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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왕언니, 유카리 언니의 조언

작은미미

 

유카리 언니는 이제 갓 오십을 넘었다. 인생은 육십부터고 청춘은 팔십부터이니(내 맘대로) 아직 햇병아리시다. 미미는 언니에 비하면 아직 깨지 못한 알 속에 있다.

언니 역시 우리처럼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데뷔를 하셨다. 그전에는 옷가게의 사장이었고 한 밴드의 광팬이었다. 하지만 역시 노래 부르는 것이 제일 좋았던 언니는 서른하나에 결국 첫 앨범을 내게 되었다.

언니의 첫 앨범 사랑의 맛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성인가요 뺨치는 진득한 감정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언니의 농익은 목소리와 빈티지한 연주는 데뷔 앨범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원숙하다. 이미 언니는 준비된 가수였던 것이다. 그런 언니가 이제 데뷔 30주년이 되어간다.

 

오사카의 소울 여제라 불리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잘나가는 연예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니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고 여전히 오사카에 살며 오사카 시장의 단골 밥집에서 밥을 먹는다. 언니와 오사카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하지만 어머, 유카리 여신이다! !” 이런 느낌이 아니라 ~ 유카리짱, 밥은 먹었어?” 하는, 동네 친구한테 건넬 법한 인사를 한다. 친숙한 느낌의 가수,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 반대급부에 있는 것이 미미 아닌가. 미미는 태생이 신비주의라 애초에 동네 언니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우리는 좀더 도도해야 했고, 좀더 시크해야 했다. 말도 안 하고 표정도 없고, 게다가 눈이 안 보이니.

우리가 말을 하고 웃기도 하며 (선글라스를 벗진 않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 것은 어쩌면 유카리 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언니의 팬들은 언니를 그냥 동네 누나처럼 대한다. 친근한 오사카 사투리로 안부를 묻고 집에서 먹을 것들을 싸다가 준다. 우리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벗었다. 선글라스 빼고 대부분의 것을 벗었다. 선글라스는 미미의 정체성이기에 그건 고수했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도 사람이고, 너희처럼 삶의 무게에 치여 살고 있는 평범한 한국의 여성이다, 그러니 우리의 노래를 같이 들어볼래? 하는 느낌으로 만든 게 2집의 노래들이다.

 

데모를 만들고 보니 죄다 연애 노래다. 그렇다면 아예 연애의 민낯을 보여주는 노래들로 추려버리자. 우리가 그래도 나이가 좀 되니 연애 혹은 연애 비스무리한 것들을 꽤 해보지 않았겠는가. 사랑까지는 모르겠지만 연애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좀 할말이 많았다. 그렇게 나온 노래들이다.

 

앨범 제목은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 여러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옛 남자가 아는 척할 때 정색하며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그것보다 좀더 노렸던 것은 그동안 여러분들이 봐왔던,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런 미미가 아니에요. 우리 이제 좀 느슨해질까 하거든요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느슨해지자. 그전에는 모든 것들을 통제해야만 했다면, 이제부터는 좀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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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패티 스미스 언니께

 

큰미미

 

 

패티 스미스 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큰미미라고 합니다.

언니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의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늘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언니가 계신답니다. 곱게 빗은 회색 빛깔 머리에, 아름다운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빠알간 장미를 손에 들고서요.

 

언니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여름 한 록페스티벌에서였습니다. 저는 잠시 후 오를 무대의 뒤편에서 언니를 만났습니다. 언니는 공연을 하러 무대로 향하시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들꽃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언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공연 직전까지 들꽃 사진을 찍고 계시다니, …… 마음이 여유롭고 멋진 언니시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죠.

 

그러나 잠시 후 맞닥뜨린 언니의 공연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습니다. 언니의 노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60분간 언니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죠. 톰 버레인 아저씨의 기타 소리는 너무나 따뜻하고도 강렬했고, 나직하게 읊조리다 어느 순간 폭발하는 언니의 노래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공연의 말미에 언니는 손에 들고 계시던 일렉 기타를 가리키며 외치셨습니다.

보이니? 이게, 바로 나의 무기야.”

