점유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특수가 보편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리를 빼앗았을 때, 보편의 윤곽을 얼핏 엿보았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은 결코 보편적인 것 그 자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권리민주주의같은 단어의 음가와 뒤얽힌 것들은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거칠게나마) 번역될 수 있지만 번역에 저항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기도 했던 개념-이미지들이었기 때문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 xiii; 󰡔유럽을 지방화하기󰡕, 18. 번역은 약간 수정.]

 

이런 의미에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라는 차크라바르티의 문제의식의 근저에는 (그가 이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유럽의 현대성의 전개과정을 통해 비서구 사회들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유럽의 현대성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생각, 그것 자체가 자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성이란 유럽적인 기원을 갖고 있고 또한 유럽적인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보편적인 역사적 시간성이 다른 나라들로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유럽적 현대성과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유럽적 현대성 자체가 그러한 비유럽적 현대성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용되는 어떤 것이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의 유럽연합의 건설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온 것은 유럽연합 내부의 이주자들, 더 나아가 이제는 유럽 각 국가들의 고유한 요소들이 된 비유럽 이주자 국민들의 문제였다.[이 점에 관해서는 Sandro Mezzadra, “Citizen and Subject: A Postcolonial Constitution for the European Union”, Situations, vol. 1, no. 2, 2006; Katarina Kinnvall, “The Postcolonial has Moved into Europe: Bordering, Security and Ethno-Cultural Belonging”, Journal of Common Market Studies, vol. 54, no. 1, 2016을 각각 참조.] 오늘날의 유럽은 백인들()의 유럽이 아니라, 과거 그들의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 문화를 지닌 이주자들의 유럽이다. 지난 30년 동안 유럽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이 되어온 이주자 문제, 그리고 그와 결부된 포퓰리즘의 문제는 사실 지난 세기들(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의 유럽을 진정한 유럽적 정체성으로 고수하고 강화하면서 요새로서의 유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에 맞서 다문화적인 유럽, 더 나아가 접경지대”(borderland)로서의 유럽,[Etienne Balibar, “Europe comme Borderland”, in Europe, constitution, frontière, Bords de l’eau, 2004; “Europe: Provincial, Common, Universal”, Annali di scienze religiose, Turnhout, no. 10, 2017을 각각 참조.] 곧 그 자체의 특정한 정체성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문명과 문화, 인종과 민족이 넘나들고 교류하고 서로 변용하고 변용되는 번역의 장으로서의 유럽으로 구성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갈등의 표현이다. 따라서 탈식민주의 문제는 비유럽 국가들 및 사회에만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유럽 연합 자체의 구성적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폭발했던 그리스 채무위기는 오늘날의 유럽 연합 내에 중심-주변의 위계 구조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내부 식민지를 전제로 존속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 문제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Ranabir Samaddar, A Post-Colonial Enquiry into Europe’s Debt and Migration Crisis, Springer, 2016을 참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와 유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현대적인가? 첨단 테크놀로지와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하이퍼-현대성(hyper-modernity)의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더니티의 본산으로서의 유럽인가? 그것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체계론의 어법으로 이야기한다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미국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두 개의 중심부를 구성할 것이고, 유럽은 점점 더 중심부에서 밀려나 반주변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유럽은 더욱 더 신자유주의적 요새로 변모할 것이며 유럽 내부의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폭력의 현상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이제 동아시아의 시대, 더 나아가 동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난 200년 남짓한 예외적인 서구 지배의 역사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동양이 세계의 주도적인 문명 질서로 군림할 때가 도래했다고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이점에 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좀 더 언급하기로 하자.


차크라바르티의 논의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같이 이후의 시간성을 묻고자 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보편이라는 것을 실체가 아닌 자리점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럽적 현대성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서구 현대성[이 점에 관한 좋은 토론은 강정인,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아카넷, 2004 2장 참조.]이라는 것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러한 자리점유자는 여전히 서구적인 것에, 서구적 현대성에 속하는 것에게만 배정되어 있다. 곧 보편성은 서구적인 것이며, 비서구적인 것은 기껏해야 그러한 보편성을 변용하거나 굴절하는, 그것의 일관된 관철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들로 지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서구적 현대성은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는 상실했으되, 실질적으로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리점유자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말하면, 이는 차크라바르티가 서구적 보편성에 대하여 그 기원의 특수성은 밝혔지만 그것 자체를 충분히 역사화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잘못인가? 그의 인식론적 한계를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서구 보편성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비판은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편성(가령 중국적 보편성이나 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동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보편성의 자리 점유자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차이들의 번역으로서의 보편성 또는 차이들의 보편성[Etienne Balibar, Des universels, Galilée, 2016, p. 155. 강조는 원문.]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의 표현인가? 󰡔유럽을 지방화하기󰡕 자체만으로는 분명한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나는 그의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결론에서 더 논의해보겠다.[심사위원 A데리다의 또 다른 문제의식은 왜 그토록 유럽이든 아시아든 보편(초월)을 실체화해 왔을까의 물음이라 생각됨. 즉 왜 실체적 보편이 성립 불가능함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깨달았음에도 보편을 항시 실체적으로 사유하고야 말까? 그것을 탈구축한 끝에도 새로운 모델에 대한 갈망이 남을까? 등의 물음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의 문제의식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은 여러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인데, 두 가지 정도만 지적해두겠다. 첫째, 이 질문은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을 보편과 특수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데리다가 옹호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이는 그가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비판또는 권력 비판의 문제설정에 의거한) 일종의 가상이나 허구의 문제라고 사고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는 특수한 어떤 것이 권력이나 지배 또는 억압 같은 것에 입각하여 자신을 부당하게도 보편이라고 참칭하는 것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보편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은 니체 이후 현대 유럽철학, 특히 데리다를 포함한 프랑스철학의 요소 중 하나이며, 데리다에게 이는 모든 공동체 또는 모든 동일성의 구성에서 역설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면서 배제되어 있는 이질적 타자(‘구성적 외부’)의 계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데리다가 문화상대주의와 다른 것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의 유명한 레비 스트로스 독해에서 잘 드러나듯이, 각각의 고유한 문화 또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동일성/정체성 자체가 항상 이미 보편에 의해 매개되거나 보편의 기입을 전제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보편의 매개를 전제하지 않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보편에 관한 데리다의 생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너무 자주 오해되곤 하지만 데리다에게 보편은 그 자체로 나쁜 어떤 것, 피하거나 무너뜨려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가령 󰡔법의 힘󰡕에서 보편의 계기를 나타내는 법과 독특성’(singularity)의 계기를 나타내는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좋은 것도 아니다.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정의는 법을 초과하고 또한 법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정의라는 것이 그 자체로 고립될 경우에는 항상 악이나 최악에 더 가까운 것이 되고말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협상해야하는 관계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59~60). 더 나아가 데리다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메시아주의들로 환원될 수 없는 메시아적 구조또는 메시아적인 것을 약속의 보편적 구조 및 장래에 대한, 도래에 대한 기대의 보편적 구조, 그리고 이러한 도래에 대한 기대가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86)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보편적이고, 보편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혁명적인 요구”(세계화, 평화, 범세계적인 정치, 제롬 벵데 엮음, 이선희주재형 옮김, 󰡔가치의 장래󰡕, 문학과지성사, 2008, 215)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데, 이때의 보편, 진정으로 혁명적인 보편은 정의로서의 사건을 기대하면서 개방되어 있는환대, “자신의 보편성을 돌보며 감시하는환대의 보편성이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24. 강조는 원문). 따라서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협상”(negotiations)의 문제(하지만 각각의 보편들이 보편인 만큼, 그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메타 보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아포리아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이며, 그 역에 해당하는 것은 차이들 사이의 번역 과정의 문제다. 참고로 데리다 논문인터뷰 모음집의 영역본 제목이 바로 󰡔협상󰡕이다. Jacques Derrida, Negotiations: Interventions and Interviews, 1971-2001, ed. & trans., Elisabeth Rottenberg,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이다.]

 

3. 한국에서의 ()현대성 논의

 

이런 관점에 비춰보면, ‘압축적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이나 환원 근대같은 개념들은 근()대성의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한 문제설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장경섭, 󰡔가족생애정치경제: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 창비, 2009; 개발국가, 복지국가, 위험사회: 한국의 개발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 󰡔한국사회정책󰡕, 183, 2011; 김덕영, 󰡔환원근대󰡕, , 2015.] 이러한 개념들은 한편으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지닌 굴절되고 왜곡된 측면들을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 저변에는 서구적인 현대성을 보편적인 현대성의 본질로, 더 나아가 초월론적인 준거로 간주하는 관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경섭이나 김덕영은 한국 현대 사회가 지난 40~50여 년 동안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합리화 내지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이룩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것이 복합적 위험사회의 성격을 띠게 만들거나 민주적 정권 교체(김대중, 노무현) 이후에도 여전히 국가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이중적 환원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장경섭이 자신의 분석에서 동원하는 위험사회’, ‘성찰적 근()대화같은 개념들은 울리히 벡이나 앤서니 기든스 등이 1980년대 말 ~ 1990년대에 고안해낸 것들이며 그의 작업에서는 이 개념들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검토나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김덕영 역시 베버의 근대화 및 합리화 개념, 그리고 짐멜의 사회분화 및 개인화 개념을 현대성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이론적 틀로 전제한 가운데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분석이 한국 사회의 현대화 과정을 분석하는 데 경험적 유용성을 지닐 수 있고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현대성 개념 자체를 개조하거나 탈구축해야 할 이론적철학적 문제의식에는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장경섭의 압축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홍찬숙, 압축적 근대성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독일과 한국의 근대화에서 나타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이정덕 엮음, 󰡔한국의 압축근대 생활세계: 압축근대성 개념과 압축적 경험󰡕, 지식과 교양, 2017을 참조하고, 김덕영의 환원 근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정태석, 근대에 대한 환원주의적 비판?, 󰡔내일을 여는 역사󰡕 56, 2014년 가을호 및 환원 근대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마음의 사회학에 입각하여 생존주의 근대성’(survivalist modernity)의 틀에서 한국 현대사를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김홍중, 생존주의, 사회적 가치, 그리고 죽음의 문제, 󰡔사회사상과 문화󰡕 204, 2017 참조.]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성에 관한 토론에서도 서구적인 근()대성은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근()대성이라는 생각이 견지되어 왔다. 가령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의 편집자들은 민족주의 역사 서술의 극복을 위한 발판으로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면서도 여전히 근대성은 기원과 속성상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서유럽적인 현상이다[신기욱마이클 로빈슨,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도면회 옮김, 삼인, 2006, 49.]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서구적 근()대성(그것도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어떤 근()대성)을 불변적인 초월론적 준거로 삼는 것은 아닌가? 마찬가지로 정태헌은 식민지 근대화론 및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비판적 토론에서 식민지의 왜곡되고 불구적인 근대성을 비판하기 위해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를 구별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에서는 자본주의 제도 및 합리성이 도입되는 반면 국민국가 수립이 저지되고 본국인에 비하여 식민지인들이 구조적인 차별과 무시의 대상이 되며 식민지 자본가의 부패가 심화된다는 논거를 통해 식민지 근대의 왜곡된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있다.[정태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근대주의 비판과 평화공존의 역사학 모색󰡕, 선인, 2007, 42면 이하.] 그러면서도 그는 원형 근()대로서의 유럽적 근()대성이 항상 종속적 하위 체계로서 식민지적 근대를 기반으로 하고”[같은 책, 52.]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단순히 원형 근대를 회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의 지양은 세계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을 촉구하고 근대의 원형 회복 차원을 넘어 근대의 지양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피력하고 있지만,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의 비대칭적 이원 구도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는 막연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 내지 난점은 지난 20여 년 간 국내 학계에서 논의된 근대 극복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탈식민주의 문제설정의 영향 아래 다양한 형태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에 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 학계에서 다중근대(multiple modernities)의 문제설정이 주로 사회학자를 비롯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대륙별, 지역별, 국가별 비교 사회문화 연구의 형태로 전개된 데 비해,[이는 특히 1980년대부터 제기된 복수의 근대성의 주창자가 근대화론의 주요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아이젠슈타트였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S. N. Eisenstadt, “Multiple Modernities”, Daedalus, vol. 129, no. 1, 2000 Gerhard Preyer & Michael Sussman eds., Varieties of Multiple Modernities: New Research Design, Brill Academic Publisher, 2015를 각각 참조. 이러한 의미의 복수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특히 Volker H. Schmidt, “Multiple Modernities or Varieties of Modernity?”, Current Sociology, vol. 54, no. 1, 2006을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전유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 논의를 제출했던 필자들이 하정일과 백낙청인 것으로 보인다.[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비평사, 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소명, 2000; 󰡔탈식민의 미학󰡕, 소명, 2008; 󰡔탈근대주의를 넘어서: 탈식민의 미학 2󰡕, 역락, 2012; 고명철, 한국문학의 복수의 근대성’, 아시아적 타자의 새 발견, 󰡔비평문학󰡕 38, 2010; 최현식, 복수의 근대를 향한 탈식민의 도정: () 하정일 교수의 탈식민담론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62, 2016.] 더욱이 국내에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는 대개 ()대의 극복이라는 과제와 병치되거나 그 이론적개념적 수단으로서 제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대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경계 짓는 이론적 정식 중 하나다. 곧 근()대의 극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1980년대 진보 학계의 민중민족 담론을 포스트 담론이 과잉규정한 효과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대체보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 근()대 또는 근()대성이라는 것은 진정으로 완수하고 성취해야 할 과제였는데, 1990년대 이후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재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또는 민중적인 관점에서 근대 극복 또는 현대 극복의 과제를 내세우는 논자들에게서 주목할 만한 양가성이 나타난다. 하정일의 저작은 이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준다.[내가 보기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론적이거나 사상적인 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운동적인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백낙청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과학자들에게 분단모순내지 분단체제에 관한 더 정치한 이론적 분석의 과제를 제안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화두나 문제제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진보 운동계의 중요한 담론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검토의 대상이 될 만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여 여기에서는 주로 하정일의 논의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겠다.]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론 및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기 식민론또는 탈식민주의론이 중요하지만, 그가 탈근대론이라고 부르는 대개의 탈식민주의론은 단수의 근대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근대 극복의 관점에서 탈식민주의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근대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정일이 말하는 복수의 근대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근대의 역사는 순수한자본주의화의 과정이 아니었다. 이성이 지배한 시대도 아니었고, 서구 중심주의가 공고했던 역사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도 많은 예외들, 균열들, 변형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그 결과 실제의 근대는 부르주아, 유럽, 백인, 남성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상반된 것은 아니지만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타자들의 저항, 즉 부르주아의 타자, 유럽의 타자, 백인의 타자, 남성의 타자, 식민지의 타자, ‘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타자들은 근대와 출발을 함께 했고 근대 속에서 자랐고 지금도 근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의 자식들, 근대의 또 다른 주체들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란 다양한 근대들이 벌인 경쟁의 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9~20.]

