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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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사는 게 어려워도 자라면 조금 나아지기도 합니다. 이건 모두한테 해당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어릴 때뿐 아니라 자라서도 바라는 걸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자신이 겪은 일을 남이 겪게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담긴 소설에서 마지막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작은 사람들의 노래>에서 균은 어린시절 어머니한테 버림받고 아이를 가두고 굶기고 때리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다른 곳에서 자라요. 보육원에는 자원봉사로 성가대원이 와서 노래했지만,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당하는 일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균은 용접 일을 했는데 조선소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송이 죽습니다. 균은 송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균이 증언하지 않겠다고 한 건, 송이 죽게 된 일에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예요.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안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회사 쪽이겠지만, 동료가 죽게 된 일에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 말하다니. 균이 고아로 자라고 균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어머니가 없는 건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만, 송한테 사고가 일어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은 건 안 좋게 보였습니다. 균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았겠지요. 어릴 때 보육원에서 들은 노랫소리를 들은 걸 보면.

 

 진짜 마음은 다르면서 좋은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송의 어머니는 송이 살았을 때 균이나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아무 때나 놀러오라고 해요.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많은데 그러지 마세요.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도 하니까요. 손보미 소설 <임시교사>에서도 아이를 맡기는 엄마가 P부인한테 ‘내 집처럼 생각하세요’ 하는군요. 그런 말은 인사치레일 때가 많지요. 정말 그런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균은 배신당한 것 같은 마음을 한번 더 느낍니다. 필리핀에 사는 가난한 아이 앨리를 후원하는데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구호단체에서 보낸 엽서를 받습니다. 균은 앨리를 자기 딸처럼 여겼는데, 앨리한테 돈을 보내는 건 균만이 아니었어요(어떤 한 사람과 자신이 가장 친하다 여겼는데 그 사람은 누구나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겠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죠. 한사람이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겠지요.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보내는 돈이 아주 많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부터 구호단체에서 균한테 한 아이한테 여러 사람이 돈을 보낸다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싶네요. 균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고아처럼 산 권은은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로 빛을 보고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됩니다. 시사잡지사 기자인 ‘나’는 스무해 만에 권은을 만납니다. 권은한테 카메라를 준 사람이 바로 ‘나’예요. ‘나’가 어렸을 때 권은한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준 건 그것을 돈으로 바꾸기를 바라서였는데, 권은은 카메라가 생긴 다음 어두운 방에서 나오고 다시 학교에 다녀요. 권은한테 카메라는 빛이었습니다. 권은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알마 마이어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여겨요. 알마 마이어는 유대인으로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1940년에 게토나 수용소에 끌려갈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때 알마 마이어와 사귀고 호른을 연주하던 장이 알마 마이어를 숨겨줘요. 알마 마이어가 숨어 있던 곳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장은 음식과 함께 자신이 작곡한 곡 악보를 그 안에 한장씩 넣어줬어요.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알마 마이어한테 악보는 내일을 꿈꾸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그 뒤 알마 마이어는 미국으로 갑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는 알마 마이어 아들 노먼 마이어가 유대계 미국 사람으로 팔레스타인에 구호품을 보내려다 공격받고 죽은 다음에 알게 됩니다. 노먼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구호품을 팔레스타인에 보내려 한 건 장이 알마를 살린 일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나’는 권은을 살렸네요.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그 일이 알려질 때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남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그 일을 잊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잊지 않지요. 누군가를 만나고 지금까지 닫은 마음을 연 사람도 있습니다. <동쪽 伯의 숲>에 나오는 한나가 그랬습니다. 한나는 아버지가 나치가 일으킨 전쟁을 찬성한 일을 알고는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 했는데, 독일에 공부하러 온 한국사람 안수 리를 만나고 마음이 바뀝니다. 하지만 안수 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한나는 안수 리를 찾지 않습니다. 이 소설 배경에는 예전에 있었던 ‘동백림 사건’이 나오더군요. 동 베를린을 1960년대에는 동백림이라 했나봐요. 시간이 많이 흐르고 한나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자인 발터는 독일작가와 아시아 작가 교류의 밤에서 한국사람 희수한테 안수 리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요. 발터는 안수 리가 한나의 죽음을 알고 슬퍼해야 한나의 삶이 온전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 (100쪽)”입니다. 안수 리는 이름을 바꾸고 살았습니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힘든 일을 겪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 독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안수 리는 부끄러움 때문에 살았다고 해요. 알듯말듯한 말입니다. 좋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겠다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시대 때문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또 나오는군요. 세번째 소설입니다. 예전에 이 소설 제목 ‘사물과 작별하기’ 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소설은 1967년이고 이건 1971년으로, 같은 사람이 한국을 자기 마음대로 했군요. 역사라는 큰 흐름 안에는 개인이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작은 줄기를 만날 수 있지요(언젠가도 이 말 했을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 좋아하게 된 서군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 고모는 죄책감도 갖고 있었습니다. 서군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재일 조선사람으로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는데, 고모는 그것을 자신 탓으로 여겼어요. 서군이 고모한테 잠시 맡긴 원고뭉치를 고모가 서군이 다니는 학교 사람한테 건네고 서군이 잡혔습니다. 고모는 원고뭉치를 받은 사람이 기관원이었다고 여겼지만, 서군이 잡힌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요. 알츠하이머병으로 고모는 여러가지를 잊었는데 서군만은 잊지 못했어요. 소설을 이끌어가는 조카 ‘나’는 고모와 서군을 만나게 해주지만, 고모는 서군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말을 합니다. 좀더 일찍 서군과 고모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동쪽 伯의 숲>에서도 한나가 안수 리를 다시 만날 일을 두려워했군요. 고모와 서군은 옛시대가 잃어버린 물건 같은 걸까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개인이 힘들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잖아요.

