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과학이 발달하고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하게 됐지만 아직 사람과 비슷한 로봇은 말들지 못했다. 지금은 만들지 못했지만 언젠가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해 보여도 만져보면 좀 다를까. 아니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과 비슷하면 로봇의 권리도 인정해줘야 할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먼저 하다니. 프로그램된 감정이라 해도 정말 그것뿐일지 의심하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고 로봇을 그저 물건으로만 보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만화에는 사람과 거의 똑같은 로봇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마란 법은 없다. 시호는 그러지 않았지만. 은결이 명정이 아닌 시호와 함께 살았다면 그런 일도 있었을지도. 소설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은결은 명정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고 반년 뒤에 온 것으로 로봇이다. 명정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만든 샘플로 ROBO-a13186이다. 명정은 둘째 아이가 생기면 붙이려한 이름을 로봇한테 붙였다. 그 이름이 은결이다.

 

 세탁소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그건 그곳에 사는 사람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명정은 혼자 세탁소를 했는데 은결이 오고는 함께 일했다. 일찍 다른 나라에 떠나보낸 아들이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명정은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명정은 은결이 사람이 아니다 자주 생각한다. 은결은 세탁소에서 일을 하고 그곳에 오는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배운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사람과 거의 비슷한 로봇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기하게 보기는 했다. 은결이 세탁소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여러 사람이 오는데 거기에는 시호와 준교도 있었다. 시호와 준교가 은결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시호와 준교는 자랐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은결은 시호한테 어떤 감정을 느꼈는데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어쩌면 그건 더 빨리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호가 그걸 느끼고 자신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은결한테 말했을 거다. 사람과 로봇이면 사람이 더 좋아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짧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긴 시간 동안 명정은 은결과 함께 살았다. 명정은 은결이 있어서 덜 쓸쓸하지 않았을까 싶다. 명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앞으로 은결은 어떻게 살까 했다. 은결을 준교가 다니는 대학에 기증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은결이 사람 같아서 내 마음이 아팠나 보다. 명정이 없어도 은결 혼자 살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이 그걸 그대로 보고 있지 않았겠지. 은결이 거의 죽으려고 한 건 명정이 죽은 게 슬퍼서였는지 앞으로 살 일이 슬퍼서였는지. 은결로 살 수 없을지도 몰라서였을지도. 말로 하지 않았지만 은결도 슬픔을 느꼈으리라고 본다. 어딘가 고장났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로봇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고 로봇도 기계여서 언젠가는 멈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보다 오래 살지만 언젠가는 멈추겠지. 멈추는 것과 죽음은 다르다. 기계는 고장난 걸 고치면 다시 움직인다. 기억을 지우고 프로그램을 다시 깔면 그건 다른 거다. 앞에 것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싶다. 목숨 있는 건 마음이나 감정이 있다. 기계는 어떨까. 은결은 사람 마음이나 감정을 알려고 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이라면 그렇게 되기 쉽겠다. 언젠가 과학이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사람 같은 로봇은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이 기계몸을 가지고 오래 살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까. 그건 그것대로 별로다. 마지막 부분 보니 조금 다르지만 영화 <가위손>이 생각났다. 거기에서는 할머니가 손녀한테 가위손 이야기를 해주던가. 여기에서는 은결이 시호와 준교 손녀한테 말한다. 은결이 시호와 준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니 안쓰럽다. 은결은 사람이 아닌데, 난 은결을 보통 사람보다 오래 사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언젠가 은결이 멈추면 그대로 보내주면 좋겠다. 더 쓸쓸하지 않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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