 

이 문단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모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등의 탈식민주의, 다문화주의, 혼종성(hybridity) 논의를 전유하여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으로서의 근대의 역사는 서구 중심적인 자본의 지배가 전일적으로 관철되었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타자()의 저항이 전개되었된 장이며, 이런 의미에서 복수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복수의 근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내지 계급적 관점으로 근대를 이해하는 것 역시 일면적인 것이며, 근대를 단수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복수성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에게 근대가 자본의 지배라면 프롤레타리아에게 근대란 노동해방이며, 제국주의에게 근대가 식민지 지배라면 피식민지 민족에게 근대란 민족해방이다. 이처럼 근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고 얽히고 하면서 구성된 '관계들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단수의 근대는 이들 중의 한 코드만을 특권화시킨 논리이다.[하정일, 같은 책, 93.]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근대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논의의 결이 다소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복수의 근대와 민족문학이라는 글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미 바바등과 같이 그가 탈근대적인 또는 해체론적인 후기식민담론의 이론가들로 간주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곧 사이드가 옹호하는 다문화주의는 그것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의 문화 세계화가 기본적으로 문화 '상품'의 세계화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 ...... '만물의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경시한,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인 구상이라는 혐의[하정일, 같은 책, 95.]가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으며, 또한 호미 바바와 관련된 혼종성이론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역학관계에 대한 자의식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또한 그것은 언제나 중심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하정일, 같은 책, 98.]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요컨대 다문화주의나 혼종성 이론은 양자 공히 문화에 국한된 '텍스트적 정치'이다.[이것은 혼종성 이론에 대한 너무 단편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칸클리니의 혼종성 이론에 중심을 둔 좀 더 균형 있고 정교한 논의로는 김용규, 󰡔혼종문화론󰡕 소명, 2013 3부를 참조.]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근대성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의 방안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아마드의 설명처럼, 식민성이든 신식민성이든 결국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극복이라는 전망이 결여된 한 탈식민은 난망한 일이 된다.[하정일, 같은 책, 같은 곳.] 그 대신 하정일은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을 “‘복수의 근대의 기본 정신의 부합하는이론이라고 상찬하는데, 이는 그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 속에서만 문화적 탈식민화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하정일, 같은 책, 99.]이다. 요컨대 근대의 극복이라는 화두가 문제되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이 중심적 과제로 부각되며, 문제는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복수의 근대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이처럼 다른 문제들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로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닌가? 그리고 실로 이는 20세기 후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늘 괴롭혀온 문제가 아니었는가?


 

IV.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이제 우리 논의의 마지막 논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정일과 같은 근()대 극복론자들이 제출하는 논의는 알튀세르가 제시한 바 있는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overdetermination) 개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루이 알튀세르,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마니타스, 2017 참조.] 알튀세르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기본 모순만으로는 사회주의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문제가 설명될 수 없으며, 그러한 기본 모순을 과잉결정하는 다른 모순들, 곧 제국주의와 식민지 모순,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 봉건적 착취체제의 모순 등과 같은 여러 모순들을 고려할 경우에만 혁명과 이행을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으며, 왜 사회주의 혁명이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러시아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잉결정 개념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알튀세르 자신은 부인하지만)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 자신은 그 이후 이데올로기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과잉결정 이외에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 und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이 개념은 왜 여러 모순들이 결합되었는데도 혁명이나 이행이 일어나지 않는지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알튀세르의 과잉결정 및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인문논총󰡕 52,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34절 참조.그리고 사실 과소결정 개념이 제시되어야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구적이거나 조작적 관점(대중을 조작하고 그들의 의식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기능주의적 관점(자본주의 체계의 재생산 도구로서의 이데올로기)을 넘어 구성적 관점(계급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또는 젠더 정체성이나 민족, 인종, 국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가 나중에 경제(또는 계급 관계)와 이데올로기(또는 상징적 관계)의 관계를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가 아니라 이중의 토대로 제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또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처럼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급적 모순 내지 경제적 적대를 최종 심급의 위치에 놓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정치적 적대, 인종적 적대, 성적 적대, 생태론적 적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적대들과 등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인 문제설정으로 나아간 이들도 존재한다.[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급진민주주의 정치를 향하여󰡕, 후마니타스, 2012.]


이러한 이론들을 비롯한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 또는 그 중 어떤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이른바 정통마르크스주의 또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곧 마르크스주의에서 초월론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각자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라는 점이다.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은 간단해보이지만,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 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규정하는 데서나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설정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 사회를 규정하는 데서도 핵심적인 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근대 극복의 문제를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의 문제로 제시하거나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는 원하든 원치 않든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면 대안 사회의 기본 틀도 전통마르크스주의(정통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이단적 또는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를 모두 포함한다는 뜻에서)와 달리 사고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하정일은 자신의 저작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말하는 대신 비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한다. 가령 복수의 근대란 비()자본주의적 근대 기획들의 총칭(總稱)[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63.] 같은 표현이나 주체적 근대와 비자본주의적 근대의 동시적 성취[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12.] 같은 표현이 그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를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다른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복수의 근대를 말하면서 근대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관계들의 총체라고 말하지만, 계급적 모순과 다른 민족(인종)적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또는 성적 차이 내지 젠더 적대의 문제과 비자본주의 문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더 나아가 월터 미뇰로 등이 제기한 바 있는 현대성(또는 그들의 용어법을 빌리면 현대적/식민적 세계체계”)에 구성적인 식민적 차이’[월터 미뇰로, 이성훈 옮김,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에코리브르, 2013 참조.]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사고하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는 대다수의 연구자들 역시 이러한 양가성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 연합을 말하고 다양한 적대들 사이의 절합’(articulation)을 말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 또는 계급 적대가 존재하며, 다른 적대나 모순 또는 갈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정일을 비롯한 복수의 근()대론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그만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하는 불평등 및 상품화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하지만, 이론적으로 본다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에서 벗어나는 것, 다수의 적대들 간의 관계를 사고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서구적 보편성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초월론적 준거로서의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물러난 보편의 자리를 무엇이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러한 보편의 자리는 이제 어떤 특정한 문명이나 지역이 차지할 수 없는 그러한 자리인지, 또는 그러한 자리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인터레그넘이나 혼란, 혼동 같은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보편의 문제는 미국과 경쟁하는 두 번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의 문제와 겹쳐 제기된다. 중국 또는 그것이 주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서구적 보편성과 경쟁하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기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을 갖고 지켜보기도 하는 물음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물음에 답변할 만한 능력이 없다.[이와 관련하여 심사위원 B현대성과 자본주의(또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주제에 관한 나의 의견이 조금 더 분명히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탈구축 또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과 자본주의 또는 비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앞에서 현대성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역사()’(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의 역사()) 및 그것과 결부된 ‘()자본주의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일차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알튀세르와 월러스틴(및 그밖의 다른 이론가들)은 상이한 이론적 관점과 지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만, 내 생각에 두 사람의 중요한 공통의 기여 중 하나는 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및 그 개념들)의 역사()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알튀세르가 구상했던 구조인과성복수의 시간성’(특히 󰡔자본을 읽자󰡕)에 관한 논의와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세계체계론 덕분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까지도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덕분에 우리가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이나 진화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의 이론적정치적 결과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들 역시 근본적으로 불확실해졌다는 점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예전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무언가 진보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더 뚜렷해지고 있는 점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반드시 진보적인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출현하고 구성되는 어떤 것,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존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예전에 월러스틴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신화(곧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동원하여 봉건 귀족 계급을 제압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했다는 신화)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는 사실 봉건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당시 지배계급의 대안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도 어쩌면 그와 매우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서두에서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불확실성이라고 말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지막으로 차크라바르티가 2010년 중국에서 제기한 한 가지 질문을 여기서 소개해보고 싶다. 그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과 인도를 보면서 자랑스러워하고 또한 앞으로 미국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어 세계를 주도하기를 바라는 그의 중국 및 인도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진정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게 될 때,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배의 희생자들이 당신들의 지배를 비판할 수 있도록 어떤 비판의 관점들(terms of ciriticism)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전통 내부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떤 자원들을 생산해낼 수 있습니까? [Dipesh Chakrabarty, “From Civilization to Globalization: the ‘West’ as a Shifting Signifier in Indian Modernity”,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13, no. 1, 2012, p. 140.]

 

내 생각에 이는 데리다가 말하는 유사초월론적 보편 또는 탈구축적 보편에 관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다움 또는 시민문명성(civilité, civility)의 정치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Etienne Balibar, Violence et civilité, Galilée, 2010; 진태원 옮김, 󰡔폭력과 시민다움󰡕, 난장, 2012(부분 번역). 실로 차크라바르티 역시 이를 (발리바르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civility의 견지에서 해명한다.지금까지 유럽 또는 서구가 현대성을 지배해왔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힘, 군사적 위력, 또는 과학기술적 합리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구가 자신들의 정체성 및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보편성은 바로 자기비판의 능력,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탈구축의 역량으로 측정된다. 그렇다면 강력한 문명이 아니라 또는 그것에 더하여 힘을 덜어내는(프랑스어로 한다면, im-puissant, 영어로 한다면 de-powering) 문명, 따라서 보편을 독점하지 않는 문명()을 탈구축하는 것이 아마도 ()근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방향일 것이다.[여기에서 심사위원 B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두겠다. 그는 데리다와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가 각자 제시하는 보편에 관한 생각의 동일성과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이라면(22),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왜 쇠퇴하고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탈구축적 보편성 자체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상정해야 하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이 탈구축적 보편성의 보편성(의 보편성...)으로서 메타-보편성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사고하면 사실상 최종심급론의 틀을 다시 반복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복수의 탈구축적 보편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 탈구축적 역량은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하자면, 우선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은 아니라고 답변하겠다. 서구적 보편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 탈구축의 역량이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이 보편성 여부를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역으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을 무력화하고 봉쇄하는 동일성/정체성 중심적인(identitarian) 경향이 서구적 보편성의 이를테면 제국주의적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탈구축적 보편성은 당연히 다수일 수밖에 없다. 또는 다수의 동일성들/정체성들 내부에서 탈구축적 보편의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번역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탈구축적 보편성들 사이의 관계가 메타-보편성의 구성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탈구축적 보편성에 대한 정의 및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심사위원 B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암묵적으로 보편을 공동체 또는 집합적인 실재로 간주하고, 또 보편의 문제를 그 외연적 측면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의 문제는 공동체 내지 집합체의 측면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령 개인은 오늘날 보편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동물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사이의 경계, 젠더적인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같은 갈등하는 보편들 사이의 쟁론의 장소가 바로 인간적인 것, 인간이라는 것의 구현으로서 개인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의 탈구축적 보편 이론을 비교하는 문제는, 한국의 연구자들, 특히 한국학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쓴 이 글의 사변적인 수준에서는 제대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답변은 다른 글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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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yer, Gerhard & Sussman, Michael eds., Varieties of Multiple Modernities: New Research Design, Brill Academic Publisher, 2015.

