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은 이 잊혀진 꽃봉오리 위로도 한결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은 <연인>이라는 영화로 먼저이다. 원작을 읽지 않고 만난 '연인'이라는 작품은 이십대로 들어섰던 내겐 큰 충격같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뒷 감흥이 가시지 않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겨주던 영화였기도 하지만 십대에서 이십대로 한단계 올라선 나의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던 감정들과 맞물려 있던 영화라 더 기억에 남는가 보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 책을 구매해 놓았지만 오래도록 바라보기만 하고 손에 잡지를 못했다. 그러다 만난 '모데라토 칸타빌레' 라는 작품은 짧지만 이 작품 또한 강렬한 작품이다. 먼저 읽었던 <좋은 이별>에서 김형경은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상실과 애도가 그녀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는데 그 또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상실과 애도 그리고 사랑은 그녀의 작품에 어떻게 그려졌을까?

공장주의 아내로 십여년간 집안에 갇혀 지낸 안 데바레드 부인, 그녀는 어느날 침실앞에 핀 목련꽃을 바라보다 일탈을 꿈꾼다. 그 첫번째 방법으로 자신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궁금한 아이의 피아노레슨을 금요일마다 시키기 위하여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꽃이 정말 대단해요.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죠. 그런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앓아 눕는답니다. 창문을 닫아보기도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그 향기가 꽃을 간질이는 계절, 가만히 있는 그 무언가도 바람날 계절에 십여년동안 집안에 갇혀 정숙함의 이미지로 살아온 그녀에겐 못견디게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을때 옆에 있던 그녀는 아이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못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와 박자를 그녀도 선생님도 아이가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한다며 '모데라토 칸타빌레' 를 주입시키듯 말하는 선생님에게 어쩌면 자신의 삶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피아노레슨 도중 창밖에서 들려오는 강한 여자의 비명과 사람들의 아우성 그리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아이의 집중력은 흐려지고 아이와 함께 그녀 또한 사건현장으로 달려가게 된다. 바에서 본 살인현장, 죽은 여자를 애무하듯 하는 남자. 살인현장은 그녀에게 강한 충격이 되고 죽은 그녀와 그녀를 죽인 남자의 사랑처럼 그녀 또한 다음날 술집에서 만난 쇼뱅을 만나 그들의 사랑을 재현하듯 즐거운 대화를 한다. 죽은 여인의 사랑은 데바레드의 사랑이 된 듯 그들의 상상과 지난 과거속의 그녀는 하나가 되듯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카페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마주한듯 노동자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그녀의 삶은 어쩌면 모데라토 칸타빌레처럼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순조롭게 십여년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목련꽃의 만개에 가슴앓이를 하는 그녀에게 이제 일상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쇼뱅과의 대화로 저녁만찬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포도주를 과하게 마셔 파티주인장이면서 만찬 시간에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가슴이 들어나도록 흩트러진 모습으로 나와 남편과 부인들을 놀라게 하는 데바레드 부인, '목련꽃잎은 벌거숭이 낟알처럼 매끈하다. 꽃잎에 구멍이 날 때까지 손가락으로 비벼대다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깨닫고 그만둔다.' 모두가 그녀의 일탈에 대해 알아버린 것이다. 변명을 해 보려 하지만 술에 취해 정숙하지 못한 고백의 표정을 짓게 되는 그녀.목련꽃잎이 바스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녁 만찬에서 먹은 음식들을 모두 토해내듯 다시 아무일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녀에게서 봄날의 가슴앓이를 훔쳐본듯 한 것은 비단 목련꽃이 활짝 핀 계절이어서일까.

어찌보면 밋밋한 소설이기도 하다. 해설부분에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언어의 모험' 이라 했듯이 안의 사랑을 쫒아가다 보면 숨막힐 듯 하다. 모두에게는 우러러보는 대상이겠지만 권위적인 남편과 집안에 갇혀서 박제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녀를 생각할때 자유로이 포도주도 마시고 사랑을 속삭이고 목련꽃의 향기에 취하기도 하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삶이 모데라토 칸타빌레처럼 노래하듯 하는 삶이 아닐런지. 짧은 소설이지만 그녀의 마력에 충분히 빠질 소설이다.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다재다능했던 그녀의 다른 작품인 <연인> 과 <북경에서 온 여인> 등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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