 

언니의 무대를 처음 목격한 감흥에 잠시 후 있을 저희의 무대는 까맣게 잊고 홀린 듯이 멤버들과 함께 언니를 따라갔습니다. 대기실 편의점에서 언니를 놓쳐 두리번거리던 중, 언니는 맛동산과 육개장 사발면 사이에서 또다시 멋지게 등장하셨어요. 바보같이 머뭇거리던 저희의 부탁에 언니는 흔쾌히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몇 년 후, 언니의 자서전 저스트 키즈를 읽기 전까지는, 언니와의 만남이 저에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실감하지 못했어요. 언니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해 뉴욕으로 상경한 후 그야말로 혼자 힘으로 오롯이 생을 살아낸 상황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듯이 가슴이 아릿하고 절절했습니다. 책을 읽던 당시 저의 현실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요. 먹지도, 자지도 않고 12일 동안 언니의 책을 읽으며 저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셨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지간해서는 울지도 않았고, 겁내지도 않았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영혼의 친구라 할 수 있는 로버트의 큰 변화(양성애자임을 깨달은 순간)에도 의연하셨지요. 말 그대로 배고프고, 갈 곳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늘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잃지 않으신 언니.

 

저는 책을 읽으며 이제나저제나, 언니의 성공기는 언제쯤 나오는 걸까 기다렸습니다.

언니가 더이상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가로서 일할 수 있게 되고, 로버트와 샌드위치 하나를 나누어 먹는 게 아니라 더이상 끼니 걱정 없이 레스토랑에서 한 그릇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될 즈음, 책은 끝이 났어요.

책을 다 읽고서도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언니의 인터뷰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한 인터뷰를 읽으며 또 한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책 속에서의 언니는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은 줄로 알았는데, 그 이후 언니는 더 힘든 일들을 많이 겪으셨다고 했어요. 로버트의 죽음 이후에도 몇 년 사이 남편 분과 함께 활동하시던 피아노 멤버, 남동생까지 잃으셨다는 이야기에 언니의 생이 마치 제 이야기인 것 마냥 슬퍼져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울고 나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니가 제게 괜찮아, 큰미미. 네가 느끼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라고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언니의 책 저스트 키즈는 항상 저의 머리맡에 성경처럼 놓여 있답니다.

 

제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언니의 젊은 시절 멋진 사진이 아닌 현재의 모습을 넣어뒀냐고 묻곤 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 언니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언니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의 미래도 그려지는 기분이거든요.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가 밴드를 시작하고, 또 어쩌다가 작은미미를 만나, 예상치 못하게 10년이나 미미시스터즈를 하고 있는 걸까, 하고요. 작은미미와 저는 많이 다르지만, 각자의 삶을 각자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충실히 살아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도 언니처럼 멋진 할머니 로커로 나이들어가고 싶습니다. 따뜻하게 서로를 의지하면서요. 언젠가 언니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각자의 일상도, 창작도 멋지게 해내고, 또 지속하고 싶습니다.

 

이런, 50년이 넘게 예술가로 살아오신 언니께 이제 겨우 10년 남짓 가까스로 활동해온 저희가 너무 주제넘게 엄살을 부렸네요. 아직 중간 과정도 아닌, 이제 겨우 시작점에서 벗어날까 말까 하는 저희에게, 따끔한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누구보다 특별한 시인이자, 강력한 펑크로커이신 언니. 저는 오늘 아침에도 빠알간 장미꽃을 들고 계신 언니와 눈을 맞추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언니에게 편지를 써두면, 언젠가는 다시 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그때까지 영어 공부 좀더 열심히 해둘게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 또 건강하세요.

미미에게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한국에서, 패티 스미스 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큰미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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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네 2017-07-0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시스터즈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들이죠 이 에세이도 누군가에게는 성경이될겁니다
 

만만치 않은 계란 프라이

 

작은미미

 

 

 

며칠 전 스뎅 프라이팬을 샀다.

 

그 며칠 전엔 압력밥솥을 충동구매했던 터였다. 원래 서투른 무당이 장구만 나무란다고, 요리든 뭐든 해 먹기 귀찮을 때 갑자기 주방 기기 사 모으는 것에 불타오를 때가 있다. 밥솥을 바꾼 것도 밥맛이 좋아지면 좀 살맛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확실히 밥맛은 좋아졌다. 묵은쌀로 밥을 해도 윤기가 쫄쫄 흘렀다. 밥통에 81시간째 두어도 (몇 시간까지 표시되나 한번 놔둬봤음. 절대 게을러서 밥을 안 먹은 것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함) 거짓말 조금 보태 갓 한 밥만큼 풍미가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요즘 자꾸 검댕이 묻어나는 프라이팬을 원망스레 노려본다. 알록달록한 아래쪽 무늬에 현혹되어 산 코팅 프라이팬. 하지만 지금은 무늬 따위 그을음에 가려져 오히려 지저분해보이기만 하다. 그래. 이제 프라이팬을 바꿀 때다. 그것도 스뎅으로.

