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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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의 작가 천명관 두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을 읽었다. 첫 장편 <고래>에서 매우 익숙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낯선 스토리로 엮어간 글빨이 대단했었기에 기대를 많이 하면서... 읽은 소회부터 말하자면, 많이 불편했다. 가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위적인 구성과 전개, 조금은 도식적인 가족애의 의미... 전작 <고래>에 의해 작가에 대한 어떤 '기대치'가 있어서인지 이것저것 너무 많은 소재를 넣어 끓인 이런 부대찌게 같은 얼개가 그렇게 와 닿았다는 거다. 홈런을 날린 선수가 그 홈런에 고무되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런 느낌... 그 결과는 홈런이 아니라 범타... 작가 역시 전작의 흥행에 부담감을 가진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의 집에 다시 모이는 가족, 좋은 의미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큰 흐름이다. 이 집 가족 모두가 지난한 삶에 떠밀려온 우리의 하위 계층(?)의 한 모습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으로 사업하다가 망한 120kg 거구의 건달 출신 첫째 '오함마', 영화를 찍었다가 관객이 뽑은 그해 최악의 영화로 선정되는 등 흥행에 실패하고 회생불능에 처한 충무로 한량 둘째 '나(話者)', 남자 바꾸기에 이력이 난 이혼녀 셋째 미연과 그의 딸 '민경'... 자포자기의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그 어디에 있을까? 작가는 그 유일한 공간이 '엄마'임을 소설 전체에 은근하게 깔아놓는다. 그런데 이 푸근해 보이는 엄마의 인생사도 아들딸에 못지않다는 것이 양념...


엉겁결에 재구성된 이들 가족의 평균나이는 사십구 세. 후줄근한 중년들이 다시 모여 함께 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가족사를 알게 되는데... 이들 가족의 혈연관계는 말 그대로 복잡한 막장 드라마이다. 오함마와 화자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이고, 동생 민경은 어머니가 가출(?)하여 낳아 온 자식이다. 이들은 모두 실패의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고 과거의 발목 잡혀 있었다. 이런 자식들을 다시 거두고 품어준 '엄마'의 존재... 사십 여년 배다르고 씨다른 자식을 먹여 키우고, 세상사에 실패하고 돌아온 다 큰 자식을 거둬주고 먹여주며, 미연의 아버지와 재회하여 같이 동거하게 되는 엄마... 내리사랑만 받아온 우리 역시 엄마의 내면적 삶에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작가는 묻고 있는 듯하다.

 

집을 떠난 지 이십여 년 만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엄마 곁으로 모여들었다.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 삼남매를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39쪽)
……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식들을 집으로 데려가 끼니를 챙겨주는 것뿐이었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198쪽)


작가는 소설 속 '나'의 이야기에 헤밍웨이의 소설(1968년도 간행 전집)과 인생을 끌어넣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감할 수 있는 것만이 참다운 실존이라고 생각했던 헤밍웨이의 경우는 어땠을까?"하고 되묻는다. 우리 모두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무언가에 열정을 다했을 거다만... 결국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헤밍웨이... '나'는 그의 전집을 읽으면서 "부지불식간에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이리저리 한 세월 이끌려 다니기도 하는 게 세상살이일 터인데 때론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낡은 전집을 노끈으로 묶으면서 헤밍웨이와, 아니 불운했던 독고다이 '나'의 과거와 긴 작별인사를 나눈 것이다...


서두에도 밝혔지만, 작가가 소설 속에 장치한 큰 테두리는 알겠는데 그닥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이거나 그런 건 느끼지 못했다. 1%만이 향유하는 자본주의에서 이런, 약간은 드라마틱하게 마이너리티의 삶이 집약된 줄거리가 좀 불편했기 때문이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아서 내 갈매빛의 등성이를 어찌 다 가릴 수 있겠느냐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그게 너무 고달파지면 그 의미도 퇴색되지 않겠는가. 무슨 계몽소설이나 사회파 소설도 아닌 것이... 그리고 헤밍웨이와 '나'의 연결 또한 좀 이질적으로 겉돌았다는 느낌... 뭐 그랬다... 전작 <고래>의 낯선 충격에 비해, 이 소설은 공은 많이 들였으나(잡다한 사건이 너무 많아 번잡하다) 와 닿은 건 그렇게 많지 않은 책읽기였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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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이주희 지음, EBS MEDIA / Mid(엠아이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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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다. 이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말의 성찬... 트럼프 대통령의 "일찍이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도 이젠 빈말이 아닐 듯한데, 거기에 맞서 미국령 괌에 포위사격 위협을 하는 북한의 무대포 발언도 위기감을 부추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목소리만 높이다가 잘 협상되겠거니~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지만, 초강경 발언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현실적 걱정이 앞서는 오늘이다.

