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시작 - 알, 새로운 생명의 요람 사소한 이야기
팀 버케드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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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은 상징이며 철학이다. 누구에게는 아브라삭스를 향하는 출발점이며 또 누구에게는 탄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쓰이는 새의 알... 생물학자에겐 진화론적 관점에서 "완벽한 것의 표본, 또는 적어도 새알에 가해지는 다양한 선택압력을 완벽하게 절충한 결과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나에겐 그저 영양가 높은 먹거리로 생각되어지지만...


엠아이디(MID) 출판에서 '알'에 대한 과학 책을 내었다. "사소한 이야기" 시리즈의 하나로 펴낸 <가장 완벽한 시작 _ 알, 새로운 생명의 요람>인데 그 주제의 친근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저자의 저술 방식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처음에 알에 대한 선행연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반박 비슷하게 풀어나가는데, '그래서 결론이 뭐냐~' 라는 부분에 이르면 번번이 무얼 말씀하시는지 헷갈렸다.


내용이 부실하다는 건 아니다. 알의 난각(egg-shell, 卵殼, 껍질)에서 시작하여 안으로 향하는 탐구가 꽤 세밀하다. 다만, 새는 알을 "왜", "어떻게" 색칠하는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거다. 사실은 아직도 저자의 결론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도 아직도 알의 다양한 모양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왜 그렇게 생겼는지 설명을 못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평소의 상식과는 거리가 좀 있었고...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최근의 시사 뉴스와 관련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2장에 보면 맹금류의 부화 실패 원인이 살충제 DDT의 높은 축적 때문 이였음을 밝히고 있다. 얼마 전 신문 기사가 바로 겹쳐지더라. 2016년 1월, 영국의 마지막 남은 정주형 범고래 9마리 무리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 타이리섬 해변에 쓸려왔는데, 이들은 20년 넘게 새끼를 출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범고래의 죽음을 영국인들이 안타까워했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부검 결과 체내에 농축된 유독물질 PCB 농도가 기준치의 100배가 넘게 나왔다네. 결국은 환경오염이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새끼는 어떻게 밀실처럼 좁은 난각을 깨고 나오는 걸까? '부화'를 다루는 8장이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산란과 부화 사이의 간격이 둥지마다 27~41일까지로 다양한데도 한 둥지 안의 새끼들이 단 두세 시간 만에 전부 부화하는 동시성에 대한 부분... 같은 둥지에 있는 알들이 찰칵거리는 소리 또는 촉각으로 서로 신호를 보내 활동 시기를 맞춘다는 거다. 알들의 소통이라... 신비롭기만 하다.

 

흰자는 미생물이 필요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담고 있지 않은데, 어쩌면 이것이 흰자가 미생물을 막는 가장 놀라운 방법일 것이다. (215쪽)


한 분야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자기 일에 매진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저자 '팀 버케드'도 그런 분이란 걸 느낀 책읽기였다. 하지만 주절주절 늘어놓는 전개에 좀 질리기도 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나는 데이터의 시각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너무나도 매혹적인 알'을 통해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과학 관련 책이 앞으로도 계속 출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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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1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 좋습니다~ ^^

표맥(漂麥) 2017-06-12 09:25   좋아요 0 | URL
에고~~~^^
좋게 봐 주시어 고맙습니다.^^

cyrus 2017-06-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없는 과학 책을 읽으면 지루해요. 내용 중간에 사진이나 그림이 있어야 읽다가 쉴 수 있거든요. 한 챕터 안에 그림이 하나라도 없으면 쉬지 않고, 챕터가 끝나는 부분까지 다 읽습니다. ^^;;

표맥(漂麥) 2017-06-13 10:4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완전 동감...^^
이 책도 중간중간 그런 쉼터 볼거리가 있었더라면... 하는 느낌이 있었더랬습니다.^^
 

눈부신 하늘 싱그런 초록
6월이로다...

 

지니의 램프를
잠시 멀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그런 달이다...


1. 반도체 전쟁 - 4차 산업혁명 시대 중국의 역습

중국 반도체 산업의 육성책이 두렵게 느껴진다... 그나마 우리의 경쟁력 있는 먹거리 산업인디...

 

2. 사소한 결정이 회사를 바꾼다 - 우리가 직장에서 말하고 질문하고 행동하는...