 

스뎅 프라이팬. 전문용어로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길들이기 힘들다, 무거워서 손목 나간다, 어차피 사봤자 얼마 못 쓴다, 등등 악플의 대명사, 스뎅 프라이팬. 하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니 기름 덜 먹는 스뎅이지!’, ‘, 번쩍번쩍 제대로 느낌 나는데!’, ‘역시 이쁜 건 스뎅 프라이팬이지!’ 하는 생각으로 눈 오는 어느 겨울날 저녁, 덜컥 질러버렸다.

 

엄마에게도 스뎅 프라이팬이 하나 있는데, 사실 엄마가 그걸 꺼내는 건 누룽지를 만들 때뿐이었다. 팬 위에 지은 지 좀 오래된 밥을 얄팍하게 펼치고 보일 듯 말 듯한 약불로, 그야말로 지진다. 노릇노릇하게 지져진 누룽지는 간식으로도 먹고 뜨거운 물에 넣어 말아먹기도 하고. 입과 손이 심심할 때 딱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암튼, 프라이팬은 정확히 이틀 뒤에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손길로 박스를 벗겨본다. 뿌연 비닐 안에서 빛나는 속살을 뽐내는 프라이팬. 절세미인 옆에 선 우락부락한 보디가드처럼 설명서에는 협박과도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초록 수세미로는 절대 닦지 말라, 요리가 끝난 뒤 바로 물세척하라, 이래라 저래라, 이러지 말라 저러지 말라. 뭐가 이리 복잡해. 그래봤자 니가 프라이팬이지. 널 내 손안에 길들이고야 말겠다.

 

설명서에는 온갖 멋진 요리들의 조리법이 나열되어 있었다. 닭찜부터 케이크까지 가능하다고? 오호, 실제 요리하는 것보다 요리책을 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레시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프라이팬을 길들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해볼까. 당장 냉장고를 열어보자!

생닭 따위가 있을 리는 없고. 셰프마냥 구울 수 있는 스테이크가 있을 리도 없고, 케이크는 너무 귀찮고, 뭔가를 데우기엔 첫 요리치고 아쉽고. 그래 너, 너로 가자. 제일 만만해 보이는 계란, 나와.

 

약불로 일단 팬부터 10분 정도 데웠다. 물방울을 튕겨보아 또로록 구르면 적정 온도랬지. 처음이니 매뉴얼대로 해주자.

기름을 두르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란을 깬다. , 하고 팬 위로 계란이 안착한다. 이제 계란은 나의 손을 떠났다. 계란 프라이 정도야 뭐,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풍광이 있다.

 

해 저물어가던 봄날, 나는 부암동 오르막길을 자전거로 열심히 오르고 있다. 꽤 가파른 언덕길이었기에 생각보다 땀이 많이 났다. 화장이 지워질까 내심 걱정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호감이 있는 썸남의 집에 가는 길이다.

 

.

누군가의 집.

그것도 남자의 집.

그것도 살짝 좋아진 남자의 집.

 

일 때문에 두서너 번 만났던 그는 뜬금없이 저녁밥을 해줄 테니 집으로 오라 했다. 30줄이 훌쩍 넘은 총각의 집밥 초대라. 경우에 따라 1부터 100까지 상상 가능한 설정이다. 속옷을 아래위로 맞춰 입고 가야 하나. 촌스럽게 왜이래. 기대한 거 같잖아. 나 설마…… 기대하는 건가?

 

뭉글뭉글한 심장은 그의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동네 슈퍼에서 마실 것을 사고 전화를 했더니 아뿔싸 그의 집은 슈퍼 사장님네 안쪽 집이었다. 머쓱하게 다시 한번 슈퍼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던 그는 나에게 반찬들이 다소곳하게 담긴 접시를 건네주며 계단 쪽을 가리킨다.

 

그 계단 올라가면 옥상이 나와요, 먼저 올라가 계세요.”

