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신비주의

큰미미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의 첫번째 록페스티벌 무대에서 미미시스터즈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을 때 사실 우리는 장기하와 얼굴들말고도 한 밴드의 무대에 선글라스를 벗고 댄서로 출연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작은미미가 입고 있던 의상이 미미시스터즈가 여러 번 입고 등장했던 드레스와 동일하다는 증거로 당시 인터넷에 떠돌던 미미의 실제 얼굴의혹을 사실로 단정하며, 공연 영상과 나의 쌩얼 사진이 팬카페에 업로드되었다. 다행히도 개념 팬들의 선수끼리 왜 이래류 반응에 밀려 곧 해당 게시물은 자진 삭제되었지만, 당시 우리에게 그 사건은 꽤 커다란 파장이었다.

 

작은미미는 당시에도 지금도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나는 실명으로 여러 지인들과 나름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미니홈피에 있는 사진첩, 방명록, 일촌평 등의 사생활이 내키지 않는 이에게 아웃팅당한다고 생각하자 몹시 불쾌해진 나는 모든 메뉴를 비공개로 닫고, 대문에 남아 있던 소중한 친구들의 모든 글까지 눈물을 머금고 삭제했다. 어떤 대화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즐겨, 중요한 문자는 모두 수첩에 옮겨 적을 정도로 소통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내가 극단의 조치를 취한 몇 시간 뒤 읽게 된 조소 어린 한 줄. 사이버 수사대가 울고 갈 만한 폭풍 검색력으로 무장한 그분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미미시스터즈 얼굴’, ‘미미시스터즈 서울대’, ‘장기하 여자친구’, ‘미미시스터즈 담배’.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기까지 하는 사소한 짐작과 궁금증들이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로 잡히던 시절이었지만, 아무리 철벽 수비를 한들 미미시스터즈의 보안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알려고만 하면 누구나 우리의 선글라스 벗은 얼굴과 간단한 이력 정도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고, 아니, 곰사장의 말에 따르면 못 찾는 게 더 이상한상황일 수도 있었다. , 덕분에 후일 미미시스터즈 1집을 발매할 때는 저렴한 신비주의라는 유머러스한 수식어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다시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즐겁기 이를 데 없는 한때였다. 약간의 여유만 가졌더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토록 예민했을까.

아마도 미미시스터즈는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지만, 어쩌면 선글라스로 가려져 누구여도 상관없는실체 없는 존재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잠식하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선글라스만 벗으면 조금 전까지 우리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이 조금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리 둘 다 눈이 예뻐서인 것 같다. 믿든지 말든지.

심지어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서 안주 삼아 우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왕왕 듣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는 마치 우리가 마패를 숨기고 있는 춘향전의 이도령이나, 뿔테 안경을 끼면 다른 인격이 되는 슈퍼맨의 클라크 켄트가 된 듯한 짜릿한 기분이 들어 킥킥거리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공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미미시스터즈 분들은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귀가하시고요, 저희는 리허설이랑 뒤풀이용이에요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하는데, 정말이지 무대 위에서의 미미시스터즈는 도도하고 접근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한편으로는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여자들인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 쌩얼 아웃팅 사건 이후로 한동안은 인터넷상에서 가능한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퍼포먼스로 놀이처럼 시작했던 신비주의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고, 그리고 때로는 그보다 더 큰 오해를 받기도 하면서 이게 아닌데, 이렇게 재미없고 진지한 신비주의가 되어가는 건가하는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불편한 것을 극도로 참기 힘들어하는 작은미미의 흐트러진 모습(예를 들어 무대 위에서 웃음이 삐져나온다거나, 정해진 동작을 하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말을 한다거나)이 무대 위, 혹은 스케줄 중 만나는 불특정의 사람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너질라치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때문에 참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든, 웃음이든, 흐트러진 모습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의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어도 미미는 무척 재미있는 국면을 맞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로커보다 더 로커같이 행동해도 용서가 되는 미미시스터즈도 꽤 괜찮지 않은가. 그래도 역시 인사는 잘해야 한다.

 

미미시스터즈 활동이 진지한 신비주의로 오해받은 순간부터 모든 일상에서조차 예민해지는 나와 달리 작은미미는 상대적으로 태연한 편이었는데, 그런 작은미미조차 크게 동요한 사건도 있었다.

미미시스터즈가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독립하고 1집을 발매한 직후 작은미미는 결혼식을 올렸는데, 한 인터넷 신문기자가 지인을 통해 입수한 청첩장으로 결혼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써 포털사이트 메인에 건 것이다. 작은미미가 모 영화제에 참가했던 쌩얼 사진과 함께 본인이 알아낼 수 있는 정도의 편협한 정보를 실체의 전부인 것처럼 쓴 기사는 내가 봐도 몹시 불쾌했다. 이후 신속하게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기사를 내리도록 했지만,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는 받지 못했다.

 

미미시스터즈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해주는, 그리고 우리를 꾸준히 사랑해주는 특별한 팬들과의 놀이로써 양쪽 모두가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되고, 그 의미가 생긴다. 바로 그런 지점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과 잘 맞아떨어졌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끔 그런 류의 유머감각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혹은 정말로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드물게는 FBI 뺨치는 본인의 관찰력과 탐구력에 박수를 받고 싶어하거나, 지나친 직업의식을 가진 분들 덕분에 우리의 고민은 다소 깊어지게 되어, ‘진짜 미미리허설과 뒤풀이용 미미는 점점 하나의 존재가 되어갔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미미를 격하게 아껴주는 팬들로부터 너무 보안이 허술한 것 아니냐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우리는 경호원도, 고급 외제 밴도, 경비가 삼엄한 저택도 없지만, 한편 돈으로는 살 수 없는의리의 팬들이 지켜주는 콘셉트가 있다. 우리와의 놀이를 즐기는 센스 넘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저렴한 신비주의’.

 

요즘 작은미미와 나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하는로망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옷을 벗은 듯한 느낌이 아닐까? 우리의 눈빛으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심장이 엄청 쫄깃해질 거야!’

 

아마도 미미시스터즈의 무대에서 대놓고 선글라스를 벗을 일은 없겠지만, 유머와 센스 넘치는 여러분이라면 언젠가 눈을 마주치며 노래하는 미미를 목격하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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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비 2017-07-02 0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역시 인사는 잘해야한다는 그 때 그 사건인가보네요 ㅋㅋㅋㅋ개인적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서 다른 캐릭터를 내보일 수 있다는게 부럽기도하네요. 하지만 개인사를 함부로 아웃팅한다는 것에는 정말 불쾌하셨을 것 같아요. 어찌보면 업고가야할 부분일 수도 있지만 잘 조율되어서 좋은 모습으로 찾아오길 바랄게요 목소리만으로도 좋고 선글라스르 벗을지도 모를 미래의 미미도 좋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