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CD를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베를린 필을 지휘한 1943년 전시녹음이다.열악한 음질을 보상하는 주술적 마력이 있는 연주다.눈을 감고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려본다.세상은 묵시록적 예언처럼 지옥의 한장면을 옮겨놓았다. 전쟁터의 살육,민간인들에 대한 폭격,홀로코스트의 굴뚝에서 새어나오는 인간의 냄새를 담고 있는 연기. 가스실의 비명과 절망감.....유대인들이 가스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연주회장을 때리고 있는 베토벤 소리가 겹쳐진다..연주회장에는 기득권층들이 앉아있다.대부분은 나치독일의 동조자,아니면 관망자들이다.포디엄 위에선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처럼.그날도 그의 휘날리는 손짓에 따라 강렬한 음이 창조되 듯이 지도자를 외치는 공포스런 집단의 구령소리에 인류의 가장 혐오스러운 작품이 만드어지고 있었다. 

팩스턴의 <파시즘>은 500페이지쯤 되는 두꺼운 책이다.내 경우 이런 두꺼운 책을 처음 잡으면 마치 먼길을 나서는 사람 처럼 비장해진다.마치 여행가기전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 듯 쉬이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가짐을 새로 잡는다.하지만 노련한 안내인 팩스턴을 따라 파시즘으로 여행하는 길은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누구든 몇 장의 책장만 넘기면 오히려 처음에 단단히 먹었던 마음이 머쓱해진다.그리고 남은 파시즘 여행에 근거를 알수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팩스턴이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그것은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라는 단 하나의 짧은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것 저것 주변 학문을 끌고 들어와서 파시즘을 설명하지도 않는다.20세기 초반 유럽을 휩쓸었던 그 광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파시즘"이란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공법 택한다.나처럼 앎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러한 직구위주의 단순한 구질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이 노련한 투수는 직구 위주로 승부하는 대신에 만 상대타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또 함께하고 이다.정통파 투수 팩스턴은 그 첫 투구로 파시즘의 시조가 되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탄생부터 분석을 시작한다.

저자는 우선 파시즘의 탄생,정치제도 안에 뿌리내리기,권력장악,권력행사,파시즘의 급진화나 정상화 라는 다섯가지의 연대기적 구분을 통해 파시즘의 정체를 파악하자고 권한다. '파시즘 따라잡기' 를 위해 저자는 책전반에 걸쳐 독자들이 가진 몇가지 오해에 대한 정정을 요구한다.그가 강조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저자는 우선 대중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파시즘 이미지,즉 파시즘 지도자에게로 집중되어온 "이미지로서의 파시즘" 과의 작별을 요구한다.지도자 중심 시각은 파시즘 논쟁에서 '의도주의'(즉 지도자의 의도에 의한 정치력행사)로 볼 수 있다.그 반대는 '구조조의'(파시스트정당 구성원들의 공통집약된 정치력 행사)라는 것이다.반인들은 영화의 이미지때문인지 파시즘을 일탈적인 지도자의 과대망상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이는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유동성에 대해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저자는 파시즘이 고정된 하나의 정형화된 정치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 내부에서도 수많은 정치적 갈등과 다양한 정치스펙트럼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각 국가별로 파시즘이 발현단계에서 유사하고 그들의 문화적 장치가 유사하다.하지만 내부로 눈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전쟁에 대한태도,기존 보수,귀족층과의 관계성 등에서 천차만별이다.저자는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 대중의 동의와 보수세력의 옹호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차레 강조한다. '일상적 파시즘'에서는 '대중동의'라는 것이 무슨 대단한 발견인 양 행세하지만 이미 파시즘이란 요소 안에 대중동의는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동물원에 동물이 기본 요소인것 처럼 파시즘에서 대중동의는 필수적이다.동물원에서 동물을 봤다고 호들갑 떨수는 없는 것이다.물론 이런 비유는 또 이런 공격을 가져올수 있다. 결국 동물원보다 동물이 핵심아니냐는 말로 말이다.즉 '파시즘이라 정치양상보다 그 안에서 동의를 해준 구성원들의 문제다'라고 주장 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스스로 '모든게 다 사람의 일이지'라고 해버리는 것과 같다.미리 결론을 언급하자면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제기는 의미있으나 결코 <고전적 파시즘>과 용어의 혼동을 유발하는 '파시즘'이란 말을 사용해야 하나에 의문이 생긴다.