책 제목에 공감 + 실감... 별스럽지 않을 듯한 사소한 결정들이 정말로 서서히 신뢰를 주네...

 

3. 단박에 카피라이터

요즘 관심을 가지는 분야... 이런 능력이 난 부족해...

 

4.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나도 저러고 싶다. 유능한 팀장은 팀원을 잘부리는 사람이더라... 난 그런 점에선 낙제점...ㅜㅜ

 

5. B급 국가 바이러스 - 추락하는 대한민국, 반등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라

위기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겠냐만... 그래도 요즘은 미래가 많이 불안하다... 반등의 마지막 기회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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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6-05 0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만조차 CPU를 설계하고 생산하는데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최강이라고 자화자찬에 빠져 있는 한국은 CPU 설계 엄두도 못내고 정말 큰일입니다. 중국은 CPU를 자체 설계·생산해서 자국산 슈퍼컴퓨터에 탑재하고 있고요. 그리고 대만하고 중국 장점이 Nvidia, AMD 같은 미국의 세계적 반도체 회사 CEO가 대만계(범중국계)이고, 그 밖에 미국 명문 대학에 반도체 관련 대만계/중국계 교수와 연구자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죠. 이들은 반은 스파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중국이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자체 CPU를 설계·생산하고 자체 슈퍼컴퓨터까지 만들어 슈퍼컴퓨터 연산능력 세계1위에 오른 건 스파이들 역할이 절대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도 중국 스파이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을 거예요. 그중 일부는 포섭된 한국인 첩자들일 겁니다. 한국이 반도체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에 오르려면 반드시 CPU, GPU, AP 등등 컴퓨터나 인공지능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 뉴로모픽(신경모방) 소자, 멤리스터 소자 등등을 반드시 설계·생산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가 대부분인 반쪽짜리에 불과한 것이죠.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3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죠. (한국이 방심할 경우)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서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의 탐욕은 세계 최강 중의 최강이기 때문입니다. 가용가능한 땅덩어리 크기 세계 1위, 인적 자원 압도적인 세계 1위(사실상 동남아국들 경제는 화교들을 통해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런 동남아국 화교들까지 치면 중국계 인구는 좀 과장해서 전세계 인구의 30%쯤은 된다고 봐야죠), 자금력 세계 1위, 공산당 일당독재국가 특유의 일사분란한 추진력 막강 1위 등등...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한 국가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그걸 지탱하기 위한 식량·자원·국토 따위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해서 먹으면 먹는 대로 몸집이 커지는 불가사리처럼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 중국 국민의 탐욕이 세계 최강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환경적·유전적·진화적·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작용기제대로 나아갈 것이라 봅니다. 그런 중국이 이젠 한국에서 빼앗아갈 혹은 훔쳐갈 기술은 반도체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소리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을 빼앗아가면 나중엔 땅덩어리까지 빼앗으려 들겠지요. 중국이 티베트(티벳)를 집어삼겼듯이, 북한과 남한도 집어삼키려 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한국은 이런 폭식증에 걸린 탐욕의 중국과 망상적 침략 본능을 자꾸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고 있는 일본 사이에서 너무나 미련하게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정말 걱정됩니다.

표맥(漂麥) 2017-06-05 13:04   좋아요 0 | URL
공감, 또 동감입니다...^^
 
로컬 차이나 - 급변하는 중국 시장, 현지 기업에서 답을 찾다
김도인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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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중국이 기업에게 기회의 땅일까? 얼른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다. 13억이 넘는 인구라 하니 1인당 천 원짜리 1개씩만 팔아도 13억 개, 무려 1조 3천억 원... 이 엄청난 유혹의 시장이 우리 곁에 있으니 어찌  기회의 땅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은 하나이지만 단일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면 굉장히 어려움을 겪을거라는 거지. 중국의 34개 행정구역 내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매우 이질적인지라 다양한 소비시장의 집합체라고 봐야한다는 거다. 