, .”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이건 뭐 절경이 따로 없다.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심장이 또 한번 뭉글뭉글해진다. 잠시 뒤 그가 올라온다. 그의 손에는 부루스타가 들려 있다.

 

우와~ 삼겹살?”

 

야외 옥상에서 둘만의 바비큐 파티인가요? , 서로 쌈 싸주면 부끄럽게 받아먹고, 그러다가 눈 맞으면 러브 쌈 싸먹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나 또 기대하는 건가?

 

그러나 아니었다. 정성스레 옥상까지 부루스타와 프라이팬까지 대령한 뒤 그가 해준 요리는 삼겹살도, 목살도, 갈비살도, 항정살도 아닌, 그것은 바로 계란 프라이였다.

 

이렇게도 만만치 않은 계란 프라이라니!

내 생애 이토록 호사스러운 계란 프라이라니!

 

만약에 그가 가금류나 어패류를 가져와 구웠다면 그건 뭔가 모범답안 같아서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굳이 생각하려는 분위기).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젓가락을 들고 프라이팬에 달라붙어 살점에만 집중했겠지. 뭐 그것도 나쁘진 않았겠지만.

 

하지만 계란 프라이라니!

내가 이토록 계란 프라이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될 줄이야!

 

계란 두 알을 나란히 깨서 지글거리는 걸 한참 바라본 기억이 난다.

왠지 우리 둘도 저 계란처럼 뜨겁게 익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순간.

 

스팸 투하.

 

 . 고기다.

완벽한 밤이구나.

 

그 남자와는 잘 안 되었다. 그뒤에 그와 가금류도 어패류도 먹었지만, 이상하게 진전이 되질 않았다. 길들여지지 않는 스뎅 프라이팬 같은 남자랄까.

 

, 이렇게 두루뭉실 다시 나의 스뎅 프라이팬으로 돌아오자.

익었으려나. 조심스레 계란을 뒤집어본다.

 

……. 은반 위의 요정처럼 매끄럽게 떨어지는 비주얼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달라붙어도 너무 달라붙었다. 이미 망했다 생각하며 다시 한번 뒤집어본다. 이제 계란의 반 가량만 생존가능하다. 스뎅 프라이팬, 너 무서운 놈이구나.

 

내 인생 두번째로 만만치 않은 계란 프라이를 만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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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kyu 2017-06-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설프게 혼자서 살아가는 삶이 오롯해서 좋아요. 쓰뎅 푸라이팬에 칠두른 오일, 눌러붙은 달걀이 검노룻게 타고 내음나는. 살짝 슬픈...

로네 2017-07-0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호화 프라이..
 

연애 안 해요?

큰미미

 

 

아무리 나이가 없는 미미라지만, 작은미미를 비롯한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결혼과 육아의 과정을 밟고 있는지라 결혼 안 해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애 안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별생각 없이 저야 늘 하고 있죠(일과 연애하는 중)혹은 이렇게 바쁜데 연애까지 하면 너무 신경쓰일 것 같아요(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김연아 선수도 연애하는 마당에)정도의 답으로 눙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혹은 이상형이 뭐예요?’라는 질문에는 늘 조금 더 뜸을 들이게 된다. 그러다 결국 …… 음악 안 하는 남자?’ 하면서 웃어넘기고 만다. 물론, 농담이다.

 

나는 미미시스터즈 활동 외에 비치볼 트리오라는 해변풍의 하모니를 선보이는 보컬 그룹의 멤버이기도 한데, 비치볼 트리오의 첫 음반에 수록된 기타맨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썼다. 가사는 이렇다.

 

잠수 타고 사라진 김기타, 첫사랑 찾아 떠난 이기타, 돈 빌리고 나른 박기타~ 맨맨 기타맨, 맨맨맨 기타맨, 맨맨 기타맨, 맨맨맨 왜 기타맨, 치명적인 그대, 기타맨

 

이 노래를 듣고 나면 사람들은 혹시…… 경험담?’ 하며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곤 한다. ,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이미 마음대로 생각하며 재미있어하고 계시니,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 대답한 적은 없다. 하지만 주위의 여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레퍼토리가 하나 있기는 하다.