 

 정치 때문에 피해를 입은 개인도 있고, 가난한 나라에서 기회가 많은 미국으로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사람만 미국으로 간 건 아니군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미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요. <번역의 시작> <잘 가, 언니> <시간의 거절>에는 미국으로 간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잘 가, 언니>에 나오는 언니는 <시간의 거절>에 나오는 화가 제인 김으로 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을 여기 실린 소설에서 느꼈는데 생각나는 건 하나뿐입니다. <잘 가, 언니>는 슬프기도 해요. 심장이 안 좋은 동생 때문에 언니는 자기 꿈을 놓아버리고 일을 한 지 얼마 안 돼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대학원생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동생이 세번째 심장수술을 받을 때, 언니가 강도 총에 맞고 죽어요. 고등학생 때는 앞으로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나이를 더 먹으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언니가 고등학생 때 꿈을 아주 놓지 않고 언젠가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습니다. 동생은 언니를 대신해서 자유롭게 살았지만, 늘 언니를 생각해요. 동생은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언니를 보내줍니다.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고 붙들고 사는 것도 좋지 않겠지요.

 

 지금은 철학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이건 옛날부터 그랬을지도). 언젠가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제 철학은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인문학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없애다니. <산책자의 행복>에서 미영은 스무해를 대학에서 철학 강사를 하다 일자리를 잃고, 암에 걸린 어머니 치료비를 대다 개인파산까지 합니다. 미영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철학을 가르칠 때 한 말과는 다르게 행동해요. 편의점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오면 모르는 척해요. 미영처럼 하는 사람 많겠지요. 철학은 지금 미영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미영은 마지막으로 학생을 가르칠 때 만난 중국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메이린이 독일에서 전자편지를 보내도 답장하지 않아요. 메이린이 미영을 만난 건 한국에서 사귄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힘들 때였어요. 미영은 메이린한테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127쪽)” 합니다. 미영이 메이린한테 그런 말을 했지만, 어쩐지 지금 미영은 그러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미영은 개한테 쫓긴 뒤에 살고 싶다 생각합니다. 메이린이 보내는 전자편지가 나오는 건 미영이 그걸 본다는 거겠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메이린이 답장 없는 전자편지를 몇해 동안 보내지 않았겠습니다. 함께 말을 나누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누군가 있다는 게 힘이 되겠지요. 이 생각은 해설 때문에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주>는 다른 나라에 입양된 나나가 문주라는 이름 뜻을 찾으려는 이야기예요. 이름 뜻보다 자기 정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책을 보면서 걱정했는데, 어떻게든 썼네요. 첫번째 소설 <빛의 호위>는 따듯한 이야깁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거의 다 어둡지만 따스해요. 마지막에 실린 <작은 사람들의 노래>는 좀 다르군요. 소설이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겠지요. 균은 소설 바깥에서 다르게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희선

 

 

 

 

☆―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자의 행복>에서, 142쪽)

 

 

 비가 온다 해도 피하지 않고 젖은 몸으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삶은 그곳에도 있을 터였다.  (<시간의 거절>에서,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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