 

그리고 경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 지... 과거에는 외자기업이 중국 시장에 투자하기만 하면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곤 하나, 최근에는 치솟는 인건비와 중국의 자국기업 보호정책으로 때문에 외자기업들의 피눈물 나는 탈중국화(일명 '차이나 엑서더스')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 요인 외에도 우리의 경우 사드 배치로 인한 외생 변수로 국내 유통업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기회의 땅에서 무덤으로'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의 리스크가 큰 시장이 중국의 현주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중국과 중국 소비자, 중국 시장을 과거의 시각으로 접근했다간 '야반도주(정상적인 청산절차를 밟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철수)'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니만큼 중국 진출을 위해선 뭔가 새로운 전략 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 보다는 중국 소비시장에서 브랜드 파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지 로컬 기업(예를 들어 B. A. T.라 지칭하는 바이두, 알리바바그룹, 텐센트 등)으로부터 배울 점을 찾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로컬 차이나: 급변하는 중국 시장, 현지 기업에서 답을 찾다>는 책이 바로 그런 논지의 책이다.

 

어떻게 하면 중국 소비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고 비교우위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를 중국 현지 기업 및 브랜드를 사례로 풀어나가는데, 읽을거리가 제법 많아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 전개와 관점 및 진단(일대일로나 시장환기술, 중국 제조 2025 계획 등)이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 무리 없이 술술 읽혀지더만. 'Way 1 혁신, 판을 바꾸다'도 괜찮았지만 브랜드 네이밍(중국 정부는 자국에 진출한 기업은 반드시 중국어 브랜드 네임을 사용하도록 규정해 왔다)을 다루는 'Way 3 소통, 가치를 창출하다'편이 특히 흥미로웠다.

 

○ 브랜드 네임이 소비자가 브랜드를 인지하는 시작점이며, 또한 기업과 소비자 사이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역시 기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소비시장에서 왜 한자 형식의 브랜드 네임이 지배적인지에 대한 이유가 보다 명확해진다. (158쪽)


○ 국산 브랜드이든 외자 브랜드이든, 또는 관여도가 높든 낮든 간에 상관없이 중국적 요소가 들어간 것을 상당히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203쪽. 중국인의 소비 특징의 하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면서 선진 외자 기업에게 시장을 내어주고 기본적 생산 기술을 도입하던 도광양회의 중국! 지금은 일부 산업에서 엄청난 수준의 도약을 이루어 우리와 경쟁하거나 추월해나가는 형국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요 고부가가치 산업인 반도체에서도 따라붙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경제환경이 변화할수록 우리 또한 적응의 묘수를 찾아야한다는 점에서 이런 중국 본토 기업의 성공 스토리가 꽤 의미 있게 와 닿았다. '맛으로 백 리, 향으로 천 리, 이야기로 만 리.'라 했다. 중국의 상징적 요소를 잘 활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우리 기업들이 화이사상(華夷思想)의 험난한 파도를 아무쪼록 잘 넘겼으면 한다.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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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1 15:1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1 13:3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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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소설보다는 경제나 과학 서적에 더 끌리다보니 제 때 챙겨 읽질 못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이 소설이 왜 큰 상을 수상했는지 생각해 본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낯선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끝까지 끌어당긴 글빨이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현란한 미문도 없었고 그 줄거리 또한 뻔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구닥다리 신파 또는 말도 안 되는 전설 같은 구라를 풀어놓는다. '이게 뭐냐~'는 의혹이 일어날 때 작가는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는 이화접목의 공능을 툭! 던지면서 질타를 간단히 비껴나가네. 대단한 반탄지기... 그러면서 그 다음 스토리를 궁금케 하는 변주곡이 난무하니 그것은 진정한 글쟁이의 법칙 아니겠는가.^^

 

금복! 소설 전체의 아우라를 유지하게 하는 핵심 캐릭터인 이 여인은 제법 반반하면서도 뭇 사내를 끌어당기는 육체적 매력(페르몬?)과 경제 수완을 타고 났네. 가난한 산골의 삶이 싫어 열네 살 때 생선장수를 따라 남쪽 바닷가(고래가 등장하니 포항이나 울산 정도로 보면 될 듯)로 탈출한 여인이다. 생선장수와 같이 살면서 타고난 사업 수완과 함께 관능과 열정이 서서히 깨어나는데... 봉변을 당할 뻔한 자신을 구해 준 장골의 사내 걱정, 영화쟁이 깡패 칼자국, 벽돌쟁이 문(文) 등 수없는 남정네를 거쳐 가면서 굴곡 많은 삶을 살아가는 이 여인의 로망은 다름 아닌 고래... 그녀는 평대에 '마치 커다란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막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극장을 직접 설계하기도 한다. 물론 허망한 결론으로 이어지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해안엔 희미한 달빛 아래가 파도에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래밭에 쭈그리고 앉아 해수면 위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갑자기 집채만한 물고기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목격했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丈)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멍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분수처럼 뿜어올려진 물은 달빛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흩어졌다. 그녀의 배 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거대한 감동이었다.