 

북핵으로 촉발된 이런 수상하고 험난한 시절에, 대한민국호가 순항하기 위한 생존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고전이다. 박고통금(博古通今)이라하여 옛것을 널리 알면 오늘에도 통한다고 하였다. 특히 절망이 지배하던 세상, 그리하여 백화쟁명(百花爭鳴)이 만발한 춘추전국 시대의 외교정책들은 오랜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이런 난국 해결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다. 마침 적절한 책이 출간되어 읽어보았는데...

 

<생존의 조건: 절망을 이기는 철학>은 2017년 신년특집으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글의 전개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전쟁의 시기는 1%의 승리자를 제외하곤 99%가 암담한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공자와 묵자, 장자와 한비자 같은 이들은 이런 절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믿음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의 신뢰를 설파하는 유가(儒家), 싸우는 평화주의자들 묵가(墨家), 진정한 지혜의 샘물 같은 도가(道家), 인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의 정신이 돋보이는 법가(法家)... 주옥처럼 펼쳐지는 이들의 사상 그 어느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거지만, 이 책에서는 묵자와 한비자의 주장이 크게 와 닿았다.(물론 이 책 이전에 이들의 철학을 접하기도 하였고...) 아마도 북핵을 둘러싼 전쟁위기론과 탄핵 이후의 정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묵자(墨子)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현 문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묵자의 지향점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통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단순하게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고 묻고 싶다. 바로 이점에서 묵자의 사상은 아주 대단하다. 묵자의 핵심 사상은 비공(非攻)과 겸애(兼愛)이다. 비공이란 무조건 전쟁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묵자는 애초에 전쟁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전쟁은 적극적으로 인정한 전투적 평화주의, 즉 싸우는 평화주의자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어떤 사상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절실히 평화를 추구했던 묵자와 그의 제자들. 그는 전쟁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질적인 대책을 완비한 다음에 행동했다. 그는 반전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용 무기를 엄청 많이 개발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도주하는 적일지라도 끝까지 추격해서 끝장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이 보인다. 우리가 가진 패가 비공이되 전쟁이 일어난다면 적의 공격 능력을 확실하게 말살하여야 한다는 강렬한 실천성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는 한비자의 법가도 작금의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는 현실순응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실주의인 것이다. 옛것에 집착하는 유교의 상고주의(尙古主義)에 대립되는 한비자의 철학은 보통사람을 전제로 한다는 점과 상위즉책망 자위즉사행(相爲則責望 自爲則事行)이라하여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일을 잘 진행시킨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여기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겹쳐지기도 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을 고치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이용한다는 한비자 철학의 핵심은 필연적으로 '통제 가능'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서 법가는 '법은 태양처럼 분명해야하고 뜨거워야 하며, 공평해야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 명백함과 엄격함의 원칙을 내어 놓는다. 유전무죄나 내로남불, 기득권을 위한 엿가락 잣대 등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둠을 이용하는 '현실주의자의 결기'가 오늘에도 빛을 발한다.


<생존의 조건>... 상당히 느낌 좋은 독서였다. 자구에 얽매이는 고전 전문가에겐 조금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옛 것을 빌어 지금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철학의 시간으로 보면 참으로 읽어볼만한 유려함을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 때문에 묵자와 한비자를 중심으로 이 책을 읽은 소회를 풀어봤지만 공맹과 장자의 이야기는 풍부한 예를 중심으로 풀어내는지라 훨씬 더 재미있었다. 공자와 맹자, 장자의 철학은 언제 어느 책을 읽어도 삶에 대한 지혜와 혜안을 배우게 된다.

 

어쨌거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절망을 이겨내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한다. 용기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치솟는 거란다. 용기야말로 힘든 상황을 견뎌낼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요 인간의 긍지인 것이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자... 이번 북핵 위기도 불안해 하기보단 용기로 극복해 내야 한다...

"절망보다는 용기를, 죽음보다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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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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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유쾌한 소설이라는 소문은 많이 들었다. 읽어보니... 실소 (失笑)! 어처구니없는 줄거리인데도 웃음이 아직도 입가에 남아있으니... 구라도 이런 상구라면 작품 중에서도 명작에 속하리라...^^


100번째 생일 파티를 앞둔 주인공(알란 칼손)이 양로원 1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화단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현재진행형 탈출기와 너무나 대단한(?) 과거의 삶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면서 전개된다.

