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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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위의 은행잎이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맞춰 팔랑팔랑 춤을 춘다. 매월 말 고지서를 들고 나타나는 우체부처럼 겸허를 알려주는 계절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때 쯤 되면 돌돌 말아 봉인해 놓은 '선한 마음' 이란 것이 살짝 일어난다.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죄수들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끝이 좋으면 '천국이 그대들의 것' 이므로.

그래서 나도 한껏 큰 마음을 냈다. 그 동안 고마운 분들에게 영화에 대한 나의 엄청난 비밀을 슬며시 알려주려고 한다. 영화가 100배쯤 재미있어지는 비밀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 <스토리텔링의 비밀>이기도 하다.먼저 고사리 손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라.

그렇다. 바로 그렇게. 비밀은 두 가지다. (기호 2번이 아니라)

첫 번째 비밀은 이미 말했다.언제 말했냐구? 분명히 이 글에서 이미 말했다. 당신이 부주의해서 흘린 과자를 수퍼주인에게 다시 달라고 요구하지 말라. 첫 번째 비밀은 대문에 써있다. 즉 내가-우리가-영화관이나 TV앞에 앉아 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아에 수강 등록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저자 마이클 티아노의 첫번째 비밀도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 째 비밀이 궁금해 질 것이다. 청룡영화상의 김혜수처럼 야한 드레스를 입고 살짝 뜸을 들여줘야 제격이다. 개봉박두!! 

모든 비밀은 그것이 비밀이라는 언어의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이미 비밀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두 번째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닌 것을 비밀이라고 말함으로써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그 비밀이 무언지 알고 싶게 만들고 마지막에 가서 그 비밀은 사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닌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문장에 '비밀을 9번을 썻다. 이 문장의 기획의도는 좋은 문장이 아니라,'비밀'을 몇 번 써서 한 문장을 만들수 있나 연습이었다.가독성 최악이지만 해보면 재미있다.)

난독증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을 위해 정리한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에서 말하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라는 말이다.즉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체험하고 있는 것들,즉 일반화 시키지 못했을 뿐-우리의 몸과 정서와 감정들이 움직이는 방식들에 대해-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그리스 시대부터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영화나 TV를 보아왔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떤 원형적인 장치들로 부터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진부하단 말인가? . 아니다. 이건 오히려 새롭다는 말이다. 이건 마치 한국인이 한국어 문법책을 볼 때 느껴지는 신선함과 비슷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동적인 반응으로 나오는 것을 문법책은 일반화된 규칙으로 설명한다.우리에게는 '그냥 조상때 부터 그래서 그런다' 가 제일 쉬운데 말이다. 이 책도 결국 그런 것이다.

"나는 당신들의 정서가 무엇을 원하는지,그리고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원칙들을 가지고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영화의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글이다. 또는 반대로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이들을 위한 책이기도하다.하지만 굳이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욕심이 없어도 상당히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스토리라인과 관련된-미디어적인 수용습관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 보려는 이에게는 좋은 안내서이다. 즉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작가가 되려는 이들 보다는 오히려 미디어 수용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 오히려 이 책은 미디어 교육 교재로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는 왜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하는가? 우리는 왜 뉴스를 보기전에 소녀시대의 윤아가 나오는 <너는 내 운명>을 빠짐없이 보는가? 우리는 왜 헐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나면 산뜻한데, 이름도 어려운 동유럽이나 아랍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 화장실에 두고 온 휴지가 생각이 나는가?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우리가 늘상 접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빠뜨리는지,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수 천년전 제우스의 자손 중에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저작권료도 소멸된 고전에 기대어서 밥상 하나 차리는 것이다.

마이클 티아노가 말하는 좋은 스토리를 쓰는 요령은-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관객들이 쏙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이다- 몇 줄로 정리된다. 특히 저자는 풀롯의 중요성에 대해 누차 강조한다. 즉 구조의 중요성이다. 이건 비단 시나라오 뿐 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강조되어야하는 점이다.(반성 해야겠다. 막쓰는 경향이 있어서리...) 자...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얻은 금과옥조들이다.