만약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면 기타, 보컬은 노노. 비추야. 정 한번은 꼭 만나보겠다면…… 차라리 베이스나 드러머를 만나! 그리고, 만날 거면 빨리 만나!!!”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라는 포지션은 대부분 가장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다. 말 그대로 프런트 맨,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베이스나 드러머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유순한 편이다. 그들은 보컬과 기타가 매력을 마음껏 내뿜으며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현실적으로 팀 내에서 스태프의 역할을 도맡아하는 쪽도 리듬 파트 멤버인 경우가 많다. 드물게는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를 하거나,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팀도 물론 있지만.

 

, 이쯤에서 큰미미 연애 사전 1장을 살펴보자.

 

나쁜 남자

1.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자 사람

2.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 기준인 남자 사람

[유의어] 잠수부/어장 관리사/멀티 플레이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무대 위의 나쁜 남자는 그 얼마나 치명적인가.

 

그래, 나도 한때는 나쁜 남자에게 반했더랬다.

나는 늘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에게 무척이나 끌렸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겉으로는 늘 자신감 넘치고 활기차 보였지만,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고 좀더 깊은 내면을 드러낼라치면, 지레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진짜 나를 알면 금세 싫증이 날 거야. 분명 더 매력적인 여자에게로, 아니면 잊지 못한 첫사랑에게로 떠나가겠지상상하면서 늘 두려움에 떨곤 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더욱 상대방에게 무척이나 집착했던 것 같다. 마치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꽃길 데이트를 해야 해, 매주 다가오는 주말이지만 주말이니까 함께 있어야 해, 평일 저녁은 혼자 보내기 싫으니까 같이 놀아야 해,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여자 사람 친구는 싫어, 생일인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야? 넌 내가 먼저 질릴 때까지는 나만 바라봐야 해.’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국은 불행해지는 이러한 연애 패턴은 끝없이 반복되고 변주되었다.

 

하지만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매몰차게 뒤돌아서거나, 혹은 나에게 정리 당하는 경우에도, 그 누구도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집착하니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두고두고 되새길 명언을 하나씩 나에게 남기고 떠나갔다.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져. 일할 때처럼. 그럼 일도, 미미도, 사랑도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잘될 거야.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넌 스스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 작은미미와 너를 비교하지 마. 너는 너대로의 매력이 있어.

 

내가 이야기할 때는 나한테만 집중해야지. 그리고 말할 때 끊지 좀 말아줄래?

 

넌 좀 쉬어야 해.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이 있어야 살지.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봐.

 

그렇게 톡 쏘지 좀 마. 네가 충동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생각해봤어?

 

더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는 싫었다. 스스로 어른스러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느껴질 때까지는 멈추자.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난 뒤에는 깨닫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늘 사랑받고 싶고, 주목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들도 역시 나처럼,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자신 없어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당시에는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고 외로웠지만, 천방지축이었던 나를 일깨워주고 성장시켜준 것 역시 그런 연애이니, 늦게나마 명언을 남겨주었던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잔혹했던 연애를 겪고 나니 이번에는 그야말로 진짜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매력이 배가 된다는 점이다. 한 친구가 내게 붙여준 아웃사이더 킬러라는 별명처럼,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조용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먼저 다가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챙겨주게 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이들은 처음과 달리 한번 말 터지고 마음 터지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그것도 나에게만.

 

아무튼 지금 나의 이상형은,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면 말이 잘 통하는 남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벼운 이야기부터 깊은 토론까지 어른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걸로 오케이.

 

하지만 연애와 결혼, 직업과 거주의 문제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그 역시 또 느긋해진다. ‘종교, 집안, 다 상관없다. 네가 좋으면 그걸로 됐다에서 이제 나는 흑인 사위도 괜찮다로 조급함을 애써 돌려 말씀하시는 아빠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이렇게 서핑하듯이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인생을 유영하다보면, 언젠가 다가오지 않을까.

 

대책 없지만, 이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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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옹알이

작은 미미

 

 

우리의 노래를 하자, 고 막상 생각하자 아차차, 미미는 입을 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에 코러스를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거나 단 한마디의 멘트도 날린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소리가 없었던 거다.