 

현재진행형 줄거리는 허탈한 가벼움이다. 걷기도 힘든 100세 노인의 일탈에 덜떨어진 범죄조직의 돈뭉치가 엮이고, 돈을 회수하려는 갱단원 두 명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에서 유머러스를 느끼게 되니... 살인 혐의가 너무나 쉽게 무혐의로 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얽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가벼우면서도 부담감이 없다.


반대로 과거의 인생 역정은 무거운 위트가 아닌지...

젊은 시절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차린 그는 폭발 사고를 일으키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되는데, <우생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이유로 거세를 당한다. 알란이 약간 저능아라서 번식하게 놔두면 안 된다나...

 

이런 주인공이 스페인 프랑코 총통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및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미국과 소련의 원자폭탄 제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트루먼 대통령과 스탈린을 만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블라디보스토크 대화재의 원인이 되고 이어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까지 만나고, 존슨 대통령을 만나 미국 스파이로 일하면서 소련 붕괴의 초석(?)이 되는 인생사를 읽다보면... 세계 역사의 방향을 틀만한 굵직한 사건에 아무렇지 않은 듯 관여하는 황당함과 유쾌함이 함께한다.


더운 여름, 어려운 책 읽기 싫을 때 딱 맞는 책이었다. 씨줄과 날줄이 제대로 얽혔고, 가볍지만 즐거움이 있는 책읽기였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약간 수정하여 독후기를 마무리해보면...
이 소설에서 진실 찾기 게임은 무의미하다. 그냥 이 상태 이대로가 좋다. 왜냐하면 인생 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그 자체로 온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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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하다...

태풍 노루가 가까이 온다고하니 그런 모양이다.


책도 읽기 싫고 독후 정리도 귀찮고...

그냥 서늘한 계곡에서 한담이나 나누고 시원한 국수 한사발 먹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하략...)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1. 사장님, 5시에 퇴근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내 첫 직장 생활... 그땐 8시 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직장을 옮겼다... 직장인에게 과연 저녁이 있는 삶이 있기나 할까?


2. 슈퍼아시아 -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아시아의 힘

아시아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아세안 국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잠재력은 엄청나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3. 포스트 차이나 진짜 인도를 알려주마

Kotra 인도 첸나이 전 무역관장이 들려주는 당신이 모르는 지금, 인도... CEPA 때문에 공부하는 인도... 과대포장되었다고 느껴지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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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00:46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7 15:03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수 언급하시니까 저는 물냉, 비냉 다 먹고 싶습니다. ^^

표맥(漂麥) 2017-08-07 15:04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날이 덥다보니 이 시가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아무튼 더운 여름 잘 견뎌내시길...^^
 
차가운 계산기 -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필립 로스코 지음, 홍기빈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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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중요한 저서다. 철학적 성찰에서 경제학 이론을 거쳐 구체적인 경험적 연구들까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지배적인 경제학 이론이 사람들을 다양한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는 공동체 성원이 아니라, 오로지 물질적 이득과 소비에만 정신이 팔린 계산적인 개인들로 찍어 내어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커다란 질문 앞에 당신을 우뚝 세운다. 당신이 살고 싶은 세상은 정말로 어떤 세상인가? 사유의 깊이도, 또 사유를 촉발시키는 데서도 아주 뛰어난 저술이다."...

 

장하준 교수의 추천 글을 보고 어찌 안 읽을 수가 있나... 이 책 이름은 <차가운 계산기>,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런데 원제를 보니 "I Spend Therefore I Am." 독자에게 전달력이 없다고 여겨 제목을 새로 뽑았나 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내가 있으므로(존재하므로) 나는 소비한다? 말은 된다. 하지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의미가 더 경제학적이란 느낌이다. 대략 그 의미를 가늠하면서 책을 넘기니 서론에서 번역자는 "나는 지불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번역했네. 얼추 비슷하게 생각했나 보다.


서론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지하고 있는 경제학에 대한 관점이 매우 흥미롭다. 책의 원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Spend(구매 또는 지불... 이건 그냥 소비가 더 나아 보인다만...)라는 행동이야말로 오늘날의 삶을 규정하는 특징이라는 거다. 우리는 비용과 수익을 저울질하여 계산적인 평가를 한 후 거래를 하고, 그러고는 다시 거래를 찾아 떠난다. 여기서 이 책의 원제가 드러난다. 이런 '경제적 관계'를 통해 우리는 지불하며, 고로 존재한다는 거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자유주의적 경제관념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 하나 만을 원칙으로 삼아 조직되는 순수한 경제적 사회... 하지만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무임승차와 탐욕의 형태를 보이는 순간, 경제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따져보게 된다. 저자도 이런 점에서 경제학의 범위와 영향력, 경제학이 야기한 새로운 종류의 위기에 대해 몇 가지 예를 제시하면서 전개의 운을 뗀다.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여러 좋은 것들과 미덕을 지지하는 "피어남의 경제학 economics of flourishing"에 대한 설득이기도 한...


