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안 해요?
큰미미
아무리 나이가 없는 미미라지만, 작은미미를 비롯한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결혼과 육아의 과정을 밟고 있는지라 ‘결혼 안 해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애 안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별생각 없이 ‘저야 늘 하고 있죠(일과 연애하는 중)’ 혹은 ‘이렇게 바쁜데 연애까지 하면 너무 신경쓰일 것 같아요(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김연아 선수도 연애하는 마당에)’정도의 답으로 눙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혹은 ‘이상형이 뭐예요?’라는 질문에는 늘 조금 더 뜸을 들이게 된다. 그러다 결국 ‘음…… 음악 안 하는 남자?’ 하면서 웃어넘기고 만다. 물론, 농담이다.
나는 미미시스터즈 활동 외에 ‘비치볼 트리오’라는 해변풍의 하모니를 선보이는 보컬 그룹의 멤버이기도 한데, 비치볼 트리오의 첫 음반에 수록된 〈기타맨〉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썼다. 가사는 이렇다.
잠수 타고 사라진 김기타, 첫사랑 찾아 떠난 이기타, 돈 빌리고 나른 박기타~ 맨맨 기타맨, 맨맨맨 기타맨, 맨맨 기타맨, 맨맨맨 왜 기타맨, 치명적인 그대, 기타맨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사람들은 ‘혹시…… 경험담?’ 하며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곤 한다. 뭐,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이미 마음대로 생각하며 재미있어하고 계시니,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 대답한 적은 없다. 하지만 주위의 여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레퍼토리가 하나 있기는 하다.
“만약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면 기타, 보컬은 노노. 비추야. 정 한번은 꼭 만나보겠다면…… 차라리 베이스나 드러머를 만나! 그리고, 만날 거면 빨리 만나!!!”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라는 포지션은 대부분 가장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다. 말 그대로 프런트 맨,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베이스나 드러머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유순한 편이다. 그들은 보컬과 기타가 매력을 마음껏 내뿜으며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현실적으로 팀 내에서 스태프의 역할을 도맡아하는 쪽도 리듬 파트 멤버인 경우가 많다. 드물게는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를 하거나,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팀도 물론 있지만.
자, 이쯤에서 큰미미 연애 사전 1장을 살펴보자.
나쁜 남자
1.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자 사람
2.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 기준인 남자 사람
[유의어] 잠수부/어장 관리사/멀티 플레이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무대 위의 나쁜 남자는 그 얼마나 치명적인가.
그래, 나도 한때는 나쁜 남자에게 반했더랬다.
나는 늘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에게 무척이나 끌렸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겉으로는 늘 자신감 넘치고 활기차 보였지만,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고 좀더 깊은 내면을 드러낼라치면, 지레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진짜 나를 알면 금세 싫증이 날 거야. 분명 더 매력적인 여자에게로, 아니면 잊지 못한 첫사랑에게로 떠나가겠지’ 상상하면서 늘 두려움에 떨곤 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더욱 상대방에게 무척이나 집착했던 것 같다. 마치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꽃길 데이트를 해야 해, 매주 다가오는 주말이지만 주말이니까 함께 있어야 해, 평일 저녁은 혼자 보내기 싫으니까 같이 놀아야 해,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여자 사람 친구는 싫어, 생일인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야? 넌 내가 먼저 질릴 때까지는 나만 바라봐야 해.’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국은 불행해지는 이러한 연애 패턴은 끝없이 반복되고 변주되었다.
하지만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매몰차게 뒤돌아서거나, 혹은 나에게 정리 당하는 경우에도, 그 누구도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집착하니’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두고두고 되새길 명언을 하나씩 나에게 남기고 떠나갔다.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져. 일할 때처럼. 그럼 일도, 미미도, 사랑도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잘될 거야.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넌 스스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 작은미미와 너를 비교하지 마. 너는 너대로의 매력이 있어.
내가 이야기할 때는 나한테만 집중해야지. 그리고 말할 때 끊지 좀 말아줄래?
넌 좀 쉬어야 해.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이 있어야 살지.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봐.
그렇게 톡 쏘지 좀 마. 네가 충동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생각해봤어?
더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는 싫었다. 스스로 어른스러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느껴질 때까지는 멈추자.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난 뒤에는 깨닫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늘 사랑받고 싶고, 주목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도 역시 나처럼,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자신 없어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당시에는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고 외로웠지만, 천방지축이었던 나를 일깨워주고 성장시켜준 것 역시 그런 연애이니, 늦게나마 명언을 남겨주었던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잔혹했던 연애를 겪고 나니 이번에는 그야말로 진짜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이 배가 된다는 점이다. 한 친구가 내게 붙여준 ‘아웃사이더 킬러’라는 별명처럼,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조용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먼저 다가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챙겨주게 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이들은 처음과 달리 한번 말 터지고 마음 터지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그것도 나에게만.
아무튼 지금 나의 이상형은,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면 ‘말이 잘 통하는 남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벼운 이야기부터 깊은 토론’까지 ‘어른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걸로 오케이.
하지만 ‘연애와 결혼, 직업과 거주’의 문제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그 역시 또 느긋해진다. ‘종교, 집안, 다 상관없다. 네가 좋으면 그걸로 됐다’에서 이제 ‘나는 흑인 사위도 괜찮다’로 조급함을 애써 돌려 말씀하시는 아빠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이렇게 서핑하듯이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인생을 유영하다보면, 언젠가 다가오지 않을까.
대책 없지만, 이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