Schmidt, Volker H. “Multiple Modernities or Varieties of Modernity?”, Current Sociology, vol. 54, no. 1, 2006.

Wallerstein, Immanuel. 나종일백영경 옮김,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창작과비평사, 1993.

.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성백용 옮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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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SNS를 하지 않는데, 오늘 우연히 응급실에 근무하는 한 의사의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됐습니다. 


글의 주제는 "사람을 학살하는 더위" ... 


그냥 비유법으로 날이 무척 더웠다, 뜨거웠다는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더위에 학살당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1) 폐지를 줍다 쓰러진 80대 노인

2) 노동일을 하고 귀가하다 시장에 쓰러진 60대 중국교포

3) 지적 장애가 있는 50대 

4) 에어컨 없는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말기암 투병중인 80대 

5) 반지하 방에서 발견된 90대 노인 

...... 


더 상세한 페이스북 글은 아래 주소로 가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ihn.namkoong/posts/1794522777267798




더위가 어떤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전쟁이고, 학살이고, 고문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이 한 마디로 글을 맺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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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8-1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발마스님이다. 안녕하셨어요. 다 나이들고 가진 게 없는 분들이란 게 마음아프네요.ㅠㅠ

balmas 2018-08-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마태우스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난민인권센터에서 다음과 같이 난민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기획의 말 


"난민과 같다"라는 ‘조소’ 섞인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 소문에는 난민에 대한 ‘낯섦’과 "우리는 그들과 다르며 절대로 같을 수 없다"라는 비-연결/단절의 의지가 함께 담겨-서려있습니다. 소문이 불어나고 모멸에 가까워질수록 우리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이전보다 더욱 멀어지고 연결되어 있던 끈들마저도 끊겨가거나 (잘못 연결되어) 엉켜갑니다. 그리고 소문은 이내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에서 "그들로 부터 우리-국가-경제를 보호해야 한다"으로 '전화'됩니다.


올해의 《한국사회와 난민인권》을 여는 한국의 ‘상황성’은 이에 기초해있습니다. 서울시(후원)와 난민인권센터(주최), 모든이의민주주의연구소 교육연구팀(공동협력)이 함께하는 이 강좌는 난민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실천을 고민하는 모든 동료시민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➀국민과 난민사이의 '연결-불가능성' 혹은 ‘잘못된 연결’ 등의 주요 배경으로서 신자유주의체제 및 민족/국민주의(‘국민주권’의 '양면')와 ➁이에 따른 한국사회 내 난민인권의 상황을 살펴보고 ➂타자와의 관계'역량'으로서의 '감수성의 윤리'와 ➃(제도를 넘고 앞서는)인정과 환대, '자리-장소의 공유'를 통해 (국민과 난민사이) 더 나은 '이어짐'을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➄또한 이에 대한 실천과 고민의 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난민인권운동의 최근 흐름들 역시 살펴볼 것입니다.


6개월 동안의 함께하는 배움의 자리가 ‘지상에서 함께 살아감’을 이야기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_박경주 / 기획_이슬, 박경주



출처: http://nancen.org/1769?category=118726 [             난민인권센터]




 -강의: 3강 <을의 민주주의: 국민주권을 넘어서> 진태원

                                  -일시: 8월 30일 목요일 저녁 7시

                                  -장소: 서울 불광동 혁신파크 상상청 2층 상상의 숲



출처: http://nancen.org/1769?category=118726 [             난민인권센터]






참여 신청은 아래 주소로 가시면 됩니다. 


http://nancen.org/1769?category=118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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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서강인문논총]에 실릴 글 한 편을 올립니다. 


이 글은 지난 5월 '68혁명과 프랑스철학'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프랑스철학회에서 발표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인데, 논문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제기한 비평과 질문에 답변하느라 


글이 원래 발표문의 2배 가량으로 늘어나버렸습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이므로, 혹시 토론이나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서강인문논총]에 수록된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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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I. 머리말: 정세에 대한 철학, 정세 속에서의 철학

[이 글에 대한 세 분 심사위원의 꼼꼼하고 비판적인 독해에 감사드린다. 비타협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독해 덕분에 이 글의 논점을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문제제기 중 상당수는 내가 받아들이거나 수긍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각주 및 보충 논의를 통해 답변했다. 이 글과 관련하여 앞으로 다른 지면에서 더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언젠가 에티엔 발리바르는 알튀세리엥들을 정세의 알튀세리엥구조의 알튀세리엥으로 구별한 적이 있다.[Etienne Balibar, “L’objet d’Althusser”, in Sylvain Lazarus ed., Politique et philosophie dans l'œuvre de Louis Althusser, Paris: PUF, 1992; 절단토픽’: 철학의 대상,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서울: 이론사, 1993.]전자가 역사의 예정된 진행 경로나 목적을 설정하는 목적론이나 종말론에 맞서 역사의 우연성 내지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헤겔 또는 루카치 식의 총체성에 맞서 구조의 복합성 또는 불균등 발전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알튀세리엥들이 존재한다면,[이 표현은 사실은 발리바르 자신(구조의 알튀세리엥)과 랑시에르 및 바디우(정세의 알튀세리엥)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자본을 읽자󰡕에 수록된 발리바르와 랑시에르의 글은 이러한 두 가지 방향을 대표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알튀세르 저작 자체 내에 이러한 두 가지 계기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기 저작에서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과잉결정에서 빼어나게 표현된 것이 알튀세르 사상의 정세적 측면이라면,[루이 알튀세르, 모순과 과잉결정 (탐구를 위한 노트),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마니타스, 2017. 최근에 유고로 출간된 1966년의 단편 발생에 대하여(Sur la genèse)는 이미 이 시기에 알튀세르가 “‘마주침의 이론내지 콩종시옹이론”(‘théorie de la rencontre’ ou théorie de la ‘conjonction’)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Louis Althusser, Écrits sur l’histoire (1963~1986), Paris: PUF, 2018, p. 81.] 󰡔자본을 읽자󰡕에 수록된 자본의 대상이나 또는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의 기본개념들에서는 구조적 측면이 특히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루이 알튀세르, 유물론적 변증법에 대하여 (기원들의 불균등성에 관하여), 󰡔마르크스를 위하여󰡕; Louis Althusser, “L’objet du Capital”, in Louis Althusser et al., Lire le Capital, Paris: PUF, 1996(19651). 철학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구조의 측면은 몽테스키외가 나타낸다면, 정세의 측면은 마키아벨리가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정세라는 용어로 표현한 알튀세르의 개념은 프랑스어로 하면 콩종크튀르(conjoncture). 그런데 사실 알튀세르 사상에서 이 개념은 (철학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지만) 초기부터 후기까지 단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국내의 알튀세르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대개 이 개념을 정세로만 번역해왔는데, 이런 번역은 이 개념의 의미를 모두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주로 콩종크튀르라고 표현하겠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이 개념을 사용했을 때, 이것은 원래 레닌의 현 상황’(le monment actuel)이라는 용어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시기, “한 국가 내에서 당시 가능했던 모든 역사적 모순들의 축적과 심화[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172. 강조는 원문.]가 일어나는 예외적 정황들”(circonstances exceptionnelles),[같은 책, 173쪽무엇을 할 것인가가 가장 첨예하게 제기되는 상황이 바로 레닌이 현 상황이라고 불렀던 시기다. 알튀세르는 레닌의 이 용어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현 상황 또는 정세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과 결말이 그것에 의존하는 본질적 절합들(articulations), 고리들, 전술적 매듭들이요, 주요 모순이 폭발적으로 되는[같은 책, 308~09.]시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정세는 구조의 모순들이 그 전형성을 드러내고, “모순들의 전위들과 압축들”, “혁명적 단절의 융합’”[같은 책, 311쪽]에 이르는 상황, 요컨대 모순의 과잉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 또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심사위원 A는 모순의 과잉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내가 과잉결정 개념을 과잉결정된 모순의 정세적(콩종크튀르적상황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엄밀한 의미에서 과잉결정과 그것의 정세적 표현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비평이지만사실 알튀세르 자신이 과잉결정을 이 글에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문맥상 양자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고 본다조금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모순의 과잉결정이 강렬하게 표현되는 시기 또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그리고 과잉결정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더 상세하게 논의한 바 있으므로 그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진태원라깡과 알뛰쎄르: ‘또는’ 알뛰쎄르의 유령들 I김상환홍준기 엮음󰡔라깡의 재탄생󰡕창비, 2002. 아울러 심사위원 B는 내가 정세를 시기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1절 전체를 다시 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사실 정세를 시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다소 부주의한 것이다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1절 전체를 다시 써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비평으로 보인다관련하여 이 논문에 대한 세 명의 심사위원은 공통적으로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나의 용법에 관해 질문과 비평을 제기하고 있는데이점에 관해서는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 더 보충하겠다.]


알튀세르가 볼 때, 바로 현 상황또는 정세라는 개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헤겔 식의 관념론적 변증법에서 참되게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역사, “[레닌] 자신이 살고 이해한 세계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세계, “가능한 유일한 구체성 속에서, 자신의 현재성 속에서”[같은 책, 308쪽] 드러나는 세계를 사고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혁명적 실천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저작에서 콩종크튀르 개념은 본질적으로 예외적 상황, 혁명적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세라고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콩종크튀르 내지 정세는 주목할 만한 양의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이 개념은 구조의 전형성 또는 구조가 포함하는 모순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계기를 표현한다. 정세야말로 어떤 구조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개념의 의의는, 정세라는 것을 “‘필연성이 그 속에서 실현되는 우연으로 간주하는 사변적 테제”,[같은 책, 307쪽] 헤겔의 목적론적 역사철학 및 그 이전의 보쉬에(Bossuet) 같은 보수적 신학자의 역사신학에서 유래하는 이 테제에 맞서 역사의 우연성 또는 예외성을 표현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연적이거나 예외적이지 않은 정세는 정세로서의 의의를 지닐 수 없으며, 이러한 예외성이야말로 역사적 현실과 정치적 실천의 정수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정세는 전형적이면서 예외적인 어떤 것, 필연적이면서도 우연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초기 알튀세르에게 정세는 무엇보다 혁명이나 전쟁 같은 예외적 시기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1905, 1914, 1917, 히틀러, 프랑코, 스탈린그라드, 중국, 쿠바 ...”[같은 책, 310쪽]


더욱이 이 당시 알튀세르에게 문제가 되는 정세로서의 콩종크튀르는 역사적 설명의 대상으로서의 콩종크튀르였다. 다시 말해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따라서 역사적 현실과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를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콩종크튀르가 문제였지, 철학 또는 이론적 작업이 바로 그 속에서, 그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의 콩종크튀르가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집필되고 나중에 유고로 출간된 󰡔마키아벨리와 우리󰡕(1972)에서 알튀세르는 콩종크튀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콩종크튀르라는 범주 아래에서 사고하는 것은 구체적인 소여들의 집합에 대해 성찰하듯이 콩종크튀르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 콩종크튀르 아래에서 사고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 경우가 산출하고 제기하는 문제에 따르는(se soumettre) 것이다.[Louis Althusser, “Machiavel et nous”,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I, Paris: Stock/IMEC, 1994, p. 61. 강조는 원문.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 해석의 독창성은 그의 유고 중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은 측면 중 하나다. 특히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론과 콩종크튀르 개념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에마뉘엘 테레, 하나의 마주침: 알튀세르와 마키아벨리,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François Matheron, “La récurrence du vide chez Louis Althusser”, Futur antérieur, <numéro spécial>, 1997; Mikko Lahtinen, Politics and Philosophy: Niccolò Machiavelli and Louis Althusser's Aleatory Materialism, New York: Brill, 2009, p. 139 이하; Marie Gaille, “What Does a “Conjuncture- Embedded” Reflection Mean? The Legacy of Althusser’s Machiavelli to Contemporary Political Theory”, in David Johnston et al. eds., Machiavelli on Liberty and Conflic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을 각각 참조.]

 

이 대목에서는 콩종크튀르 개념이 과학적 설명의 대상에서 이론적 실천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심사위원 BC는 알튀세르가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정세에 대해 동일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비평하면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문제 삼은 바 있다. 알튀세르의 콩종크튀르 개념의 의미변화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마지막 절을 참조하라.]


