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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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 푸시킨의 마지막 소설 '대위의 딸'은 분명히 학창시절에도 읽었고 그 후에도 읽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말이 어떻게 되었더라 생각을 하게 한다. 고전은 대부분 내용을 알고 있거나 읽었다고 생각을 해서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데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도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어 그래서 '고전' 인 듯 하다.이 소설은 요즘시대로 말하면 로맨스라고도 할 수 있어 술술 잘 읽힌다. 김치거리를 절구어 놓고 손에 든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오래전이야 주인공인 표트르와 마샤의 사랑에 중점을 맞추어 읽었다면 이젠 세월이 흘러서인지 표트르의 늙은 종인 '사벨리치'를 더욱 눈여겨 보며 읽게 되었다. 삶이 연륜이 베어 나오는 사벨리치의 말과 행동이 '노마지지'를 보듯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계급을 달고 나오고 아버지 또한 군인이었으니 표트르는 아버지를 따라 군인다운 기계를 펼쳐야 당연했겠지만 열여섯살,한참 성숙한 시기 세상밖 현실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무엇을 알겠는가.그저 치기에 '나는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고 또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라는 말처럼 그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자신이 어린애가 아닌 어른임을 과시 하고 싶어하지만 늙은 종 사벨리치의 눈에는 그는 그저 어린 주인밖에 되지 않는다.그가 아직도 어리다는 것을 증명하듯 여인숙에 들어가 처음 만난 사람과 내기 당구를 하여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훔뻑 빠져든것도 모자라 그와 당구로 빚을 져 주린에게 돈을 줘야 한다니 사벨리치의 눈에는 아직도 멀었다. 그런 그들이 또한 눈보라속에 갇히게 된 것도 어린주인의 고집 때문,오랜 마부생활의 예지력 대로 되돌아 갔다면 눈보라를 피했을터인데 어린주인이 우기는 바람에 눈보라 속에서 길을 읽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농부'를 만나 다행히 여인숙을 찾을 수 있었고 그에게 사례로 '토끼털외투'를 벗어 준 것이 훗날 그들의 운명에 큰 역할을 할 줄 어떻게 알았을까.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벨로고르스크 요새에는 사령관의 딸인 마샤가 있었고 그녀에게 한번 청혼하여 거절을 당한 시바브린은 그의 연적,표트르 인생에서 내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적이 되고 만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만 같던 곳에서 뜻하지 않게 푸카조프의 반란에 휩쓸리고 되고 사령관및 그의 아내가 죽음을 당하고 그의 연인인 마샤를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인물,눈보라 속에서 만났던 농부인 푸가조프를 만나게 되면서 행운처럼 목숨을 유지하게 되고 다른 요새로 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지만 그의 연적인 시바브린이 마샤를 가두었다는 말에 다시 벨로고르스크로 향하던 중 다시 푸가조프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마샤와 인연을 맺게 되지만 그가 속한 여제에 맞선 반란가 푸가조프를 도왔고 그를 만났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그,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의 활약이 이쯤에서 종료되었다면 표트르 부모님 집에 사벨리치와 함께 보내진 마샤는 반면 부모님의 맘에도 들고 다시금 예전의 총기와 아름다움을 되찾아 가고 있다. 그녀는 표트르가 위기에 닥쳤다는 말을 듣고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사령관의 딸인 마리야, 그를 들어내지 않으려 했던 표트르 하지만 마리야는 자신의 신분을 들어내고 여제게게 표트르의 진실을 규명하여 그를 위기에거 구하고 그들 또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다. 두 연인의 사랑이 소용돌이 치는 역사와 맞물려 급류에 휩쓸린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순간 순간 위기를 만나지만 그때마다 표트르가 요새로 가면서 만났던 주린이나 푸가조프와 토끼털외투가 큰 몫으로 그에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한다.그런가 하면 위기에 닥칠 때마다 그의 옆에는 연륜과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늙은 종 사벨리치가 나서서 그들의 이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어린 주인이 경거망동이라면 늙은 종은 노마지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탈출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사랑은 역사와 씨실과 날씨처럼 얼키고 설켜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불발로 끝나 버리나 하면 다시 이어진다. 역사의 이야기인 듯 하면서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개개인의 삶이 숨어 숨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사랑의 실패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의 모든 삶이 하나하나 모여서 역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가 바로 길이지 뭐요.내가 서 있는 단단한 땅 위, 여기가 길이잖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나타난 농부,그가 한 말 중에 이 말에 가슴에 와 닿는다. 길이 어디냐고 묻는 그에게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길이라는,어찌보면 자신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인생에서 정해진 길이란 없는 말처럼도 들린다. 그와 상통하듯 표트르의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얽혀들어가는 듯 하면서 어느 순간에 다시 길이 보인다. 길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시작' 일 수 있다. 집안에서는 그저 어린애로 취급받았고 늙은 종에게도 어린 주인으로 취급받았지만 전장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청년 표트르,그의 거짓없음이 아니 용기 있는 선택과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고 길을 찾으려 했던 그의 패기 있는 행동이 어쩌면 그의 사랑을 이어주고 그를 위기에서도 구해주지 않았을까. 그런가하면 푸가쵸프가 이야기한 까마귀와 독수리의 이야기 중에 '이봐, 까마귀, 죽은 짐승을 먹으면 300년을 사느니 뒷일이야 어찌 되건 간에 단 한 번이라도 산 짐승의 피를 실컷 마시는 편이 낫겠다.' 라는 말에 '살인과 강도 행각을 일삼으며 사는 건 죽은 짐승을 쪼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는 말로 그가 푸가쵸프와 다른 이상을 가지고 있음을,아니 전장에 휘둘리며 그 또한 그나름 성숙하고 단단한 이성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어찌보면 표트르와 푸가쵸프의 삶을 아니 표트르와 시바브린의 삶을 비교해 놓는다. 푸가쵸프 반란군의 황제로 군림하지만 눈보라 속에서 자신을 감추어주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소년을 위기에서 늘 구해주는 인정있는 사람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표트르와 연적이었던 시바브린은 기회를 이용할 줄 알지만 자기꾀에 자기가 걸려 드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끝까지 표트르를 물고 늘어지는 여유같은 존재, 그에 비해 표트르는 정직하면서도 세상물정을 잘 모르지만 그런대로 옆에 노마지지를 가진 사벨리치가 있어 위기를 잘 넘긴다. 소설을 읽으면서 '새옹지마'를 떠올렸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전장속에서도 역사는 흐르고 개인의 사랑과 인생사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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