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쫀딱 레드


큰미미



내 옆에는 어제 벗어놓은 까만색 긴 머리 가발과 선글라스가 함께 널브러져 있다. 도둑이 들어왔다가도 깜짝 놀라 그대로 도망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흉측한 비주얼이다.

미미는 태생적으로 번거로운 변신 과정을 타고났다. 선글라스, 립스틱, 가발, 하이힐. 이중 어느 하나를 생략한다면 미미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선글라스다.

 

아침 일찍 진행되는 리허설이나, 분장을 지우고 나서다 극성팬을 발견한 상황 등의 위급한 순간에는 선글라스 하나만으로도 미미로 변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로 오르는 순간이면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르며 그럼, 오늘도 어디 한번 놀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뻔뻔한 표정이 된다. 그리고 어때, 우리가 놀아주니 감사하지?’라는, 도도해서 웃기기까지 한 미미표 에티튜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선글라스도 가끔은 미미를 당황시킬 때가 있다. 광주의 모 라이브 클럽에서 사인회를 할 때였다. 여느 때처럼 내 팬에게만 따뜻한, 시크한 도시여자 콘셉트로 도장을 찍어주고 있는데, 순간 나의 선글라스 한쪽 알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니 황당하기 그지없고, 마치 한쪽 눈알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행히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고, 사람이 궁하면 통한다고, 나는 기지를 발휘해 재빨리 테이블 아래 엎드려 선글라스 알을 끼우며 작은미미에게 조용히 외쳤다.

, 나 알 빠졌어!”

작은미미는 당황했지만, 엎드린 나를 슬쩍 가려주며, 팬들을 자연스레 응대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로 난 한동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선글라스 알 분리 트라우마가 생겼다.

 

어쨌든 미미시스터즈의 선글라스가 가진 큰 장점은, 관객과 소통하는 매개라는 것이다. 보통은 눈을 가리는 것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단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표정이 보이지 않기에 관객은 우리에게 더욱 집중하고, 우리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곤 한다. 팬들은 선글라스 너머 우리의 따뜻한 눈빛을 읽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타일리스트의 기술에만 의존하던 미미가 스스로 변신을 마스터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중 가장 고난이도를 꼽자면 그것은 단연 립스틱을 바르는 일이다. 단순히 섹시해 보이기 위해 바르기 시작한 빨간 립스틱. 이 립스틱과 입술을 합체하는 시간은, 어떤 의식과도 같다. 이 세상에 내 입술과 립스틱, 단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내 입술보다 작게 그려서도 안 되고, 너무 욕심을 부려 도톰하게 그리다가 자칫 만화 달려라 하니고은애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되기 십상이다. 입술산이 도톰해지면 곧바로 펭귄이 되어버리고, 조금만 집중하지 못해도 입술은 짝짝이가 되어버린다.

그날의 립스틱 컨디션에 따라 우리의 컨디션도 달라진다. 순간의 실수로 입술선을 삐죽 탈선해버리는 일이 있었다면, 그날 공연은 어딘가 찜찜하다. 순간의 과욕으로 립스틱을 덕지덕지 발라버렸다면, 그날은 앞니에 붉은 자욱이 찍힌 굴욕의 사진이 뜨는 날이다. 모든 것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날이면, 어쩐지 그날은 음정도 잘 맞고 흥이 느껴진다.

 

가끔, 다음 공연 팀에게 미안할 정도로 마이크에 빨간 립스틱이 많이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김목인씨가 빨간 립스틱 묻은 마이크라니…… 참 떨리네요와 같은 재치 있는 멘트로 마이크를 받아주셔서 살짝 민망하면서도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목인씨~ 감사해요! ^.~

 

종종 미미의 립스틱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그러나, 속 시원히 답해줄 수 없는 이유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너무 여러 가지를 섞어 바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립스틱은 친구에게 얻은 것이기도 하고, 또 어떤 립스틱은 샘플, 어떤 립스틱은 저렴이, 드물게는 면세점에만 살 수 있는 고가의 제품도 있다. 그런데 그중 어느 하나만 바르면 도통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즐겨 바르는 립스틱은 미미 쫀닥 레드 219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미미 립스틱을 런칭해볼까? 바르기만 해도 미미처럼 뻔뻔하게 섹시해지는 미미 쫀닥 레드립스틱!

가끔 봄처녀 느낌을 내고 싶을 때는 미미 뽀송 핫핑크립스틱을, 한여름의 태양처럼 열정적인 비키니를 입을 때는 미미 썬샤인 오렌지립스틱도 괜찮겠다.

 

조금 번거롭지만, 잠깐의 번거로움으로 미미와 함께 일탈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당신은 변신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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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책 2017-06-2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글라스때 보니 둘이라서 정말 좋은 거 같아요 ㅎㅎ ,
미미 쫀딱 레드 립 *_* 조합이 넘넘 궁금해져욥 ~!!

하얀공주 2017-07-0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뭔가 심상치않은 미미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기대합니다^^화이팅^^

와제 2017-07-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밌어요! 미미라는 캐릭터가 딱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요새동구 2017-08-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찰지게 잘쓰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