아마도 알튀세르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기가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 정세의 시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체계의 형성, 중국혁명, 스탈린의 사망 같은 일련의 사건들, 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 우연적 사건들 속에서 아마도 알튀세르는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며, 특히 우리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처럼 1966년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19685월 프랑스의 혁명적 운동은 그에게 더욱 혁명이 가까이 왔음을 짐작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유고로 출간된 1969년 저작에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구 전체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게 될 세계 속에 진입하고 있다. 머지않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매우 심각한 위기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돌발 사태들을 통해 혁명은 이제 오늘의 구호가 될 것이다. 1백년이 지나면, 아니 아마 50년만 지나도 세계의 모습은 변하게 될 것이다. 혁명은 지구 전체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aris: PUF, 1995;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서울: 동문선, 2007, 34.]

 

그가 말한 50년의 시기가 흘렀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그가 예측했던 지구 전체에서 혁명이 승리를 거두는세계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자는 예언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한 예견하는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그의 예언 내지 예측이 틀렸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알튀세르가 당시의 정세 또는 콩종크튀르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는지, 그가 그 정세에서 어떤 문제가 산출되고 제기된다고 이해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이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아마도 알튀세르는 예언에서는 실패했지만, 당시의 콩종크튀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또한 콩종크튀르 아래에서의 사고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들 및 통찰들을 우리에게 남기는 데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II. 이데올로기적 반역, 이데올로기적 혁명: 685월 운동과 문화혁명

 

1. 융합에 이르지 못한 마주침: 685월에 대한 평가

 

알튀세르는 685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우선 알튀세르 자신은 685월 운동을 직접 목격하거나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일러둘 필요가 있다. 당시 알튀세르는 정신병이 발작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알튀세르의 연인이었던 마도니아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시의 정황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1968511일 수아지 병원(Clinique de Soissy)에 입원해서 한달 간 치료를 받은 후 6월 중순께 퇴원했다. 공교롭게도 685월의 가장 뜨거웠던 시기에 그는 정신병원에 있었던 셈이다. Louis Althusser, Lettres à Franca (1961~1973), Paris: Stock/IMEC, 1998, pp. 760~61 참조.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알튀세르는 685월에 관한 더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이후에 알튀세르가 생전에 685월에 관해 공개적으로 상세하게 논의하거나 평가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그것은 19696월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라 팡세󰡕(La Pensée)에 발표된 텍스트인데, 이것은 같은 해 2월에 󰡔라 팡세󰡕에 발표된 사회학자인 미셸 베레의 대학생들의 5월 또는 대체들(Mai étudiant ou les substitutions)이라는 글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었다.[Louis Althusser, “A propos de l’article de Michel Verret sur le ‘Mai étudiant’”, in Yves Vargar ed., PenseR Louis Althusser, Paris: Le Temps des cerises, 2006, pp. 63-84.]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알튀세르는 685월에 관한 또 한 편의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자 언론인이었던 마리아 안토니에타 마초키와 주고받은 서신들을 묶어서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공산당 내에서 루이 알튀세르에게 보낸 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에 수록된 한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Maria Antonietta Macciocchi, Lettere dall’interno del P.C.I. a Louis Althusser, Giangiacomo Feltrinelli, 1969.] 이 책은 1970년 프랑스어로 번역출판되었으나, 685월에 관한 편지를 포함하여 알튀세르의 편지 10여 통은 번역에서 제외됐다.[Maria Antonietta Macciocchi, Lettres de l'intérieur du parti, François Maspero, 1970. 하지만 이 책의 영역본에는 알튀세르의 문제의 편지가 포함되었다. Letters from Inside the Italian Communist Party to Louis Althusser, trans. Stephen Hellman, NLB, 1973.] 이는 이 편지들이 프랑스 공산당에 관한 여러 가지 비판을 포함하고 있어서 프랑스 공산당이 이 편지들을 출간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 사후 유고집으로 출간된 저작들에서도 우리는 685월에 관한 또 다른 논평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95년 출판된 󰡔재생산에 대하여󰡕에 나오는 논평과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나오는 언급들에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op. cit.; 󰡔재생산에 대하여󰡕, 앞의 책; L’avenir dure longtemps, Paris: Stock/IMEC, 2003(초판은 1992);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서울: 이매진, 2008.]


미셸 베레의 글에 대한 논평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베레의 글을 비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레의 시각과 다른 관점에서 685월의 운동을 평가하고 그로부터 이론적정치적 과제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베레가 685월을 대학생의 5”(Mai Etudiant)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비판한다. 이는 마치 685월 운동이 오직 대학생들만이 참여한, 또는 적어도 대학생들이 5월 운동의 주역이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베레가 5월 운동을 주도한 좌익 학생들을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그들은 부르주아 및 프티 부르주아의 후예들로서 아나코-생디칼리즘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는 점도 문제 삼는다. 이는 이중적인 잘못이다. 첫째, 대학생들에게 단일한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5월 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대학생들만이 아니라 고등학생들, 그리고 다양한 부류의 젊은 지식 노동자들로 구성된 것의 결과다. 따라서 마치 하나의 대학생 이데올로기[Louis Althusser, “A propos de l’article de Michel Verret sur le ‘Mai étudiant’”, op. cit., p. 78.]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베레가 5월 운동에 대한 대학생들 자신의 표상/재현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5월 운동 중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된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나코-생디칼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지상적인 무정부주의 이데올로기(idéologie anarchiste-libertaire)[Louis Althusser, Ibid.]였다는 것, 또는 마초키에게 보낸 편지의 용어법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좌익주의프롤레타리아 좌익주의가 아니라 프티 부르주아 좌익주의”[이 편지에서의 인용은 영역본 텍스트에 따른 것이다. 이 편지의 영역본은 버소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Louis Althusser's Letter on the ‘May Events’” https://www.versobooks.com/blogs/3851-louis-althusser-s-letter-on-the-may-events (2018.6.9. 접속)]라는 것이 알튀세르의 비판이다. 알튀세르는 베레가 공산주의 지식인으로서 5월 운동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수행하려고 했다면, 대학생들의 이데올로기 내지 사회심리적 동기들을 분석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대학생들의 결함이나 오류를 유치한 병적 좌익주의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더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설득하고 교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베레를 비판하는 한편 5월 운동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5월 운동은 두 가지의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5월 운동은 프랑스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청년 학생들의 범세계적인 이데올로기적 반역[Louis Althusser, “A propos de l’article de Michel Verret sur le ‘Mai étudiant’”, op. cit., p. 74.]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반역은 제국주의의 단말마의 주요 효과들 중 하나로서, 알제리 독립투쟁, 베트남전쟁, 쿠바혁명, 중국의 문화혁명 같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반제국주의 투쟁 및 사회주의 발전의 영향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알튀세르는 특히 5월 운동의 미증유적인 성격을 강조하는데,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생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고등학생들 및 청년 지식 노동자들의 중요 층위까지 확장되었고, 그 결과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되었다[Louis Althusser, Ibid. 강조는 인용자.]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둘째, 5월 운동은 한편으로 이러한 학생들 및 젊은 지식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다른 한편으로 내가 알기로는 서양 역사에서 그 참여 인원 수 및 지속 기간에서 유례가 없는 총파업 사이의 마주침(rencontre)”[Louis Althusser, Ibid., p. 75. 강조는 인용자.]을 본질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5월 운동에서 절대적으로 결정적인역할을 수행한 것은 노동자들의 총파업이었으며, 시간적으로 선행했던 대학생들 및 고등학생, “지식인들의 활동은 그 역시 매우 새롭고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 사건이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의 총파업에 종속되어 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685월에 서로 마주치기는 했으나 융합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sans parvenir à fusionner).”[Louis Althusser, Ibid., p. 76. 강조는 인용자.]


이러한 두 가지 평가는 마초키에게 보내는 1969315일자 편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알튀세르는 685월 운동은 한편으로 노동자들과 피고용인들의 운동과 다른 한편으로 대학생, 고등학생, 젊은 지식 노동자들의 운동이 마주쳤으나 융합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운동이었다고 말하고 있다.[Louis Althusser, “Louis Althusser's Letter on the ‘May Events’”, op. cit.] 하지만 이 편지에서 알튀세르는 대학생들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세계 및 노동자운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노동자들과의 동맹을 추구하고 이를 혁명으로 이끌어가려고 했으나, 대학생들의 시도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몽상에 의거한 것”[Ibid.]이었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동맹 또는 융합이 일어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알튀세르는 685월 운동을 대학생 운동”(Mouvement étudiant) [Ibid.]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며, 심지어 대학생들의 활동을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노동자운동 같은 운동이 그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은, 그것이 사회계급(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이기 때문이며, 더욱이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유일한 계급의 운동” [Ibid.]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생운동이 다루어야 하는 과제는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시간적 간격 속에서, 그리고 어떤 시련을 거친 이후에 대학생운동은 노동자운동과 지속적인 연결을 확립하고, 궁극적으로 그것과 융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가” [Ibid.]라는 문제다.


두 글의 또 다른 공통점은 프랑스 공산당의 두 가지 정치적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첫째, 중국에서는 유럽 및 프랑스와는 절대적으로 상이한 맥락에서”(왜냐하면 중국의 문화혁명은 사회주의 내부의 문제라면, 유럽 및 프랑스는 자본주의 내에서 일어난 일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건과 상응하지 않는 직접적인 목적들을 위해서 인민적인 국가 지도부가 청년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선두(또는 발의?)에 나섰다면”, 프랑스 공산당은 (그리고 다른 유럽의 공산당들도) “지난 수년 동안 공산주의 대학생 조직의 계속된 위기 속에서도 실제로는 청년 학생 대중과의 접촉 관계를 상실했다[Louis Althusser, “A propos de l’article de Michel Verret sur le ‘Mai étudiant’”, op. cit., p. 82.]는 점이다. 마초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역시 우리의 공산당들[곧 프랑스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인용자]은 일시적으로(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확실히 대학생들 및 청년 지식인들과의 모든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접촉을 상실했다[Louis Althusser, “Louis Althusser's Letter on the ‘May Events’”, op. cit. 강조는 원문.]고 지적하고 있다. 둘째, 685월에 일어난 노동자 계급의 파업 활동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수행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곧 공산당은 청년 학생들 및 노동자 계급, 따라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원인에 대해서도, 또한 노동 상황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685월 운동이 일어난지 수개 월 이후에 알튀세르가 이 운동에 대해 제시한 분석 및 평가의 개요다. 알튀세르는 685월 운동은 기본적으로 청년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노동자 계급의 총파업이라는 두 가지 계열의 작용이 마주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중에서 이 사건을 더 강력하게 규정하는 것은 후자였다고 간주한다. 청년 학생들 및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은 내부의 분열과 편향된 이데올로기들의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1950년대부터 범세계적으로 전개되었던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평가다.[이 글을 투고한 이후 발리바르가 자신이 겪은 68의 상황 및 알튀세르의 68 해석에 대해 언급한 한 인터뷰를 발견했다. 그 중 한 대목에서 그는 당시 마오주의 청년 좌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 저는 당시 브장송대학의 조교로 있던 자크-알랭 밀레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화로 혁명이 시작됐어라고 단언했습니다. “우리 이제 막 대학생들과 로디아세타 공장(Rhodiaceta) 노동자들이 결집한 첫 번째 공동행동위원회를 건설했어.” 저는 현장에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피에르 마슈레하고 그의 학생 두 명과 함께 르노 도핀 자동차에 필요한 기름을 가득 싣고 프랑스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일종의 탐사대였죠. ... 그런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혁명은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소비에트는 겨우 한 나절 지속되었던 셈입니다.(웃음) 그 이후 저는 사건에 대해 오래 성찰해봤습니다.” “Mai 68: Étienne Balibar, de la pensée sous les pavés”, Chantier de Culture, 201875일 인터뷰

https://chantiersdeculture.wordpress.com/category/pages-dhistoire/ (2018. 8. 5. 접속)] 하지만 이 두 가지 운동은 서로 마주치기는 했지만 융합을 하지는 못했는데, 알튀세르는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공산당의 정치적 지도의 실패에서 찾고 있다.


