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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
임광명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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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속해있으면 그곳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고 했던가? 어릴적 소풍갔던 불국사는 그저 그런 곳이였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단체사진 속에남 남아있는 장소. 그러다 서른이 넘어 다시 찾은 불국사는 너무나 멋졌다. 아니 이 곳이 예전 그곳이 맞단 말인가? 마침 방문했던 때가 여름방학 시즌이라 아이들과 부모님이 문화재 답사를 와서 문화재 해설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길래 친구랑 끄트머리에 서서 귀동냥을 했다. 그냥 볼땐 그런가보다했는데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보니 새삼스레 달라보이는 건물들. 처마로 떨어지는 빗물까지 고려해 땅에 물받침까지 해놓다니 정말 조상들의 섬세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아는만큼 보이고 느낄 수 있다더니 옛말 틀린거 하나없네. 


난 독실한 불교신자도 아니고 무언가를 꾸준히 부지런히 하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종교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없이 산이 좋고, 산사에 가면 기분이 편안해진다. 그 고즈넉함과 향내음, 잔잔한 풍경소리까지 말이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곳 중엔 4곳(통도사, 불국사, 부석사, 법주사)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남는 건 역시 부석사. 친구랑 단 둘이 부처님오신날 하루전 방문해 연등다는 일손도 돕고,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둔터라 공짜로 하룻밤 묵을 수도 있었으며 떠나기전 총무스님께서 수고했다고 봉사자(우린 진정한 봉사자가 아니라 엉겁결에 도와드린거였는데..)들 모아놓고 연잎차도 대접해주셨다. 이른 아침 방문객들이 없을 때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앞에 펼쳐진 소백산 자락을 바라볼 때의 그 벅차오름. 정말 부석사는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론 법주사. 친구랑 여름 휴가를 문경새재로 잡다보니 들러들러 속리산은 시간이 안되서 못 올라가고, 법주사 팔각정은 봐야하지 않겠냐는 맘에 급하게 방문했었다. 팔각정을 실컷 구경하고, 더위에 지쳐 힘들어지는데 친구가 대웅전 앞에 핀 연꽃을 찍어야겠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걸보며 짜증이 날려던 찰라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뒤 스님 초대로 공부방 방문.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신다는 스님은 방학을 맞아 다시 인도로 공부하러 떠날꺼라며 커다랑 여행가방을 챙기고 계셨는데 그 좁은 방안엔 온통 책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난것도 소중한 인연이라며 인도에서 구입하셨다는 염주도 선물받고, 녹차도 얻어 마시고, 사진도 찍고, 게다가 스님을 방문한 거사님께 (거사님은 불경을 직접 붓글씨로 필사해 불공을 드리는 분이셨다) 좋은 문구가 적힌 글귀도 선물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식당가서 공짜로 절밥을 먹었는데 어찌나 꿀맛이던지..  


내가 찾은 두 곳 모두 무량수전과 팔각정이란 유명한 건물도 볼거리지만 그 곳에서 묵묵히 정진하는 스님들의 맑은 마음이 있어 더 빛나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종교를 떠나고, 이념을 떠나서 신성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 말이다. 


책을 보면서 아주 좋아하고, 챙겨보던 드라마 중 '단팥빵'에 자주 등장했던 전주 전동성당, 법정스님의 출가사찰로 유명해진 송광사는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매년 가보리라 맘먹지만 어찌 쉽지가 않은지.. 책을 보다보니 더 간절히 가보고 싶어졌다.  


3년전 앙코르와트를 여행갔을 때 깍아지듯 경사가 심한 계단을 오르는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너무 힘들고, 무서웠었다. 왜 그렇게 가파르게 만들었냐고 짜증을 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한발 한발 오르면서 비로소 신과 마주함에 있어 자신을 낮추고, 잡생각을 버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니 돌계단 하나에도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부들부들 떨면서 올라간 정상에서 신을 만날 순 없었지만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시아와 손에 잡힐 듯한 하늘을 보며 공포감을 잊을 수 있었다.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그곳들의 존재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익히 알려진 곳뿐만 아니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곳을 책을 통해 알게되어 좋았지만 저자가 종교건축 취재기자라서 그런지 건축에 관심없는 분들에겐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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