정말로 이 책은 간단하지 않다. 경제관념이 보통인 독자들은 몇 장 읽다가 덮을 것 같고, 관련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없는 난이도... 나도 보름에 걸쳐 겨우 읽었으니 쉽게 추천하거나 권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솔직히 정리 한번 해보는 것도 쉽지 않다.  민주적 자유와 자유시장을 동일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정도, 자기 이익 개념에 기초한 경제학이 인간들을 더욱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촉진시키기도 한다는 것 정도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목숨의 통계적 가치 VSL: Value of statistical life'란 용어는 불편하지만 자본주의 개념에선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 공부 중 하나이다. 생명이든 뭐든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비용-편익 분석과 VSL이 필요하다는 것은 건데, 이것의 전제는 모든 것은 계량화하여 가치를 매긴다는 거다. 비용-효율성을 따지는 신자유주의의 장점이 곧 허점이기도 하다는 것이 여기서 시작된다. 신자유주의자들도 마르크스처럼 인간성의 본질은 생산활동에 있다고 보지만 인간 자아의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인간은 그저 생산기계일 뿐이다.


모든 것을 계량화 한다는 의미를 확장하면 모든 것을 상품화 할 수 있다는 데 도달한다. 즉,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인간의 장기와 성적 행위 또한 비용-편익 분석에 의한 상업적 가격으로 매매가 이루어진다. 저자의 여러 예시 중에서도 이 두 가지의 명제(장기 매매와 매춘)는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강력한 설명 도구로 활용된다. 이처럼 계량 경제학의 계산 능력과 기술적 세련화 덕분에 경제학이 시장을 제치고 계산 능력의 최고봉에 올랐음을 잘 설명하고 있긴 하다만, 생명이나 사랑마저 계량화하는 현실은 '디스토피아'란 단어가 절로 튀어나오게 한다...

 

어떤 논의든 경제학의 영토로 끌려 들어오면 계산기와 엑셀 표를 통해서만 결론을 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경제학은 스스로가 묘사하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296쪽)는데 모든 현상을 비즈니스 논리(계량적 수치)로 대응하는 그런 경제적 세계관에서 경제적 미덕과 악덕의 기준은 뭘까? 저자는 여기서 오늘날의 경제적 인간이 갖는 자기 이익과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경제적 이성의 중심적 미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해가 될듯말듯...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넘어간다.

 

우리가 경제적 관점에서 콩팥이나 매춘 등의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인격체를 다른 인격체로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독특한 인격체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그들을 교환의 여러 규칙에다 철저히 복속시키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311쪽)

 

이즈음에서 정리해 보자. 책의 부제에서 디스토피아를 언급한 이유는 경제학이 추구하는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이 인격적 존재인 인간(서로서로 마음을 나누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그래서 굳건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을 관계 형성의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거다. 엄청난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행한 존재가 되었다는 거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이 초래한 진정한 비용이 되겠고...

 

저자의 결론적 주장은 우리가 인격체로서 맺는 인간관계들을 침식하는 게 아니라 강화해 줄 수 있는 경제학을 발견(또는 회복)해야 한다(314쪽)는 거다. 자기 이익에 기반을 두고 타인들을 도구적으로 가치 평가하는 경제학에서 벗어나야하고, '감정 없는 과학'이라는 실패한 모델을 떠나 수단과 목적을 통합할 수 있는 경제학을 발전시켜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피어나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제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던 어느 정치인의 얼굴이 겹쳐지더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애인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다(333쪽). 경제학이 '냉정한 계산기'처럼 여겨져도 경제학을 완전히 버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마무리하고 있다. "공공의 삶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풀자면 경제학의 독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학은 공학이며, 이 공학은 우리가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 내는 여러 원칙과 결정에 복무하기 위해 몸을 낮출 줄 아는 공학이다(342쪽)."...


지금까지 주절주절 거린 독후를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건 "탈인격화의 극복"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경제학이 어떤 것이지 화두를 던지는 그런 책이다. 참 어려운 책이다... (사실 나의 이해도로는 별 4개를 메기고 싶은데, 장하준 교수의 이름값으로 별 다섯으로 하였다. 내가 좀 줏대 없는 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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