다른 한편 󰡔재생산에 대하여󰡕에서도 알튀세르는 몇 차례에 걸쳐 685월 운동에 대해 거론하고 있는데, 특히 두 가지 점이 중요해 보인다. 첫째, 685월 운동의 의미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가 바로 학교 장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op. cit., pp. 175ff; 󰡔재생산에 대하여󰡕, 222쪽 이하.] 알튀세르에 따르면 봉건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는 교회였는데, 자본주의에서는 학교가 교회의 역할을 대신한다. 왜 의회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국가장치가 아니라 학교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알튀세르는 자본주의는 입헌 군주제, 의회 군주제, 대통령제 등과 같이 의회민주주의와는 상이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도 매우 잘 받아들일 수 있기[Ibid., pp. 176~77; 같은 책, 224.] 때문에, 의회민주주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학교이며, 더욱이 학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따라서 계급투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장소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학교야말로 진정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온갖 사회 계층의 아이들을 대려다가 유치원에서부터 직업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수 년 동안, 아이들이 가족 이데올로기 장치와 학교 이데올로기 장치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힌 채 가장 연약한’(vulnérable) 상태에 있는 시기 동안, 그들에게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포장된 몇 가지 초보 지식’(프랑스어, 산수, 자연사, 과학, 문학) 또는 단적으로 말하면 순수 상태의 지배 이데올로기(도덕, 시민 교육, 철학)를 주입시킨다. (......) 그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도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일주일에 6일씩 하루에 여덟 시간 비율로 의무적인 청중을 갖지 못하고(그것도 공짜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전체 어린이들을 다 갖지 못한다. [Ibid., pp. 178~79; 같은 책, 226~27. 강조는 원문.]

 

그런데 685월 운동은 외관상으로는 전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로 보이지 않고 계급투쟁과 무관해 보이는 이 학교라는 곳이 사실은 지배의 장치였다는 것, 학교의 평온함과 자연스러운 질서는 사실 특정한 계급의 지배, 그 이데올로기적 장악의 결과였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심사위원 C는 이 문단의 논의가 본인의 주장인지, 알튀세르의 생각을 요약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는데, 이 문단은 당연히 다음에 나오는 주 39) 인용문의 논점을 요약한 것이다. 교육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 관한 알튀세르의 더 상세한 분석은 Sur la reproduction, op. cit., pp. 175ff; 󰡔재생산에 대하여󰡕, 222쪽 이하를 참조하기 바란다.]

 

19685월의 사건들과 이에 따른 그 모든 사건들은 우리 테제를 경험적으로 입증해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사건들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참여한 예상치 못한 이 계급투쟁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었다는 점 이외에도 계급투쟁이 학교가족교회 등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속에서 당연히 종별적인 형태들로 항상 존재해왔음보여주었다. (......)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 반항을 하기 이전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내에서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 또는 하수인들의 계급투쟁이 학교 장치와 가족 장치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점이다. 매우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고요함과 평화로운질서 자체가 (분명 특수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계급투쟁의 형태라는 사실이 의심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Louis Althusser, Ibid., p. 191; 같은 책, 244~45. 강조는 원문.]

 

알튀세르가 대학생들이나 지식 노동자들 이외에도 고등학생들이 685월 투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의 투쟁을 통해 685월 투쟁에서 학교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성격이 뚜렷이 드러났으며, 따라서 그 지배력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둘째, 알튀세르는 앞의 두 글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무정부주의적 관점, 곧 반역 내지 혁명의 목표를 억압’(répression)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있다.[Louis Althusser, Ibid., pp. 209ff; 같은 책, 271쪽 이하.] 알튀세르는 68년 당시 영향력이 있던 주간지 󰡔악시옹󰡕(Action)의 표지에 실린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경찰을 쫓아내라는 구호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전형적 표현을 발견한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의 본질은 하부구조에서 일어나는 착취라는 것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몰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위의 구호는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관념들이라는 것, 곧 지배 계급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배 질서에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유포하고 주입하는 그릇된 관념이나 기만적 관념, 허위의식 같은 것들이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함축한다. 하지만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Ibid., p. 220; 같은 책, 284.]에 불과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인 것인데, 이는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적 장치들 및 의례들, 관행들(practices)을 통해 형성되고 작동하고 재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관념들이 아니라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실존 조건들과 맺는 상상적 관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représentation)”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지닌 물질성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앞의 책 및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서울: 민음사, 2017을 각각 참조하라.]


따라서 685월 운동, 특히 고등학생, 대학생, 젊은 지식 노동자들이 일으킨 이데올로기적 반역은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고, 특히 학교라는 곳이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인 선을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라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정작 반역을 실행한 학생 대중들은 자신들이 수행한 일의 정확한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가 685월 운동 이후 서둘러 󰡔재생산에 대하여󰡕 원고를 작성하고, 그것으로부터 몇 부분을 발췌하여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논문을 발표한 것은 그가 이 운동이 제기한 이데올로기 반역의 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반역이 혁명(또는 노동자 운동과의 융합)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 그 한계가 있으며, 앞으로 도래할 혁명을 위해서 이러한 한계를 이론적실천적으로 극복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알튀세르가 적극적으로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2.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퇴보 위험과 이데올로기적 혁명: 문화혁명에 대한 분석

 

하지만 685월에 대한 분석 및 평가만으로는 당시의 정세에 대한 알튀세르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5월 운동에 대한 분석 및 평가의 이론적 함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그보다 앞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곧 문화혁명에 대한 분석과 연결해서 살펴봐야 한다. 알튀세르가 문화혁명에 대해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글은 한 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표될 당시부터 사람들이 알튀세르의 글이라고 짐작했고, 오늘날 대부분의 알튀세르 연구자들이 그의 글이라고 간주하는 익명의 논문이 한 편 존재한다. 1966(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청년 동맹('Union des jeunesses communistes marxistes-léninistes)이 간행하던 기관지 󰡔카이예 마르크시스트-레니니스트󰡕(Les Cahiers Marxistes-Léninistes) 14호에 발표된 문화혁명에 대하여가 바로 그 글인데, 이 글에서 알튀세르는 중국 문화혁명의 특성을 고찰하면서, 그것이 왜 단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혁명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중요한 것인지 분석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이미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과잉결정(1963)에서 마오의 모순론(1937)을 주요한 이론적 준거 중 하나로 삼은 바 있다. 발리바르의 전언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이미 1950년대 초에 뤼시엥 세브(Lucien Sève)와 함께 모순론실천론을 학습했지만, 후자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Etienne Balibar, “Althusser et Gramsci: entretien avec Étienne Balibar”, Revue Période, 2016. http://revueperiode.net/althusser-et-gramsci-entretien-avec-etienne-balibar/ (2018.7.12. 접속) 심사위원 B는 알튀세르와 함께 모순론을 학습한 이는 세브가 아니라 발리바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가 좀 착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초라면 발리바르는 초등학생일 때이며, 무명의 공산당원이었던 알튀세르와 아무런 관계도 없을 때다. 원문을 다시 잘 살펴보기 바란다. 또는 필요하다면 다음 글의 주 13)도 참고하기 바란다. Etienne Balibar, “Althusser et Mao” (2015), Revue Période, http://revueperiode.net/althusser-et-mao/#footnote_12_2245 (2018.8.5. 접속)] 이러한 분석은 685월 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의 배경을 이룰뿐더러, 알튀세르가 󰡔재생산에 대하여󰡕(1969)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에서 전개한 이데올로기 이론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이 글의 실제 필자가 알튀세르라는 점에 대해서는 발리바르도 최근 다시 한 번 확인한 바 있다. Etienne Balibar, “Althusser et Mao” op. cit. 참조. 알튀세르의 이 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전무한 편이다. 국내의 경우 문화혁명 또는 마오주의에 관한 바디우와 발리바르의 평가를 비교고찰하는 백승욱의 글에서도 알튀세르의 이 글은 참조되지 않고 있다. 백승욱, 문혁 평가의 하나의 우회로: 정치의 아포리아를 둘러싼 논점,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서울: 그린비, 2012. 한편 바디우가 열광했던 마오주의(또는 문화혁명)는 역사적 실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한 논평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라캉적 의미에서 주인 기표로서의 마오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제이슨 바커, 주인 기표: 라캉-마오주의의 간략한 계보학, 󰡔문화과학󰡕 77, 2014. 제이슨 바커는 간략하게 알튀세르의 글을 언급하고 있다. 관련하여 심사위원 A는 내가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오: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을 이 글에서 참조하지 않는다고 비평하고 있다. 내가 이 글에 관해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1960~70년대 프랑스 철학(특히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에서 마오주의의 전유 문제는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의 전개과정 및 그 내적 모순에 대한 분석은 심사위원의 관심사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의 관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알튀세르가 이 글에서 문화혁명을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 이후의 다른 글들(유고를 포함하여)에서는 지나치는 언급 이외에는 문화혁명이나 마오주의에 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문화혁명의 이후 전개과정에 실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문화혁명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문제설정과 관련이 있는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라는 논점뿐이었던 것일까, 또는 프랑스공산당과 마오주의 제자들 사이에 놓여 있는 그의 처지로 인한 침묵이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프랑스철학(특히 알튀세르와 그의 일부 제자들)과 마오주의의 관계를 제대로 다룰 수 있기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너무 많다.]


알튀세르는 중국의 문화혁명이 여느 주장(argument) 중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도 미증유의 역사적 사실”(fait historique sans précédent)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이것이 예외적인 역사적 사실인데, 이는 첫째 이것이 선행하는 것이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극도의 이론적 흥미 [Louis Althusser, “Sur la révolution culturelle”(1966), Décalages, vol. 1, no. 1, 2014, p. 1.]를 지닌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알튀세르는 이론적이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이는 곧바로 그가 주장하듯이 문화혁명이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은 항상 정치적 혁명에 의해 설립된 사회주의적 토대에 대해, 그것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사회주의적 상부구조를 제시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을 공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혁명,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내에서의 혁명(une révolution dans l'idéologie des masses)이 필수적이다. 이 테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기본 원리를 표현한다. 레닌은 이러한 필요성을 첨예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볼셰비키 당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상황은 소련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révolution idéologique de masse)을 정치적 의사일정에 올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최초로 이러한 길에 진입했으며, 대중들이 진입하도록 했다. 문혁이라는 표현으로 지칭되는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최초로 의사일정에 올린 것이다.[Ibid. 강조는 원문.]

 

따라서 알튀세르에 따르면 문화혁명은 지금까지 이론적 상태”(l'état théorique) [Ibid. p. 2]에 머물러 있던 한 가지 이론적 테제, 곧 사회주의적 토대는 그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내에서의 혁명또는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필요하다는 테제를 실현하는 것, 또는 적어도 실현하려는 정치적 시도라는 점에서 미증유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바로 이점에서 극도의 이론적정치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을 분석하면서 알튀세르는 중국의 문화혁명이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려는 시도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자본주의로 후퇴할 것인가 아니면 혁명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곧 사회주의의 발전을 끝까지 추구하여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인가) 사이의 양자택일에 관한 문제다. 그리고 바로 후자의 혁명의 길을 택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인 문화혁명이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그 장래를 공고히 하고 모든 퇴보의 위험에 맞서 사회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혁명과 경제적 혁명에 대해 제3의 혁명,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중국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이라고 부른다. [Louis Althusser, Ibid., p. 6. 심사위원 A는 이 글의 이 대목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관한 단계론적 이해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이 이 글의 한계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것은 이 글의 논점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튀세르의 논점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생산관계의 변혁 및 국가장치의 개조와 철폐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 곧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계급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이 글의 핵심 논점 중 하나다.]

 

알튀세르는 문화혁명이 제기된 정세의 핵심을 자본주의로의 후퇴위험에서 찾는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로 후퇴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 따라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혁명의, 해방의 확실한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문화혁명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위험에 맞서 사회주의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첩된 혁명들이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곧 정치적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더 나아가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회적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를 변혁한다고 해서 혁명이 완수되거나 적어도 확고하게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제3의 혁명인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혁명인가?

 

[문화혁명의-인용자] 궁극적 목표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를 변혁하는 것, 중국 사회의 대중들에 여전히 스며들어 있는 봉건제 이데올로기 및 부르주아, 프티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것이며, 이로써 사회주의의 경제적 하부구조 및 정치적 상부구조에 대해 그것들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부여하는 것이다. [Ibid. 강조는 인용자.]