 

금복은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빈 덕에 걸어놓고 알몸으로 물 속을 향해 걸어갔다. 밤새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차가운 파도가 휘감았다. 그녀는 파랗게 빛나는 고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래는 거대한 유선형의 몸체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꼬리를 철썩거리다 이따금씩 힘찬 분기(噴氣)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매끄러운 거죽이 손에 잡힐 듯 코앞에서 번들거렸지만 고래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래는 다시 한번 크게 물을 뿜어낸 후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깊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허탈해진 그녀는 지칠 때까지 물 속에서 나오지 않고 다시 고래가 솟아오르길 기다렸지만 끝내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완전히 기진해서 그녀가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바다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등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게 했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제 그녀를 다시 어디론가 데려갈 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바람을 불렀을지도...(65쪽)

 

금복에게 고래는? 그건 순수에의 갈망 즉, 자신의 고된 역정에 대한 순수에의 동경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금복의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고만다. "그날 이후 금복을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그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잰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271쪽)"


춘희! 금복의 딸인데, 심상치 않은 탄생의 설화 속에서 전반부와 후반부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생선장수, 걱정, 칼자국을 모두 거치면서도 한 번도 애가 서지 않았던 금복이 전쟁의 와중에서 애를 낳았는데... 이 애가 걱정을 완전히 빼어닮았다나뭐나... 걱정이 죽은 지 이미 4년이나 흘렀는데 말이다. 임신기간이 4년? 고래로 변해 바다로 간 걱정의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참 어렵다. 이럴 땐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라고 그냥 넘겨야 하겠지... 어쨌거나 금복이 거대한 고래에 매료된 것처럼 남성성을 우러러 보다가 허망하게 화재로 자멸하는 모습이라면 춘희는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코끼리와 대화를 나누는 등 내면의 순수성으로 붉은 벽돌을 만들어 내고, 이 벽돌은 남산 중앙국립극장이라 여겨지는 대극장의 자재로 사용됨으로써 금복의 고래극장 대비되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렇게 이 소설은 망아의 상태에서 허랑한 시간들을 흘러 보낸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소설이란 느낌 속에서 틀에 박힌, 흔히 보는 정형화(?)된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가치이다. 바둑계를 뒤흔든 ‘알파고’처럼 말도 되지 않는 착점이라 생각했더니 그걸로 전체를 엮어가서 속절없이 항복하게 만드는 그런 능력을 보여주는 소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멋진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듯한 저자의 마무리가 소설의 전체를 아우르는 백미이다.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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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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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 자본주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자본주의는 막을 내릴 것이다... 학자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오죽하면 이 시기의 런던타임즈는 "마르크스가 돌아왔다."는 제목을 썼겠는가. OECD의 전망을 보더라도 앞으로 50년 동안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은 '약세'일 것이고 불평등은 40%나 증가할거라네. 개도국의 경우 2060년쯤 되면 현재의 성장 동력이 소멸될 거란다. 어떤 시나리오가 맞든 간에 2050년쯤 되면 기후변화, 고령화, 인구증가 같은 문제들이 심각한 현안이 될 것이고, 이때까지 어떤 지속가능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세계는 혼돈 그 자체일거라 한다.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은 바로 그 대안에 관한 책이다. 개념은 의외로 간단하다. 맨 먼저, 신자유주의를 폐기함으로써 세계화를 구원하자는 거다. 대규모 금융거래를 제한하고 긴축 조치를 철회하고,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투자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길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하지만 1% 기득권 세력에게 신자유주의는 종교와도 같은 힘을 가진다. 이 체제를 실천할수록 부를 축적해 주니 어찌 기분이 아니 좋겠는가.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모든 길은 과거 소련에 닥쳤던 것과 같은 재앙으로 귀결된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없다.'는 등, 상위 1% 보호 세력(신자유주의 숭배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일인데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1. 국가 간의 불균형은 세계화의 중요한 속성이며, 이 불균형을 바로 잡는 방법은 금융산업의 붕괴밖에 없다. (67쪽)

 

저자는 작금의 위기(장기순환 패턴의 붕괴)가 시장경제 체제와 정보화 경제(네트워크 경제) 사이의 장기적인 불일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라고 파악하면서, "자본주의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더 이상 유토피아적인 공상이 아니며, 포스트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형태는 현재의 체제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 그리고 그 대안적인 체제가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목표라 한다. 즉 자본주의가 새로운 기술(정보기술, 정보재, 협동적 생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될 때 포스트자본주의가 필요해지고, 발전된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새로운 행동과 조직들이 동시다발로 출현할 때 포스트자본주의는 현실이 된다고 한다...

