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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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이에게서 반가운 선물이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고 겨울이었다, 뭐든 감추기에 좋았다. 고질병처럼  12월만 되면 헛헛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마지막 달력 앞에서는 언제나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황망하다.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온다는 거. 수십 번을 반복해도 낯설다. 마음이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헉헉대는 중이었다. 꾸역꾸역 입맛 없는 밥을 먹듯이 삶이 그러할 때. 

담담하게, 조선시대 여염집 여인네의 단아하고 단단한 마음 한 자락을 들여다보듯이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읽기 전에 며칠을 두고 바라본 것과는 다른 속도감이다.  조곤조곤 무상한 글은 강한 흡인력을 동반한다. 몇 번이나 글쓴이의 이력을 더듬었다.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살아 왔을지. 목소리는 어떤 빛깔을 띨지 궁금했다. 

TV에서 보던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네들의 획일화 된 모습에 색과 향이 깃들인 듯. 마음에 창을 달아 놓은 듯. 결혼하여 아이 낳고 남편 지위에 따라 덩달아 신분이 오르지만 그게 무어냐고 되묻는 여인의 내심은 흥미롭다. 아무리 지아비라지만  남편이 곧 내가 될 수는 없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정서에 대한 시비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남편과 혼인했다면 그 다른 누군가가 받았을 작호였다. 나는 그저 변수에 다름 아니었다. (64쪽) 묘연은 그러한 여인네다. 천하의 한량, 파락호 아비를 향해서도 가감없는.  평소 빈틈없던 묘연의 부재를 틈타 아내의 세간을 뒤지는 남편 태겸의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난다. 거친 손의 무덤덤한 아내를 귀엽다 생각하는 성정이 불같은 남자의 여린 속이 엿보여서. 친영가서 아내를 맞이했을 때도 제일 먼저 내 마음을 붙든 것은 반항기 가득한 아내의 눈빛이었다. 임금 앞에서 그런 눈으로 서 있다가는 역심을 품은 자라 의심받을 만했다. 남편 자리가 맘에 안 든다고 혼례청의 상을 뒤엎는 신부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적진에 홀로 인질로 잡혀 있는 포로를 구출해내오는 것만 같았다. (54쪽) 이러한  속마음만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남편이라서 이전과 이후에 부린 패악이 다 용서가 될 것 같다. 태겸은 현대물의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의뭉한 인물이다. 

깊은 밤이었고 봄이었다, 미치기에 좋았다. 내가 소설에서 찾는 것은 부유하는 마음 둘 곳이다. 딱 좋은 자리를 찾았을 땐 심장이 두근댄다. 하늘로 두둥 날 듯이 긴장한다. 그 자리의 주인이 되어 어떤 비극이건 기쁨이건 감당한다. 같잖게 위로도 건넨다. 비틀린 여문의 연정과 엇갈린 향이의 기다림이 회복 불가능의 종말로 치닫는 순간도 무던하게 지켜보게 하는 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결코 같이 널을 뛰게 하지 않는다.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맹목적인 일편단심에 오히려 마음이 간다. 향이의 비극은 온전했던 남자를 미치게 만들며 희석된다. 시어미한테 쫒겨난 아내를 쫓아간 여훤의 우직함은 또 어떤가. 모름지기 부부란, 사랑은 이래야 한다고 이르는 것 같다. 그러나 냉정을 가장한 애정에 매달려 아내 둘과 자식 둘을 잃고 버린 최약국이란 미련한 사내만은 이해 불능이다. 본성이 애정결핍증이라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특이한 종자다. 

한낮이었고 여름이었다, 넘치기에 좋았다.  원래는 하나였던 몸이 둘로 나뉜 희우와 난이의 부서질 듯 여리고, 속이 곪아 썩어나도록 인내하는 방식은 사실 최악이다. 외조부를 빼 박은 희우와 같은 할아비를 두었어도 종의 신분인 난이 태생부터가 기겁할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둘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 속 사랑 중 가장 고고하게 치장을 한다. 신분의 벽, 핏줄의 벽의 뛰어 넘어 어쩌면 불륜까지 암시한다. 온갖 방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만나지도록 맺어진 운명을 탓할까. 거슬러봄 직한 세상이라고, 지킬 수 있는 것을 지켜내며 살아내길 바란 평범치 않은 어머니 묘연이 있었지만 허깨비가 되어서도 제 길을 걸어가는 희우를 탓할 수는 없다. 어째서 한번이라도 손을 내밀지 않았느냐고 난이를 윽박지를 수도 없다. 지킬 것을 지키고 책임 질 것을 지며 가는 둘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또 밤이었고 가을이었다, 버리기에 좋았다. 이 이야기 속 모든 인연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인 감선사의 현각스님이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던 묘연의 남동생 기현임이 드러나는 순간은 풀리지 않던 매듭 하나가 저절로 풀어진 모양새다. 모든 죄의 원천인 아버지의 방만함을 지고가려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은 그의 뜻을 거스른다. 하연이 죽고, 향이가 죽고, 희우가 병들고, 난이가 실종되는 그 모든 사정을 짐작하지만 막을 수 없음에 절망하는 사람이다. 여동생 묘연처럼 온몸으로 맞서지도, 하연처럼 짓밟히지도, 어머니처럼 이중적인 얼굴로 견뎌내지도 못한 비겁한 인물로 단정하고 싶지만 그건 그의 영혼이 극단적이리만치 순결해서다. 묘연은 어머니와는 반대로 살리라 결심하며 시집을 가고, 하연은 숨을 곳을 찾아 시집을 가고, 기현은 자신까지도 버리고자 출가를 한다.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가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다. 

내간체라는 중독성 강한 글의 영향인지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마치 소설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잘 쓰여져, 잘 읽히는 소설 한 권을 읽은 후의 포만감 속에서 행복이나 불행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담담함이 내내 물처럼 흐른다. '달을 먹다'라는 열정적인 제목은 소설의 분위기를 사뭇 무겁게 만들지만 출구없이 막막한 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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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님의 문체와 비슷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랫만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 2007-12-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랫만이라 이 동네가 낯설기까지 합니다. 떠나고, 변하는 것에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흘렀어도 익술하질 않습니다. 내년은 올보다 덜 힘들었으면, 님도 그러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