 

그 다음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혁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곧 혁명의 수단과 방법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알튀세르에게 (그리고 아마 문화혁명의 주동자들에게도?) 본질적인 질문인데, 정의상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은 대중들을 대신하여 선도적인 혁명가들이나 공산당이 수행할 수 없는 것이며 대중들이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위로부터 강제되어 수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각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공산당을 비롯한 엘리트들이 대중들을 지도하거나 계몽하여 수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수행되거나 강제로 집행되는 것이라면, 심지어 누군가의 계몽을 통해 수동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원칙이 천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혁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를 변혁하는, 그리고 이것이 대중들 자신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 대중들의 혁명이어야 한다. (......)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의 이러한 변혁은, 대중의 조직들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서 활동하는 대중들 자신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Ibid. p. 7]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알튀세르는 조직들을 강조한다. 대중들은 조직들 안에서만 활동하며, 따라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변혁 역시 조직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중국 문화혁명의 방법적 독창성을 여기에서 찾는다. “대중들은 대중 조직들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가장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문화혁명의 수단은 문화혁명에 고유한 조직들의 출현, 곧 다른 계급투쟁 조직들(노동조합 및 당)과 구별되는 문화혁명 조직들의 출현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혁명에 고유한 조직들은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 조직들이다.” [Ibid. p. 8]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문화혁명의 이론적 중요성을 이끌어낸다. 문화혁명이 이론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다시 사고하고 이론화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이나 󰡔재생산에 대하여󰡕에서처럼 명시적으로 그 한계를 지적하지는 않지만,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건축물의 은유에 입각하여 이데올로기의 성격과 역할을 규정하는 전통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대비하여 자신의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전통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과 더불어 상부구조를 형성한다. 이때 상부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이 후자의 것들에 대해 의존적이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만약 우리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의 구체적인 존재 형태에 대해 제시하고 싶다면, 이것을 건물의 한 층보다는 시멘트와 비교하는 것이 더 낫다[Ibid. p. 14]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시멘트가 건물의 한 부분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건축물로서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 모든 부분에 사용되어야 하듯이 이데올로기도 건물의 도처에 스며들기때문이다. 곧 개인들과 그들의 모든 실천들 사이의 관계에, 개인들이 관계 맺는 모든 대상들과의 관계에, 이데올로기가 과학, 기술, 예술과 맺는 관계에, 경제적 실천 및 정치적 실천과 맺는 관계에, “개인적관계들에도 이데올로기는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기술적 구별이 문제든 아니면 계급 구별이 문제든 간에, 사회 속에서 구별하면서 결합하는(cimenter) 것이다.” [Ibid. 강조는 원문]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토대와 구별되는 상부구조에만 속할 수 없으며, 또한 상부구조 내에서도 정치라는 심급, 법이라는 심급과 구별되는 하나의 심급으로 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토대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야 하며, 모든 심급 내지 수준 속에서 작용해야 한다. [심사위원 B는 이 문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이래의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가 인간적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공장, 시장, 기업, 학교, 법정, 행정기관, 언론기관...) 이데올로기를 상부구조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해 왔습니다.필자는 알튀세르의 논의를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에도 속한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이(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가)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의 정의→「문화혁명에 대하여에서의 정의→「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에서의 정의로 변해간 것으로 보는 필자의 잘못된 논의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정의는, 표현은 각각 달라도, 일관된 것으로 지속됩니다.나는 왜 심사위원이 와 같은 비평을 제시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다. 이 문단에서 강조 표시한 부분의 논점은 앞의 문단에서 강조했듯이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장소론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인데, 그는 내가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만이 아니라 토대에도 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비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의 논점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문장 그대로 본다면 알튀세르도 이데올로기를 상부구조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해 왔다는 뜻인지? 와 같은 비평을 제기하는 심사위원이 어떻게 과 같은 주장을 제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그는 과 같은 주장을 나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나는 이 글에서 알튀세르의 정의가 비일관적이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와 달리 문화혁명에 대하여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이론적체계들과 실천적체계들또는 관념들의 체계(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들)와 태도-행위(습속)”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재정의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과 달리 호명이라는 개념이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것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이 비일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아울러 심사위원 B가 말하는 일관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에는 아무런 모순이나 난점 또는 한계가 없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내 관점하고는 다르다.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난점 내지 애매성에 관해서는 주 11)에서 언급한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및 주 44)의 논문들 참조.]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이 재규정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 그들의 실천, 그들의 대상, 그들의 계급, 그들의 투쟁, 그들의 역사, 그들의 세계 등과 맺는 체험된 삶의’(vécu) 관계를 규제한다.” [Ibid.]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가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본성을 갖는 것은 아니며, 이데올로기는 객관적인 사회적 관계”[Ibid. 강조는 원문].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1964)(󰡔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에서 제시된 생활세계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에서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 실존 조건들과 맺는 상상적 관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représentation)”이라는 정의(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로 나아가는 도상에 있음을 보여준다(물론 아직 호명’(interpellation)이라는 저 유명한 개념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이론적체계들과 실천적체계들또는 관념들의 체계(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들)와 태도-행위(습속)”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데올로기가 토대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심급이나 수준들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관념들이나 표상들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노동 행위, 기술적 행위, 통치 행위, 감독의 방식, 사고 습관, 믿음과 태도, 관행 등을 포괄하게 된다. 따라서 만약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단순히 관념들(또는 이데올로기) 내에서의 혁명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 태도와 행위(또는 습속)에서의 혁명이어야 한다.” [Ibid., p. 15] 요컨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가 변혁된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노동 방식, 사고 습관, 생활 태도, 당 간부들의 작업 방식, 감독 태도, 생활 방식 등이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관념들과 습속에 젖어 있다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바로 일정한 실천들, 곧 일정한 습속들(......)에서 자신의 지주를 발견할 수 있는[Ibid.] 것이다.


문화혁명이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아니라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라는 점이 의미하는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당과 구별되는 새로운 대중 조직들의 존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조직은 당이라는 정치 조직과 노동조합이라는 경제적 조직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문화혁명은 (적어도 그 원칙의 수준에서는) 이 두 종류의 조직과 구별되는 제3의 조직, 이데올로기적 대중 조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의 지배 계급이 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바로 공산당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곧 자본주의 국가 내의 공산당이 정의상, 그리고 실천적으로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와 적대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면,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공산당은 통치 정당이 된다. 이는 사회주의에서 당은 국가와 거의 동일시된다는 위험, 이 시기에 당은 국가와 자신을 융합하도록 부분적으로는 강제되고 부분적으로는 시도된다[Ibid., p. 17 강조는 원문]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내에는 관료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체계적 분리를 비롯한 부르주아 국가의 결함들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조직들, 세 번째 혁명을 수행할 책임을 떠맡은 이 조직들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바로 당이 국가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도록 강제하는 [Ibid. 강조는 원문]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대중들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또는 대중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자발적이고 자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따라서 당과 국가를 분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그것은 이미 대중들이 당이 없이도 (능동적) 주체들로 행위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대중들을 사실 역사의 (대문자) 주체, 정치의 (대문자) 주체로 가정하는 것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몇 년 뒤에 씌어진 󰡔존 루이스에 대한 답변󰡕(1973)에서 알튀세르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라는 존 루이스의 주장에 대하여 역사를 만드는 것은 대중들이다. 계급투쟁이 역사의 동력이다라는 테제를 대비시킨 바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에 따르면 역사 (단수) 주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 속의 (복수) 주체들만이 존재한다. Louis Althusser, “Responses to John Lewis, in Essays in Self-Criticism, trans. Grahame Lock, London: NLB, 1976, pp. 50, 59, 95. 강조는 원문.]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III. 혁명의 과소결정과 이행의 아포리아

 

1. 모순적인 이행기로서 사회주의, 그렇다면 공산주의는?

[심사위원 A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개념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길게 제시하면서 논평하고 있는데, 그의 관점은 그것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 견해의 차이는 다른 지면에서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확인하거나 해결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논평에 대해 특별히 더 논의를 추가하지는 않겠다.]

 

우선 문화혁명과 관련하여 알튀세르가 제기한 사회주의 내에서의 퇴보라는 쟁점이 중요하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와의 단절 또는 절단을 보증하는 준거가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언제든지 자본주의로 다시 후퇴하거나 퇴보할 수 있는 시기,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1970년대 중반 서유럽 공산주의 정당들의 유로코뮤니즘 전환을 계기로 표출된 프랑스 공산당 당내의 사상투쟁에서 더욱 명확하게 제기된다. 알튀세르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 제22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의 폐기가 이루어진 뒤 발표된 󰡔22차 당대회󰡕라는 소책자에서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22차 당대회에서-인용자] 사회주의는 있는 그대로, 곧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모순적인 이행기로 제시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동시에 한 과정의 종착점으로 제시되었다. 더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안정된 생산양식으로서, 그리고 다른 모든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고유한 생산관계 속에서 자신의 안정성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제시되었다. (......) 그런데 마르크스와 레닌에게는 사회주의 생산양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생산관계, 사회주의 법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이행기’(마르크스와 레닌이 말했던 유일한 점이 이것이다)이며, 자본주의적 요소들(가령 임노동)과 공산주의적 요소들(가령 새로운 대중 조직)이 갈등적인 방식으로 공존하는 모순적인 시기이다. 이 시기는 정의상 불안정한 시기이며, 이 시기에 계급투쟁은 우리 자신의 계급투쟁에게는 식별될 수 없는, 판별하기 어려운 전화된 형태아래 존속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역관계와 추구하는 노선에 따라 자본주의로 후퇴할 수도 있고 아니면 경직된 형태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산주의로 전진할 수도 있는 시기다. [Louis Althusser, XXIIe Congrès, Paris: Maspero, 1977, pp. 48~49; 루이 알튀세르,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엮음, 새길, 1992, 43~44. 강조는 원문.]

 

문화혁명에 대한 글에서 제기한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이제 알튀세르는 사회주의는 하나의 독자적인 생산양식이 아니며, 따라서 사회주의 생산관계, 사회주의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노동운동 및 공산당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도 아니고 투쟁의 종착점도 아니며, 그 자체가 하나의 이행기다. 더욱이 사회주의는 안정된 시기가 아니라 불안정한 시기이고 모순적인 이행기이다.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모순은 자본주의적 요소들과 공산주의적 요소들이 공존하는 데서 생겨나는 모순이다.[알튀세르는 이미 1973년 무렵 씌어진 제국주의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사회주의 생산양식을 부정하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Louis Althusser, “Livre sur l’impérialisme”, in Écrits sur l’histoire, op. cit. 참조.]


알튀세르가 사회주의를 독자적인 생산양식이 아닌 것으로, 모순적인 이행기로 규정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폐기가 소련 및 프랑스 공산당과 같은 서유럽 공산당들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단계론적 역사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시기에 저술된 에티엔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발리바르는 이처럼 사회주의를 독자적인 생산양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단계론적진화론적 역사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이렇게 비변증법적이고 기계론적진화론적 해석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완결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계기적인 단계로 이해된다. (......) 경향과 모순의 견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이러한 진화론적 접근 논리에서는 그로부터 생겨나는 이론상의 난점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 단계들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과도기에, 제국주의와 사회주의로의 이행 사이에 또 하나의 중간 단계, 그리고 사회주의 단계 자체 내에 또 하나의 중간 단계 등등을 삽입시킨다. 그러나 왜 하필 이들 단계만 필요한가? 왜 그보다 더 또는 그보다 덜 필요하지 않은가?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옮김, 서울: 연구사, 1988, 143. 강조는 원문. 이 책의 원제는 Sur la dictature du prolétariat, Paris: François Maspero, 1976이며, 따라서 원래대로 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국면 내지 단계가 아니라 사회주의와 일체를 이루는것으로 규정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새로운 계급적 지배를 가리키며, 지배 계급은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이러한 계급 지배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 계급을 분쇄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혼자만의 지배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동맹자들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계급적 지배다. 더욱이 이러한 계급적 지배는 오늘날 통용되는 좁은 의미에서, 곧 자유주의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의미의 독재가 아니라,[사실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불렀을 때, ‘독재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의 일시적인 통치 방식인 딕타토르(dictator)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며, 오늘날 통용되는 자유주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최갑수, 해제: 빠리 꼬뮌, 프롤레타리아의 독재, 민주주의, 칼 마르크스, 󰡔프랑스 내전󰡕, 안효상 옮김, 박종철출판사, 2003 참조.] 민주주의와 동일시되는 독재, “가장 광범위한 대중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독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당시의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볼 때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한 프랑스 공산당(및 다른 서구 공산당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 자체가 사회주의를 의미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의 폐기는 사실 이행의 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몰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유고로 발표된 상상적 인터뷰 형식의 󰡔검은 소󰡕 전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있다. Louis ALthusser, Les Vaches noires: Interview imaginaire, Paris: PUF, 2016.]