 

*2. 모든 부정적인 현상들에 대비되는 단 하나의 긍정적인 현상은 기술혁명이다. 정보경제는 시장 경제와 양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신자유주의가 동요하고, 붕괴하고, 좀비 상태에 빠진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72쪽)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노동가치설'인데... 마르크스가 처음 틀을 잡았던 이 이론이 오늘 날의 정보자본주의를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낼 수 있다네... 현재의 시장 시스템 내부를 계산하고 예측하는데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이 구닥다리가 정보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가격결정 메커니즘·소유권·노동과 임금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유일한 이론이며, 지식경제에서 가치가 어떻게 생성되며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모형화 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일한 이론이라네(258~283쪽)... 오늘날 구조적 위기 앞에서 경제학이 왜 이렇게 고집불통인지를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설명으로 이어지는 게... 마음에 든 부분이다.


*3 정보에 기반하는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될 수 없다. 상품의 가격을 0으로 만들고 지식재산권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노동가치설의 유용성은 이 점을 설명해 준다는데 있다. (302쪽)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보자본주의(인지 자본주의라고도 불리는...)의 출현이 자신들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며, 정보자본주의에 큰 결함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정보기술의 발달이 자본주의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가격, 소유구조, 임금을 붕괴시킨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진보가 자본주의의 능력 고갈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더라.
그러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과정에서의 기술, 사회적 갈등, 사고방식, 외생적 충격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어떻게 예상되는가? 기후 재앙, 고령화 등 인구 변화 등의 소재로 공적 연금 _연금을 '자본주의적 공산주의'라 불렀던 것의 결정판이라네_ 비판하는 내용이 눈에 띈다. 금융의 위기는 세계경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그 첫 단계는 정보의 붕괴와 에너지 파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정부 차원의 분열도 문제가 될 것이고...

 

정리를 해보자... 정보자본주의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 일련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휘청거리는 한쪽에선 네크워크 환경이 자생적이고 점진적으로 새로운 생산 양식(자율적, 탈중심적, 협업적인 공유재 기반 동료생산 commons-based peer production)을 출현시키는 포스트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전환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는데, 시스템 앞에서 인간의 의지력이 가지는 한계를 이해, 생태적 지속 가능성,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필요, 모든 각도에서 문제를 공격, 정보의 힘을 극대화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의 경제적 소멸이 눈에 띈다.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는 거지(위키 국가). 협력적 노동의 확장, 독점 억제, 시장의 힘을 없애고 금융 시스템을 사회화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 낙오자가 안 되도록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통제가 없는 네트워크의 시대...

 

네크워크에 의한 변화는 벤클러의 <네트워크의 부>나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통해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책은 훨씬 거시적이다. 저자의 포스트자본주의 모델이 맞아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컴퓨터 산업과 인공 지능의 발전을 보면 앞으로의 변화를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책의 말미는 참 마음에 든다. "1%의 엘리트 계층이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그럴싸한 이미지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철저하고 노골적인 전제정치로 대체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좋은 소식도 있다. 99%가 그들을 구원하러 오고 있다. 포스트자본주의가 그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읽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자본주의에 내공 있는 분들에게나 쉽게 이해되겠구나~ 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경제학도라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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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성능이 날로 향상해도 불평등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정보불균형 문제를 무시할 수 없거든요. 저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

표맥(漂麥) 2017-05-08 21:22   좋아요 0 | URL
중세 성주, 귀족과 일반 백성의 관계가 옷만 갈아입은 것이 오늘날 자본지주와 월급쟁이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포스트자본주의도 또다른 패션 변화일 뿐이지 크게 달라지는 게 뭐있겠습니까. 그저 흥망성쇠의 모습을 띈 인간사의 변천일 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