행동으로 부터 시작해라.(액션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만들기 위해 비극적 행위를 사용하라./ 모든 극적 행동을 개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연결하라./ 이야기가 실제있었던 것 처럼 느껴지게 하라. /운명의 반전과 발견의 순간을 구축하는 방식을 찾아라./ 가슴 아픈 도덕적 갈등을 심어라./ 시나리오 안에 당신의 도덕적 세계를 펼치고 선과 악을 중재하는 인물을 창조하라.그리고 당신의 주인공이 세상의 절대선을 대변하게 하라.

잘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의 스토리는 대개 이런 규칙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이클 티아노는 이러한 주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록키>,<아메리칸 뷰티>,<글라디에이터>,<대부>,<블레어위치>,<엔젤하트>,<타이타닉> 들의 영화를 예로 든다. (나는 <엔젤하트>를 무척 좋아했다.미키루크는 그 때가 전성기였는데..로버트 드니로가 사탄으로 나온다.)

<시학> 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6장) 연민이란 누군가 부당하게 불행해지는 것을 볼 때 생기며, 공포는 우리도 그런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생기기 때문이다.(13장)

티아노는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을 최고의 카타르시스장면으로 든다.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디카프리오는 운명의 극적 반전 속에 자신을 맡긴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꽁꽁 얼어죽는길을 선택한거다.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극대화된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홀딱 빠져들고 그들이 마지막 대사를 힘겹게 한마디씩 뱉을때 마다 객석은 훌쩍이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카타르시스가 더 있다. 나이든 윈슬렛이 죽으며 디카프리오를 그리워하는 장면이다. 만약 윈슬렛이 그렇지 않고 혼자 온갖 남성편력을 과시하며 성이 다른 수많은 아이들의 축복 속에서 수 십억 달러의 유언장의 내용을 읽다가 죽었으면 어땟을까?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관객들은 윈슬렛이 곱게 늙고 그 거대한 사랑을 간직하며 다시 디카프리오를 천국에서 만나주길 바란다. 영화꾼들은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이 지점은 영화 미학의 심각한 주제와 관련이 있다. 마이클 티아노는 당연히 헐리우드의 주류적인 스토리 구조를 최고로 치고 있다.(물론 이것이 보편적이고 가장 널리 확립된 구조이다.)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다른 길을 걷는다. "왜 영화가 관객들을 빠뜨려야 하지?" "왜 카타르시스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의 취향에 복종해야 하지?" " 감정의 배출을 하고 극장을 나가면 그것으로 영화의 목적은 끝인가?" ....결국 질문은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이지?" 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티아노가 그런 질문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는 헐리우드 작가이다. 비록 헐리우드 밥을 먹고 있지만 그런 질문들에 대해 모를리는 없다.단지 존재의 양식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헐리우드 오리엔티드된 방식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들의 반근거가 될 만한 영화는 수두록하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탁해서 쓰면서도 머릿 속에 반대 논리로 제시할 만한 영화가 툭툭 끼어들었다고 말한다. 헐리우드 영화 역시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나 존 포드의 재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작으로서의 원칙'에 대해 집중한 것이다. 몇 몇 천재들을 빼놓고는 뛰기 위해서 걷는 방법부터 배워야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야기꾼이 될 수는 없다. 또 헐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도 없다. 대신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보면서 우리가 매일 매일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 대해 한 번 더 분석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쓴다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때 그 스토리라인이 담고 있는 함의들과 그 작용점들에 대해 조금은 더 알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 본 영화들을 티아노가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정라인에 따라 배열해 보자. 물론 그런 배열은 훈련을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총체적인 완성품으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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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11-29 17:59   좋아요 0 | URL
내년 1월에 이 책에 대해서 강의를 할 예정인데, 유익하게 참조하겠습니다.^^

드팀전 2008-11-29 23:28   좋아요 0 | URL
^^ 저도 가서 듣고 싶군요. 최근 영화나 한국영화들을 예로 들면서 하면 학생들에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