미미의 의사는 그동안 전적으로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극대화되었다. 어떠한 화려한 언변보다 단 한 번의 고갯짓이 더 강력했고, 어떠한 구구절절한 논리보다 단 한 번의 손짓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래서 막상 우리의 노래를 하려고 했을 때, 무서웠다. 그래,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무서웠던 게 맞다. 우리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래라는 게 제 목소리 없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남몰래 보컬레슨만 받은 지 꼬박 2년차.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입을 열자. 비록 엄청난 가창력도, 엄청난 작사 작곡 실력도 없지만,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미미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앨범 녹음의 기회는 평생 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반칙 플레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최대한 들을 만한음반을 만들기 위해 바짝 긴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미 1. 직접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목부터 끝내준다.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프로듀서님의 강력한 의지로 통과된 제목임) 역시 직접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진정 전설로 점철되어 있는 앨범이다. 오랜 술친구이자 한국 올드팝의 척척박사 양평이형이 흔쾌히 프로듀서를 맡아준 일, 신중현 선생님을 만나 우주여행리메이크를 허락받았던 일. 바니걸즈 선배님들이 1971년에 녹음하신 우주여행원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와나아나아나아나아 우주선 타고오고오고오고오우리는 나아나아나아와 고오고오고오고오부분의 수동 립딜레이를 꼭 재현하고 싶었는데 막상 신중현 선생님께서는 이제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그 딜레이 부분은 기계로 하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곡을 신중현 선생님의 둘째 아들인 신윤철 오빠가 이끌고 있었던 '서울전자음악단' 분들과 양평이형이 무려 16분이 넘는 대작으로 만들어버린 일(진정 당신을 우주로 보내버릴 곡), 김창완 선생님에게 다이너마이트 소녀리메이크를 허락받은 것은 물론, 선생님께서 직접 피처링까지 해주신 일, ‘로다운30’의 윤병주 선배님이 타이틀 곡인 대답해주오의 곡을 써주신 일, 미미의 하드 트레이너이자 젊은 시절의 워너비 밴드였던 크라잉넛선배님들이 미미라는 곡을 만들어주신 일, 영화음악 송준석 감독님께서 단순한 포크송이었던 미미의 자작곡 내껀데를 강렬한 뽕 메들리로 변신시켜주신 일, 이 모든 것들이 미미에겐 전설이었다.

앨범이 나올 때 즈음해서 미미는 단독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속사였던 붕가붕가레코드의 브레인들과 스타일리스트 실비아를 괴롭히며 한창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양평이형이 질문을 던진다.

근데 너네 멘트는 어떻게 할 거야?”

…네? 멘트요?”

우리는 노래를 한 것만으로 거의 나체를 보여주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프로듀서는 달랐다. 멘트를 안 하면 안 되냐는 우리의 반문에 코웃음을 친다. 어떻게 멘트를 하느냐가 문제지, 멘트를 안 하는 건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더이상 장기하 옆에서 코러스 하고 춤을 추던 미미가 아니었다. 100퍼센트 우리가 채워야 하는 무대였다.

우리가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 밴드도 아니고 더구나 1시간 30분 동안 멘트 없이 공연을 진행하는 건 무리였다. 근데 갑자기 우리가 생목소리로 ,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미시스터즈인데요~”라고 말하면 관객들도 우리도 당황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드는 거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단독공연 멘트는 아이디어의 귀재인 양평이형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우리가 까딱하며 눈빛을 보내면 양평이형이 한국말로 통역을 해주었다. 물론 한국말을 아주 잘하지만 일본 사람인 양평이형이 한국인 미미의 눈빛 통역을 해주다니. 지금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퍼포먼스인듯 하지만 그때의 미미로서는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미미는 공연중 멘트는 기본이요, 라디오에 나가질 않나 심지어 요즘에는 둘이서 매주 두 시간씩 생방송 라디오를 진행하기까지 한다. 서로 말하겠다고 나서다가 타이밍 못 맞춰서 버벅거리던 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다. 공연 때는 관객들과 아주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족의 발전이다.

가끔 입을 앙다물고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장기하의 멘트가 너무 웃겨서 매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가끔 참을 수 없어 피식 웃음이 튀어나와버릴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 미미가 웃었어하며 신기해하면 그날은 큰미미에게 혼나는 날이다. “웃지 마! 미미의 체통을 지켜야지!” 그랬던 큰미미가… 그랬던 큰미미가… 폭소에 개그에 드립에 신세한탄에 울먹거림에!!! 그렇게 미미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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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비 2017-07-0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걸음 떼는게 어렵듯이 옹알이의 시작도 쉽지 않으셨을텐데 도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옹알이를하던 때의 모습은 잘 모르지만 지금 매주 두시간동안 라디오방송으로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아요. 달걀후라이같은 소소한 이야기에서 음악과 익명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시는 내용들이 기대되네요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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