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와 나무

  고규홍

  휴머니스트  2016년 05월 02일

 

 

 

 

 

 

 

 

 

 

 

 

 

 

 

 사람은 눈으로 많은 걸 본다. 그래선지 자신이 보지 않은 건 믿지 않기도 한다. 자기 눈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믿는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데 의지할 것 같다. 말로 여러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더 빨리 알기 쉽기도 하고, 말로 듣고 상상할 때보다 실제 보고 덜 감동하기도 한다. 그건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자주 느낀다. 소설보다 영상을 먼저 보면 좀 다르지만. 영상을 보고 소설을 찾아보는 사람은 많다. 나도 그런 편이다. 반대로 소설을 보고 영상을 보는 사람은 적을 것 같다. 지금 세상에 볼 게 많기는 해도 모두가 보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거다. 보기 듣기뿐 아니라 다른 감각도 쓸 거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세상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몸에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다른 장애가 있기도 하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한사람 한사람 다 다를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도 사람 수만큼 있겠다.

 

 앞에서 넓게 세상이라 했는데, 이 책은 나무를 만나는 이야기다. 눈이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함께 나무를 만난다. 함께라고 했지만 고규홍이 김예지가 나무를 만나게 돕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김예지한테 나무는 장애물이다. 지금까지 김예지는 나무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김예지만 그런 건 아닐 거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은 나무, 숲을 보고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보이는 사람한테는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나무가 많은 숲에 가면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나무를 보면 그 자리에 있지만, 나무 속은 움직일 거다. 그걸 들을 수도 있다니. 난 한번도 못 들어보고, 나무 가까이에 가지 않고 멀리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 나무를 만지고 냄새 맡는 건 아니다. 어린이도 그렇게 나무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든 나무든 어린이 마음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겠지.

 

 

 

                      

 

 

 

 

 김예지는 두살 때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난 내가 두살 때 무엇을 봤는지 잘 모른다. 많은 사람이 그럴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빛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느낌이 다를 거다. 보이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으면 아주 캄캄하다 생각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런 게 어떤지 잘 모른다. 숲에 가면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난 한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은 없다. 나무 벌레 새 소리가 들릴까.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언제 숲에 갈지. 숲이라기보다 산에 가야 한다.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사람이 민병갈이라고 해서 한국 사람인가 했는데 미국 사람이었다. 예전에 이름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자세한 이야기는 몰랐다. 김예지는 그곳에 가서 나무를 보고 사진도 찍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진을 못 찍을 건 없기는 하다. 김예지 자신은 그것을 느낌으로만 알겠지만, 그걸 보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겠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악기를 나무로 만든다. 예전에도 생각했는데 나무로 악기를 맨 처음 만든 사람 대단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두드리기만 하지 않았을까. 김예지가 치는 피아노도 나무로 만든다. 고규홍과 나무를 만난 일은 김예지한테 좋은 경험이 되었겠다. 나무로는 악기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만드는데, 나무는 사람이 만드는 것에서 무엇이 되는 걸 가장 좋아할까. 그냥 나무로 살다 나무로 죽는 게 낫다 말할지도. 아니 이 생각은 별로다. 나무로 살다 나무로 죽는 것도 괜찮고 다른 모습이 되는 것도 괜찮다. 사람도 다 생각이 다르고 다르게 산다. 김예지는 음악을 듣는 것과 나무를 보는 게 닮았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과 음악을 듣는 것도 비슷하다.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책을 보고 느끼기도 한다. 음악도 비슷하다. 나무를 보는 것도 다 똑같지 않을 거다.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이 말 처음 하는 건 아니구나. 알아도 잘 잊어버린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대중음악이다. 고전음악은 잘 모른다. 그런 것도 관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텐데. 나무는 관심을 갖고 잘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는다 해도 들리면 무슨 곡일까 하는 생각은 해봐야겠다. 잘 모르지만 슈베르트 음악과 나무 어울릴 것 같다. 아니 나무는 어떤 음악과도 잘 어울릴까. 김예지가 나무를 만나는 모습 보기 좋았다. 수목원 같은 데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한테도 나무를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더하는 말

 

 슈베르트와 나무 뭘까 싶겠다. 내가 말한 건 겨우 슈베르트 음악과 나무가 어울리겠다뿐이라니. 고규홍과 눈이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 김예지가 나무를 보고 나중에 연주회를 연다. 그때 김예지가 연주하는 게 슈베르트 곡이다. 김예지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고규홍은 나무 사진을 보여준다. 피아노 연주회를 본 적은 없지만 영상을 보여주기도 할까. 난 그 말을 봤을 때 고전음악에 맞춰 자연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떠올랐다. 실제 연주를 들으면서 나무 사진을 보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숲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 더 멋지겠지만, 그건 좀 힘들겠지.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