.파시 즘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회정서적 상황에서 발생한 과격한 정치현상이었다.특정한 시기라는 것은 1차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화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초 유럽을 말한다.특정한 사회,정서적 요이니란것은 두려움에 근거를 둔다.사회주의의 세력확정에 대한 보수층과 중간계급의 두려움,전후 정치경제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의 무력함 등이 그것이다. 이 특정한 정치현상은 또 모순적이게도 당시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였다.저자는 국가사회주의나 국가생디칼리즘이 유럽 각 국에서 탄생했던 과정을 설명한다.저마다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개 공통된 파시즘의 정서를 이들은 공유햇다.집단우월주의,배제적폭력,사회진화론,강한 카리스마에 대한 동경,자신의 집단이 희생자가 되었다는 믿음등이다.성공한 파시스트정당들은 새롭게 떠오르는 대중정치의 시대를 간파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포퓰리즘을 택한다. 유럽에 만연한 파시즘적 공통 정서에도 불구하고 어떤 국가는 파시즘이 정치전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저자가 파시즘의 기원만을  가지고 파시즘 일반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초기 파시즘의 형태는 당시 어디에나 있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세계공황과 기존 정치체제의 무능함에 대한 반동이 가장 먼저 지적된다.자유주의 체제의 허약함을 비집고 들어온 파시즘정당들은 대중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게 된다.무솔리니의 경우 사회주의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농촌지역을 거점으로 세력을 넓혀간다.물론 여기에는 자경단 형태의  폭력단체가 중심이된다. 지역의 파시스트 우두머리들을 통합해내며 무솔리니는 전국구로 자리를 잡게된다.우선 좌파를 적으로 상정하고 기존보수세력과 종교세력의 힘을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사용한 연극적인 제스처나 웅변등 대중선동의 능력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권력을 장악하는 단계에서 파시즘은 다른 세력들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게 된다.무솔리니나 히틀러 모두 직접적인 쿠테타로 정권을 쟁취하지 않는다.기존 보수세력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대규모 집회를 통한 압력을 통해 기존 체제에서 권력중심부로 옮겨가게 된다.당시 보수세력들은 풋내기 대중선동가들의 정치능력에 대해 경시했기 때문에 그들이 권력 핵심에 오더라도 자신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동형조직"이라는 파시스트정당의 독특한 이중 정치구조를 통해서 자신들의 영역을 정상영역 안으로 확장해간다.동형조직이란 것은 당과 정부기구가 2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흔히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나치친위대같은 것은 경찰조직이며 정부기구가 아니라 당조직이다.나중에는 나치가 유일당이 되므로 그 권한은 더욱 막강해진다.물론 파시즘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와 독일도 같은 행태를 보인것은 아니다.또 파시즘 지도자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난후 당내 급진파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권력의 정상화단계에 이르게 된다.

파시즘의 절정은 전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대외전쟁을 통해 파시스트들은 국민의 의도적 통합을 이루어낸다. 파시즘의 정서가 반개인주의 반 자유주의의 정서였기때문에 전쟁은 무었보다 좋은 통합의 문화적기제인 셈이다.그리고 전쟁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추방,격리 시켰던 유대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이루어진다.대량학살 역시 동부전선을 중심으로 행하여지는데 대개가 현지의 친위대나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다.히틀러가 이를 직접 지시한 명령서는 어디서도 발견된 적이 없으나 비선에서 이를 동의했다는 것은 자명해보니다.총살에 의한 대량학살은 가스실이란 도구를  창안해내며 정정을 향해 치닫는다. 파시스트들은 애초부터 비정상적 영역에 대한 배제에 익숙해있었다.외국인이나 유태인들에 대한 혐오가 그것이다.아리안족의 우수성이란 이름하게 모인 인종적 민족주의도 그 예이다. 바로 나치 우생학이란 희안한 생물학도 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파시스트들의 반인륜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성은 결국 자신들을 인류 역사의 최악의 가해자로 낙인찍게된다.결국 타인을 향했던 폭력의 칼날은 자신을 향하게 되고 자기파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저자는 결론에서 고전적 파시즘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그리고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파시즘이란 용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한다.지금도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상적 파시즘>이란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저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일상적 파시즘은 파시즘의 전제조건에 해당한다.집단주의,군사주의문화,가부장제,인종차별주의등이 그에 해당한다.이것은 반세기 전도 그렇고 현재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는 요소이다.또 한가지 지적되는 것이 파시즘에 대한 '대중합의'의 문제이다.우선 파시스트 정권은 적의 개념을 명확히했다.좌파와 유대인,그리고 일부 파시스트 급진파들이다.일반인들의 경우 파시스트 폭력에 스스로 무관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여기에 패전국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식을 자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수렴할때 비판적 시각을 결여한 일반인들의 경우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쉽게 동의를 보낼수 있을 것이다.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을 불러일으켜 국민여론을 강력하게 모으기 전까지 파시스트정당의 독일내 지지는 40% 대였다고 한다.결코 작은 수는 아니다.하지만 전폭적 지지와는 거리가 있다.파시즘 정당이 정권을 잡은후 자유주의의 비판적 영역은 제도적으로 봉쇄당한다.요즘 처럼 정보네트워크가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조작과 통제의 헤게모니는 전적으로 파시스트들에게 있었다.대부분 독재국가에서 그러하듯이 이후 지지율은 올라갔을 것이라 유추해도 별 문제가 없다.그리고 만약 파시스트 정당이 정상화를 이루어내고 장기집권 체제로 들어갔다면 내부적인 비판과 체제전복의 여론도 있었을 것이다.그러기에 파시스트 정당은 자멸이란 형식으로 단명하고 말았지만 말이다.이러한 요소를 무시하고 대중성이 갖는 몰개성성,중우함을 파시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왠지 모난 구석이 생긴다.저자 역시 이것을 파시즘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더 중요한 것은 1차적 요소들이 정치적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 없는가의 문제라고 본다.자유민주주의의 선두라고 하는 프랑스,미국등지에서도 이러한 파시즘의 1차요인들은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파시스트국가라고 하지 않는다.그리고 파시스트 국가가 되지도 않았다.물론 일상적 파시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파시즘의 해결만으로 파시스트적 속성의 문제가 전부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본다.즉 상부구조의 해결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칫 도덕주의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지만 나름대로 일리도 있는 말이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일상적파시즘은오히려 대중의 문화와 심리학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문화와 심리라는 것도 사회정치적 한계에 직접적 영향을 받긴한다.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만약 일상적파시즘의 상상력과 사회응용력에 매력을 느껴 파시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파시즘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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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 2005-04-15 13:20   좋아요 0 | URL
'파시즘이란 정치양상보다 그 안에서 동의를 해준 구성원들의 문제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리뷰 잘 봤습니다^^

드팀전 2005-04-16 09:39   좋아요 0 | URL
시아님>고맙습니다.유명한 그림이네요.
부용님><일상적파시즘>에서 주장하는 이야기인데..이 책의 저자는 그부분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개인적으로 '대중동의'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무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말이죠.어쨋거나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