그런데 당시의 알튀세르(그리고 발리바르)가 끝까지 질문하지 않은 것은, 또 질문할 수 없었던 것은, 만약 사회주의가 독자적인 생산양식이 아니라 모순적인 이행기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지속적인 혁명을 통해서만 공산주의로 전진할 수 있다면, 그럼 공산주의는 하나의 생산양식이며, 이행의 최종 목적지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공산주의에 대한 관점이 역사철학이나 진화론, 그리고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는 공히 공산주의를 역사적 단계나 먼 미래에 실현될 수 있는 이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가령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것은 공산주의가 이상이 아니며 우리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적인 운동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구체적으로 환기시킨다. (......) 이것은 단순히 사회주의 전략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전략이다. (......) 오직 공산주의 전략에서만 출발함으로써만, 사회주의는 과도적이고 모순적인 국면으로 파악될 수 있[].” [Louis Althusser, XXIIe Congrès, op. cit., p. 50; 루이 알튀세르,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45. 강조는 원문. 또한 유고로 발표된 “Marx dans ses limites”,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 Paris: Stock/IMEC, 1993에서의 더 상세한 논의도 참조.] 또한 발리바르는 󰡔민주주의와 독재󰡕에서 공산주의는 이상이 아니며, 예측하거나 예언할 수 있는 미래에 있어서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역사적 단계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존하는 모순들 내부에 존재하면서 점차로 강력해져가는 하나의 현실적 경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발리바르는 현실적 경향으로서 공산주의의 두 형태를 생산 및 생산력의 사회화로의 경향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152. 강조는 원문.]이라는 형태로, 곧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의 변혁과 (부르주아) 국가장치의 철폐 및 비()국가적인 소비에트(또는 평의회) 권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알튀세르가 문화혁명에 대하여에서 제기한 3번째 혁명, 곧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혁명의 문제는 빼놓고 있는데, 이 문제가 제기되면 공산주의라는 이념은 깊은 아포리아에 빠져 있음이 다시 드러나게 된다.


역으로 공산주의 역시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다면(주지하다시피 알튀세르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에도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테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행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도 모순적인 계급투쟁이 존재하고(자본주의는 두 가지 대립하는 사회적 경향, 곧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려는 경향과 이미 존재하는 공산주의적 경향 사이의 모순이므로) 사회주의 또한 그렇다면, 그리고 공산주의 역시 모종의 계급투쟁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면, 이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행은 역사적 과정 내에 항상 이미 존재하며, 결코 끝이 없는 어떤 것, 따라서 사실은 역사의 갈등적인 과정 자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와 당시의 발리바르)가 제기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질문은 이행이라는 문제설정과 분리된 해방을 사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발리바르는 2000년에 발표된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더. “19세기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에서 (......) 사회주의는 잠재적 공산주의로 간주됨과 동시에,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귀결점이자 완성으로 생각되었다. 이같은 목적론적 분절은 (......)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망 속에서 역사적 이행이라는 근본 관념과 일체를 이룰 따름이다. (......) 하지만 우리가 이제부터 근본적으로 상대화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관념이다.” [Etienne Balibar, “Quel communisme après le communisme?”, in Eustache Kouvelakis ed., Marx 2000, PUF, 2001, pp. 78~79; 허은진 옮김,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웹진 인-무브. 강조는 원문. http://en-movement.net/118 (2018.7.12. 접속)] 또한 2017년에 이루어진 인터뷰의 한 대목도 인용할 만하다.

 

우리가 마르크스에서 상속받은 공산주의 이념은 그 역사가 유구하여, 근대성을 가로지르고, 종교적 이단 및 사회적 반란과 깊숙이 얽혀 있습니다. (......) 이후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적 희망이 과학적 토대를 부여받으려면 역사적 진화 안에 미래의 생산양식으로서 기입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이 진화의 방향을 따라 필연적으로 계급에 기초한 사회에서 계급 없는 사회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 저는 마르크스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근본적 진화주의와 경합하는 요소들을 찾는 중이었고, 몇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제 의도는 한편으로 정치에 속하는 불확실성과 창조성의 차원을 복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대안을 최종목적지라고보다는 접합 지점(junction)으로 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Etienne Balibar, “The Communist Desire to Change the Worldand Ourselves”, in “Dossier: The Return of Communism”, The Viewpoint Magazine, 2017.1.18https://www.viewpointmag.com/2017/01/18/the-communist-desire-to-change-the-world-and-ourselves/ (2018.7.13. 접속); 세계-그리고 우리 자신-를 바꾸려는 공산주의적 욕망, 장진범 옮김. 웹진 인-무브. http://en-movement.net/65?category=733236 (2018.7.12. 접속)]

 

이는 모두 공산주의를 진화주의적 역사철학에서 떼어내어 그것을 마르크스의 또 다른 생각, 현존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적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라는 생각에 입각하여 탈구축하려는 노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몇몇 외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관점과 다른 시각에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이론을 원용하여 이행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Alberto Toscano, “Transition Deprogrammed”, The South Atlantic Quarterly, vol. 113, no. 4, 2014; Fabio Bruschi, “Dualité du pouvoir, stratégie du communisme et dépérissement de l’Etat. Le débat entre Althusser et Poulantzas”, Actuel Marx, no. 63, 2018을 각각 참조. 두 연구자는 모두 레닌주의적인 이중 권력이론을 현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알튀세르만이 아니라 발리바르 자신의 1970년대 작업을 원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역으로 보자면, 두 사람 모두 1980년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리바르 작업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이데올로기론과 철학적 인간학(‘인간학적 차이들’)의 문제설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간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리바르의 철학적 인간학의 최근 방향에 관해서는, Etienne Balibar, “Fermeture. Malêtre du sujet: universalité bourgeoise et différences anthropologiques”, in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PUF, 2011; “Une nouvelle querelle”, in Des universels, Galilée, 2016을 각각 참조. 또한 국내의 논의로는 서관모, 반폭력의 문제설정과 인간학적 차이들: 에티엔 발리바르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52, 2008을 참조.]

 

2. 이데올로기적 혁명인가 혁명의 과소결정인가?

 

이 질문은 이데올로기적 혁명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문화혁명에 관한 글에서 알튀세르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정치적 혁명, 경제적 혁명에 더하여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혁명이야말로 이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궁극적인 혁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혁명의 주체성, 역사의 주체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알튀세르가 유고로 출판된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 이전까지 계속 고수하고 있었던 유물론적 테제, 곧 상부구조에 대한 토대의 우위, 억압에 대한 착취의 우위라는 테제와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치권력의 장악도,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의 변화도 혁명을 보증하는 데, 따라서 역사에서의 진보를 확고히 하는 데 불충분하며, 그것은 항상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혁명의 주체성의 생산 및 재생산으로서 이데올로기적 혁명이 이행의 궁극적 준거가 된다면, 그것은 알튀세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테제와 또 다시 충돌을 모면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명 개념은 바로 주체의 생산 및 재생산으로 정의되며, 이때의 주체는 정의상 예속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혁명의 주체들의 생산 및 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예속적인 주체이면서 혁명의 주체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모순 내지 역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본성상 부르주아 또는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다르다는 가정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본성상의 차이를 무엇이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이며, 다시 그것은 착취나 억압에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회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라는 동어반복을 되풀이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만약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면, 사실 그것은 사고해야 할 문제를 다른 문제로 계속 대체하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행이란 불가능하다는 문제, 또는 이행이 보증하는 해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다. 그리고 그 역의 문제는 대중들이 역사를 만들지만, 대중들은 주체가 아니다라는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이행으로서의 혁명과 혁명의 주체는 근본적으로 과소결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문제는 이행의 문제도,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의 문제도 아니고, 오히려 주체화의 문제일 것이다. 물론 이때의 주체화는 갈등적인 복수의 주체화(계급, 젠더, 인종, 국민 등)일 것이며, 예속과 해방, 봉기와 구성, 통치와 피통치의 모순적인 과정 속에서 전개되는 주체화일 것이다. [주체화의 문제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 배세진 옮김, 서울: 오월의책, 2018 및 진태원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르, 󰡔을의 민주주의󰡕, 서울: 그린비, 2017을 참조.]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지면이 필요한 주제다. 여기에서도 발리바르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바로 이로부터 내가 끌어내는 결론은, “공산주의자들은 별도의 당을 형성하지 않는다[󰡔공산당 선언󰡕-인용자] 발상을 되찾고 재정식화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발상에 나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다음과 같은 형태를 부여할 것이다. 아마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특정한 조직들(그리고 다소간 조직된, 특정한 캠페인들)에 참여하고, 조직된 투쟁들과 캠페인들과 운동들에서 주도성을 발휘하려고 특히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다시피, 구체적 목표에 따라 조직 형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심지어 교회와 군대, 국가조차 조직 형태의 하나로 포괄될 수 있다), 조직들이 없다면 정치도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어떤 본래적 의미의 조직도, 심지어 비밀조직도 구축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것은 차라리, 현존하는 조직들, 즉 우리가 구성원 및 활동가로 속한 조직들 자체를 흔들어놓는 것(désorganiser), 아니 -조직하는 것(dé-organiser)이다. (......) ‘사라지는 매개자’ (......) [Etienne Balibar, “Communism as Commitment, Imagination, and Politics”, in Slavoy Zizek ed., The Idea of Communism, vol. II, Verso, 2013, p. 34; 에티엔 발리바르, 공산주의의 질문들, 장진범 옮김, 웹진 인-무브. http://en-movement.net/84?category=733236 (2018.7.12. 접속)]

 

3. 알튀세르의 교훈

 

이제 68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평가로 되돌아가보자. 알튀세르가 68운동에 대하여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 곧 한편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끝내 융합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한 이유는 무엇보다 알튀세르가 매우 충실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알튀세르는 그 자신이 매우 양가적인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되는데, 인식론적 절단, 과잉결정(및 과소결정), 구조인과성,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호명 같은 개념들은 그의 사상의 독창성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는 이른바 서방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가들 중에서 가장 정통적인, 심지어 교조적인 이론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도식을 (매우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고수한 것,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토대의 우위를 강조한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에 대한 완고한 방어, 다른 많은 지식인들과 달리 공산당에서 끝내 탈당하지 않은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때문에 그는 685월 운동의 전례 없는 새로움, 학생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노동자운동과 융합되어야 한다는 점, 더욱이 공산당이 운동의 전위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68 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평가는 여러 모로 결함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알튀세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고수한 까닭에 68 운동이 표현했던 세계혁명[Immanuel Wallerstein, “1968, Revolution in the World-System”, in Geopolitics and Geocultu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1968,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혁명, 󰡔변화하는 세계체제: 탈아메리카와 문화이동󰡕, 김시완 옮김, 서울: 백의, 1995 참조. 또한 뮈르달의 유산: 인종차별주의와 저개발의 딜레마」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성백용 옮김,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4도 참조.]적인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푸코가 이후에 강조했던 것처럼 68 운동이 사회의 특정한 계층과 청년 문화에 영향을 발휘하던 권력 형태의 전체적인 연결망에 대한 반역이었다는 것”,[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이승철 옮김, 서울: 갈무리, 2004, 140.] 따라서 그것은 제도적실천적으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 또는 담론적으로도 배제된 이들에 관한 문제제기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다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더 사회를 구성하는 심급들’(instances)경제, , 이데올로기, 지식의 다양성과 환원 불가능성을 강조했지만(과잉결정 개념이 대표하는 것), 동시에 이것들 모두는 최종 심급에서계급투쟁의 상이한 표현들이라는 점을 고수했다. 그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양보할 수 없는 유물론적 핵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매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갈등(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주의 및 민족주의로 표현되는), 성적 차이 및 적대, 인종적 갈등, 생태적 위기 등은 결코 계급 모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알튀세르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문제로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선 68운동이 과연 성공한 운동이었는가, 심지어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월러스틴처럼 세계체계론의 시각에서 그것은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세계적인 혁명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알튀세르처럼 그것이 융합에 이르지 못했다고, 68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세력들, 특히 이데올로기적 반역 세력과 계급착취에 저항하는 세력이 마주쳤지만 융합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아마 라클라우와 무페라면 절합’(articulation)이나 민중적 요구’(popular demand)를 형성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합에 이르지 못하는 한에서 진정한 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그는 옳았다.


