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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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여름이 오기 전부터 걱정했습니다. 지난해만큼 더운 여름일 것 같아서. 여름도 아닌데 여름 같았던 날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다 해야 할지 아주 더운 날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어요. 이건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로 덥지 않은데 라디오 방송에서 ‘오늘도 참 덥습니다‘ 해서 바깥은 더운가 보다 했어요. 본래 저는 움직이지 않으면 열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더울 때는 저도 지내기 힘듭니다. 어렸을 때는 여름 좋아했는데, 언젠가 더워서 잠자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뒤로 여름을 좋아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덥습니다. 여름에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길을 걸으면 숨이 막힙니다. 여름에는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 않지요. 그래도 바람이 부는 게 더 낫습니다. 한여름 한낮에는 걷지 않는 게 좋겠지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어도 엄청 더울 때 걸으면 더위 먹을 겁니다.

 

 제가 이 시집을 처음 본 건 2003년이에요. 아니 어쩌면 그때 시집을 사고 바로 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과 《남해 금산》 이야기를 보고 관심을 가졌어요. 《남해 금산》이 두번째고 이게 세번째더군요. 첫번째 시집도 예전에 봤을 거예요. 그 시집이 어땠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그것도 다시 볼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 이건 전부터 다시 봐야지 생각하다가 이제야 봤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어떻게 봤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이번에 볼 때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예전에 어떻게 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이 책 날개에는 ‘연애시말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시에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말을 쓸 것 같기도 한데 여기 담긴 시에는 그런 말은 별로 없어요. 무거운 느낌입니다. 이건 제 느낌일 뿐이지만(이런 말 가끔 하는군요). 무겁기는 해도 그게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예요. 연애시말법이라 해서 이성을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해요. 하나만 생각해도 괜찮을 텐데, 무언가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몰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산>, 24쪽

 

 

 

 섬과 섬이 만나 자식을 낳았다 끝없이 너른 바다를 자식 섬은 떠돌았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을 원망하면서…… 떠돌며 만난 섬들이 저마다 쓸쓸했고 쓸쓸함의 정다움을 처음 알았을 때 서둘러, 서둘러 자식 섬은 돌아왔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이 가라앉은 뒤였다

 

-<섬>, 55쪽

 

 

 

 시가 어떻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는 자유롭게 봐도 괜찮겠지요. 시는 그것을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도 그랬지 할 테고, 경험이 없다 해도 그것 자체로 봐도 괜찮겠지요. 숲, 나무, 강……. 이런 제목이 붙은 시가 좀 있습니다. 섬 하면 정현종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성복도 <섬>이라는 시를 썼네요. 어쩐지 쓸쓸하게 보이는. 시집 보고 쓸쓸함이 느껴진다는 말 자주 했군요. 실제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이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면 좋겠지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되면 조금 안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부모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지요. 남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으니 몰라도 된다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상상하면 되잖아요.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기다림>, 84쪽

 

 

 

 예전에 이 시집 봤을 때 이 시가 좋았어요. 그냥. 그때는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는가보다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길.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에서 나무를 봐선지, 나무가 사람을 기다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성복 시집에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이 시와 그 시집 상관없지 않겠군요. 그 시집에는 시집 제목과 같은 시가 있을지. 그 시집 생각하니 그것도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네요. 저한테 이성복 시집이 여러 권 있다니 신기하네요. 예전에 시 잘 몰라도 그냥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르고 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보다 잘 읽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앞으로 시를 봐도 그것을 잘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잘 못해도 괜찮겠지요. 시를 만나고 느끼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아주 더운 한여름 한낮에는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느낌 신기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때도 시간은 흐르고 여름도 갑니다. 여름이 끝나갈 때는 여름이 가는 것도 조금 아쉽겠지요. 여름이 끝날 때쯤 이 시집 한번 만나도 좋겠습니다. 늘 똑같은 것 같아도 사람은 철이 바뀌고 해가 갈 때마다 조금씩 자라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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