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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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이 시집이 나오고 여러 해가 흘렀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 내가 그 시간을 다 느끼지 못한 걸까. 누군가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쓸지도 모르겠다. 난 뭉텅뭉텅 쓰는 것 같다. 계획이란 걸 잘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게 아니고 그냥 뭔가 해야지 하고 그걸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면 말기도 한다. 어쩐지 이렇게 살면 돈 많이 버는 것과는 멀어질 것 같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돈 맣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 썼다. 성공은 돈 많이 버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다. 살아가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남이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바쁘게 살아도 그게 누군가한테는 사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천천히 느긋하게 사는 사람은 그게 자신한테 맞는 거겠지. 살아가는 걸 겨우 두 가지로 나눌 수 없겠다. 더 말해야 하지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11쪽

 

 

 

 난 알고 있었던가. 한강이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썼다는 걸. 아니 몰랐다. 이런 말은 들은 적 있다. 시를 쓰고 싶었지만 소설을 쓰게 됐다는. 이 말은 정말 한강이 했을까. 어쩌면 김연수가 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한강도 김연수도 시를 먼저 썼다는 걸 안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에 우연히 한강을 알고 소설을 여러 편 봤지만 그다지 잘 읽지 못했다. 지금 본다고 다를까 싶기도 하다.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 다시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소설가는 자기 일이나 자기 둘레에서 글감을 얻어 글을 쓸 것 같은데 한강은 어떨까. 꼭 가까운 사람 일만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민하게 잡아내는 걸지도. 나도 가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 걸 더 붙들고 있는 게 좋을까. 그러면 무척 힘들겠다. 작가는 어떤 일을 시나 소설로 쓰기도 한다. 그런 것은 써야 하지만, 써야겠다 마음먹기 힘들 것 같다. 잘못 쓰면 욕 먹겠지.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에서, 77쪽)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복기의 노래>, 80쪽

 

 

 

 괜찮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한다면 마음이 조금 놓일까. 일어나는 일에 따라 다르겠지. 슬픈 일은 ‘괜찮아’ 하면 안 되겠다. 그런 말할 사람 없겠구나.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하기보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면 나을지도.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그리 하라 하고,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하라고 하는 거지. 그러면 곁에 없어도 곁에 있는 것 같겠다. <회복기의 노래>를 가만히 보니 무엇이든 지나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뭔가 지나가야 나아지겠지. 아픔, 슬픔. 이런 것만 지나가는 건 아니다. 기쁜 일도 지나간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쉬울까. 언젠가 다시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좀 낫겠다.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질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저녁의 소묘5>, 137쪽

 

 

 

 처음에는 시를 썼지만, 얼마 뒤 소설을 쓰고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한강은 소설을 쓰고 스무해 만에 이 시집을 묶어냈다. 소설과 상관있는 시도 있을 텐데 내가 소설을 별로 못 봐서 어떤 시가 어떤 소설과 상관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시든 소설이든 그것대로 만나면 된다. <저녁의 소묘5>는 맨 마지막에 실린 시다. 분위기는 밝지 않지만,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은 나무라고 여긴 검은 나무는 살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신비로울 것 같다. 사람이, 자연이. 자연은 살려고 하는 힘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 사람한테도 그런 힘이 있을 거다. ‘살려는 힘’을 잃지 않기를.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다. 이것도 잊지 않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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