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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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
'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한사람의 추도사를 쓴다는 것은 그사람을 얼마만큼 알아야 가능한 일일까. 한사람에 대하여 모든것을 다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어린시절부터 다녔다고 하지만 그에겐 믿음이 그리 강하지 않다. 그런 그에게 그가 다니는 유대교 회당의 랍비인 렙은 추도사를 써 달라고 부탁을 한다. 왜? 자신이 선택된 것일까? 작가의 전작인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에서도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데 이 책 또한 인생을,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것인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 안에 모든것을 쥐어 잡는 것이 뜻 있는 인생인지 자기 손 안에 쥔것을 남에게 모두 베풀고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인지 답을 전해주고 있다.

그가 만난 두사람, 헨리 코빙턴과 앨버트 루이스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이며 유대교 회당의 랍비로 기독교의 목자의 길을 걷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헨리 코빙턴, 그의 삶을 돌아보면 먹느냐 먹히느냐,강자가 약자를 무참하게 짓밟는 세계에서 강도짓과 마약 감옥살이를 하면서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에게 자신의 남은 삶을 바친 남자, 구멍뚫린 교회에서 자신의 삶에 구멍을 메우듯 가난하고 마약에 찌들고 사회에서 뒷골목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베풀며 자신의 죄를 씻어나가는 목자인 헨리, 그의 진심은 무엇인지 간파할 수 없어 선뜻 자선을 베풀지 못했지만 낡은 교회의 지붕에 뚫린 구멍에서 비로소 진실을 본 작가는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 을 선사한다.

앨버트 루이스, 유대교의 랍비인 처음엔 랍비의 길에 패배감을 안고 뒤돌아섰지만 다시 도전한 랍비의 길에 들어서 평생을 그 길에서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주었던 사람, 하지만 그도 이젠 마지막 가는 길을 남겨 놓고 자신이 하던 일을 작가에게 의례를 하여 마지막 추도사를 부탁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렙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언제나 노력을 한다는 것, '미치,신앙이란 행동의 문제라네. 얼마만큼 믿느냐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도 중요한 거야.' 믿음도 중요하지만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깨우쳐준 렙은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와 있는지 잘 안다고 말한다. '남에게 베풀기 위해서,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서,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상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의 아침 기도는 ' 주여,오늘도 제 영혼을 다시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니 정말 배울점이 많은 이다. 우린 남에게 베풀고 감사하기 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 바쁘게 산다. 자신의 욕심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그 욕심에 치이며 사는이가 많은 반면 그 욕심에 지배를 당하고 살기도 한다. 베풀며 감사하는 삶, 간단한것 같으면서 행동에서 제약을 받는 정말 평범한 삶을 왜 우린 실천을 못하는지,아니 나 자신부터 그런 삶과는 멀게 살고 있는지.

렙은 폐의 종양때문에 하루하루 죽음에 길에 가까이 접근하며 살고 있다. 폐암, 몸이 늙어 그의 몸의 종양도 더디게 성장을 하며 그와 함께 하루하루를 함께 한다. 그래도 늘 노래와 웃음으로 사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나의 친정아버지 또한 작년 여름에 폐에 종양이 있다는, 폐암 선고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가 폐암이란 것을 알게 되는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나도 모르게 흘러 한참을 진정한 후에 읽기 시작했다. 친정아버지 또한 나의 전화에 늘 웃으시며 괜찮으시다고 말씀 하시는데 렙과 아버지가 오버랩 되어 더 가슴에 와 닿게 읽었다. 모든 이들의 앞에서 믿음을 주고 우러러 보는 존재였던 그가 그의 자리에서 물러서 아래로 내려오며 평범한 자리에 서서 남은 생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게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설 줄도 알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도 알고, 8년 동안 그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일부분 그의 삶에 근접해 그를 볼 수 있음은 자신이 알고 있던 랍비보다는 한사람의 평생을 들여다 본 삶이 더 값졌으리라 본다. 

우린 가끔 그사람의 '단면' 만을 보고 그사람의 모두를 평가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헨리의 지난날을 보면 그가 목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아이러니 할 것이지만 그런 삶을 살았기에 그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고 그들을 더 감싸줄 수 있었으리라 본다. 렙 또한 자신안에 새롭게 둥지를 튼 '암덩어리' 마져도 자신의 일부처럼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마지막 그 순간까지 노래를 하듯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음이 자신을 비울 수 있는 '태어날 때는 두 손을 꼭 쥐고 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두 손을 펴고 죽는다네.' 하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쳤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것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지붕에 구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구멍, 슬프고 불행한 일이 거센 바람처럼 몰아쳐 들어오는 구멍 말이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에서 '타인은 미래에 만날 가족' 이라 표현했듯이 이 책에서 그는 나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아무리 수렁에 빠진 삶이라 해도 지붕에 뚤린 구멍처럼 언젠가는 그 구멍을 메울 수 있는 '희망' 의 존재로 희망의 연결고리로 거듭날 수 있다는,아직 포기하기에 이른 삶이라 말해주고 있다. 그런 위치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나보다 못한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자신의 삶에 감사하고 비우며 사는 충만한 삶에 대하여 성찰을 하게 한다. 누군가 나의 추도사를 쓴다면 그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 나는 누군가에게 한 점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인지, 날마다 맑은 날만 살 수 없는 삶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감사하며 베풀며 사는 삶을 배워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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