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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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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때였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김연수의 책을 빼들었던 순간. 한국 작가에 관심 없던 내가 한국소설코너에서 수십 분을 서성이며 보고, 또 보다 꺼내든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제목이 좋았고, 표지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몇 장 읽다 반납. 그땐 몰랐지 내가 김연수 작가의 독자가 될 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삶이라더니 책과의 만남도 나름의 운명이 있음을 또 한 번 느낀다. 맘에 들었던 책제목은 누군가의 시였고, 드디어 혼자만 간직하고 싶다던 그녀를 만났으니 말이다.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데는 습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28

 

요즘 내가 절실하게 느끼는 바이다. 난 아무래도 착한사람 컴플렉스가 있나보다. 밖에서 그 누군가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나름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 생각했는데 결국 쌓아 놓은 앙금은 무너지듯 한 번에 터져 관계를 정리하거나 내가 떠나버리는 쪽으로 결론이 나버린다. 그리곤 나를 질책하며 균형이라곤 없는 생활을 해버리니 결국 망가지는 건 내 몸. 하지만 절망하진 않는다. 일찍 깨우쳐 건강을 다스린다면 더 건강히 살 수 있을테니깐.. 다만 망가질 때까지 나를 다스리지 못한 내 몸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우리의 유일하고 무한한 신성을 암시해주는 건 언제나 자연계, 열리지 않은 무수한 샘들이었다.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그런 상태에서는, 그늘에서 햇살 속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그 생명의 열기를 느낀다.’ -p32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의 탁월함과 특별한 가치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p75

 

지난 가을 단감을 맛나게 먹고 난 후 엄마가 거실 화분에 감씨를 몇 개 심어뒀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화분에 물주던 엄마가 날 급하게 불렀다. 콩나물처럼 감씨를 메달고 나오는 새싹.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였다. 정말 씨에서 싹이 나오다니.. 상추나 고추 모종을 텃밭에 키워보긴 했지만 싹 틔우는 건 난생처음이라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동물에 비해 식물에 별 감흥이 없던 내 맘이 변화된 시발점이라고나 할까? 만약 감나무로 큰다면 대대손손 집안의 가보(?)로 남겨야겠다.

 

상실은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있던 게 없어지는 거니까. 먹이고, 산책시키고, 목욕시키고, 안아 줄 대상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소중히 여기고, 걱정하고, 동정하고, 위안을 얻을 지각력 있는 생물체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p124

 

나는 피와 뼈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특별한 체험과 생각에 의한 신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신념들을 빚어내는 건 세상에서의 시간(거칠든 온화하든 충분히 친밀하고, 시적이고, 꿈같고, 단호하고, 사납고, 애정 깊고, 삶을 빚어내는)이다. -p133

 

2년 전 정월대보름 해피녀석이 열려진 대문으로 탈출해버린 후 난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 그랬을까? 울다, 울다 지쳐 잠들고, 비바람 부는 동네를 겉옷이 다 젖도록 찾아 다녔지만 녀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터넷 동물구호단체에 글도 올리고, 대문 앞에 녀석의 담요도 내놓고, 다른 동네까지 다 다녀봤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안 돌아오면 가망이 없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2월 말 새벽 6시 옆집 아줌마의 전화. 해피로 보이는 녀석이 골목을 왔다갔다 수십 분 째 서성이고 있는 것 같으니 나가보라는 것이다. 세상에나 녀석이 돌아왔다. 어디를 헤매고 다녔는지 살도 빠지고, 털도 더러웠지만 꼬리를 흔들며 씩씩거리며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는데 이산가족 상봉 저리가라였다. 좋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오만감정이 다 들었던 그 순간을 어찌 잊으리.. 그 후 개벼룩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문제란 문제는 다 피우고, 활동력이 좋아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지만 결코 밉지 않은 걸 보면 진짜 가족인 것 같다.(내가 욕하면 괜찮아도 남이 욕하면 편들게되는 뭐 그런 감정같은 거 말이다~)  녀석의 삶이 얼마든 마지막까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어딜 헤매다 왔으며 집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지금까지도 너무 궁금한데 요즘엔 탈출하더라도 멀리 나가지 않는 걸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 하하 똑똑한 녀석!!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다’ -p134 가자미, 아홉 중

 

'세계지도에서 파란 쉼표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겐 모든 것이 상징이니까. 우리의 스승이 되어주는 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다. 사랑의 관념은 사랑이 아니다. 바다의 관념은 소금도, 모래도 아니다. 물개의 얼굴은 관념에서 솟아올라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사건과 함께 풍성해지고 즐거워져야만, 비로소 생각이 시작될 수 있다. -p139

 

지난 주 스트레스에 관한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스트레스 대처법으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는 건 눈앞의 돌발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생기면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으면 된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결국 세상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란 걸 한번 더 느꼈다. 생각해보면 완벽한 날도 드물었지만 완벽하지 않은 날도 없었던 것 같다. 벚꽃이 지고, 라일락향이 짙어지는 계절. 초등학교 6학년 창문 가 내 자리엔 옆엔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라일락향이 느껴지면 난 교실 속 열두 살의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 봄 혼란한 생각도 정리하고, 추억여행도 했으니 그녀를 만나 더없이 좋은시간이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유명한 시 기러기중 곱씹어도 너무나 좋은 부분을 남겨본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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