또한 알튀세르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계급투쟁의 우위를 강조하고 다른 투쟁들을 이러한 투쟁의 우위에 종속시키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68 운동 당시에도 그랬거니와 오늘날의 많은 68의 후예들은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은 아닌가? 곧 고전 마르크스주의에 고유한 경제주의와 노동의 인간학에서 벗어난다는 구실 아래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 및 계급투쟁의 문제를 청산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망각하고 그 문제를 권력의 문제나 문화의 문제, 젠더의 문제로, 또는 단순히 복지국가(또는 사회국가)의 문제로 대체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우리가 여실히 깨닫게 된 점은 이 모든 문제들에 계급투쟁의 문제가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심사위원 C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5월 혁명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 더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알튀세르가 5월 혁명의 가치를 적합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5월 혁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저자 자신의 분석이 제시될 때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에서는 5월 혁명의 어떤 가치와 의의에 주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적에는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다. 첫째, 이 글에서 나의 주제는 685월 운동 자체가 아니라, 알튀세르가 685월 운동을 어떻게 평가했으며, 이러한 평가가 그의 이론적 전개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 일반적으로 본다면 이행해방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는가 여부였다. ‘5월 혁명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월러스틴이나 푸코의 평가와의 간략한 대비로 논의를 대신한 것이다. 둘째, 3알튀세르의 교훈에서 내 논점은 알튀세르가 5월 혁명의 가치를 적합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일방적으로 알튀세르 평가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나의 논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 논지는 월러스틴과 푸코가 발견한 5월 운동의 어떤 측면들을 알튀세르가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역으로 그들(및 다른 이들)이 파악하지 못한 다른 점들을 알튀세르의 5월 운동에 대한 평가가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심사위원 C는 심사평의 다른 대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초록에서 알튀세르가 68년 혁명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아카이브를 통해 알튀세르의 미발표 원고가 널리 알려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 원고들들 통해) 그가 68 혁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튀세르 유고 가운데 68에 관해 상세하게 언급하거나 분석하는 곳은 󰡔재생산에 대하여󰡕 정도밖에 없으며, 내가 이 글에서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은 두 편의 글은 이미 그의 생존시에 발표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고가 나온 이후 알튀세르가 68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더욱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심사위원 C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과문한 탓에 알튀세르와 68의 관계를 다루는 국내외의 문헌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로서는 어떻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마치 현존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30여 년 동안, 또는 알튀세르의 문제제기(과잉결정 및 과소결정) 이후 50여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의 좋았던정통 마르크스주의로 돌아가자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히려 알튀세르가 고심했던 그 문제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여러 가지 적대 내지 갈등(계급, 문화, 인종, 젠더 등)을 위계적으로 구조화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자본주의의 모순()과 연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과잉결정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 이러한 연결을 사고할 수 있는가? 혁명의 과소결정 속에서의 해방과 변혁이란 무엇인가?

 

4. 과소결정 및 콩종크튀르에 관한 보론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의 제목으로 사용한 과소결정이라는 개념에 관해 몇 가지 보충적인 설명을 덧붙여두겠다. 이 글의 심사위원 세 명은 공통적으로 내가 사용한 과소결정 개념이 모호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비평을 제기한 바 있다. 내가 이 글에서 과소결정 개념에 대해 별도의 논의를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이전에 다른 글에서 몇 차례 이 개념을 논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I, 앞의 주 11)의 글;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앞의 주 44)의 논문 참조.]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해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개념에 관한 좀 더 전문적인 논의는 다른 글에서 하고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몇 가지 논점만 제시하겠다.


과소결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의 개념적 의미소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과잉결정이다. “‘과잉결정된 모순역사적 억제라는 의미에서, 모순의 진정한 차단의 의미에서 과잉결정될 수도 있고(빌헬름 시대의 독일) 또는 혁명적 단절의 의미에서 과잉결정될 수도 있지만(1917년의 러시아),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모순은 결코 순수한 상태로 자신을 현시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189. 강조는 원문의 것이고 번역은 다소 수정했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surdétermination이라는 개념(곧 우리가 과잉결정으로 번역한)혁명적 단절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역사적 억제또는 모순의 진정한 차단’”이라는 뜻 역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함의를 갖는 surdétermination다원결정이나 다중결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소결정이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자본을 읽자󰡕에 수록된 자본의 대상인데, 여기에서는 그것의 과잉규정 내지 그것의 과소규정이라고 불려온 것[Louis Althusser, “L’objet du Capital”, in Lire le Capital, p. 293. 강조는 원문.]라고 두 개념이 병치되고 있을 뿐, 새로운 용어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대목은 자본의 대상전체에서 제일 핵심적인 대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병치의 함의를 이해하려면 또 다른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더 상세한 해명이 제시되는 텍스트는 1975년에 발표한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라는 글이다.[이 글은 알튀세르가 아미엥 대학에서 업적에 근거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자신의 연구를 집약해서 소개한 박사학위 업적 소개문이다. Louis Althusser, “Soutenance d’Amiens”(1975), in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ed., Yves Sintomer, Paris: PUF, 1998;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입장들󰡕, 서울: , 1991.] 알튀세르는 헤겔 변증법과 달리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모순의 불균등성을 보여줄 수 있으며, 이러한 불균등성은 필연적으로 모순의 과잉결정 또는 과소결정이라는 형태 속에 반영됩니다[Ibid., p. 215; 같은 책, 153. 강조는 원문의 것이고 번역은 수정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행 또는 혁명의 문제와 관련하여 과소결정 개념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세기의 영국이 아니었으며 20세기 초의 독일도 아니었습니다. 혁명은 가장 발전한 나라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곧 러시아에서, 그리고 그 뒤에는 중국이나 쿠바 등지에서 일어났습니다. 불균등발전이라는 레닌의 범주(이는 모순의 불균등성 및 모순의 과잉- 그리고 과소-결정(sa sur- et sa sous-détermination)을 가리킵니다) 없이, 제국주의의 주요 모순이 가장 약한 고리로 이처럼 전위되는 것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계급투쟁이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이는 나라들에서 계급투쟁의 이러한 침체를 어떻게 사고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일부러 과소결정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결정에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 과소결정이라는 관념, 곧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혁명이 유산되고 혁명 운동이 침체되거나 사라지게 되며, 제국주의가 부패 속에서 발전하게 되는 등의 일이 일어나는, 결정의 문턱이라는 관념은 견뎌내지 못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Ibid., p. 217; 156. 번역은 수정했다.]

 

이 대목에서 결정의 문턱이라는 말에 주의한다면, 내가 이 글에서 사용한 과소결정이라는 개념의 일차적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 내지 조건이며, 더욱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 내에서 혁명의 진전, 공산주의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 내지 조건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내가 또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모순의 과잉- 그리고 과소-결정이라는 표현이다. 알튀세르는 과잉결정 또는 과소결정이라고 하지 않고, “과잉-결정 그리고 과소-결정이라고 하지도 않으며, “과잉- 그리고 과소-결정이라고 표현한다. ‘과잉-’과소-’라는 두 개의 접두어를 함께 사용한 것은 내가 보기에 첫째, 모든 결정은 항상 과잉과 과소를 함께 수반함을 뜻한다. 사실 모순이 과잉결정의 개념 속에서만 사고되면, 그것은 결국 목적론적 관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모순의 과잉결정은 구조화된 복잡한 전체의 위계화된 결정 관계라는 의미에서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과 연결하여 사고되며, 또한 알튀세르는 그것을 통해서만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유물론적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유물변증법이야말로 역사의 우연성(contingence) 또는 예외, 이질성, 다양성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체가 복잡화되고 결정 관계가 다중적으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기본 모순에 의한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에 따라 지휘되는 것이고, 결국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필연성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잉결정이 표현하는 우연성의 계기는, 발리바르가 다른 글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우연의 필연-(devenir-nécessarie de la contingence) 과정 속으로 포섭되는 것이다. 반면 단지 모순의 과잉결정만이 아니라 모순의 과잉결정이면서 동시에 과소결정이 문제가 되면, 역사는 우연의 필연-화가 아니라, 필연의 우연-(devenir-contingent de la nécessité), 또는 우연성의 우연[Etienne Balibar, “Avant-propos pour la réédition de 1996”, in Louis Althusser, Pour Marx, p. XIII; 󰡔마르크스를 위하여󰡕, 34. 강조는 원문.]의 계기도 포함하는 것으로, 더 나아가 전자에 비해 이 후자가 존재론적으로 우선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알튀세르 말년의 이른바 마주침의 유물론 내지 우발성의 유물론의 한 가지 이론적 핵심이다.


둘째, 이렇게 우연성의 우연의 계기를 사고한다는 것은, 현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의 최대 공약수라고 할 수 있는 절합의 문제설정, 곧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을 중심으로 하여 성적 차이 내지 젠더 간 적대, 인종 및 국민주의, 생태적 적대 등을 그것과 절합하려는 문제설정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는 공산주의의 경향 내지 잠재력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것들의 쟁점을 과소결정하는 것(또는 다른 말로 하면 배제하거나 주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 문단에서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세또는 콩종크튀르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해두자. 나는 심사위원 BC의 생각과 달리 알튀세르에게 conjoncture 개념은 그의 사상의 전개과정 속에서 상이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고 본다. 과잉결정된 모순이 폭발하는 혁명적 정세, 또는 어쨌든 기존 질서가 위기에 빠지는 예외적 상황이 첫 번째 의미라면, 󰡔자본을 읽자󰡕에서는 좀 더 엄밀한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특히 다음 대목이 주목할 만하다.

 

만약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본질적 단면을 구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전체의 복잡한 구조의 종별적 통일성 속에서 이른바 지체, 선행, 잔재, 불균등 발전 같은 것들의 개념을 사고해야 하는데, 이것들은 현실적인 역사적 현재, 콩종크튀르(conjoncture)의 현재의 구조 속에서 공동-실존한다(co-existent). 따라서 이러한 지체 및 선행을 측정할 수 있는 토대의 시간에 준거하게 되면, 상이한 역사성들의 유형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Louis Althusser, “L’objet du Capital”, in Lire le Capital, p. 293. 강조는 원문.]

 

여기서 콩종크튀르는 표현적 총체성에 입각한 라이프니츠-헤겔 식의 역사철학적 현재 개념과 대비되는 현실적인 역사적 현재로서 제시된다. 이러한 의미의 콩종크튀르는 그 속에서 지체, 선행, 잔재, 불균등 발전 같은 것들 ... 이 공동-실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콩종크튀르는 본질의 단면으로서가 아니라 이질적이고 불균등한 것들이 공존하는 역사적 현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질적이고 불균등한 것들이 어떻게 공동-실존할 수 있는지,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알튀세르는 이를 다원적인 역사적 시간들의 공동-실존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주 4)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을 읽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쓰인 발생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이론내지 콩종시옹이론”(‘théorie de la rencontre’ ou théorie de la ‘conjonction’)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표현이 콩종시옹이라는 개념이다. ‘연결내지 연접또는 연계등으로 옮길 수 있는 이 개념은 알튀세르가 사건을 이질적인 요소들 내지 힘들 사이의 마주침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마주침을 다른 말로 표현하여 콩종시옹으로 사고하려 했음을 잘 보여준다. 왜 하필이면 콩종시옹일까? 그것은 이 콩종시옹과 같은 어근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콩종크튀르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콩종크튀르는 이행이나 변혁을 위해서 서로 마주쳐야 하는 것들이 마침내 마주치고 융합하게 되는, 또는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 내지 시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말년의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에 가면 콩종시옹이나 콩종크튀르는 훨씬 더 급진적인 함의를 갖게 된다. [Louis Althusser, Sur la philosophie, Paris: Gallimard, 1994;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 op. cit.에 수록된 여러 글 참조. 국역본으로는 서관모백승욱 옮김, 󰡔철학에 대하여󰡕, 서울: 동문선, 1997; 서관모백승욱 옮김, 󰡔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서울: 새길, 1996 참조.] 여기에서는 이미 구조(자본주의 같은)가 존재하고, 그 구조 내에 존재하는 또는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어떤 요소들 사이의 마주침이나 콩종시옹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또는 구조에 선행하는 어떤 마주침과 콩종시옹이 문제가 된다. 허공 속에서 서로 수직으로 낙하하는 원자들이 어떤 우발성에 의해 클리나멘(clinamen)을 겪게 되고, 이로써 원자들의 마주침 또는 연접이 지속되면 거기에서 세계 또는 구조가 생겨나게 되며, 일단 생겨난 구조는 자신의 고유한 근거와 법칙, 질서에 따라 자신을 재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위하여󰡕󰡔자본을 읽자󰡕에서는 구조의 우위가 전제된 가운데 정세로서의 콩종크튀르를 사고하는 것 또는 구조와 콩종크튀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문제였다면, 우발성의 유물론에서는 오히려 콩종시옹 내지 콩종크튀르야말로 세계 내지 구조의 발생을 설명하는 일차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더 나아가 단순히 구조의 발생만이 아니라 구조의 재생산변혁 역시 마주침 내지 콩종크튀르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히 도식적이고 간략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일별만으로도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알튀세르는 똑같은 정세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리말의 정세는 여러 뜻을 갖고 있는데, 알튀세르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일이 되어가는 사정이나 형편이라는 뜻(한자로는 情勢)이나 정치상의 동향이나 형세”(한자로는 정세)라는 뜻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두 가지 뜻으로 이해된 정세라는 번역어가 알튀세르가 사용하는 콩종크튀르라는 개념의 함의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말년의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제시되는 개념적 의미는 고사하고, 󰡔자본을 읽자󰡕에서 제시된 존재론적시간이론적 함의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머리말에서 모순과 과잉결정같은 글에 나오는 용법을 고려하면 정세라는 번역어를 쓸 수 있다고 해도 이 개념의 전체적인 용법과 의미를 고려하면 당분간은 콩종크튀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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